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정약용 선생님의 12번째 애인이라 자처하며 남도 여행부터 시작한 것이 어느덧
3년째가 된다. 이번 여름방학엔 다산과 원행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잊었던 것을
확인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7월말 직장에서 떠났던 흑산도 여행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었다. 정약용선생님 형님
손암선생님의 유배지여서 나한테는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강진과 흑산도에서 서로
두 형제가 그리워하다가 18년 유배생활 중에 만나보지도 못하고 손암 먼저 저
세상으로 간 곳이어서 더욱 아릿했었다.
8월 23일 아침 8시, 내옆지기는 개학을 해서 첫출근 하는 날인데 챙겨 주지도
못하고 내 것만 주섬주섬 배낭에 쑤셔 넣으며 " 여보, 이번에도 두려운데 혼자 가지 말까?" ,
" 포기할까?"
하고 설렘반 두려움반으로 한 말에 화들짝 놀라며 "당신 잘 해낼 수 있어.
걱정 말고 다녀와. 아들과 나는 밥 잘 먹고 잘 지낼테니까."
라며 추켜세워 주었다. 용기를 얻고 가보자 하고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집을 나섰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떠나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청소년단체 국토순례단이
많이 보였다. 아는 선생님과 컵스카웃 지역대에서 활동하는 내조카 경미와 조카사위
허서방도 만났다.
" 우리 고모 역시 멋져!"
하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조카 말에 한 번 더 힘을 내고 티켓팅 하고 의자에 앉았는데
그린내 언니 형부를 만났다. 언니도 연수 가신다고 공항에 나놨는데 못 만난다고 하셔서 전화를 했더니 통화가 안 된다.
공항 1층에 마련된 올레 부스에 가서 올레스카프를 좀 더 사려고 갔더니 오늘은 휴일이라
근무를 안 한다는 파란매직1번님의 전화를 타고 들리는 소리에 잠시 실망했다.
일기예보에 여행기간 내내 비소식이 있어 기분이 좀 그랬지만 올여름에는 제주가
0 너무 더워서 비가 오는 경기도 일원은 시원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떠났다. 비행기가
오르락 내리락 롤러코스터 탄 것 마냥 아슬아슬 오돌오돌.....
드뎌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남양주 가는 버스를 타려고 안내소에서 타는 위치를
확인하고 야사모 알리움님께 내릴 위치를 묻고 한 시간을 달렸다. 12시 20분에
남양주 도농역에서 생면부지의 알리움님을 만났다. 야사모 카페에서 만난 회원인데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 속을 뚫고 다니며 하루를 책임져 주시기로 자청하셨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선생님의 생가로 가는데 오른쪽이 북한강인지
남한강인지 강 길을 따라 가다보니 팔당댐이 보였다. 지리 시간에 많이 봤던 댐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생가는 조용하고 아늑했다. ㅁ자 모양의 소박한 양반집이었다.
여유당에서 뭔가 신중하게 토론하는 정약용선생님의모습을 보면서 나도 툇마루에
앉아서 한 방 찍었다.
<다산 생가 여유당에서>
< 다산과 홍씨 부인 합장묘>-김씨부인의 어색한 미소
우산을 받쳐 들고 다산선생님의 묘소로 발길을 옮겼다. 가슴이 두근두근 정말
옛 애인을 만나듯이 뛰었다. 생가 바로 뒤쪽에 위치한 야트막한 동산에 홍씨부인과
합장한 묘였다. 여기에서 두물머리가 보여서 유유히 흐르는 감을 늘 바라다 보았다고
하는데 그사이에 나무들이 많이 자라서 그 모습은 가려지고 안 보였다. 눈 감고 참배하고
인증샷 한 방! 날려 주는 알리움님 센스쟁이. 나보다 네 살 아래의 동생인데도
경상도 출신 이 아지매가 싹싹하고 정이 넘쳤다.
다산 문화관에 가서 다산과 가족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봤다. 원래 다산은 아주
달필이라고 한다. 뭐가 하나를 쓰기 시작하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서 책 한 권을
뚝닥 완성하신다고 했다. 그러니까 75세 때 까지 500여 권의 책을 쓰셨지 않나 생각한다.
야외에는 다산의 초상화들이 다섯가지나 걸려 있었다. 청장년 때의 모습, 노년의
모습들이 걸괘그림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청년 때의 모습 앞에서 다하게 또 한 컷!
