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음악세상 2017.8.4.
- 황혼에 서서 -
이영도의 대표되는 시의 하나이다.
청마는 같지만
그의 곁을 맴돌며 떠나질 못하는 한 세월의 그리운 마음,
네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세월은 덧없이 흐른다 해도
언제나 변함없는 나의 사랑,
아픈 그리움으로 견뎌내는 상실의 한 세월이라.
그윽한 깊이와 무게로 다가오는 그리움.
시조의 운율이 이런 깊이인 줄이야...!
영원한 그리움이다.
< 사 랑 >
이영도(李永道. 1916-1976)는 누구인가.
그녀의 시 세계는 민족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잊혀져가는 고유의 우리 가락을
시조에서 재현하여 현대적으로 승화시키며
간결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여성의 맑고 경건한 마음, 기다림 등의 정서를 다스리며
관조적인 인생관을 보여준다.
‘죽순’에 시조 ‘제야’로 등단하여 통영여중, 부산 남성여고, 마산의 성지여고,
부산여자 대학(현 신라대학)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부산 어린이 회관도 운영하였다.
한국 시조 시인 협회 부회장과 여류 문학인회 부회장을 맡기도 하였으며
<현대시학> 편집위원 등을 지냈다.
시집으로는 <청저집(1954)>, <언약>, 오라버니인 이호우와 공동시조집
<석류(1968)>등을 발간하고
수필집으로 <춘근집>, <비둘기내리는 뜨락>, <애정은 기도처럼>, <나의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
<머나먼 사념의 길목>등 일곱 권이 있으며 수필가로서의 명성도 크게 이루었다.
부산의 문화발전에 큰 기여를 한 이영도는
1966년에 <말없이 행동하는 문화인에게> 수여하는 취지의
눌원 문화상(訥園文化賞)을 수상하였다.
청마 유치환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이영도는 20년간 이어지며 이영도에게 남긴 5000여통의 편지들 가운데
200통을 간추려 청마 서간집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발간하였다.
청마가 운명하자마자 연서를 상품화한다는 비난도 감수하며
이영도가 예의 서간집을 펴낸 것은
청마의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고 싶었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 이는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만5천부가 팔리며 큰 반향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의 서간 집이다.
그 수익금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호를 딴 정운 문학상(丁芸 文學賞)을 제정하여
재능 있는 시조 시인들을 지도하면서 문단에 등단시키며
시조시인을 양성하는 데에 큰 업적을 남긴 이영도다.
초기엔 아호를 정향(丁香)으로 쓰다가 후에 정운(丁芸)으로 바꾸었다.
여성스럽고 아름답고 총명한 여인, 정갈한 몸가짐의 이영도,
이 평전 외에도 청도의 시인 박옥금의 <내가 아는 이 이영도, 그 달빛 같은> 평전 등
그녀를 기리는 평전이 몇 권 있다.
이영도(1916-1976)는 경북 청도에서
아버지가 지방 군수인 좋은 집안의 3남 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으며
시인 이호우의 누이이기도 하다.
한학자인 할아버지 이규현의 영향을 받아 천자문과 소학을 배우며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키웠다.
그러나 그녀의 총명과 곧은 성격은 오히려 조부모의 염려를 사서
객지로 유학을 가지 못하고 조부모가 운영하는 학당에서 공부를 했다.
이영도는 조부모의 뜻을 따라 1935년 20세에 대구의 부호와 결혼을 하였지만
그 이듬해인 1936년에 딸을 낳은 후 신혼의 꿈도 얼마가지 못하고
폐결핵으로 병약하던 남편을 수발하다 결국 1945년 8월 29세에 남편과 사별을 하게 되었다.
이영도는 결혼하면서 덮어 두었던 시조 노트를 다시 꺼내 들었고
1945년 10월, 통영 여자 중학교 가사 선생님으로 부임하면서
또 한 번 생애의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된다.
바로 청마 유치환과의 숙명적인 만남이다.
마침 그 학교에는 유치환 외에도 시인 김춘수. 작곡가 윤이상, 화가 전혁림,
초정(草汀) 김상옥 시인 등 유능한 예술가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농장을 경영하고 싶어 1940년 가족을 이끌고 떠났던 북만주.
