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논제 1
정보화 사회는 이제 기술 중심에서 지식내용(콘텐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식내용에 대한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정보시대의 정보 생산과 소통, 소비의 문제와 연결시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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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 논제
1. 저작권 보호 운동과 카피 레프트 운동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가?
2. 정보 시대 정보 생산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성인가 성실성인가?
3.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라고 한다. 그러한 위치로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예상논제 2
정보화 사회일수록 정보의 공유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1.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증세나 포르노 따위의 역기능을 막을 수 있는가?
2.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을 막기 위한 삶의 가치 기준은 무엇인가?
3. 온라인와 오프라인 삶의 조화는 얼마나 어떻게 가능한가?
예상 제시문 1
정보화 사회는 콘텐츠(정보)와 디지털(테크놀로지)이라는 말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다. 콘텐츠는 지식정보다. 인간의 지식을 중심으로 가공된 정보다. 이러한 정보는 정보화 사회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그 가치와 구성 방식이 사뭇 달랐다. 정보화 사회 이전에는 지식 정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삶의 잣대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또한 콘텐츠를 만들고 나누는 방식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그 생산성이 이전 시대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디지털이라는 말은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중심 원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디지털은 숫자형이라는 말이다.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두 가지 숫자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가 어마어마한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것은 규칙적인 숫자 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대비되는 아날로그와 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날로그
디지탈
자연적
연속적
유추
느림
인위적
불연속적
명시적
빠름
디지털 혁명은 결국 정보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인간과 매체의 관계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 된 것이다.
정보화 사회는 결국 콘텐츠와 디지털의 테크놀로지가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이다. 물론 대상에 따라 콘텐츠가 강조되는 분야가 있고 테크놀로지가 강조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국제전화를 무료로 걸어주는 기술은 테크놀로지가 강조되는 분야이고 인터넷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 공룡에 관한 자료는 콘텐츠 위주가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두 분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제전화를 공짜로 걸어주는 기술도 결국은 일종의 아이디어 상품인데 아이디어도 콘텐츠에 해당된다. 또한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해당 분야에 대한 쌈박한 지식정보를 전제로 하거나 바탕으로 한다. 공룡에 관한 컨텐츠도 그것을 가공하고 보여주는 기술(디지털)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인터넷에 공룡에 관한 사이트가 많지만 콘텐츠가 아무리 풍부해도 그것을 구현하는 기술이 약하면 두 번 다시 찾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의 콘텐츠와 기술은 컴퓨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뉴미디어(컴퓨터) 사회라고 하기도 하고 실제 구현되고 유통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사이버(인터넷으로 구현되는 가상현실) 사회라 하기도 한다. 사이버 사회는 수많은 컴퓨터와 컴퓨터가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이루어진다. 그래서 정보화 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라고 부른다.
이번에는 정보화 사회의 주요 핵심어를 통해 우리의 생활양식이 어떻게 자리매김되는지 알아보자. 다음 네 가지 키워드가 그 실체를 보여줄 것이다.
상호 커뮤니케이션 자기증식 멀티미디어 하이퍼텍스트 복합정체성
1) 상호커뮤니케이션와 프로슈머
정보화 사회가 네트워크 사회라고 하는 것은 각 개인이나 집단이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물망(네트)처럼 엉겨있다. 기존의 책이나 텔레비전 미디어나 매체는 일방향이지만 인터넷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존의 뉴스 보는 방식은 생산자가 만들어준대로 또 보내는 시간에 맞추어 수동적으로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취사선택할 수 있으며 아무 시간대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끼리 쉽게 연대하여 소비할 수도 있다. 생산자 중심의 일방적 권력이 해체되는 것이다. 이렇게 누구나 생산자도 되고 소비자도 될 수 있는데 이런 유형을 프로슈머라고 부른다.
2) 자기증식
네트워크는 단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콘텐츠와 기술은 자기증식을 통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인터넷 초기만 하더라도 중앙 컴퓨터에 여러 컴퓨터로 흩뿌리는 방식이었으나 지금은 각 컴퓨터를 자체 소통시키는 프로그램(스냅 프로그램)이 개발돼 자기증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기술 공유를 내세워 개발된 리눅스(컴퓨터운용 프로그램) 는 이런 방식으로 발전을 거듭해 공룡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용 프로그램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어느 가수의 야한 비디오가 빨리 퍼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원리 때문이다.
3) 멀티 미디어
멀티 미디어는 여러 미디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결국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게임을 하면서 채팅을 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멀티미디어 현상이다.
4) 하이퍼텍스트
하이퍼란 말은 ‘확장된, 초월한’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텍스트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이건 여러분들이 인터넷에서 자주 이용하는 링크라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한 사이트를 보다과 관련된 사이트가 링크되어 있으면 그곳으로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이는 곧 연결망을 입체화시킨 것이다. 전자 국어사전의 경우도 한 낱말의 뜻풀이를 읽다가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꾹 누르면 그 낱말 풀이로 이동하게 된다.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잘 살린 방식이다.
5) 복합 가상 정체성
인간은 본래 여러 가지 역할을 통해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일관된 성격이나 정체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이버 세계는 바로 인간의 그런 정체성을 아주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로 자신의 다양한 가상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이다. 채팅에서는 나긋나긋한 정체성을 보이기도 하고 안티사이트에서는 테러리스트에 버금가는 과격한 정체성을 선보이기도 한다.
예상제시문 2
인류는 지금까지 대혁명의 물결을 두 번 경험했다. 제 1의 물결은 약 1만 년 전에 시작된 농업 혁명이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문명을 가져온 기술 혁신의 물결이다. 농업의 파도는 점차 세계로 확산되어서 어로 민족과 수렵 민족을 농경 민족으로 바꾸어 갔다. 그래도 이 농업 사회의 문명권에는 표면상의 차이는 있어도 본질적인 유사성이 있다. 즉 어느 것도 토지에 기초를 둔 생활이라는 것이다. 날이 새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생활이었다.
제 2의 물결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산업 혁명이었다. 제 1의 물결이 어민이나 수렵민을 농민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농민을 공장 근로자로 바꾸어 놓았다. 우선 그 중심이 되는 것이 증기 기관이다. 1712년 영국의 기술자 뉴코맨에 의해서 실용성 있는 증기 기관이 발명되어 공장 생산은 급격하게 발전해 갔다. 그리고 제 1의 물결과는 달리 에너지원은 지하로부터 왔다. 이것들은 일단 소비해 버리면 재생이 불가능한 화석 연료인데 석탄, 천연 가스, 석유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장은 이 에너지원의 산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경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점차로 한 곳으로 집결되어 도시가 점점 커져 갔다.
이 산업 중심의 새로운 생활 양식은 공업 제품 뿐만 아니라 일이나 사고 방식, 그리고 말하는 방법까지도 규격화시켜 유럽을 기점으로 세계에 퍼져 나갔다. 요람에서부터 규격화는 시작되어 공장을 모델로 해서 학교 교실도 규격화되어 갔다. 나라에 따라서 대중 교육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드러난 교육 과정 뒤에 숨겨진 교육 과정은 단순한 기계적 암기를 위주로 평생 기계적인 반복 작업에 순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이 산업주의는 사회의 여러 가지 개별 현상을 모두 모아서 마치 부품으로 기계를 조립하는 것같이 머리와 꼬리가 연결된 광범위하고 강력한 사회 체제를 만들어 갔다.
인간은 옛날부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대신해 줄 기계를 꿈꾸어 왔다. 이런 꿈들이 산업용 로봇 등과 같은 현실적인 도구로 개발된 것은 1962년 미국에서의 일이다. 이렇듯 지금 이 사회 전체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는 진통을 겪고 있는데 이 문명이야말로 제 3의 물결인 것이다.
제 3의 물결은 제 2의 물결의 상징이었던 공장에도 큰 변혁을 가져왔다. 실리콘을 만드는 미국의 한 공장은 그 좋은 예이다. 번영을 계속하는 고도의 기술 센터라고 일컬어지며,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받는 이 공장은 공원처럼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또 어떤 공장에서는 지금까지의 공장과는 달리 탁 트인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근로자들은 유니폼을 입지 않고 자유로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 근무 시간은 완전히 자유 시간제로서 정해진 작업량만 완수하면 어떤 형식의 근무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대량 생산을 위한 콘베어 벨트에 묶인 지난 날 공장 근로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의 블루 칼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변화이다. 이러한 장면에서 참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작업 내용이 새로운 산업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노동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제 2의 물결의 영향권에 있는 회사에 있어서는 공장의 기계나 건물이 자산이므로 종업원은 인건비 곧 비용일 뿐이었다. 그러나 제 3의 물결에서는 그와 반대로 기계나 건물 쪽이 경비이며 인간은 최대의 자산이 된다. 창조적 인간이야말로 무엇보다 큰 재산이 되는 것이다.
제 2의 물결에 속한 사업의 특징은 장기간에 걸쳐 똑같은 부품을 만들어 100만 단위의 동일한 규격 부품을 생산하는 점이다. 소비자는 획일적인 상품을 구매할 도리밖에 없었고, 개성 있는 물건을 구하려면 전문점에 가서 많은 돈을 주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제 3의 물결의 다종 소량 시대에 들어 오면 소비자는 규격화된 상품에 만족하지 않고 창조적 소비자가 되고 싶어한다. 소비자 의식, 생활 양식의 다양화는 다종 소량 생산을 더욱더 촉진시킨다. 이 경향은 유통 구조에도 반영되어 급속히 변해 가는 소비자의 다양화에 따라가기 위해서 세일즈의 방법에도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
제 2의 물결의 도래에 따라 사람들의 작업장은 가정이나 밭에서 공장이나 사무실로 옮겨졌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생산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그러나 지금 통근 비용의 급상승과 그와 반비례해서 원거리 통신 비용의 절감은 일을 또다시 가정으로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렉트로닉스(전자공학)를 기반으로 자택 근무를 가능하게 한 일렉트로닉 주택이 출현하게 된다.