알리움님이 연출을 잘 하신다.
< 애인과 함께 인증샷>
2시가 훨씬 지나서 그런지 배꼽시계가 난리였다. 근처에 알리움님의 단골 식당을 찾아들었다.
조그만 한식집이었는데 온통 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첫인상이 좋은 곳이었다. 꽃쟁이들에겐
꽃으로 유혹하면 되는 모양이었다. 복날도 못 먹은 백숙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나와서 다산생가 올레를 돌아봤다. 주변이 온통 연밭이었다. 연꽃은 지고 없었지만
작고 흰 마름과 부처꽃이 많이 보였다. 5분정도 걸어 나와 보니 버드나무 숲이 울창하고
바로 강파도가 일렁이며 우리를 반겼다. 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 사이에 비가 개고 바람
또한 살랑살랑 불어주어서 시원했다.
알리움님은 나비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라 귀가 번쩍 띄게 하는 제안을 했다.
쥐방울덩굴에만 사는 명주꼬리나비를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명주 고리나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제쳐두고라도 쥐방울덩굴이 보고 싶었다. 운길산, 예봉산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는지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양수리 생태공원에 가는데 물이 많은 동네에서 그런지 수생식물들의 천국이었다.
덩굴식물들이 우거진 곳에서 쥐방울 덩굴을 찾았는데 꽃이 너무 작아 내 카메라로는
도저히 잡히지도 않았다. 명주꼬리나비는 한낮에 잠을 자러 갔는지 아니면 어설픈
찍사와 대면하기 싫은지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처음 보는 낙지다리,
두껑덩굴, 보풀 등을 찍어서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두물머리로 향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던 두물머리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걸었다. 홍련과 백련이
눈에 띄었다. 순백의 아름다움을 지닌 백련이 더 아름다운것 같아 자꾸 셔터를 눌렀다.
연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했다. 두 강이 하나가 되는 지점이라 그런가?
"애인이랑 또 와봐야 하나?"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
느티나무가 몇 백 년 동안 말없이 서서 도도하게 흐르는 강을 지키고 있었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앞 뷰 포인트에서- 날씨가 아주 어두움>
알리움님이 강원도 찰옥수수를 사서 저녁 간식으로 먹으라 하며 배낭에 넣어 줬다.
혼자 모텔에 들어가서 빨래하고 수첩에 끄적거리다 잠이 들었다.
<둘째날>
아침을 해결할 요량으로 동네올레를 하며 꽃도 찍고 새벽부터 양수리
동네 아줌마도 만났다. 카메라에 많은 관심이 있는 동네주민이었다.
예쁜 꽃들을 아주 많이 심고 가꾸는 곳이어서 맘에 들었다. 아침식사가
되는 식당을 찾아 소머리국밥을 시켜 먹는데 넘어가지 않아서 세 술 뜨다 말았다.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나와서 세미원으로 갔다.
하루만 동행해줘도 감사한 일인데 인근 수도권회원님들 세 분을 모시고
알리움님이 보무도 당당하게 나타나셨다. 카페에서 한두 번 봤을
닉네임으로 소개했다. 삼백초꽃님, 너마지기님, 가림님 오늘은 5인1조가
되어 세미원올레가 시작되었다. 삼백초꽃님은 푸근한 우리 큰언니처럼
생기셨고, 너마지기님은 스마트하시고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이라 하셨고,
가림님은 정말 영화배우같이 예쁘고 멋졌다. 올레 스카프를 두건으로 질끈
동여맨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제주올레에 다녀 간 친구의 선물이라고 하며
자랑했다. 다행히 올라갈 때 올레 손수건을 몇 장 사 갖고 가서 그분들을 드릴 수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이 세 언니들은 60대 초반, 중반, 후반의 손자들을 보신
할머니들인데도 망원렌즈를 매 달고 다니신다. 기가 팍 죽는다. 그래도 나는
절대 무거운 것을 들고는 못 다닐 것 같았다.
세미원 입장료는 3000원인데 나중에 나올 때는 이 지역주민들이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로 바꿔 갈 수 있다는 점이 특이하고 좋은 아이디어였다.
경기도 양평군의 멋진 정책 중의 하나였다.
입장권을 목걸이처럼 걸고 태극문양의 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백두산과 한반도 모양의 연못이 있었다. 연못둘레는
전부 우리 제주에서 가져간 화산석들이어서 자랑스러웠다.
