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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 여행 스크랩 두류공원 금용사(0.10.8)
숲길 추천 0 조회 25 10.10.13 09:1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두류공원 금용사(0.10.8)

 

대구에 일이 있어 출장을 갔는데 시간이 남아 두류공원을 산책하였다.

두류공원은 기존에 있던 산을 잘 활용하여 공원을 만들어 숲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좋은 곳이었다.

산책로도 우레탄을 깔아 놓아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고 아주 좋았으며 대구문예회관도 있고 큰 호수도 있어 대구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좋은 곳이었다.

길을 가다보니 두류산 금용사라고 편액이 걸린 절이 있었다.

문의 한쪽은 닫혀 있고 한쪽은 열려 있는데 닫혀 있는 쪽은 청사자를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문수보살로 보였고 열린 쪽은 코끼리를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현보살로 생각된다.

문으로 들어가니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작은 석등 그리고 5층석탑과 대웅전이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얌전하게 앉아 있는 것이 인상깊었는데 요즘 석등은 불을 켜 놓지 않고 부처님과 동자승 인형을 모아 놓은 곳이 종종 보였다.

대웅전을 보면서 오른쪽에 요사채로 생각되는 집이 있는데 금용사라는 편액이 걸렸는데 글씨를 보니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이다.

대웅전에서 쳐다보이는 산이 앞산이라고 하는데 앞에 웅장하게 보였다.

대웅전에 올라갔는데 웬 개같이 생긴 친구가 있는데 소리를 들어보니 고양이이다.

순해서 피하지도 않고 대웅전 편액을 보는데도 부딪히기도 했다.

전각의 이름은 대웅전인데 부처님의 수인을 보니 아미타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었고 인생을 비유한 사나운 코끼리에 쫓겨 구덩이에 메달려있는 그림도 있었다.

대웅전의 단청은 장구머리초였고 팔작지붕에 다포식 건물이었다.

대웅전 오른쪽에 삼성각이 있었는데 가운데 치성광여래와 우측에 산신, 좌측에 독성존자가 그려져 있었다.

대웅전 앞에도 작은 석등 2개가 있었다.

금용사 구경을 하고 한바뀌를 돌아 제자리로 왔는데 많은 대구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아주 좋은 공원이었다.

 

두류산 금용사

이 곳에 전래된 지명과 유래를 살펴보면 두류산은 한때 금봉산으로 불렸으며 고려중기에 한 부호가 몽고의 관습을 피해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솔권한 문중의 원찰로 절을 짓고 그 이름을 풍수적 지형지세를 따라 金鳳寺라고 했다고 한다. 이렇게 존속하여 오던 절이 조선의 개국과 함께 숭유억불의 정책이 시작되면서 지방 유생 토호들이 절을 헐고 향교를 지으려고 하자 천재지변이 일어나 산이 갈라지고 절터가 못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없어진 금봉사는 역사의 망각 속에 사라지고 오랜 세월 속에 잊혀져 오다가 이곳 인근에서 불심이 돈독한 김송동(金松東) 보살님이 절을 창건하기 위해 부지를 물색 하던 중 성당못 주변에 묘를 쓰기 위해 땅을 파면 파불조각과 토기 와당 전돌 등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원찰을 세울 것을 발원하여 1926(병인년)에 지금의 두류실내수영장 별관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2동을 창건 하였으며 이때 출가하여 본심(本心)스님으로 평생동안 이 도량에서 정진 하셨다.

절 이름이 금용사라고 한 것은 옛날 천재지변으로 금봉산 봉황이 룡으로 화했다는 풍수설화를 감안하여 금(金)자는 옛 금봉사에서 따오고, 룡(龍)자는 천재지변의 풍수설화에서 따서 오늘에 금룡사의 절 이름이 있게 되었다. 지금의 금룡사는 1986년 대구에서 개최한 전국체전 때 현 주지(慧禪)스님께서, 금룡사 부지가 실내수영장으로 편입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현 위치로 이전 중창 하셨다

 