어린 아들을 잃고 삽이 들어가지 않는 허허벌판의 광막한 언 땅에 묻으며
“암담한 진창에 갇힌 철벽같은 절망의 광야”인 북만주를
부인 권재순의 집요한 요구로 떠나와 해방직전인 1945년 6월 고향땅 통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통영 여중에 국어 교사가 된 것이다.
몇 달 후, 새로 부임한 가사교사 이영도!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이었다.
시조시인이기도한 이영도는
평생 한복을 입었던 청초한 아름다움과 남다른 기품을 지닌 여성이었다.
고독과 방황으로 북만주를 떠돌다 귀향해 통영여중 국어 교사가 된 38세의 기혼자인 청마는
새로 부임한 이영도의 '그 높고 외롭고 정(淨)함'에,
슬프도록 빛나고 청초한 모습에 온통 마음이 사로잡힌다.
외길 사랑으로 외롭던 청마의 애타는 마음.
뭍같이 까딱 않는 정운에게 바친 절규 같은 그리움이다.
청마의 일방적인 혼자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룰 수 없는 인연이기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힘들고 안타까운 세월,
20년이라는 격랑의 긴 세월동안 지속된 사랑은
서로의 문학 세계 속에 그대로 스며들어 깊은 울림의 아프고 아름다운 시들로 태어났다.
청마의 편지 중 애절하고 아름다운
한 편을 소개한다.
이 간절함이란....!
“나의 귀한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 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청마,
같이 할 수 없는 애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이토록 절절하다.
물처럼 까딱 않던 이영도.
청마가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시와 편지를 보내며 지내온 지 3년,
마침내 정운의 마음이 조금 움직였다.
6.25 동란이 터지면서 청마와 재회의 기약도 없이 헤어지게 되자
정운은 그동안 우정인 줄만 알았던 마음이 비로소 사랑이라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드디어 이들의 사랑은 시작됐으나
유교적 가풍의 전통적 규범을 깨뜨릴 수 없어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인연이기에
그들의 만남은 안타까움 일 수밖에 없었다.
'지애(至愛)한 정운, 최애(最愛)한 당신'인 정운을 향한 청마의 사랑과 편지는 끝없었다.
둘의 연모는 통영과 부산, 그들이 같이한 20여 년의 긴 세월 속에
전무후무한 애틋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1954년 서정보 시조시인의 특별한 배려로
통영에 있던 이영도가 부산에 왔을 때,
청마는 경남 함안군 나의 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유치환은 매일 편지 띄우는 것도 모자라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이영도에게 달려가는 지극한 사랑이었다.
이영도를 한 두 시간 만나기 위하여
하루 종일 그 흙먼지 뿌옇게 이는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시달리며...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새벽 6시에 그 느린 부산행 버스를 타고
열 두 시간을 달려 부산에 와 이영도를 만나곤 했던 유치환.
2년간을 600리의 멀고도 불편한 길을 한주도 거르지 않고 오가며
휴일을 다 써버리곤 하던...
그의 모든 열정을 다 바친 유치환이었다.
흔들림 없는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최애(最愛)한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고 돌아가곤 했던 청마.
정운도 마찬가지였다.
첫 시조집 <청저집(靑苧集. 1954년)>에 실렸던 작품으로,
경남 통영시에서 당시 교편을 잡고 있던 정운이
청마 유치환과의 연정을 싹틔우고 있을 무렵의 심경을 토로한 작품이다.
민망하고 말이 도로 없어지는 저 사랑의 깊이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말을 할 수가 없었겠지,
하늘처럼 우러르는 사모의 마음이 벅차기만 하여...
“나의 하늘은 투명한 9만리”
이영도의 투명하고 드높은 하늘인 청마.
그들의 사랑은 과연 깊고 깊은 그윽한 사랑이었다.
하나 딸을 키우며 그녀의 외로운 삶을 지탱하게 해준 정신적인 지주,
시를 아름답게 이끌어준 ‘그녀의 하늘’.