세미원은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觀水洗心)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觀花美心) 곳이라 했다.
강 한쪽 편에 세미원을 만들어 각종의 수생식물들을 키워내어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이 곳에는 한 여름이 최고의 절정기인 것 같았다.
홍련, 백련, 노랑어리연꽃, 수련, 물앵초, 물달개비, 가시연꽃, 질경이택사,
사마귀풀, 물망초, 질경이택사 등을 마구 찍으며 공부했다.
<홍련>
<보풀>
너마지기님께서는 걸어다니는 식물도감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모르는
식물이 없으셨다. 애매해서 여쭤 보면 척척 답을 주셨다. 정말 돈을
억만금을 주고도 못사는 경험을 했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돌아다니며
찍다가 다리 밑에 앉아서 알리움님표 가래떡, 가림표 5일동안 얼린 황도,
삼백초꽃님의 포도, 토마토, 다시마 사탕 온갖 간식들을 다 맛을 봤다.
연밥 속에 들어 있는 연씨를 몰래 훔쳐 먹은 고소한 밤맛을 잊을 수가 없다.
관리하는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니 “ 사진이나 잘 찍고 가세요.” 하시는 것이었다.
얼마나 민망했는지? 그래도 아이들처럼 깔깔거리며 뽀드득뽀드득 연씨를 까 먹었다.
40,50,60대 악동들이었다.
한 300m 거리를 몇 시간째 사진을 찍었는지 모른다. 뚜껑덩굴 열매를 따서
터뜨리는 그 맛도 너무 통쾌한 맛이었다. 타원형의 열매를 가운데로 꼭 누르면
“뽕”하고 터지면서 씨가 2개가 나왔다. 주머니에 몇 개 담고 왔다가
수원 커피전문점에서 사람들도 사귀게 되었다. 같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되었다.
이 세미원 옆으로 정약용선생님 땀이 서린 주교(배다리)가 200여년만인 2011년에
완공된다고 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 능에 참배 갈 때와 행궁에 행차하실 때
이 배다리를 건넜었다.
세미원을 나가서 점심으로 연 콩국수를 먹었다. 배추김치와 물김치가 시원하고
콩가루와 연잎을 갈아 만든 국물이 색감도 예쁘고 맛이 고소했다.
알리움님이 대접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굳이 밥값을 냈다. 내가 꼭 사고 싶었는데......
가림언니가 서울로 올라가시고 우리 일행은 운길산 수종사를 향해 차를 달렸다.
차를 세우고 열심히 계속 오르막 산길을 1시간 넘게 걸어 수종사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며느리밥풀, 누린내풀, 큰도둑놈의 갈고리, 덩굴닭의장풀,
가지장구채, 멸가치 등을 만났다. 수종사는 팔각형부도와 석탑이 유명한 절이다.
수종사에서 내려다 본 강과 섬의 모습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전남 만덕산
일출각에서 보는 강진만과 가우도가 만들어내는 경치와 똑같았다.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그래서 거기를 보며 고향마을 두물머리를 떠올리며 18년 동안의 향수를
달래지 않았나 싶다. 수종사 동쪽 뜰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세월의 향기를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가을에 오면 은행잎 떨어지는 모습이 참 운치 있을것 같았다.
내려오면서 노랑상사화 한 송이가 외롭게 큰 바위 앞에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볼 때마다 왜 이리 가슴이 저릴까? 아마도 꽃전설 때문일게다.
< 부도와 석탑이 나란히-똥띠 아줌마는 양념으로>
< 수종사 앞마당- 인물을 빼고 뒷 배경만 보시라. 3분 뒤 안개가 자욱하게 올라와 버렸다.>
수종사를 오를 때는 숨이 차고 힘들었는데 내려올 때는 금방이었다.
한 군데를 더 보자고 하여 묘적사를 찾아갔다. 신라 때 창건된
고풍스런 절이었다. 계곡물이 콸콸 내리고 절 서쪽편에
계곡물을 끌어 올려 연지를 만들어 연을 키우는 아주 조그만 예쁜 곳이었다.
또 그옆에 노랑상사화가 무더기로 피어 긴꼬리제비나비
두 마리가 팔랑팔랑 날아 꽃과 입맞춤이 한참아었다. 실력이 없으면서
애꿎은 카메라만 탓하며 몇 컷트 찍었다.