이 자택 근무제는 노사 쌍방에게 이점이 있다. 일하는 쪽에게는 통근시의 지독한 러시 아워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없고 회사측에는 도심의 큰 빌딩의 유지비나 통근비 지출에서 해방되는 등 경제적 이익이 커진다. 무엇보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지금 인류에게 제 3의 물결을 가져오려고 한다. 인공 위성, 컴퓨터, 레이저 등의 신기술 앞에서는 산업 시대의 기계는 벌써 그 존재가 희미해져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새 기술이라고 하면 생활로부터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쉽지만 우리들 인간과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이 새 기술이 일을 변화시키고 인간 관계까지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새로운 기술의 한 영역을 떠맡고 있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즉 정보 기술이다. 이 정보 기술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정보를 받는 것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컴퓨터의 단추와 스크린을 사용해서 관광지의 모습을 살펴보고, 호텔의 예약이나 비행기표의 예매까지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야채나 의류를 사는 것도 가능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중에서
예상 논제
첫 번째 글은 인간의 이중적 욕망의 속성을 보여주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소설에서 지킬 박사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두 번째 글은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이고 세 번째 글은 사이버 세계에 푹빠진 청소년들의 모습이거나 그로 인한 문제를 담은 글입니다. 그렇다면 사이버 세계에 익숙한 세대들이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에 대해 논하시오. 단 첫 번째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반영시키도록 하시오.
[가] 내 친구 어타슨에게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 천성이 부지런하고 현명했으며 재능도 있고 선량했기 때문에 누구도 내 장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네. 반면 성격은 즐겁게 떠들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남 앞에선 향락적이거나 손가락질 받을 만한 태도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 사회적 지위와 출세를 생각할 때쯤 되었을 때는 완전히 겉과 속이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위선자는 아니었다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진지하고 정열적이었으니까. 그게 선이든 악이든 간에. 결국 그 두 가지 태도 가운데 어느 것이 진정한 내 모습인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셈일세. 선도 악도 모두 내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이 상반되는 성질 때문에 인간이 괴로워해야 한다면, 아예 그 두 가지를 따로 분리하여 한 인간으로 하여금 어느 때는 선을, 또 어느 때는 악의 길을 각각 걷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 두 영혼을 분리시켜 별개의 육체에 깃들게 할 수 있다면, 부정한 영혼은 올바른 영혼이 가진 포부나 후회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며, 또 올바른 영혼은 부정한 영혼이 저지른 일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선한 일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던 거지. 어울리지 않으며 전혀 상반되는 두 사람이 한 몸안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은 인류가 받은 저주라고 생각했다네.
강렬한 호기심은 의학과 약학 등 내가 가진 지식 전체를 필요에 따라 모습을 변하게 하는 약을 발명했다네. 그걸 누구에게 알릴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나만의 비밀이어야만 했던 걸세! 실패의 위험도 있었지. 그건 생명의 문제였어. 그러나 유혹이 나를 훨씬 강한 힘으로 사로잡았지. 나는 과감하게 약을 마셨다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뼈를 부수는 듯했지. 구토와 공포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이 지나자 말할 수 없이 새롭고 시원한 느낌이 밀려왔다네. 더 젊어지고 가벼워지고 행복해진 느낌이었어. 영혼은 모든 의무와 속박을 벗어던진 듯 날 것같이 자유로웠고, 매우 신선한 느낌이었지. 나는 드디어 악의 화신이라 할 추하고 퇴폐적인 작은 사나이 에드워드 하이드로 모습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일세. 이제 나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는 인격자로서 이름 높은 학자 헨리 지킬의 이름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마음대로 쾌락에 잠길 수 있게 된 것일세.
거울에 비친 하이드의 모습! 오, 그건 악이란 글씨가 얼굴 한복판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것이었다네. 작고 왜소한 몸집에 섬뜩한 표정이 불구의 몸과 묘하게 어울렸지. 그러나 이 추한 얼굴이 오히려 나로선 반가웠다네. 지킬의 모습과 다르면 다를수록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더 좋았고.
그것만이 아니었다네. 내 눈에는 그 얼굴이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불러온 그 불완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얼굴보다 훨씬 더 생생한 영혼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좀더 분명하고 좀더 순수하다고 생각되었다네. 하지만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것은 맘에 들지 않았어. 아마도 그건 내 천성 가운데 악한 측면이 선한 측면에 비해 억눌려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긴 악한 성격은 그동안 별로 사용할 기회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렇지만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네. 다시 지킬로 돌아가는 일이 남은 것일세. 그게 안 된다면? 그건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네. 다행히 하이드에서 다시 지킬로 변하는 실험도 성공했다네. 이 위대한 실험을 누구에게 알릴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무미 건조한 학문 생활에 지쳐 있던 내게 하이드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네. 그게 내가 지킬보다는 하이드로 있기를 더 좋아한 이유였지. 나는 연구실 바로 뒷집을 얻어 거기에 하이드의 거처를 마련해 놓았다네. 연구실로 통하는 문을 마련해두고. 이제 그 문 너머에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쾌락과 자유의 세계가 있는 것일세!
나는 하이드로 하여금 지킬의 집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얘기 해두었고, 지킬에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하이드는 유유히 살아갈 수 있도록 유서도 만들었다네. 내가 하이드를 통해 얻으려 한 쾌락은 유감스럽게도 여기 옮겨 쓸 수 없는 그런 것이라네. 그런데 하이드의 얼굴로 신이 나서 악행을 하고 다시 지킬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을 때, 하이드를 통해 저지른 악행에 나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네. 그는 더할 수 없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었으며 짐승보다 더 무자비했다네. 하지만 난 그게 지킬의 삶과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며, 점점 더 지킬의 삶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네.
지킬이 되었을 때의 나는 하이드가 저지른 일의 기억 때문에 수도승처럼 근신하였고 하이드가 저지른 죄의 기억으로 두려움에 떨며, 두 번 다시 하이드가 되는 약을 먹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곤 했지. 그러나 곧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 잡혔고, 하이드의 손발로 갖은 범죄를 저지르길 계속했다네. 그리고 그 책임의 추궁을 면하기 위하여 서둘러 지킬로 되돌아오곤 했지. 그걸 통제하려고 했을 때, 사태는 이미 내 손아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네. 지킬은 나날이 쇠약해지고 생기를 잃어간 반면, 하이드는 청춘의 건강이 넘쳐 흘렀고 키와 몸집이 부쩍 커지기까지 했지.
나는 적잖은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네. 한동안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고 지냈지. 그러나 약이 떨어진 마약 환자처럼 다시금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허덕이다가 끝내 다시 약을 마시곤 했다네. 반대로 다시 지킬이 되기 위해선 두 배, 세 배로 약을 늘려야 했지. 하이드의 모습을 벗어나기가 점점 어렵게 되고 있음을 깨달았지. 본래 있던 착한 본성이 이제 악한 본성으로 흡수되어버린 느낌이었다네.
나의 두 천성은 단지 기억만을 공유하고 있었다네. 선악의 혼합체인 지킬은 때로는 과민한 근심에 싸여, 때로는 탐욕스럽게 입맛을 다시며 하이드의 쾌락과 모험을 계획하고 함께 나누었지. 그런데 하이드는 지킬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네, 그는 지킬을 산적들이 쫓기다가 몸을 감추는 동굴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지. 지킬은 하이드를 자기 일부로 생각했지만, 하이드는 지킬을 숨어야 할 때 그 몸을 빌릴 뿐인 타인으로 생각했다네. (중략)
이제 약 기운이 다 떨어져 다시 하이드로 되면 그는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네. 하이드는 자기에게 닥친 최후 순간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건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지. 나는 마지막 약 기운을 빌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려 하네. 불행했던 신사 헨리 지킬의 삶은 이 유서를 봉함과 동시에 끝나게 될 것이라네. 안녕. - 스티븐슨 지음/이진경 옮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나] 정체성은 특정 집단이나 대상을 규정할 때 적용되지만. 원래 의미는 한 개인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구분시킬 수 있는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모습을 지칭한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서는 엄격하고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지만 가정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아빠의 역할을 하고. 또 사회 봉사 활동을 할 때에는 아주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역할을 한다면. 이 사람의 정체성은 각 상황에서 보이는 역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다. 사회적 역할이나 위치는 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그 사람을 안정적으로 나타내는 심리적 세계는 따로 있다. 한 개인의 속성을 사회적 역할이나 위치를 넘어 개인의 주관적인 심리적 경험으로 나타내는 것이 개인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특정 개인을 각기 다른 환경이나 다른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비교적 고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 개인의 심리적 정체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자신을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서. 현실 세계에 비해, 사이버 공간은 자신의 모습이나 역할을 무한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느낀다. 사이버 공간상에서 개인은 전혀 다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상상 세계의 구성원이 되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일을 한다. 이런 경우 자신의 실제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들도 사이버 공간상에서 그를 다른 정체성으로 인식한다면. 실제 그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현실 공간의 모습과 사이버 공간의 모습이 너무 다르거나, 현실 공간에서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사이버 공간에서 새롭게 만들었을 때, 그 사람의 정체성이 어느 공간에 있는가라는 의문이 충분히 가능하다. 개인을 나타내는 일관된 심리적 속성을 그 개인의 정체성이라 할 때, 현실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정체성인지, 아니면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진 모습이 그 사람의 정체성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사이버 공간이 우리의 생활 공간으로 등장함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인간 심리의 문제이다. - 황상민의 ‘사이버공간에 또다른 내가 있다(2000, 김영사)’의 일부
[다] 모두 매체가 그렇듯이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사뭇 달라진다. N세대들은 온라인 게임을 두루 즐기지만 적절히 즐기는 사람도 있고 푹 빠져 즐기는 사람도 있다. 언제가 온라인 게임의 하나인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우승한 한 고등학생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에 더 만족한다며 자신을 ‘테란족’이라고 부른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물론 그는 송파구에 있는 집 근처의 한 PC방에서 매일 3,4시간씩 테란으로 살아가고 ‘프로게이머’로 평생을 살 각오지만 오프라인 생활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이에 대비되는 보고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인 박모군은 게임에 완전히 빠져 버려 학교까지 두 달이나 빠지는 상태에 이르렀고 부모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그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 학생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게임에 빠져 있는 것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담당 의사는 ‘방해받지 않고 비현실 세계에 계속 머물러 있기 위한 구실로 보인다’는 이상징후로 진단을 내리고 말았다. 의사와 부모는 현실의 모습을 통해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들에게 박모군의 행동은 비현실 세계로 탈출하려는 도망자로 보여질 뿐이었다.