청마는 그녀의 믿음이자 의지였을 것이다.
유교적인 가풍의 전통적인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던 그들.
‘도덕’이라는 한국적 모랄 때문에 어찌할 수 없었던 그들의 사랑은
마음 깊은 곳에 모셔놓은 성스러운 신전이었고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크나큰 우주였을 것이다.
그런 그가...
1967년 2월 부산에 함께 있던 청마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이 세상을 버렸다.
영원한... 영혼의 반려였던 그가...!
이영도의 슬픔과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상실의 한으로 남은 죽음... 이영도의 수필 「유성」에 남긴 글이다.
“일지기 나는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흐르는 별똥을 향해 아픈 기원을 나누어 왔다.
우리들의 목숨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어서 멀고도 창창한 영겁의 길을 동반할 수 있기를 빌었던 것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본의 아닌 배신을 그는 저질렀고,
남은 나와 함께 우러르던 그날의 성좌를 버릇처럼 우러러 섰다.”
“마지막 죽음의 길을 가는 날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과 함께 떠납시다.
이것만은, 이 한만은 서로 풀도록 기약합시다.
그렇지도 못한다면 영혼도 눈감을 수 없는 애달픔인 것입니다.”
이룰 수 없는 한스러운 사랑,
같이 죽어 하늘에서 영혼으로 만나자는...!
유치환의 애절한 편지(1959)다.
‘탑’이라는 시로 아픈 심경을 고백하며
청마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이영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노라 던
그 진실하고 아픈 사랑이 그렇게 허망하게 갔다.
두 사람의 끝나지 않은 미완성의 사랑!
아니! 어쩌면 완성된... 미완성을 통해 이루어진 완전한 사랑이 아닐까!
긴 세월 이어져온 지극한 사랑의 그 깊고 아득한 의미에
뜨거운 눈물로 내가 대신 울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 나의 사랑인양...
이영도는 더 이상 부산에 머물기가 힘들었던지 그해 9월 서울로 영영 옮겨 가 버렸다.
애일당(愛日堂) .
이영도가 10여 년간 부산에 머물동안 글도 쓰며 청마와 같이하던 곳이다.
하루하루를 아끼며 나누던 깊고 고고한 '애일당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지금도 그 사랑의 깊은 여운은 ‘애일당’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인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의 20여년에 걸친 플라토닉한 사랑은
어쩌면 이 시대의 깊은 울림의 전설과 같은 것이다.
과연 우리는 ‘윤리’라는 차가운 시선으로 이 지극한 사랑을 바라볼 수 있을까!
사별한 남편으로부터였을까,
마산 결핵 요양소에 1년 동안 요양을 하기도 하면서
평생 건강하지 못했던 이영도는 끝내 1976년 61세에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이은상 시인을 장례 위원장으로 문인장을 치른 뒤
화장을 하여 친정의 선영, 오라버니 이호우 곁에 묻혔다.
“이영도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다정다감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맑고, 고요하고, 격조 높은 시를 쓰고, 시를 이야기하고,
또 시를 생활화하고 간 여인이었다.”
이은상 시조시인이 시조집 『언약』 서문에 밝힌 글이다.
청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청마를 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고 살았다.
황혼에 서서...
남은 세월을 그리움으로 살다간.... 그녀의 영원한 청마!
못 잊을 사랑이 남긴 아름다운 명시다.
부산 금강공원에 있는 이영도 시비
- 유치환의 결혼(1928) -
어려서부터 내성적인 성격의 유치환이었다.
부유한 환경 속에 자라며 중학교를 일본 유학까지 갔으나
친구를 사귀는 대신 책에 몰두하던 유치환이었다.
그러면서 주일학교에서 만난 소녀에게 매일 같이 편지와 신문을 보냈다.
바로 그 소녀가 훗날 휴치환의 부인이 된 권재순이다.
청마는 귀국 후, 연희전문을 중퇴하고 진명유치원 보모로 있던 한 살 연하의 권재순과 결혼했다.
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신식의 성대한 결혼식으로, 신랑신부 앞에 꽃바구니를 든 화동중의 하나가
작고한 김춘수 시인이기도 하다.
