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고 한창 일본어 공부를 할 때 자취를 했다.
40년 전 춘천에는 일본어를 배울 곳이 없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사서 독학을 했다. 일본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지만, 간혹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할아버지를 만나면 엉터리 일본어를 시험해 보기도 했다.
그 시절 주로 먹던 요리가 김밥이었다.
강릉 집에서 가지고 온 밑반찬이 주재료였다.
연탄불에 밥을 해서, 신문지 한 장 펴고, 김 한 장을 쭉 펴서 그 위에 밥과 밑반찬을 올려 놓고 둘둘 말으면, 마치 굵은 막대기 같은 김밥이 만들어졌다.
간혹, 옆구리 터진 김밥이 나타나도 게의치 않았다. 입에 들어가면 옆구리 터지나 그냥 먹나 마찬가지니까.
일본에서도 자취를 했다. 학교 앞에 4조 반의 다다미 방을 구했다.
학교까지 걸어서 5분이었다.
그 때는, 주로 계란 비빔밥을 먹었다.
일본에서는 전기밥솥을 이용했다.
길 가에 버려진 전기밥솥, 텔레비전, 비디오, 선풍기로 집안 살림을 장만하고 뿌듯해 했던 기억이 있다.
계란 비빔밥은 간단하다.
그릇에 밥을 넣고 계란을 깨서 넣고, 일본 간장을 약간 넣으면 그만이었다. 일본간장은 맛이 얄팍하고 맛있었다.
다 먹고 그릇은 그대로 말렸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거의 무료에 가까운 식사를 했다.
아내가 죽고 원룸에 살고 있다.
다시 과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옆구리 터진 김밥과, 계란 비빔밥을 다시 호출 하기도 하고, 후라이판에 모든 것을 때려넣고 볶는다.
김밥은 다른 반찬이 없어 김치만 넣는다.
설거지는 흐르는 물에 한 번 헹구면 끝이다. 한 번도 주방세재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대학 때나 일본에서나 지금이나 설거지는 안한다.
따라서 고무 장갑은 없다.
지금은 월부터 금까지는 노인회관에서 밥을 먹는다.
찬란한 반찬과 매일 변하는 밥의 종류는 비쩍 말랐던 내 몸을 살찌우고 있다. 대 만족이다.
어제는 삼치 튀김이 나왔다.
한 개 다 먹고 더 달라고 하니 식당 누나들이 안줬다.
대신 김치를 실컷 먹었다.
갑자기 옆구리 터진 김밥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