유의사항
1. 되도록 여러 사람의 여러 속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이런 저런 속성이나 다양한 속성 차원에서 접근할 것.
2. 글의 길이는 1,8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 ±100자 허용)로 할 것
▶ 예시 개요
[관점 1 : 긍정성]
․ 주제문 :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주목한다면 사이버에서의 생활양식과 현실 속에서의 생활양식의 조화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전략적 인간형이 필요하다.
․ 서론 :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주목한다면 사이버에서의 생활양식과 현실 속에서의 생활양식의 조화로운 방향 추구
․ 본론
1.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도구로서의 인터넷
2. 인간의 복합적 성향과 정체성
3. 현실 문제 해결체로서의 사이버
4. 대책 : 현실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인간형 필요
․ 결론 :사이버 세계와의 관계설정의 진정한 의미
▶ 출제의도
요즘 n세대들에게 사이버에서의 생활은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제시문 ‘다’’의 경우는 특이하거나 극단적인 예일수만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모두가 이런 식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단지 가상세계냐 현실세계냐라든가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빠질 필요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한 쪽 세계에서만 살 수 없으므로 사이버식 삶과 현실 속에서의 삶을 어떤식으로 관계를 맺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 속에서의 나의 모습보다 사이버에서의 부정적인 나의 모습을 더 강조하여 윤리적 차원에서의 상호작용을 강조해주는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사이버의 여러 가지 속성상 아무리 착한 지킬 박사라 하더라도 하이드씨로 변하거나 변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이버 세상은 감시와 제어의 대상이 된다. 이와 반대로 현실 속의 나와 사이버 속의 나를 다양성 측면에서 바라보고 또한 사이버에서의 다양한 변신을 주로 긍정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이드씨와 같은 변신은 일부일 뿐이고 그밖의 다양한 변신에 주목한다면 오히려 현실 속에서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는 쪽을 부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제시문 분석
첫 번째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스티븐슨이 1886년에 썼다.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두 대립적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주제지만 한 인간의 정체성 변화가 심한 사이버 세계의 문제에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아무리 착한 행동만 하는 사람이라도 나쁜 생각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쁜 생각을 제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이 세상이 이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과 실천의 괴리를 떠나서라도 인간의 행동이 늘 일사분란하게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킬 박사가 만든 변신의 약이 황당한 환타지 속에서의 약만은 아니다. 술이라든가 마약, 아니면 인간을 훼까닥 돌게 하는 황금일 수도 있다. 사이버 세계를 열어주는 컴퓨터와 인터넷, 아니면 유혹의 게임 프로그램일 수도 있다.
지킬 박사는 자신의 또다른 모습인 하이드를 억압하는 것이 싫어 아예 분리하여 해방시켰다. 선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또다른 모습을 억압하며 사는 삶에 대한 회의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도 은연중에 우리의 또다른 모습을 억압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꼭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공부나 학교 부모 등 주변의 여러 요인 때문에 그런 욕망을 억누르며 사는 것이다. 나쁜 행동이야 억누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아기자기한 삶의 욕망까지 억누른다면 더 큰 문제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욕망을 맘껏 푸는 것이 좋은가. 글쎄. 그 욕망이 소중하다면 또 다른 욕망도 소중할 수 있지도 않겠는가.
두 번째 제시문은 사이버와 현실 속에서의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정체성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정체성을 개인을 나타내는 일관된 심리적 속성으로 보고 그러한 정체성이 사이버 세계에서는 현실세계와 사뭇 다르게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이른바 가상현실 속에서의 정체성이 현실 속에서의 정체성보다 더 무게있는 비중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현실 속에서 뚜렷한 직업이나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 어른들보다 아직 뚜렷한 역할 설정이 안 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정체성은 더 중요하게 다가올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렇게 보면 현실 속에서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버 정체성이 혼란이 온다는 논조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 속에서의 역할 규정에 관계없이 사이버 세계의 속성은 분명히 인간의 다양한 욕망의 정체성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고 실제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나머지 세 번째 글은 사이버 정체성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부정적 예로 든 학생의 경우, 학교를 안가는 것만으로 비정상적인 아이처럼 보는 부모와 의사의 관점이 옳은 것인가 반문해 볼 수도 있지만 구체적 자료가 없어 생략할 수밖에 없다.
▶ 문제 해결
두 번째 관점대로라면 누군가가 사이버에서 어떤 짓을 하건 현실 세계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사이버는 사이버 나름의 세계가 있는 것이고 그곳에서 맘껏 자신의 정체성을 펼칠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표준어를 쓰는 사람도 사이버세계에서는 표준어가 아닌 통신언어 즐겨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내성적이고 수줍어 하는 성향의 사람도 사이버에서는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욕구불만이나 여러 문제도 사이버 세계에서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삶도 윤택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의 관점은 게임 중독 같은 부정적 현상이라는 반론에 부딪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중독증은 ‘다’에서처럼 사이버 정체성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은 원래 다중성격이나 복합적 존재임을 부각시키면 된다. 워낙 사람 관계맺는 방식이 다양하다 보니 인간은 다중성격에 의한 복합적 정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런 다양한 관계 맺기가 어느 쪽의 편중된 정체성을 옹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이버 세계에 중독된 사람은 그것이 사이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 문제가 있어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관점이라면 우리는 한 사람의 다양한 성격과 취향을 강조하되 일관된 행위 양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에서 다양한 글을 쓰는 것은 좋지만 현실과의 연계성도 중요하므로 현실에서의 표준어를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사이버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속성은 하이드씨를 만드는 약이 될 가능성이 많음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현실 세계와의 조화나 도움이 필요없는 절대적인 사이버 세계란 있을 수 없으므로 인간의 삶은 늘 현실 세계가 바탕이 돼야 함을 강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선적인 이중적 측면을 강조하여 논증하는 것이 좋다.
테마 : 정보화 시대의 다중정체성 /김슬옹
예상논제 1
정보화 사회는 이제 기술 중심에서 지식내용(콘텐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식내용에 대한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정보시대의 정보 생산과 소통, 소비의 문제와 연결시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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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 논제
1. 저작권 보호 운동과 카피 레프트 운동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가?
2. 정보 시대 정보 생산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성인가 성실성인가?
3.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라고 한다. 그러한 위치로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예상논제 2
정보화 사회일수록 정보의 공유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1.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증세나 포르노 따위의 역기능을 막을 수 있는가?
2.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을 막기 위한 삶의 가치 기준은 무엇인가?
3. 온라인와 오프라인 삶의 조화는 얼마나 어떻게 가능한가?
예상 제시문 1
정보화 사회는 콘텐츠(정보)와 디지털(테크놀로지)이라는 말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다. 콘텐츠는 지식정보다. 인간의 지식을 중심으로 가공된 정보다. 이러한 정보는 정보화 사회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그 가치와 구성 방식이 사뭇 달랐다. 정보화 사회 이전에는 지식 정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삶의 잣대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또한 콘텐츠를 만들고 나누는 방식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그 생산성이 이전 시대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디지털이라는 말은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중심 원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디지털은 숫자형이라는 말이다.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두 가지 숫자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가 어마어마한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것은 규칙적인 숫자 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대비되는 아날로그와 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날로그
디지탈
자연적
연속적
유추
느림
인위적
불연속적
명시적
빠름
디지털 혁명은 결국 정보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인간과 매체의 관계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 된 것이다.
정보화 사회는 결국 콘텐츠와 디지털의 테크놀로지가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이다. 물론 대상에 따라 콘텐츠가 강조되는 분야가 있고 테크놀로지가 강조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국제전화를 무료로 걸어주는 기술은 테크놀로지가 강조되는 분야이고 인터넷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 공룡에 관한 자료는 콘텐츠 위주가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두 분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제전화를 공짜로 걸어주는 기술도 결국은 일종의 아이디어 상품인데 아이디어도 콘텐츠에 해당된다. 또한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해당 분야에 대한 쌈박한 지식정보를 전제로 하거나 바탕으로 한다. 공룡에 관한 컨텐츠도 그것을 가공하고 보여주는 기술(디지털)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인터넷에 공룡에 관한 사이트가 많지만 콘텐츠가 아무리 풍부해도 그것을 구현하는 기술이 약하면 두 번 다시 찾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의 콘텐츠와 기술은 컴퓨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뉴미디어(컴퓨터) 사회라고 하기도 하고 실제 구현되고 유통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사이버(인터넷으로 구현되는 가상현실) 사회라 하기도 한다. 사이버 사회는 수많은 컴퓨터와 컴퓨터가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이루어진다. 그래서 정보화 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라고 부른다.
이번에는 정보화 사회의 주요 핵심어를 통해 우리의 생활양식이 어떻게 자리매김되는지 알아보자. 다음 네 가지 키워드가 그 실체를 보여줄 것이다.
상호 커뮤니케이션 자기증식 멀티미디어 하이퍼텍스트 복합정체성
1) 상호커뮤니케이션와 프로슈머
정보화 사회가 네트워크 사회라고 하는 것은 각 개인이나 집단이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물망(네트)처럼 엉겨있다. 기존의 책이나 텔레비전 미디어나 매체는 일방향이지만 인터넷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존의 뉴스 보는 방식은 생산자가 만들어준대로 또 보내는 시간에 맞추어 수동적으로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취사선택할 수 있으며 아무 시간대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끼리 쉽게 연대하여 소비할 수도 있다. 생산자 중심의 일방적 권력이 해체되는 것이다. 이렇게 누구나 생산자도 되고 소비자도 될 수 있는데 이런 유형을 프로슈머라고 부른다.