인생의 비유

빈두설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어떤 사람이 길을 나서다가 큰 들판에서 미쳐 날뛰는 큰 코끼리를 만났다. 그는 놀라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도망치다가 옛 우물터의 등나무 넝쿨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 우물밑에는 독사와 독룡이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위에는 미친 코끼리가 발을 둥둥 구르고 밑에는 용과 뱀이 혀를 낼름 거리니 나그네는 유일한 생명줄인 등나무 덩쿨에만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이때 흰쥐와 검은쥐가 나타나서 서로 번갈아 등나무 줄기를 갉기 시작했다. 그는 멍하니 하늘을 쳐다 볼 뿐인데 그때 머리위 나무가지에는 몇마리 꿀벌들이 집을 짓느라고 움직이는데 그때마다 꿀이 떨어져 입에 들어왔다. 그는 꿀의 단맛에 취해 모든 위험을 잊고 도취되었다. 그러는 동안 대지에는 불이 일어나 모든것을 태워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넓은 광야는 무명장야, 위험을 만난 사람은 인생, 코끼리는 무상, 옛우물은 생사, 등나무 줄기는 생명줄, 흰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 뱀과 독룡은 죽음, 벌은 헛된 생각, 꿀은 오욕, 불은 늙고 병듦을 비유하고 있다.

 

두류공원

두류공원은 1965년 공원으로 결정된 이후 1977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된 도시근린공원으로서 문화, 교양, 체육시설등이 구비되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사랑받는 공원으로 발전하고 있다. 두류공원은 두류산과 금봉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원으로 우방타워랜드가 들어선 곳은 두류산이고, 문화예술회관 뒷산은 금봉산이다. 두류산은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산이 둥글게 펼쳐져 있다고 하여 두리산으로 부르던 것을 지명이 한자화될때 같은 의미의 주산 또는 두류봉으로 쓰여오다가 근래에 와서 두류산으로 지칭되었다고 한다. 공원내에는 대구의 명소인 우방타워랜드, 면학장소인 두류도서관, 시민건강증진에 기여하고 있는 각종 체육시설과 시민문화의 전당인 문화예술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해강 김규진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선생은 1868년 평남중화에서 태어났다. 눌인(訥人) 조강진(曺匡振)에게서 글과 서예를 배우고 외숙부 소남(少南) 이희수(李喜秀)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8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10년 동안 유명한 서화가들을 찾아다니며 서법과 화법을 습득했으며 전국을 주유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귀국 후 궁중에 출입하면서 서화를 그렸고 영친왕(英親王)에게 글씨를 가르쳤다. 고종(高宗)의 명을 받아 동경에 가서 사진기술을 배워왔다. 1903년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천연당(天然堂)이라는 사진관을 개업했다. 천연당은 2층집으로 엄비가 영친왕을 잘 가르쳐 주었다고 사례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2층집을 지어 주었다. 같은 건물에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이라는 화랑을 차리고 표구도 했다. 1915년에는 해강서화연구회海岡書畵硏究會)를 만들어 학교격으로 후학을 가르치며 3년 졸업 제를 시행했다. 교본으로 화법진결(畵法眞訣) 난죽보(蘭竹譜) 육체필론(六體筆論) 등을 만들어 서화교육에 힘썼다. 그때 이응로 이병직 강신문 민택기 윤희채 등이 해강 제자들이다.

해강(海岡)이 금강산에 들어가 구룡연에 미륵불(彌勒佛)이라는 대자(大字)를 새겨놓은 것이 아직도 남아있다. 이 글씨는 불교신도들이 발원해서 이루진 것이다. 그때 불교신도 한 사람이 꿈에 부처님을 뵙고 폭포암벽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글씨를 새기라는 계시를 받고 다른 신도들과 의논해서 당대의 명필인 해강에게 부탁한 것이다. 해강이 금강산 구경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서 매일신보에 19회에 걸쳐 금강산 스케치 연재를 했다. 기행스케치가 신문에 연재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다. 해강은 이후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후학을 교육시키는 일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해강 하면 대 그림이 표지그림이고 특히 풍죽(風竹)을 으뜸으로 친다. 풍죽은 일본까지 소문이 자자해서 천왕이보고 감탄했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천람(天覽)이라는 두인을 사용하기도 했다. 해강의 왕풍죽(王風竹)은 귀하며 그중에서도 석죽도(石竹圖)는 보기 어려운 작품이다. 왕대 석죽도는 바람이 부는 느낌을 주는 수작으로 왕죽이 바람에 밀리는 것이 불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안전하게 보이도록 돌을 추가해서 완벽하게 그렸다. 대각선 구도를 설정하여 한쪽 여백에 화제를 가하고 균형을 잡음으로서 완벽한 작품으로 성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세죽도는 신죽(新竹)을 그려 하늘로 솟아오르는 여러 줄기가 힘차다. 화격(畵格)이 고아해서 감상자로 하여금 감흥을 일으키는 신선한 작품이다. 여러 줄기의 죽간을 한 치도 가감할 곳이 없고 죽엽도 한점 실수 없이 달인답게 그렸다. 이 작품을 보면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해강의 화재(畵材)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해강선생은 산수, 인물, 화조, 사군자, 기명 등 두루 잘 그렸지만 특히 글씨가 명필이라 전국의 정각 사찰 등에 유작이 많이 남아있다. 유작으로 평양의 부벽루, 금수강산, 영명사대웅전, 부여백마강, 진주촉석루, 해인사의 가야산해인사, 장성의 대가람백양사, 법주사, 서울보신각, 희정당, 태극전, 등이 그의 필적이다.

