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good The bad The ugly(황야의 무법자)-
■ 1964년 마카로니웨스턴 판 '저 멀리서 말을 타고 온' 정의의 총잡이는 황야의 무법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가슴에 총알을 박아준다. 음악을 맡은 무명의 '엔니오 모리코네'는 열악한 제작비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쓸 수 없어 휘파람과 그 휘파람 소리를 연상케 하는 팬플루트와 하모니카, 기타, 그리고 채찍 소리와 말 울음소리 등 몇 가지 세션으로 배경음악을 만든다.
한글이 모든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다지만 '짜자 라라란 짜 라란, 휘리리리...' 아무리 해봐도 팬플루트가 내는 가사 없는 도입부의 멜로디를 글로 써보기란 쉽지 않다. 어쨌든 이 한 편의 영화로 세르조 감독은 물론이고 엔니오 모리코네도 세계적인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뜨게 된다.
미국이 건국된 1789년을 전후하여 총 솜씨가 좋은 소떼몰이 카우보이들은 선과 악 그리고 어글리의 주인공이 된다. 남의 땅을 착취하여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리는 무법자의 횡포는 마을을 장악하고 착한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다. 서부 개척사에서 단골 메뉴인 권선징악 프레임으로 정의가 등장하는 배경이다. 마을을 장악한 악당들은 어미의 자궁 안에서 다른 배아들까지 잡아먹고 성장하는 모래 뱀상어 같은 포악성으로 여자까지 겁탈하며 정의를 뭉갠다.
그 절박한 순간에 음악과 함께 악당을 처치하기 위해 나타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관객들은 다음 장면이 나오기도 전에 손바닥이 터질듯한 손벽을 쳤다. 뒤이은 '석양의 무법자'와 '돌아온 장고'도 사회에는 악이 존재하지만,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는 메시지를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전달하는데 있어 가슴설레지는 역할을 했다. 지금은 악한 자와 추한 자들만 공존하고 그들을 섬멸할 'The good' 같은 정의를 실현하는 총잡이가 보이지 않는 세상 같아 보이지만.
■ 영암이 고향인 박 교수는 '제왕학'에서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나 황건적을 토벌하고 명을 세운 주원장을 사례로 '후안무치'야 말로 제왕이 되는 제1의 조건이라 했다. 그의 지론에 의하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세우려면 뻔뻔함과 무자비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태생적이기도 하지만 자라나는 환경에서 생겨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무리 인격이나 학식 등 다른 덕목이 뛰어나도 '후안무치'가 없으면 끝장이라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은 제 1의 조건을 구비했다고 한다. 어디서 들었다는 것을 전제로 그는 이재명의 조부가 영암 독천면 사람이라고 했다. 독천은 원래 우(牛)시장으로 유명한데 그의 조부는 어느날 소 5마리를 훔쳐 판 돈으로 경북 안동으로 도망가서 살게 되었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세 살까지 배운 말의 억양이 평생을 간다는데 이재명이나 그의 형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전라도 말씨라는 것이며 특히 이재명이 형수에게 한 욕설은 전라도 특유의 雙시옷 字로 시작해 '문디이'가 주어격인 경상도 욕설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재명은 천성적으로 후안무치를 얼굴에 깔고 태어나긴 했지만, 조부 말고도 도박성이 농후한 부친을 두었다든지 주변 환경 또한 좋지 않아 인성교육 같은 기타 측면에서 제왕학 완성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잦은 거짓말은 자칫 자기 발등을 찍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며 최근 그의 부모 묘소 음모론을 예로 들었다.
결론적으로 그의 비서 죽음을 희석하기 위한 음모론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이는 몇 년 전 국립현충원에서 터득한 습성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즉 2019년 8월 박정희 대통령 묘소에 어린아이들 숫자를 뺀 4,700만 국민을 뜻하는 4,700개의 쇠말뚝을 박아 박정희 대통령을 저주함으로써 그 혈을 차단하고 본인에게로 그 기운이 넘어오게 경주이씨 문중과 함께 금번 '生命氣'를 주도한 이씨 풍수를 배후 조정하지 않았겠느냐는 추론이다. 도둑은 현장 주위를 떠나지 않는다.