2) 자기증식
네트워크는 단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콘텐츠와 기술은 자기증식을 통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인터넷 초기만 하더라도 중앙 컴퓨터에 여러 컴퓨터로 흩뿌리는 방식이었으나 지금은 각 컴퓨터를 자체 소통시키는 프로그램(스냅 프로그램)이 개발돼 자기증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기술 공유를 내세워 개발된 리눅스(컴퓨터운용 프로그램) 는 이런 방식으로 발전을 거듭해 공룡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용 프로그램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어느 가수의 야한 비디오가 빨리 퍼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원리 때문이다.
3) 멀티 미디어
멀티 미디어는 여러 미디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결국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게임을 하면서 채팅을 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멀티미디어 현상이다.
4) 하이퍼텍스트
하이퍼란 말은 ‘확장된, 초월한’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텍스트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이건 여러분들이 인터넷에서 자주 이용하는 링크라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한 사이트를 보다과 관련된 사이트가 링크되어 있으면 그곳으로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이는 곧 연결망을 입체화시킨 것이다. 전자 국어사전의 경우도 한 낱말의 뜻풀이를 읽다가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꾹 누르면 그 낱말 풀이로 이동하게 된다.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잘 살린 방식이다.
5) 복합 가상 정체성
인간은 본래 여러 가지 역할을 통해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일관된 성격이나 정체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이버 세계는 바로 인간의 그런 정체성을 아주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로 자신의 다양한 가상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이다. 채팅에서는 나긋나긋한 정체성을 보이기도 하고 안티사이트에서는 테러리스트에 버금가는 과격한 정체성을 선보이기도 한다.
예상제시문 2
인류는 지금까지 대혁명의 물결을 두 번 경험했다. 제 1의 물결은 약 1만 년 전에 시작된 농업 혁명이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문명을 가져온 기술 혁신의 물결이다. 농업의 파도는 점차 세계로 확산되어서 어로 민족과 수렵 민족을 농경 민족으로 바꾸어 갔다. 그래도 이 농업 사회의 문명권에는 표면상의 차이는 있어도 본질적인 유사성이 있다. 즉 어느 것도 토지에 기초를 둔 생활이라는 것이다. 날이 새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생활이었다.
제 2의 물결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산업 혁명이었다. 제 1의 물결이 어민이나 수렵민을 농민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농민을 공장 근로자로 바꾸어 놓았다. 우선 그 중심이 되는 것이 증기 기관이다. 1712년 영국의 기술자 뉴코맨에 의해서 실용성 있는 증기 기관이 발명되어 공장 생산은 급격하게 발전해 갔다. 그리고 제 1의 물결과는 달리 에너지원은 지하로부터 왔다. 이것들은 일단 소비해 버리면 재생이 불가능한 화석 연료인데 석탄, 천연 가스, 석유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장은 이 에너지원의 산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경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점차로 한 곳으로 집결되어 도시가 점점 커져 갔다.
이 산업 중심의 새로운 생활 양식은 공업 제품 뿐만 아니라 일이나 사고 방식, 그리고 말하는 방법까지도 규격화시켜 유럽을 기점으로 세계에 퍼져 나갔다. 요람에서부터 규격화는 시작되어 공장을 모델로 해서 학교 교실도 규격화되어 갔다. 나라에 따라서 대중 교육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드러난 교육 과정 뒤에 숨겨진 교육 과정은 단순한 기계적 암기를 위주로 평생 기계적인 반복 작업에 순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이 산업주의는 사회의 여러 가지 개별 현상을 모두 모아서 마치 부품으로 기계를 조립하는 것같이 머리와 꼬리가 연결된 광범위하고 강력한 사회 체제를 만들어 갔다.
인간은 옛날부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대신해 줄 기계를 꿈꾸어 왔다. 이런 꿈들이 산업용 로봇 등과 같은 현실적인 도구로 개발된 것은 1962년 미국에서의 일이다. 이렇듯 지금 이 사회 전체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는 진통을 겪고 있는데 이 문명이야말로 제 3의 물결인 것이다.
제 3의 물결은 제 2의 물결의 상징이었던 공장에도 큰 변혁을 가져왔다. 실리콘을 만드는 미국의 한 공장은 그 좋은 예이다. 번영을 계속하는 고도의 기술 센터라고 일컬어지며,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받는 이 공장은 공원처럼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또 어떤 공장에서는 지금까지의 공장과는 달리 탁 트인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근로자들은 유니폼을 입지 않고 자유로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 근무 시간은 완전히 자유 시간제로서 정해진 작업량만 완수하면 어떤 형식의 근무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대량 생산을 위한 콘베어 벨트에 묶인 지난 날 공장 근로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의 블루 칼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변화이다. 이러한 장면에서 참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작업 내용이 새로운 산업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노동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제 2의 물결의 영향권에 있는 회사에 있어서는 공장의 기계나 건물이 자산이므로 종업원은 인건비 곧 비용일 뿐이었다. 그러나 제 3의 물결에서는 그와 반대로 기계나 건물 쪽이 경비이며 인간은 최대의 자산이 된다. 창조적 인간이야말로 무엇보다 큰 재산이 되는 것이다.
제 2의 물결에 속한 사업의 특징은 장기간에 걸쳐 똑같은 부품을 만들어 100만 단위의 동일한 규격 부품을 생산하는 점이다. 소비자는 획일적인 상품을 구매할 도리밖에 없었고, 개성 있는 물건을 구하려면 전문점에 가서 많은 돈을 주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제 3의 물결의 다종 소량 시대에 들어 오면 소비자는 규격화된 상품에 만족하지 않고 창조적 소비자가 되고 싶어한다. 소비자 의식, 생활 양식의 다양화는 다종 소량 생산을 더욱더 촉진시킨다. 이 경향은 유통 구조에도 반영되어 급속히 변해 가는 소비자의 다양화에 따라가기 위해서 세일즈의 방법에도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
제 2의 물결의 도래에 따라 사람들의 작업장은 가정이나 밭에서 공장이나 사무실로 옮겨졌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생산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그러나 지금 통근 비용의 급상승과 그와 반비례해서 원거리 통신 비용의 절감은 일을 또다시 가정으로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렉트로닉스(전자공학)를 기반으로 자택 근무를 가능하게 한 일렉트로닉 주택이 출현하게 된다.
이 자택 근무제는 노사 쌍방에게 이점이 있다. 일하는 쪽에게는 통근시의 지독한 러시 아워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없고 회사측에는 도심의 큰 빌딩의 유지비나 통근비 지출에서 해방되는 등 경제적 이익이 커진다. 무엇보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지금 인류에게 제 3의 물결을 가져오려고 한다. 인공 위성, 컴퓨터, 레이저 등의 신기술 앞에서는 산업 시대의 기계는 벌써 그 존재가 희미해져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새 기술이라고 하면 생활로부터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쉽지만 우리들 인간과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이 새 기술이 일을 변화시키고 인간 관계까지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새로운 기술의 한 영역을 떠맡고 있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즉 정보 기술이다. 이 정보 기술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정보를 받는 것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컴퓨터의 단추와 스크린을 사용해서 관광지의 모습을 살펴보고, 호텔의 예약이나 비행기표의 예매까지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야채나 의류를 사는 것도 가능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중에서
예상 논제
첫 번째 글은 인간의 이중적 욕망의 속성을 보여주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소설에서 지킬 박사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두 번째 글은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이고 세 번째 글은 사이버 세계에 푹빠진 청소년들의 모습이거나 그로 인한 문제를 담은 글입니다. 그렇다면 사이버 세계에 익숙한 세대들이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에 대해 논하시오. 단 첫 번째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반영시키도록 하시오.
[가] 내 친구 어타슨에게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 천성이 부지런하고 현명했으며 재능도 있고 선량했기 때문에 누구도 내 장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네. 반면 성격은 즐겁게 떠들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남 앞에선 향락적이거나 손가락질 받을 만한 태도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 사회적 지위와 출세를 생각할 때쯤 되었을 때는 완전히 겉과 속이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위선자는 아니었다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진지하고 정열적이었으니까. 그게 선이든 악이든 간에. 결국 그 두 가지 태도 가운데 어느 것이 진정한 내 모습인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셈일세. 선도 악도 모두 내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이 상반되는 성질 때문에 인간이 괴로워해야 한다면, 아예 그 두 가지를 따로 분리하여 한 인간으로 하여금 어느 때는 선을, 또 어느 때는 악의 길을 각각 걷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 두 영혼을 분리시켜 별개의 육체에 깃들게 할 수 있다면, 부정한 영혼은 올바른 영혼이 가진 포부나 후회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며, 또 올바른 영혼은 부정한 영혼이 저지른 일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선한 일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던 거지. 어울리지 않으며 전혀 상반되는 두 사람이 한 몸안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은 인류가 받은 저주라고 생각했다네.
강렬한 호기심은 의학과 약학 등 내가 가진 지식 전체를 필요에 따라 모습을 변하게 하는 약을 발명했다네. 그걸 누구에게 알릴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나만의 비밀이어야만 했던 걸세! 실패의 위험도 있었지. 그건 생명의 문제였어. 그러나 유혹이 나를 훨씬 강한 힘으로 사로잡았지. 나는 과감하게 약을 마셨다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뼈를 부수는 듯했지. 구토와 공포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이 지나자 말할 수 없이 새롭고 시원한 느낌이 밀려왔다네. 더 젊어지고 가벼워지고 행복해진 느낌이었어. 영혼은 모든 의무와 속박을 벗어던진 듯 날 것같이 자유로웠고, 매우 신선한 느낌이었지. 나는 드디어 악의 화신이라 할 추하고 퇴폐적인 작은 사나이 에드워드 하이드로 모습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일세. 이제 나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는 인격자로서 이름 높은 학자 헨리 지킬의 이름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마음대로 쾌락에 잠길 수 있게 된 것일세.