지난날 서화계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과 재야에서 묵묵히 작품 활동을 열심히 해온 사람들로 구분하며 이들은 모두 현대에 와서 응분의 예술적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자기이름을 나타내기를 싫어해서 무 낙관으로 남아있는 작품이 더 많다. 그래서 민화로 분류되어 작품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으며 낙관이 있어도 무명작가로 평가되어 우리의 귀중한 문화가 사장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각종공모전이나 등용문이 많아서 작가들마다 경력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달려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궁중화가나 벼슬정도를 경력으로 해서 전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재야에서도 혹 특출한 작가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데 매우 다행한 것은 최근에 와서 무 낙관 작품도 우수한 작품은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고화 작가들 중에서 해강처럼 훌륭한 유작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

 

금용사 들어가는 문이다.

 

 

좀더 가까이 담아 본다.

 

 

사자를 타고 계신 것을 보니 문수보살로 생각된다.

 

 

두류산 금용사 편액이다.

 

 

제껴진 문에는 코끼리를 타고 계신 것을 보니 보현보살인가 보다.

 

 

탑 앞에 작은 석등이 있는데 탑에 등을 밝히는 것이고 그 뒤에 대웅전이 있다.

 

 

방근전 들어온 문을 뒤돌아 본다.

 

 

고양이 한마리가 얌전하게 앉아 있다.

 

 

탑의 광명등인 석등이다.

 

 

신발을 보니 스님들이 거쳐하는 요사채로 생각된다.

저 편액 글이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이다.

 

 

대웅전을 올려다 본다.

 

 

 

해강 선생의 편액글이다.

 

 

좌측에도 집이 있는데 요사채로 추정된다.

 

 

탑을 본다.

 

 

석등도 본다.

 

 

탑에 문양이 있는데 비파를 연주하는 신선인가 선녀인가?

 

 

저기 보이는 산이 앞산이란다.

 

 

대웅전 앞에 석사자도 있고 석등도 있다.

 

 

대웅전 편액이다.

 

 

공포와 단청이다.

 

 

붙임성이 좋은 고양이이다.

 

 

법당안의 부처님과 불단이다.

 

 

 

대웅전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인생을 묘사한 그림도 있다.

 

 

스님을 배에 태워 강을 건너는데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다.

 

 

대웅전의 단청이 장구머리초이다.

 

 

앞산의 모습을 다시 본다.

 

 

대웅전 앞 사자이다.

 

 

삼성각의 모습이다.

 

 

삼성각 편액이다.

 

 

삼성각의 탱화이다.

 

 

대웅전을 옆에서 본다.

 

 

대웅전 앞의 모습이다.

 

 

공포 사이에 부처님과 보살님이 계신다.

 

 

 

대웅전의 문 모양이다.

 

 

돌하루방이 있다.

 

 

석등에 부처님과 동자승 모형이 있다.

 

 

 

대웅전의 모습을 다시 본다.

 

 

나오면서 출입문을 다시 뒤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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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0.13 09:47

    첫댓글 가보지못한 대구의 "금용사" 숲길님 덕분에 공부 잘하고갑니다.
    숲길님의 불교에대한 풍부한 상식에 놀랍고 많은 양의 사진을 편집
    매모하시는 능력에 감탄합니다.
    진심으로 좋은글 좋은사진 해강선생님의 편액 명필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10.10.13 11:39

    고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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