평생을 유치환의 그늘에서 조용히 유치원을 경영하며 살아온 권재순.
이영도와의 사랑을 모를 리 없었겠지마는
남편으로, 또한 시인 유치환으로...
이해와 지극한 사랑으로 받들며 모시며.. 세 딸을 기르며...
말없이 가정을 지켜온 지혜로운 훌륭한 부인으로 생각된다.
“경주 남산기슭에 초간 삼간 짓고 할망구와 단둘이 살다가 뼈를 묻겠다.”
경주 고등학교, 경주 여자 고등학교 등에서 오랜 기간 교장으로 재직하였던 곳인
천년 고도 경주를 특히 사랑하던 청마는 아내 권재순과의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지만
그 마음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살았으리라.
오늘까지 시인 유치환에게만 집중했던 나의 시선이었다.
유치환이 사랑했던 ‘이영도’,
청마의 처로서 남편을 다른 여인에게 빼앗긴(?) 채 살다 간
측은한 여인, ‘권재순’으로만 생각하며 청마의 부수적인 인물들로만 생각했었다.
극히 피상적이었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관심 없는 섣부른 생각이 얼마나 잘 못되었나를 깨우치며
깊은 감동과 함께 사뭇 기쁘기까지 하다.
아아! 그랬었구나!
권재순, 유치환, 이영도.
주어진 영역에서 자기 빛을 발하며 살다간 사람들이라면 내가 지나칠까!
시인으로서의 유치환,
가정을 거느린 남편으로서의 유치환,
그는 그 모두를 소중한 사랑으로 이끌며 살았다.
푸른 하늘 드높이 펄럭이는 고고한 이상의 <깃발>처럼...
권재순은 유명한 시인의 처로서 남편의 바깥사랑을 모르진 않았으련만
이해와 사랑으로 남편을 떠받들며 사랑하며... 지극히 위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정성과 열정으로 꿋꿋이 가정을 지켰다.
평생의 반려, 권재순이 있었기에 유치환이 더 빛나는 건 아니었을까.
비록 평생을 두고 기혼자를 사랑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고고한 자세로 소중히 이어나간 이영도.
그 사랑을 시로 꽃피우며
당당히 살다간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인, 이영도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빛난다.
아름다운 <사랑>이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아름답게 다듬으며 흩뜨림 없이 살다간 그들,
그래서 쓰는 마음이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하다.
울고 싶도록 진실하고 지극했던 사랑,
그들의 이룰 수 없던 사랑이
그래서 눈부시고 아름답게 우리 곁에 살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또 한편의 아름다운 시조다.
토론토에서 만난 새벽비
1954년 처음 출간한 시조집인 <청저집(靑苧集)>에 실린 그녀의 초기 작품으로
우리 옛 정취의 고풍이 잔잔히 흐르는 애달픈 가락.
유치환을 향한 그리움이다.
나직이 내리는 빗소리에 님이 그리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여리고 다소곳한 여인의 애잔한 모습,
간결하지만 깊이로 엮어내는 청초하고 단아한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
이영도 다운 사모의 고즈넉한 모습이다.
기다림은... 그리움은... 외로운 안타까움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그날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마음,
보배 냥 오붓하다.
보배인 양 소중히 품은 그윽한 사랑이다.
소록 소록... 속삭이듯 내리는 밤비소리에
가만히 들어와 앉는 <오붓한> 그리움,
어드메로 전해야 할지 길은 아득하지만
꿈을 꾸는 마음은 행복하나니...
뉘라고 말하랴!
그냥... 비를 따라 정처 없이 떠도는 이 그리움을...!
이 소슬한 애틋함을...!
첫댓글 지난해 제가 좋아하는 시인 유치환의
<바위(#1334-‘16.7.25)>를 올리고는
아무래도 부족한 듯하여
<행복(#1345-‘16.9.6)>까지 올렸었는데도,
긴 세월동안 이어져온 어쩔 수 없었던 인연을
그냥 쉽사리 지나칠 수는 없었지요.
아름다운 명시를 잉태하게 한
시조시인 이영도와 시인 유치환의 사랑을....