거울에 비친 하이드의 모습! 오, 그건 악이란 글씨가 얼굴 한복판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것이었다네. 작고 왜소한 몸집에 섬뜩한 표정이 불구의 몸과 묘하게 어울렸지. 그러나 이 추한 얼굴이 오히려 나로선 반가웠다네. 지킬의 모습과 다르면 다를수록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더 좋았고.
그것만이 아니었다네. 내 눈에는 그 얼굴이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불러온 그 불완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얼굴보다 훨씬 더 생생한 영혼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좀더 분명하고 좀더 순수하다고 생각되었다네. 하지만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것은 맘에 들지 않았어. 아마도 그건 내 천성 가운데 악한 측면이 선한 측면에 비해 억눌려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긴 악한 성격은 그동안 별로 사용할 기회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렇지만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네. 다시 지킬로 돌아가는 일이 남은 것일세. 그게 안 된다면? 그건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네. 다행히 하이드에서 다시 지킬로 변하는 실험도 성공했다네. 이 위대한 실험을 누구에게 알릴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무미 건조한 학문 생활에 지쳐 있던 내게 하이드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네. 그게 내가 지킬보다는 하이드로 있기를 더 좋아한 이유였지. 나는 연구실 바로 뒷집을 얻어 거기에 하이드의 거처를 마련해 놓았다네. 연구실로 통하는 문을 마련해두고. 이제 그 문 너머에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쾌락과 자유의 세계가 있는 것일세!
나는 하이드로 하여금 지킬의 집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얘기 해두었고, 지킬에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하이드는 유유히 살아갈 수 있도록 유서도 만들었다네. 내가 하이드를 통해 얻으려 한 쾌락은 유감스럽게도 여기 옮겨 쓸 수 없는 그런 것이라네. 그런데 하이드의 얼굴로 신이 나서 악행을 하고 다시 지킬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을 때, 하이드를 통해 저지른 악행에 나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네. 그는 더할 수 없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었으며 짐승보다 더 무자비했다네. 하지만 난 그게 지킬의 삶과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며, 점점 더 지킬의 삶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네.
지킬이 되었을 때의 나는 하이드가 저지른 일의 기억 때문에 수도승처럼 근신하였고 하이드가 저지른 죄의 기억으로 두려움에 떨며, 두 번 다시 하이드가 되는 약을 먹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곤 했지. 그러나 곧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 잡혔고, 하이드의 손발로 갖은 범죄를 저지르길 계속했다네. 그리고 그 책임의 추궁을 면하기 위하여 서둘러 지킬로 되돌아오곤 했지. 그걸 통제하려고 했을 때, 사태는 이미 내 손아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네. 지킬은 나날이 쇠약해지고 생기를 잃어간 반면, 하이드는 청춘의 건강이 넘쳐 흘렀고 키와 몸집이 부쩍 커지기까지 했지.
나는 적잖은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네. 한동안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고 지냈지. 그러나 약이 떨어진 마약 환자처럼 다시금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허덕이다가 끝내 다시 약을 마시곤 했다네. 반대로 다시 지킬이 되기 위해선 두 배, 세 배로 약을 늘려야 했지. 하이드의 모습을 벗어나기가 점점 어렵게 되고 있음을 깨달았지. 본래 있던 착한 본성이 이제 악한 본성으로 흡수되어버린 느낌이었다네.
나의 두 천성은 단지 기억만을 공유하고 있었다네. 선악의 혼합체인 지킬은 때로는 과민한 근심에 싸여, 때로는 탐욕스럽게 입맛을 다시며 하이드의 쾌락과 모험을 계획하고 함께 나누었지. 그런데 하이드는 지킬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네, 그는 지킬을 산적들이 쫓기다가 몸을 감추는 동굴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지. 지킬은 하이드를 자기 일부로 생각했지만, 하이드는 지킬을 숨어야 할 때 그 몸을 빌릴 뿐인 타인으로 생각했다네. (중략)
이제 약 기운이 다 떨어져 다시 하이드로 되면 그는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네. 하이드는 자기에게 닥친 최후 순간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건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지. 나는 마지막 약 기운을 빌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려 하네. 불행했던 신사 헨리 지킬의 삶은 이 유서를 봉함과 동시에 끝나게 될 것이라네. 안녕. - 스티븐슨 지음/이진경 옮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나] 정체성은 특정 집단이나 대상을 규정할 때 적용되지만. 원래 의미는 한 개인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구분시킬 수 있는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모습을 지칭한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서는 엄격하고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지만 가정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아빠의 역할을 하고. 또 사회 봉사 활동을 할 때에는 아주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역할을 한다면. 이 사람의 정체성은 각 상황에서 보이는 역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다. 사회적 역할이나 위치는 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그 사람을 안정적으로 나타내는 심리적 세계는 따로 있다. 한 개인의 속성을 사회적 역할이나 위치를 넘어 개인의 주관적인 심리적 경험으로 나타내는 것이 개인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특정 개인을 각기 다른 환경이나 다른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비교적 고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 개인의 심리적 정체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자신을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서. 현실 세계에 비해, 사이버 공간은 자신의 모습이나 역할을 무한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느낀다. 사이버 공간상에서 개인은 전혀 다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상상 세계의 구성원이 되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일을 한다. 이런 경우 자신의 실제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들도 사이버 공간상에서 그를 다른 정체성으로 인식한다면. 실제 그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현실 공간의 모습과 사이버 공간의 모습이 너무 다르거나, 현실 공간에서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사이버 공간에서 새롭게 만들었을 때, 그 사람의 정체성이 어느 공간에 있는가라는 의문이 충분히 가능하다. 개인을 나타내는 일관된 심리적 속성을 그 개인의 정체성이라 할 때, 현실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정체성인지, 아니면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진 모습이 그 사람의 정체성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사이버 공간이 우리의 생활 공간으로 등장함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인간 심리의 문제이다. - 황상민의 ‘사이버공간에 또다른 내가 있다(2000, 김영사)’의 일부
[다] 모두 매체가 그렇듯이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사뭇 달라진다. N세대들은 온라인 게임을 두루 즐기지만 적절히 즐기는 사람도 있고 푹 빠져 즐기는 사람도 있다. 언제가 온라인 게임의 하나인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우승한 한 고등학생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에 더 만족한다며 자신을 ‘테란족’이라고 부른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물론 그는 송파구에 있는 집 근처의 한 PC방에서 매일 3,4시간씩 테란으로 살아가고 ‘프로게이머’로 평생을 살 각오지만 오프라인 생활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이에 대비되는 보고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인 박모군은 게임에 완전히 빠져 버려 학교까지 두 달이나 빠지는 상태에 이르렀고 부모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그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 학생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게임에 빠져 있는 것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담당 의사는 ‘방해받지 않고 비현실 세계에 계속 머물러 있기 위한 구실로 보인다’는 이상징후로 진단을 내리고 말았다. 의사와 부모는 현실의 모습을 통해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들에게 박모군의 행동은 비현실 세계로 탈출하려는 도망자로 보여질 뿐이었다.
유의사항
1. 되도록 여러 사람의 여러 속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이런 저런 속성이나 다양한 속성 차원에서 접근할 것.
2. 글의 길이는 1,8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 ±100자 허용)로 할 것
▶ 예시 개요
[관점 1 : 긍정성]
․ 주제문 :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주목한다면 사이버에서의 생활양식과 현실 속에서의 생활양식의 조화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전략적 인간형이 필요하다.
․ 서론 :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주목한다면 사이버에서의 생활양식과 현실 속에서의 생활양식의 조화로운 방향 추구
․ 본론
1.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도구로서의 인터넷
2. 인간의 복합적 성향과 정체성
3. 현실 문제 해결체로서의 사이버
4. 대책 : 현실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인간형 필요
․ 결론 :사이버 세계와의 관계설정의 진정한 의미
▶ 출제의도
요즘 n세대들에게 사이버에서의 생활은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제시문 ‘다’’의 경우는 특이하거나 극단적인 예일수만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모두가 이런 식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단지 가상세계냐 현실세계냐라든가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빠질 필요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한 쪽 세계에서만 살 수 없으므로 사이버식 삶과 현실 속에서의 삶을 어떤식으로 관계를 맺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 속에서의 나의 모습보다 사이버에서의 부정적인 나의 모습을 더 강조하여 윤리적 차원에서의 상호작용을 강조해주는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사이버의 여러 가지 속성상 아무리 착한 지킬 박사라 하더라도 하이드씨로 변하거나 변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이버 세상은 감시와 제어의 대상이 된다. 이와 반대로 현실 속의 나와 사이버 속의 나를 다양성 측면에서 바라보고 또한 사이버에서의 다양한 변신을 주로 긍정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이드씨와 같은 변신은 일부일 뿐이고 그밖의 다양한 변신에 주목한다면 오히려 현실 속에서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는 쪽을 부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제시문 분석
첫 번째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스티븐슨이 1886년에 썼다.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두 대립적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주제지만 한 인간의 정체성 변화가 심한 사이버 세계의 문제에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아무리 착한 행동만 하는 사람이라도 나쁜 생각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쁜 생각을 제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이 세상이 이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과 실천의 괴리를 떠나서라도 인간의 행동이 늘 일사분란하게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킬 박사가 만든 변신의 약이 황당한 환타지 속에서의 약만은 아니다. 술이라든가 마약, 아니면 인간을 훼까닥 돌게 하는 황금일 수도 있다. 사이버 세계를 열어주는 컴퓨터와 인터넷, 아니면 유혹의 게임 프로그램일 수도 있다.
지킬 박사는 자신의 또다른 모습인 하이드를 억압하는 것이 싫어 아예 분리하여 해방시켰다. 선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또다른 모습을 억압하며 사는 삶에 대한 회의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도 은연중에 우리의 또다른 모습을 억압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꼭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공부나 학교 부모 등 주변의 여러 요인 때문에 그런 욕망을 억누르며 사는 것이다. 나쁜 행동이야 억누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아기자기한 삶의 욕망까지 억누른다면 더 큰 문제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욕망을 맘껏 푸는 것이 좋은가. 글쎄. 그 욕망이 소중하다면 또 다른 욕망도 소중할 수 있지도 않겠는가.