<묘적사 연지 앞에서>
삼백초님과 너마지기님을 남양주 도농역에서 헤어지고,
나는 도농역에서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넘어왔다. 거의 9시가 되어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 해서 땀에 절여진 옷들을 빨아 널었다.
14층이라 전망이 좋은 방이었다. 여자 혼자라고 했더니
조용한 방을 줘서 편안하게 잠을 잤다.
셋째날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3층 레스토랑을 왔는데 모두 외국인들이고
우리말이 한마디도 안 들렸다. 간단하게 시리얼과 빵으로 대충 먹고
나와 버렸다. 화성의 융건릉으로 가는 날이어서 마음이 급했지만
교통편도 알아보고 커피도 마시고 가려고 오빠친구 커피전문점으로 가봤더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화분 뒤에 책만 숨겨 두고 오후에 오겠다는는
메시지만 날리고 택시를 탔다. 화성과 수원이 거의 붙어 있어서
경계 구분이 없었다. 경기 GG콜택시만 부르면 어디든지 안전하고
확실하게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어서 참 편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융건릉은 꼭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고민도 했지만 정약용이라는
한 인간을 인재로 알아봐준 정조대왕의 숨결도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융건릉 매표소에서 시작해서 융릉쪽으로가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동네 주민인듯한 사람 한명이 운동삼아 둘레길을 산책하는 사람 빼고는
아무도 없어서 호젓한 길을 가랑비를 맞으며 걸었다.
소나무와 참나무 밑에는 갖가지 버섯들이 많았다.
융릉은 사도세자 추존 장조와 헌경왕후(헤경궁홍씨)의 합장릉이다.
홍살문을 지나 참도가 정자각 까지 이어지고 정자각 오른편에 비각이
세워져서 능의 주인을 알아 볼 수 있고 정자각 왼편에 수라간의 마련되어
제자 음식을 만드는 장소로 쓰이는 곳이었다.
융릉 참배를 마치고 나오다가 곤신지를 둘러 보고 나오는데 작살나무에
보랏빛 열매들이 보석처럼 오종종 달려 있었다. 얼마나 예뻤던지 ......
<작살나무 열매>
건릉으로 향하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면서 떨어졌다. 저멀리 조그만
노랑병아리들이 꼬마 우산을 쓰고 아장아장 걸어가는게 보였다.
어린이집 원아 들이었다. 선생님 두 분에 아기들이 십오육명 우산은 들었는지
우산이 아기들을 끌고 가는지? 가관이었다. 비는 세게 오는데 원장님은
"우산 같이 써라. 누구야, 누구야 ."
아기들의 이름을 부르고 난리였다. 우산을 씌워 주려고 했더니
“ 아줌마, 나는요 비 맞는 것이 좋아요.”
하며 냅다 달려가 버렸다.
건릉에 다다라서 고개를 들어 보니 융릉과 똑같은 구조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영릉처럼 능주변까지 못 보고 아래에서
참배를 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일 안타까웠다.
정자각에 오래 오래 앉아서 참나무 숲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었다.
언제 다시 이 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젊은 남자 두 명이 정자각으로 올라 오더니 그 사람들도 한참이나 앉아
도란도란 애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이 능사인 용주사도 온 김에 보고 가려고 걸어서 한 300미터쯤
가다가 포기하고 돌아왔다. 갓길도 없을뿐더러 비가 와서 길섶에
풀들땜에 옷이랑 신발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식당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콜택시를 불러서 편하게 갔다.
용주사는 지어진지 200여년 밖에 안되서 정말 젊은 절이었다. 용주사
대웅전의 탱화가 색이 밝고 깨끗한 게 참 인상적이었다.
한 4시쯤 되어서 수원으로 들어 왔다. 가까워서 다니기는 편했다.
하루종일 비가 쏟아지는 날이어서 커피가 당겼다. 공짜로 커피를
종류별로 맛 보게 해주는 울오빠와 의제 맺은 동생이 있어서 참 좋았다.
바빠서 나랑 같이 놀아주지는 못해도 커피는 양껏 많이 줬다.
자꾸 미안하다고 하는데 미안할 게 없다. 예고도 없이 나타난 동생인데 뭐. 어쩌랴.
< 탄자니아 AA와 황금보리케잌, 그리고 산딸나무열매>
5시가 되자 내친구 양실이를 만나러 수원 서쪽에 있는 정자동으로 갔다.