작성하다보니
아름다운 시와 그 애달픈 사랑에
제 마음도 함께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또 길어졌건만...
그래도 아직 다 하지 못한 마음이 아쉬워
더 보태어 봅니다.
과연 이영도는 누구인가?
그토록 많은 평전까지 발간되고
아직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또렷한 흔적들... 그 그림자...
그녀는 과연....!
여기 고향 청도 시인인 박옥금이 쓴 책이 또 있습니다.
청마 유치환과 20년간 교환한 수많은 편지를 토대로
시보다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지요.
또한 ‘이영도’를 기리는 <이영도 시비>가
부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청도에도 있네요.
생의 많은 시간을 청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생활한 이영도이지만,
오라버니인 시조시인 이호우와 함께
이영도 오누이 시인이 태어나고
유년 시절을 보낸 그들의 생가가
지금도 남아 보전되어있지요.
2006년 등록문화재 제293호로 지정된...
그 생가 앞엔
조그만 공원까지 조성되어 오누이의 시비가 있는데
이영도 시비는
고향을 바라보는 달무리 형상을 표현했다 합니다.
2009년부터 매년 11월,
‘이호우·이영도 오누이 시조 문학제’를
청도군에 의해 개최하면서
신인 시조시인의 등단기회도 열어 준다고 합니다.
오라버니 이호우 또한
많이 알려진 유명한 시조시인이지요.
이영도가 오라버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시조시인이 되기도 한....
사람 마음이 다름이 없겠지요.
‘진정한 마음’,
‘진실’...
굳이 사랑이 아니어도
이 아름다운 언어 앞에
무릎 꿇고 엎디고 싶은 감동인데
하물며‘지극한 사랑’임에야...!
20년이라는 긴 세월의 한결같은 사랑!
그렇지요.
진실한 사랑 앞에 무언들 못하리오!
과연 어떤 무어가 이 사랑을 막을 수 있으리오!
그 지극함, 진실함이 이끌어온
긴 세월의 아픈 사랑 앞에
주어진 환경이야 어쨌든
숙연한 마음으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걸 초월하고 감내하며 이어진
위대한 사랑의 힘!
어쩌면 주어진 숙명 같은 사랑이지만
모두가 현명하고 이상이 높은 기개의 인물들이기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갔기에
이렇게 아름답게 우리 곁에 남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시조시인 이영도.
그녀의 시를 읊으니
유명한 시조시인인 ‘황진이’가 문득 떠오르곤 했지요.
아마도 ‘시조’라는 우리 고유의 가락 때문이겠지 합니다.
같은 시조시인이지만
그 분위기는 다른 것 같은 생각입니다.
마음을 휘저으며 흔드는...
발산하는 그 매력,
여인으로서의 아름다움,
다분히 고혹적인... 눈부신 자태의 황진이라면,
이영도는
붓꽃처럼 우아하고 고고한 자태,
안으로 깊게 드리우는 고요한 울림이 있습니다.
간결하지만
같이 끌려들어가는 깊이의
청초하고 단아한 자태.
그윽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이지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황진이.
또 좋아 하게 된 이영도입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일 뿐이지만....^^
언제나 스스럼없는 저의 이야기를
귀기우려 주시는 우리 님.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 모두 고스란히 바칩니다.
크나큰 기쁨도요~.^^
우리 니임-.^^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자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표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아는 그는
< 깃발 / 유치환>
지금도 이 시를 반쯤은 외우고있습니다
이상에 대한 동경심과
또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 세계에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써
인간의 본질을 나타는 시 입니다
며칠간 휴가라 바다에 있습니다
바다 이름이 궁금하시지요
.
.
.
.