■ 마이클 샌델은 '정의'에 대해서 '공동 善의 추구'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공동체 대다수가 찬성하면 좋다는 식인데 이는 서부극 시대의 '정의(正義)'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정의(定意)'한 것으로 애매모호한 토론의 장을 남겼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사회의 분위기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혼자 생각으로 정의에 반한다고 해서 상대를 쏘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도 그 악당처럼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는 것이 공동선이 될 테니 말이다.
샌델의 정의론을 지금 대한민국에 적용해보면 상당히 그럴 듯해 보인다. 이재명은 대장동과 백현동의 땅을 마구잡이로 확보하고 아파트를 지었지만, 성남시와 경기도라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그리고 공동체 내의 많은 사람은 그가 옳다고 환호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정의(正義)에 대한 정의(定意)는 완전히 달라진다. 반대편 사람들의 정의(正義)의 뜻과 100% 대칭된다는 말이다.
부언하면 이재명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직시 행한 일련의 행위를 놓고 정의는 나뉘었다. 기존 법률적 상식에 기반을 두고 그 상식의 잣대로 이재명의 행위를 규탄하는 '자유우파'의 정의(正義)와 이재명식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개딸'을 비롯한 많은 호남인과 선택적인 문빠들이 합류해 있는 '인민좌파'의 정의(正義)가 서로를 비난하며 마주보고 으르릉 대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해결책은 상호 폐를 끼침이 없이 헤어져 살기다. 다른 방법으로는 한바탕 붙어서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건데 제1안은 인민좌파가 김정은을 지지하면서도 북한에 가서 살기는 싫다니 결국 차선책인 강자생존의 정면대결밖에 없다.
■ 그러나 이렇게 제로섬 게임이 펼쳐질 경우 자유우파는 상당히 불리하다. 분열로 인하여 앞장 서 싸워야 할 정의의 총잡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게 아니라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광화문에서 태극기 들고 시위한 후 동료끼리 국밥에 소주 한잔 걸치며 집에 돌아오면서 보람을 느낀다는 그들이 단일대오로 뭉친 좌파를 절대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굴복하여 그들의 치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벌써 그 낌새는 확연하다. 대통령이 아무리 동분서주하여도 한동훈과 원희룡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제도권 내에서 자유우파를 통합해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끌고 나가야 할 여당이 치열한 몸싸움에 숙달된 '태극기의 힘'을 연포탕하기는커녕 극우로 매도하고 총선만 바라보느라 인민좌파 앞에서는 전략부재가 되어 투혼의 의지마져 꺾이는 판국이니 모두 함께 쪽박찬 모습만 예상된다.
이재명이 박정희 묘소에 쇠말뚝 4,700개를 박았다는 합리적 추론이 있어도 이를 떠들어라도 보았는가, 역대급 부정선거인 4.15 총선에 증거가 부지기수여도 재판정에를 한 번 가보았는가, 5.18은 북한 특수군이 개입된 폭도들의 난동이고 가짜유공자 명단이 나돈다고 해도 알아볼 시늉이라도 해보았는가. 정청래나 최강욱, 김의겸처럼 서로를 감싸며 머리끈 질끈 맨 투쟁심이라도 무언가를 갈망하는 민초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가? 없다!
구심점이 없는 세력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면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되는가. 여기까지 오면 아찔해서 현기증이 난다. 맨주먹 빈손이지만 해보아야 한다. 우파끼리는 죽어도 서로 비난하지 말고 저들을 제압한 다음에 따져야 하고 그때도 功과 過로 나누어 살펴야 한다.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 하늘은 반드시 도울 것이다. 그러하노라면 93세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20대의 패기로 달려올지도 모른다.
2023년 4월 9일
짜라~라라란, 짜 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