두 번째 제시문은 사이버와 현실 속에서의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정체성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정체성을 개인을 나타내는 일관된 심리적 속성으로 보고 그러한 정체성이 사이버 세계에서는 현실세계와 사뭇 다르게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이른바 가상현실 속에서의 정체성이 현실 속에서의 정체성보다 더 무게있는 비중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현실 속에서 뚜렷한 직업이나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 어른들보다 아직 뚜렷한 역할 설정이 안 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정체성은 더 중요하게 다가올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렇게 보면 현실 속에서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버 정체성이 혼란이 온다는 논조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 속에서의 역할 규정에 관계없이 사이버 세계의 속성은 분명히 인간의 다양한 욕망의 정체성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고 실제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나머지 세 번째 글은 사이버 정체성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부정적 예로 든 학생의 경우, 학교를 안가는 것만으로 비정상적인 아이처럼 보는 부모와 의사의 관점이 옳은 것인가 반문해 볼 수도 있지만 구체적 자료가 없어 생략할 수밖에 없다.
▶ 문제 해결
두 번째 관점대로라면 누군가가 사이버에서 어떤 짓을 하건 현실 세계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사이버는 사이버 나름의 세계가 있는 것이고 그곳에서 맘껏 자신의 정체성을 펼칠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표준어를 쓰는 사람도 사이버세계에서는 표준어가 아닌 통신언어 즐겨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내성적이고 수줍어 하는 성향의 사람도 사이버에서는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욕구불만이나 여러 문제도 사이버 세계에서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삶도 윤택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의 관점은 게임 중독 같은 부정적 현상이라는 반론에 부딪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중독증은 ‘다’에서처럼 사이버 정체성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은 원래 다중성격이나 복합적 존재임을 부각시키면 된다. 워낙 사람 관계맺는 방식이 다양하다 보니 인간은 다중성격에 의한 복합적 정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런 다양한 관계 맺기가 어느 쪽의 편중된 정체성을 옹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이버 세계에 중독된 사람은 그것이 사이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 문제가 있어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관점이라면 우리는 한 사람의 다양한 성격과 취향을 강조하되 일관된 행위 양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에서 다양한 글을 쓰는 것은 좋지만 현실과의 연계성도 중요하므로 현실에서의 표준어를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사이버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속성은 하이드씨를 만드는 약이 될 가능성이 많음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현실 세계와의 조화나 도움이 필요없는 절대적인 사이버 세계란 있을 수 없으므로 인간의 삶은 늘 현실 세계가 바탕이 돼야 함을 강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선적인 이중적 측면을 강조하여 논증하는 것이 좋다.
테마 : 정보화 시대의 다중정체성 /김슬옹
예상논제 1
정보화 사회는 이제 기술 중심에서 지식내용(콘텐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식내용에 대한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정보시대의 정보 생산과 소통, 소비의 문제와 연결시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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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 논제
1. 저작권 보호 운동과 카피 레프트 운동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가?
2. 정보 시대 정보 생산에서 중요한 것은 창의성인가 성실성인가?
3.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라고 한다. 그러한 위치로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예상논제 2
정보화 사회일수록 정보의 공유의 격차는 점점 벌어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1.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 증세나 포르노 따위의 역기능을 막을 수 있는가?
2. 정보화 사회의 역기능을 막기 위한 삶의 가치 기준은 무엇인가?
3. 온라인와 오프라인 삶의 조화는 얼마나 어떻게 가능한가?
예상 제시문 1
정보화 사회는 콘텐츠(정보)와 디지털(테크놀로지)이라는 말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다. 콘텐츠는 지식정보다. 인간의 지식을 중심으로 가공된 정보다. 이러한 정보는 정보화 사회 이전에도 있었겠지만 그 가치와 구성 방식이 사뭇 달랐다. 정보화 사회 이전에는 지식 정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삶의 잣대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또한 콘텐츠를 만들고 나누는 방식이 컴퓨터와 인터넷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그 생산성이 이전 시대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디지털이라는 말은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중심 원리를 나타내는 말이다. 디지털은 숫자형이라는 말이다. 컴퓨터가 0과 1이라는 두 가지 숫자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컴퓨터가 어마어마한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것은 규칙적인 숫자 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과 대비되는 아날로그와 비교해 보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날로그
디지탈
자연적
연속적
유추
느림
인위적
불연속적
명시적
빠름
디지털 혁명은 결국 정보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인간과 매체의 관계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게 된 것이다.
정보화 사회는 결국 콘텐츠와 디지털의 테크놀로지가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이다. 물론 대상에 따라 콘텐츠가 강조되는 분야가 있고 테크놀로지가 강조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국제전화를 무료로 걸어주는 기술은 테크놀로지가 강조되는 분야이고 인터넷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 공룡에 관한 자료는 콘텐츠 위주가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두 분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국제전화를 공짜로 걸어주는 기술도 결국은 일종의 아이디어 상품인데 아이디어도 콘텐츠에 해당된다. 또한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해당 분야에 대한 쌈박한 지식정보를 전제로 하거나 바탕으로 한다. 공룡에 관한 컨텐츠도 그것을 가공하고 보여주는 기술(디지털)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인터넷에 공룡에 관한 사이트가 많지만 콘텐츠가 아무리 풍부해도 그것을 구현하는 기술이 약하면 두 번 다시 찾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의 콘텐츠와 기술은 컴퓨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므로 뉴미디어(컴퓨터) 사회라고 하기도 하고 실제 구현되고 유통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사이버(인터넷으로 구현되는 가상현실) 사회라 하기도 한다. 사이버 사회는 수많은 컴퓨터와 컴퓨터가 유기체처럼 연결되어 이루어진다. 그래서 정보화 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라고 부른다.
이번에는 정보화 사회의 주요 핵심어를 통해 우리의 생활양식이 어떻게 자리매김되는지 알아보자. 다음 네 가지 키워드가 그 실체를 보여줄 것이다.
상호 커뮤니케이션 자기증식 멀티미디어 하이퍼텍스트 복합정체성
1) 상호커뮤니케이션와 프로슈머
정보화 사회가 네트워크 사회라고 하는 것은 각 개인이나 집단이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물망(네트)처럼 엉겨있다. 기존의 책이나 텔레비전 미디어나 매체는 일방향이지만 인터넷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기존의 뉴스 보는 방식은 생산자가 만들어준대로 또 보내는 시간에 맞추어 수동적으로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취사선택할 수 있으며 아무 시간대나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소비자끼리 쉽게 연대하여 소비할 수도 있다. 생산자 중심의 일방적 권력이 해체되는 것이다. 이렇게 누구나 생산자도 되고 소비자도 될 수 있는데 이런 유형을 프로슈머라고 부른다.
2) 자기증식
네트워크는 단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콘텐츠와 기술은 자기증식을 통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인터넷 초기만 하더라도 중앙 컴퓨터에 여러 컴퓨터로 흩뿌리는 방식이었으나 지금은 각 컴퓨터를 자체 소통시키는 프로그램(스냅 프로그램)이 개발돼 자기증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기술 공유를 내세워 개발된 리눅스(컴퓨터운용 프로그램) 는 이런 방식으로 발전을 거듭해 공룡기업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용 프로그램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어느 가수의 야한 비디오가 빨리 퍼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원리 때문이다.
3) 멀티 미디어
멀티 미디어는 여러 미디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결국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게임을 하면서 채팅을 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멀티미디어 현상이다.
4) 하이퍼텍스트
하이퍼란 말은 ‘확장된, 초월한’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텍스트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이건 여러분들이 인터넷에서 자주 이용하는 링크라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한 사이트를 보다과 관련된 사이트가 링크되어 있으면 그곳으로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이는 곧 연결망을 입체화시킨 것이다. 전자 국어사전의 경우도 한 낱말의 뜻풀이를 읽다가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꾹 누르면 그 낱말 풀이로 이동하게 된다.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잘 살린 방식이다.
5) 복합 가상 정체성
인간은 본래 여러 가지 역할을 통해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일관된 성격이나 정체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이버 세계는 바로 인간의 그런 정체성을 아주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러 가지 아이디로 자신의 다양한 가상 정체성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이다. 채팅에서는 나긋나긋한 정체성을 보이기도 하고 안티사이트에서는 테러리스트에 버금가는 과격한 정체성을 선보이기도 한다.
예상제시문 2
인류는 지금까지 대혁명의 물결을 두 번 경험했다. 제 1의 물결은 약 1만 년 전에 시작된 농업 혁명이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문명을 가져온 기술 혁신의 물결이다. 농업의 파도는 점차 세계로 확산되어서 어로 민족과 수렵 민족을 농경 민족으로 바꾸어 갔다. 그래도 이 농업 사회의 문명권에는 표면상의 차이는 있어도 본질적인 유사성이 있다. 즉 어느 것도 토지에 기초를 둔 생활이라는 것이다. 날이 새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생활이었다.
제 2의 물결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산업 혁명이었다. 제 1의 물결이 어민이나 수렵민을 농민으로 바꾸어 놓은 것처럼 농민을 공장 근로자로 바꾸어 놓았다. 우선 그 중심이 되는 것이 증기 기관이다. 1712년 영국의 기술자 뉴코맨에 의해서 실용성 있는 증기 기관이 발명되어 공장 생산은 급격하게 발전해 갔다. 그리고 제 1의 물결과는 달리 에너지원은 지하로부터 왔다. 이것들은 일단 소비해 버리면 재생이 불가능한 화석 연료인데 석탄, 천연 가스, 석유 등이 바로 그것이다. 공장은 이 에너지원의 산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경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점차로 한 곳으로 집결되어 도시가 점점 커져 갔다.
이 산업 중심의 새로운 생활 양식은 공업 제품 뿐만 아니라 일이나 사고 방식, 그리고 말하는 방법까지도 규격화시켜 유럽을 기점으로 세계에 퍼져 나갔다. 요람에서부터 규격화는 시작되어 공장을 모델로 해서 학교 교실도 규격화되어 갔다. 나라에 따라서 대중 교육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드러난 교육 과정 뒤에 숨겨진 교육 과정은 단순한 기계적 암기를 위주로 평생 기계적인 반복 작업에 순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져 있었다. 그리하여 이 산업주의는 사회의 여러 가지 개별 현상을 모두 모아서 마치 부품으로 기계를 조립하는 것같이 머리와 꼬리가 연결된 광범위하고 강력한 사회 체제를 만들어 갔다.