풀바다에 있습니다
장마가 시작 전에는
밭이 꺠끗했습니다
내 성격이 그러하듯
밭도 밭 같아야 합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풀바다에 도착했습니다
물을 냉동실에 넣어
꽁꽁 얼개하고
수건하나
목에 걸치고
밀짚모자 쓰고
풀바다에 풍덩 들어갑니다
덥기 전에 부지런히 일을 해야합니다
9시정도면
땀이 비오듯 흐르고
옷이 다 젖습니다
준비해간 생수로 목을 추기고
잡초를 뽑기 시작합니다
10시경에 아침을 먹습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풀바다에 들어갑니다
11시경에 철수해서
포도나무 아래 샘둥치에서
등목을 합니다
물이 차 닭살이 돋아 납니다
고구마 줄기를 잘라주고
오이 넝쿨 손봐 주고
고추밭에 소독하고
1시경에 점심을 먹고
인등정 마루에 선풍기 틀어 놓고
낯잠을 잡니다
매미가 울고
풀벌레가 노래하고
새가 놀러오고
그런 오후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
하늘도 무심한지
그토록 비를 퍼붓더니
이제는 이리도 찌는 더위입니다.
그 헤어날 수 없는 노고!
어찌 하라고...!
두 팔 가득히 벌려
가슴으로 끌어안고 싶은
안쓰러운 마음입니다.
내가 만일
하늘만큼 크다면요, 선생님.
여름 한철의 소중한 휴가를
땀과 사투하며
밭으로 향하는 그 결연한 의지!
그 숭고한 마음 하나로
멋대로 자란 풀들을 잘라내며
다듬으며
돌보며...
그 진실한 마음이
세상을 움직입니다.
계절을 아름답게 엮어갑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손으로
하나씩 이루어가는
그 마음,
그 정성이
고달픔을 이겨내며
참답게 엮어가는 아름다움이지만
한편 그 힘든 노고가
마음을 자꾸 건드립니다.
그래도 이 모두
작물들을 내 몸처럼 돌보는
아끼는 마음, 사랑이겠지요.
참 진실의...
그래서 그 마음도 알 것 같습니다, 선생님.
허리 휘는 노고 뒤에
따라오는 감사함,
다 해 낸 큰 기쁨,
정갈하게 환해진 밭들도
낮잠 자는 주인도
모두가 흐뭇이 웃습니다.
매미가 초록을 흔들며 울어대고
새가 놀러오고
풀벌레의 노래 소리에
소르르- 잠드는 그 마음,
내가 먼저 행복합니다, 선생님.
이제사 마음을 내려놓으며
함께 듣습니다.
그 기쁨에 찬 새들의 노래를....
울창한 짙푸른 초록의 노래를...
하늘 높이 깃발을 다는 저의 마음,
아시려나요, 선생님?^^
깃발이 푸르게 펄럭입니다.
선생님의 진실, 사랑, 노고...
그 감사함, 기쁨, 행복의 아름다운 깃발이...
한 줄기 바람이 되어
깃발 끝에 매달려 같이 펄럭입니다.
제가요.^^
애 많이 쓰셨어요, 선생님.
곤했던 하루 모두 내려놓고
편한 밤 되시어요.^^
펄럭이는 깃발 소리 들으며...
긴글..내 경험과 대비시키며 천천히..다 읽었습니다..살아 생전 영도님이 기자와 나눈 이야기 내용이..아직도 선한니다 결명차를 즐겨 마시던 님..
하이퀸 니임-!
사뭇 가슴 울렁이는 반가움으로
달려왔습니다.
한량없는 이 기쁨,
님이 주신 감사한 선물에
눈을 감고 불러봅니다.
따뜻한 가슴으로요.^^
이 길고 긴 글을 다 읽으시고
거기에 따뜻하고 진솔하신 마음까지
담아 주신 글에
제가 감동하면서요~.^^
피상적인 이야기로만
이영도 시인을 알았었는데
10년 전쯤 통영을 여행하면서 들렸던 유치완 문학관!
고스란히 남아 같이 진열되어있는
이영도 시인의 서한과 그 책들에
얼마나 가슴이 떨려오던지....
늘 가슴에 남아 있다
몇 년 전, 감사하게도 이 <클래식음악세상>이
내 앞에서 문을 열고 나를 부르며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나의 노래...’.
그러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참 많이 부족하지만
평생의 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요, 하이퀸 님!
이렇게 반갑게
같은 마음의 귀한 님도 만납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있지요, 우리 모두가...