맛있는 참치 정식을 사줘서 부위별로 맛을 다 보며 내입이 호사를 누렸다.
양실이와 오래 묵은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정말 배꼽이 빠질 뻔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잘 까하고 있었는데 가게문을 닫았다고 호텔 앞쪽
홈프러스쪽으로 걸어 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거기로 갔더니 완전히 젊은이들의 모이는 명동 같은 곳이었다.
먹거리 골목이라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닭볶음에 생맥주 한 잔!
오라버니가 집에 운전하고 돌아가야하는 상황이라 간단히 먹고 헤어졌다.
그래도 피곤하실텐데 제주에서 올라왔다고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오라버니가 고마웠다.
<마지막 날>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나왔다.
지난 겨울에 못한 수원화성을 걸어서 돌아보고 싶었다.
택시를 타고 팔달문으로 가서 시작했다.
성곽의 꽃 화성은 정조 가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2년 9개월 후인
1796년 9월에 완공되었다.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양주배봉산에서
수원화산으로 옮기고 부근에 용주사를 세워 부왕의 명복을 빌었다.
당시 화산에 있던 관청과 민가를 팔달산아래로 모두 이전시키고 수원부를,
유수부로 승격시킨 것이 현재의 수원이다. 성의 시설물은 41개소 이다.
210년전에 축조된 화성은 가장 근대적인 규모와 기능을 갖추고 있는 성이다.
<수원화성의 방화수류정 모습> - 일본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팔달문에서 출발하여 서장대를 지나 화서문, 장안문, 아름다운 화홍문을
둘러보고 동장대를 돌아나와 동남각루가지 2시간 40분을 걸어서 마쳤다.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시켜서 먹고 공항 가는 리무진을 타는 곳으로 달려 갔다.
시간을 한 세시간 잡고 넉넉하게 간다고 생각했는데 차가 밀려서 겨우겨우
자리가 4개 남았을 때야 좌석 배정을 받을 수 있었다. 육지는 시간 계산이
참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버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른 것을 생각하며
지금도 가슴이 쫄아든다.
이틀은 야사모카페 회원들과 출사도 하고 다산 선생님 유적지를 돌아봤다.
그리고 남은 이틀은 나혼자 가고 싶은 데를 맘껏 다녔다. 정약용선생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데를 모두 섭렵했다.
3년 동안 강진의 다산초당, 사의재, 수원화성, 남양주 생가, 두물머리,
융건릉까지 훑고 다닌 결과 나에게 이런 애인이 있다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분의 애민 정신과 독서 습관, 기록습관을 가슴에
아로새겨야겠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면 언제 어디에서 나에게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그래, 남을 배려하고 친절한 차선씨가 되자.
( 되지도 않는 글로 대충 기록을 했다.)
첫댓글 말인지 뭔지도 모르고 다다다다 최고의 속도로 쳐 내려갔어요.
읽으시는 분의 교양수준에 따라 해석들어 가시고......
오자, 탈자 만땅!, 띄어쓰기 완전 개무시...
ㅋㅋㅋ 뭐, 그래도 다 잘 읽었어요. 부러워하면서,,, 수종사에서 차 마셨어요? 참좋지요?
4시가 되니까 청소 시작하면서 찻집문을 닫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며 내려 왔어요.
사진도 크고 글자를 작고 길고 안경을 올리며 내리며 읽는데 분주했다오... 혼자다니는 좋은 여행 좋아요 지는 서방님하고 갔더니 매번 먹는것만 타령... 일주일간 맛집만 찾아다니느라 살만 디룩디룩 아흑 ㅠ.ㅠ
살이 좀 빠져 빠지가 헐렁 하던디요.
와 이틀만에 들어오니 차선님의 여행기를 읽을수있게 등업이 되었네요. 덕분에 역사공부 잘했습니다. 나도 그런 애인 한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사진도 좋고 여행기도 잼나고 잘 읽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주말이라 친정 어머니한테 다녀왔어요. 내일은 성묘를 가야해서요. 언니를 여기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발고운 모시로 만든 조화같네요 보풀 처음봐요 예쁜 사람은 동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행복해 보여서 보기 좋네요
정말 멋진 애인을 두셔서 부럽습니다. 메모습관 가지려하나 실천이 잘 되지않는 게으름을 우왕 ㅠㅠ 어쩜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