인간은 옛날부터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대신해 줄 기계를 꿈꾸어 왔다. 이런 꿈들이 산업용 로봇 등과 같은 현실적인 도구로 개발된 것은 1962년 미국에서의 일이다. 이렇듯 지금 이 사회 전체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는 진통을 겪고 있는데 이 문명이야말로 제 3의 물결인 것이다.
제 3의 물결은 제 2의 물결의 상징이었던 공장에도 큰 변혁을 가져왔다. 실리콘을 만드는 미국의 한 공장은 그 좋은 예이다. 번영을 계속하는 고도의 기술 센터라고 일컬어지며,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받는 이 공장은 공원처럼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또 어떤 공장에서는 지금까지의 공장과는 달리 탁 트인 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근로자들은 유니폼을 입지 않고 자유로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 근무 시간은 완전히 자유 시간제로서 정해진 작업량만 완수하면 어떤 형식의 근무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대량 생산을 위한 콘베어 벨트에 묶인 지난 날 공장 근로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과거의 블루 칼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변화이다. 이러한 장면에서 참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작업 내용이 새로운 산업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니다. 노동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제 2의 물결의 영향권에 있는 회사에 있어서는 공장의 기계나 건물이 자산이므로 종업원은 인건비 곧 비용일 뿐이었다. 그러나 제 3의 물결에서는 그와 반대로 기계나 건물 쪽이 경비이며 인간은 최대의 자산이 된다. 창조적 인간이야말로 무엇보다 큰 재산이 되는 것이다.
제 2의 물결에 속한 사업의 특징은 장기간에 걸쳐 똑같은 부품을 만들어 100만 단위의 동일한 규격 부품을 생산하는 점이다. 소비자는 획일적인 상품을 구매할 도리밖에 없었고, 개성 있는 물건을 구하려면 전문점에 가서 많은 돈을 주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제 3의 물결의 다종 소량 시대에 들어 오면 소비자는 규격화된 상품에 만족하지 않고 창조적 소비자가 되고 싶어한다. 소비자 의식, 생활 양식의 다양화는 다종 소량 생산을 더욱더 촉진시킨다. 이 경향은 유통 구조에도 반영되어 급속히 변해 가는 소비자의 다양화에 따라가기 위해서 세일즈의 방법에도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했다.
제 2의 물결의 도래에 따라 사람들의 작업장은 가정이나 밭에서 공장이나 사무실로 옮겨졌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생산성이 대단히 높아졌다. 그러나 지금 통근 비용의 급상승과 그와 반비례해서 원거리 통신 비용의 절감은 일을 또다시 가정으로 불러들이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렉트로닉스(전자공학)를 기반으로 자택 근무를 가능하게 한 일렉트로닉 주택이 출현하게 된다.
이 자택 근무제는 노사 쌍방에게 이점이 있다. 일하는 쪽에게는 통근시의 지독한 러시 아워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없고 회사측에는 도심의 큰 빌딩의 유지비나 통근비 지출에서 해방되는 등 경제적 이익이 커진다. 무엇보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지금 인류에게 제 3의 물결을 가져오려고 한다. 인공 위성, 컴퓨터, 레이저 등의 신기술 앞에서는 산업 시대의 기계는 벌써 그 존재가 희미해져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새 기술이라고 하면 생활로부터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 쉽지만 우리들 인간과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이 새 기술이 일을 변화시키고 인간 관계까지 변화시키려고 한다. 그러한 새로운 기술의 한 영역을 떠맡고 있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즉 정보 기술이다. 이 정보 기술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정보를 받는 것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이를테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컴퓨터의 단추와 스크린을 사용해서 관광지의 모습을 살펴보고, 호텔의 예약이나 비행기표의 예매까지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야채나 의류를 사는 것도 가능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중에서
예상 논제
첫 번째 글은 인간의 이중적 욕망의 속성을 보여주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소설에서 지킬 박사가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두 번째 글은 사이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이고 세 번째 글은 사이버 세계에 푹빠진 청소년들의 모습이거나 그로 인한 문제를 담은 글입니다. 그렇다면 사이버 세계에 익숙한 세대들이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에 대해 논하시오. 단 첫 번째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반영시키도록 하시오.
[가] 내 친구 어타슨에게
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 천성이 부지런하고 현명했으며 재능도 있고 선량했기 때문에 누구도 내 장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네. 반면 성격은 즐겁게 떠들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남 앞에선 향락적이거나 손가락질 받을 만한 태도를 하지 않으려고 했지. 사회적 지위와 출세를 생각할 때쯤 되었을 때는 완전히 겉과 속이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위선자는 아니었다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진지하고 정열적이었으니까. 그게 선이든 악이든 간에. 결국 그 두 가지 태도 가운데 어느 것이 진정한 내 모습인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셈일세. 선도 악도 모두 내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이 상반되는 성질 때문에 인간이 괴로워해야 한다면, 아예 그 두 가지를 따로 분리하여 한 인간으로 하여금 어느 때는 선을, 또 어느 때는 악의 길을 각각 걷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 두 영혼을 분리시켜 별개의 육체에 깃들게 할 수 있다면, 부정한 영혼은 올바른 영혼이 가진 포부나 후회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마음껏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이며, 또 올바른 영혼은 부정한 영혼이 저지른 일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선한 일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던 거지. 어울리지 않으며 전혀 상반되는 두 사람이 한 몸안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은 인류가 받은 저주라고 생각했다네.
강렬한 호기심은 의학과 약학 등 내가 가진 지식 전체를 필요에 따라 모습을 변하게 하는 약을 발명했다네. 그걸 누구에게 알릴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나만의 비밀이어야만 했던 걸세! 실패의 위험도 있었지. 그건 생명의 문제였어. 그러나 유혹이 나를 훨씬 강한 힘으로 사로잡았지. 나는 과감하게 약을 마셨다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뼈를 부수는 듯했지. 구토와 공포로 얼룩진 고통의 시간이 지나자 말할 수 없이 새롭고 시원한 느낌이 밀려왔다네. 더 젊어지고 가벼워지고 행복해진 느낌이었어. 영혼은 모든 의무와 속박을 벗어던진 듯 날 것같이 자유로웠고, 매우 신선한 느낌이었지. 나는 드디어 악의 화신이라 할 추하고 퇴폐적인 작은 사나이 에드워드 하이드로 모습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일세. 이제 나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고 있는 인격자로서 이름 높은 학자 헨리 지킬의 이름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마음대로 쾌락에 잠길 수 있게 된 것일세.
거울에 비친 하이드의 모습! 오, 그건 악이란 글씨가 얼굴 한복판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것이었다네. 작고 왜소한 몸집에 섬뜩한 표정이 불구의 몸과 묘하게 어울렸지. 그러나 이 추한 얼굴이 오히려 나로선 반가웠다네. 지킬의 모습과 다르면 다를수록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더 좋았고.
그것만이 아니었다네. 내 눈에는 그 얼굴이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불러온 그 불완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얼굴보다 훨씬 더 생생한 영혼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좀더 분명하고 좀더 순수하다고 생각되었다네. 하지만 키가 작고 몸집이 왜소한 것은 맘에 들지 않았어. 아마도 그건 내 천성 가운데 악한 측면이 선한 측면에 비해 억눌려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긴 악한 성격은 그동안 별로 사용할 기회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렇지만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네. 다시 지킬로 돌아가는 일이 남은 것일세. 그게 안 된다면? 그건 생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네. 다행히 하이드에서 다시 지킬로 변하는 실험도 성공했다네. 이 위대한 실험을 누구에게 알릴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무미 건조한 학문 생활에 지쳐 있던 내게 하이드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네. 그게 내가 지킬보다는 하이드로 있기를 더 좋아한 이유였지. 나는 연구실 바로 뒷집을 얻어 거기에 하이드의 거처를 마련해 놓았다네. 연구실로 통하는 문을 마련해두고. 이제 그 문 너머에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쾌락과 자유의 세계가 있는 것일세!
나는 하이드로 하여금 지킬의 집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얘기 해두었고, 지킬에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하이드는 유유히 살아갈 수 있도록 유서도 만들었다네. 내가 하이드를 통해 얻으려 한 쾌락은 유감스럽게도 여기 옮겨 쓸 수 없는 그런 것이라네. 그런데 하이드의 얼굴로 신이 나서 악행을 하고 다시 지킬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을 때, 하이드를 통해 저지른 악행에 나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네. 그는 더할 수 없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었으며 짐승보다 더 무자비했다네. 하지만 난 그게 지킬의 삶과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며, 점점 더 지킬의 삶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네.
지킬이 되었을 때의 나는 하이드가 저지른 일의 기억 때문에 수도승처럼 근신하였고 하이드가 저지른 죄의 기억으로 두려움에 떨며, 두 번 다시 하이드가 되는 약을 먹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곤 했지. 그러나 곧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 잡혔고, 하이드의 손발로 갖은 범죄를 저지르길 계속했다네. 그리고 그 책임의 추궁을 면하기 위하여 서둘러 지킬로 되돌아오곤 했지. 그걸 통제하려고 했을 때, 사태는 이미 내 손아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네. 지킬은 나날이 쇠약해지고 생기를 잃어간 반면, 하이드는 청춘의 건강이 넘쳐 흘렀고 키와 몸집이 부쩍 커지기까지 했지.
나는 적잖은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네. 한동안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고 지냈지. 그러나 약이 떨어진 마약 환자처럼 다시금 하이드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허덕이다가 끝내 다시 약을 마시곤 했다네. 반대로 다시 지킬이 되기 위해선 두 배, 세 배로 약을 늘려야 했지. 하이드의 모습을 벗어나기가 점점 어렵게 되고 있음을 깨달았지. 본래 있던 착한 본성이 이제 악한 본성으로 흡수되어버린 느낌이었다네.