하이퀸 님.
‘도덕’, ‘윤리’를 말하기에는
그들의 사랑이 너무 지극하지요.
모든 것 다 외면하고
그 진실함만 보여 지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젊은 날에는
권재순이 불쌍하여
내 마음이 얼마나 아팠던지...
남편에게 버려지듯 외면당하고
그늘에 묻혀서
유치원 보모 노릇만 해야 했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렇게만 알았습니다.
어쩌면 그런 때도 있었겠지요.
아니, 많았겠지요.
힘들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시인의 감성을 가진 다정다감한 유치환.
얼마든지 처인 권재순에게도
잘 했을 것만 같은 생각도 해보지요.
똑똑하고 지혜로웠던 권재순.
참을 줄도 알고
남편을 받들며
가정을 이끌 줄로 알던 여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세상 삶의 이치를
규범의 잣대로만 규정지을 수는 없다는 걸
살아오면서 가끔 느낍니다.
‘이해’라는 틀이 점점 커지는 마음 같은...
연서를 상품화 했다고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던 ‘서간집’.
이영도가 연서를 묶어
서간집으로 발간해야 했던 마음도 알 듯 합니다.
그간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얼마나 세상을 떠도는
흥미로운 gossip 거리가 되어 난무 했을지...
유치환이 기혼자이기에
떠도는 좋지 못한,
불편하고 괴로운 소문도 많았겠지요.
더구나 세상을 달리했으니... 점점 더해갔을....
이걸 듣고 있어야 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지...
세상을 등진 유치환은 물론
‘나쁜 여자’로 처단되지는 않았을까...
그렇다고 소문 때문에
20년이라는 긴 세월의 사연을
숨기거나 부정할 마음은 전혀 아닌 이영도였겠지요.
‘죄인’으로 끌려 다니느니
차라리 모든 걸 당당히 내어 보임으로써
청마를 보호하고 싶었던 마음,
소중한 사연을 훼손당하고 싶지 않았었겠지요.
우리는 이렇게 진실한 사랑을 했노라고...
떠도는 가치 없는 뭇 소문들에
괴로워하느니
이에 마주서서 당당했던 이영도라고 하면
지나친 생각일 가요?^^
더구나 그 수익금으로
<시조 문학상>을 제정하여
보람 있는 일을 한 이영도입니다.
그들만의 ‘진실한 사랑’을
뜬 세상에 고하며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던 그녀가 아니었을까!
문학 작품 같았던 그 아름다운 연서들!
소중했겠지요!
뜬소문으로
그리 헛되게 훼손당하다니요!
뜬소문에 흔들림 없이
곧은 자세로 임한 그녀의 당당한 모습이
저는 좋습니다.^^
총명하고 현명했던 그녀이니까요.
순간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불꽃같은 그런 흔들림이었다면
쉬이 사그러들었겠지만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모든 걸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한결같았던 그들!
이렇게 그들을 감싸고 싶은 마음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이영도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실했던 그녀였으니까요.
하이퀸 님.
님의 두 손을 꼬옥 잡고 여쭙습니다.
그 추억의 경험이 무엇인가를....
이 간절한 마음을 아시나요, 하이퀸 님?^^
미심쩍었던 마음을
풀어놓으며
서로 나누며...
이해하며 같이하는 이 시간이
저에게는 더 없는 큰 보람인...
작성하는 기쁨이고
드리는 행복입니다.^^
주시는 크나큰 사랑에 감사하여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이영도의 아름다운 한 수
또 올려드립니다.
머언 생각
숲 속을 흘러드는
달빛은 은은하고
호수 자는 물결
바람이 삼가는데
그 음성
귀로 외우며
머언 생각 하옵니다.
이미 그대는 가고
내가 홀로 남았는가
아슴히 하늘가에
별들은 잠이 들고
가슴에
꿈이 어리며
머언 생각 하옵니다.
이영도
고요히 스며드는
이영도의 은은한 향기에 젖어
호젓이 밤을 보냅니다.
아련한 그리움에 싸여
가만히 드리우는
아지 못할 이 애달픔...