나의 두 천성은 단지 기억만을 공유하고 있었다네. 선악의 혼합체인 지킬은 때로는 과민한 근심에 싸여, 때로는 탐욕스럽게 입맛을 다시며 하이드의 쾌락과 모험을 계획하고 함께 나누었지. 그런데 하이드는 지킬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네, 그는 지킬을 산적들이 쫓기다가 몸을 감추는 동굴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지. 지킬은 하이드를 자기 일부로 생각했지만, 하이드는 지킬을 숨어야 할 때 그 몸을 빌릴 뿐인 타인으로 생각했다네. (중략)
이제 약 기운이 다 떨어져 다시 하이드로 되면 그는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네. 하이드는 자기에게 닥친 최후 순간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건 오직 하느님만이 아실 일이지. 나는 마지막 약 기운을 빌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려 하네. 불행했던 신사 헨리 지킬의 삶은 이 유서를 봉함과 동시에 끝나게 될 것이라네. 안녕. - 스티븐슨 지음/이진경 옮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나] 정체성은 특정 집단이나 대상을 규정할 때 적용되지만. 원래 의미는 한 개인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구분시킬 수 있는 물리적 ․사회적 ․심리적 모습을 지칭한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서는 엄격하고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지만 가정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아빠의 역할을 하고. 또 사회 봉사 활동을 할 때에는 아주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역할을 한다면. 이 사람의 정체성은 각 상황에서 보이는 역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다. 사회적 역할이나 위치는 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그 사람을 안정적으로 나타내는 심리적 세계는 따로 있다. 한 개인의 속성을 사회적 역할이나 위치를 넘어 개인의 주관적인 심리적 경험으로 나타내는 것이 개인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특정 개인을 각기 다른 환경이나 다른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비교적 고정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 개인의 심리적 정체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과 자신을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서. 현실 세계에 비해, 사이버 공간은 자신의 모습이나 역할을 무한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느낀다. 사이버 공간상에서 개인은 전혀 다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상상 세계의 구성원이 되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다양한 일을 한다. 이런 경우 자신의 실제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들도 사이버 공간상에서 그를 다른 정체성으로 인식한다면. 실제 그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특히 현실 공간의 모습과 사이버 공간의 모습이 너무 다르거나, 현실 공간에서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을 사이버 공간에서 새롭게 만들었을 때, 그 사람의 정체성이 어느 공간에 있는가라는 의문이 충분히 가능하다. 개인을 나타내는 일관된 심리적 속성을 그 개인의 정체성이라 할 때, 현실의 모습이 그 사람의 정체성인지, 아니면 사이버 공간에서 만들어진 모습이 그 사람의 정체성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사이버 공간이 우리의 생활 공간으로 등장함에 따라 나타난 새로운 인간 심리의 문제이다. - 황상민의 ‘사이버공간에 또다른 내가 있다(2000, 김영사)’의 일부
[다] 모두 매체가 그렇듯이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사뭇 달라진다. N세대들은 온라인 게임을 두루 즐기지만 적절히 즐기는 사람도 있고 푹 빠져 즐기는 사람도 있다. 언제가 온라인 게임의 하나인 스타크래프트 대회에서 우승한 한 고등학생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에 더 만족한다며 자신을 ‘테란족’이라고 부른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물론 그는 송파구에 있는 집 근처의 한 PC방에서 매일 3,4시간씩 테란으로 살아가고 ‘프로게이머’로 평생을 살 각오지만 오프라인 생활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친구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이에 대비되는 보고도 있다. 고등학교 3학년생인 박모군은 게임에 완전히 빠져 버려 학교까지 두 달이나 빠지는 상태에 이르렀고 부모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여 그를 병원에 데려갔다. 그 학생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게임에 빠져 있는 것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담당 의사는 ‘방해받지 않고 비현실 세계에 계속 머물러 있기 위한 구실로 보인다’는 이상징후로 진단을 내리고 말았다. 의사와 부모는 현실의 모습을 통해서 그를 바라보았고 그런 그들에게 박모군의 행동은 비현실 세계로 탈출하려는 도망자로 보여질 뿐이었다.
유의사항
1. 되도록 여러 사람의 여러 속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이런 저런 속성이나 다양한 속성 차원에서 접근할 것.
2. 글의 길이는 1,800자 내외(띄어쓰기 포함, ±100자 허용)로 할 것
▶ 예시 개요
[관점 1 : 긍정성]
․ 주제문 :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주목한다면 사이버에서의 생활양식과 현실 속에서의 생활양식의 조화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전략적 인간형이 필요하다.
․ 서론 :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주목한다면 사이버에서의 생활양식과 현실 속에서의 생활양식의 조화로운 방향 추구
․ 본론
1.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도구로서의 인터넷
2. 인간의 복합적 성향과 정체성
3. 현실 문제 해결체로서의 사이버
4. 대책 : 현실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인간형 필요
․ 결론 :사이버 세계와의 관계설정의 진정한 의미
▶ 출제의도
요즘 n세대들에게 사이버에서의 생활은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제시문 ‘다’’의 경우는 특이하거나 극단적인 예일수만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모두가 이런 식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단지 가상세계냐 현실세계냐라든가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빠질 필요가 없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한 쪽 세계에서만 살 수 없으므로 사이버식 삶과 현실 속에서의 삶을 어떤식으로 관계를 맺어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 속에서의 나의 모습보다 사이버에서의 부정적인 나의 모습을 더 강조하여 윤리적 차원에서의 상호작용을 강조해주는 관점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사이버의 여러 가지 속성상 아무리 착한 지킬 박사라 하더라도 하이드씨로 변하거나 변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이버 세상은 감시와 제어의 대상이 된다. 이와 반대로 현실 속의 나와 사이버 속의 나를 다양성 측면에서 바라보고 또한 사이버에서의 다양한 변신을 주로 긍정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이드씨와 같은 변신은 일부일 뿐이고 그밖의 다양한 변신에 주목한다면 오히려 현실 속에서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는 쪽을 부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제시문 분석
첫 번째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스티븐슨이 1886년에 썼다.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두 대립적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주제지만 한 인간의 정체성 변화가 심한 사이버 세계의 문제에 시사해 주는 바가 많다. 아무리 착한 행동만 하는 사람이라도 나쁜 생각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쁜 생각을 제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이 세상이 이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과 실천의 괴리를 떠나서라도 인간의 행동이 늘 일사분란하게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킬 박사가 만든 변신의 약이 황당한 환타지 속에서의 약만은 아니다. 술이라든가 마약, 아니면 인간을 훼까닥 돌게 하는 황금일 수도 있다. 사이버 세계를 열어주는 컴퓨터와 인터넷, 아니면 유혹의 게임 프로그램일 수도 있다.
지킬 박사는 자신의 또다른 모습인 하이드를 억압하는 것이 싫어 아예 분리하여 해방시켰다. 선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또다른 모습을 억압하며 사는 삶에 대한 회의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도 은연중에 우리의 또다른 모습을 억압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꼭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공부나 학교 부모 등 주변의 여러 요인 때문에 그런 욕망을 억누르며 사는 것이다. 나쁜 행동이야 억누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아기자기한 삶의 욕망까지 억누른다면 더 큰 문제를 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욕망을 맘껏 푸는 것이 좋은가. 글쎄. 그 욕망이 소중하다면 또 다른 욕망도 소중할 수 있지도 않겠는가.
두 번째 제시문은 사이버와 현실 속에서의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정체성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정체성을 개인을 나타내는 일관된 심리적 속성으로 보고 그러한 정체성이 사이버 세계에서는 현실세계와 사뭇 다르게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이른바 가상현실 속에서의 정체성이 현실 속에서의 정체성보다 더 무게있는 비중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현실 속에서 뚜렷한 직업이나 목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 어른들보다 아직 뚜렷한 역할 설정이 안 되어 있는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정체성은 더 중요하게 다가올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렇게 보면 현실 속에서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사이버 정체성이 혼란이 온다는 논조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 속에서의 역할 규정에 관계없이 사이버 세계의 속성은 분명히 인간의 다양한 욕망의 정체성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고 실제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나머지 세 번째 글은 사이버 정체성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부정적 예로 든 학생의 경우, 학교를 안가는 것만으로 비정상적인 아이처럼 보는 부모와 의사의 관점이 옳은 것인가 반문해 볼 수도 있지만 구체적 자료가 없어 생략할 수밖에 없다.
▶ 문제 해결
두 번째 관점대로라면 누군가가 사이버에서 어떤 짓을 하건 현실 세계의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사이버는 사이버 나름의 세계가 있는 것이고 그곳에서 맘껏 자신의 정체성을 펼칠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표준어를 쓰는 사람도 사이버세계에서는 표준어가 아닌 통신언어 즐겨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내성적이고 수줍어 하는 성향의 사람도 사이버에서는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욕구불만이나 여러 문제도 사이버 세계에서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실 세계의 삶도 윤택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식의 관점은 게임 중독 같은 부정적 현상이라는 반론에 부딪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중독증은 ‘다’에서처럼 사이버 정체성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은 원래 다중성격이나 복합적 존재임을 부각시키면 된다. 워낙 사람 관계맺는 방식이 다양하다 보니 인간은 다중성격에 의한 복합적 정체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런 다양한 관계 맺기가 어느 쪽의 편중된 정체성을 옹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이버 세계에 중독된 사람은 그것이 사이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 문제가 있어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 관점이라면 우리는 한 사람의 다양한 성격과 취향을 강조하되 일관된 행위 양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에서 다양한 글을 쓰는 것은 좋지만 현실과의 연계성도 중요하므로 현실에서의 표준어를 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사이버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속성은 하이드씨를 만드는 약이 될 가능성이 많음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현실 세계와의 조화나 도움이 필요없는 절대적인 사이버 세계란 있을 수 없으므로 인간의 삶은 늘 현실 세계가 바탕이 돼야 함을 강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선적인 이중적 측면을 강조하여 논증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