하이퀸 님.
아름다운 시에
넋두리마저 늘었네요~.
이 모두를
따뜻이 들어주시는 고마우신 님
.
아름다운 꿈길이셔요.^^
님이 오셔서
참 행복한 밤입니다.^^
하늘새님! 더운 여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는 마음껏 땀흘리고, 원없이 태양과 마주하였습니다.
오늘은 가슴먹먹해지는 사랑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위에 시를 만든 두분의 사랑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보석처럼 빛날것입니다.
그리고 저 두분이 보았던 산과 바다와 나무와 돌과 하늘과 바람과 별은, 모두 사랑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 우주와 이 세상과 이 모든것에서 사랑을 빼버린다면, 다만 공허함만이 있을것입니다.
저 두분은 부러울이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하셨네요. 고통과 함께...
강철수 니이임----
님을 부르니
눈물부터 앞을 가립니다.
어쩌면...
이 얼마만인지....!
잊지 않으셨던가요?!^^
무척도 반갑습니다.
이 더운 여름에
땀에 젖은
검게 그을린 모습이
더 건강하고 싱그럽네요.^^
여전히 살아서 활력 넘치는
그 힘찬 걸음을 봅니다.
강철수 님.
언제나 참된 모습으로
내 글을 읽어 주시는 님이시죠.
내 글이 빛나는 순간입니다,
감사한 보람의 순간이고요.
세상의 삶이 다 그렇듯
숱하게 만나는 사람들,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그게 우리네 세상사는 순리라 생각했지만
‘인연’이라는 아름다운 언어가
맺어준 어쩔 수 없었던 사랑,
유치환과 이영도였지요.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더 간절한 마음.
그 힘든 사랑을
아름다운 자세로 지켜온 그들.
아파하면서 그렇게 지내온 20년이라는 긴 세월!
그래서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이렇게 다시 매달렸던 저입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같이 마음 아리며
헤어날 수도
헤어나고 싶지도 않았지요.
그 진실,
그 아름다운 사랑 앞에
어느 누가 감히 무어라 할 수 있을지...
그 소중한 인연 앞에요!
이루어질 수 없기에
한 세상을 아프게 참으며 견뎌야 했던
기다림...
만남...
한없는 그리움...
끊어 낼 수도
단념할 수도 없던...
그런 사랑!
그 빛, 그 여운,
보석처럼
우리 곁에서 영원히 빛나겠지요.
강철수 님.
참 뿌듯한 심정입니다.
울고도 싶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빠져들며
함께한 많은 시간,
내가 했다는 것에
두 손 모아 감사하며
기쁘고 뿌듯하고...
큰 보람을 느낍니다.
님께 감사드리며요~.^^
언제나
사랑이 가득한 삶을 누리시며
그 사랑 속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 강철수 님.^^
많이 기쁩니다.
님이 오셔서....^^
하늘새님..글 잘 보았습니다.
불루 님.
이 어두운 길을 찾아 오셨나요?!
불도 다 꺼진...
미처 몰랐지요, 손님이 와 계신 줄....^^
반갑게 인사드립니다.
감사한 마음도 함께요.^^
워낙 주제가 제가 좋아하는
두 시인의 인연에 얽힌 사연이라
그냥 쉽게 외면할 수 없어서
자꾸 보태며 쓰다 보니...
참 길어진 글이건만
이렇게 마음까지 주신 배려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기쁘기도 하고요, 불루 님.^^
어쩌면 평생이랄까,
시가 좋아 늘 곁에 두고 살아오다
<카페>라는 세상을 알게 되었지요.
얼마나 기뻤던지...
기쁜 마음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이 컴맹이 달려들듯 시작을 했습니다.
그냥 시가 좋아서....^^
그랬는데...
그렇게 시작된 ‘나의 노래’이지만
세월이 가면서
이렇게 우리 님들께서
찾아 주시며 마음을 건네주실 때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함께 나누며 누리는 기쁨이지요.
따뜻한 마음으로 주고받으며....^^
불루 님.
많이 늦었습니다.
좋은 밤 되시어요.
기쁜 마음과 함께
다시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