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헌집 제9권 / 묘지명(墓誌銘)
통정대부 훈융진병마 첨절제사 옥산 장공 묘지명 병서(通政大夫訓戎鎭兵馬僉節制使玉山張公墓誌銘 並序)
금상〔철종〕의 신유년(1861, 철종12) 3월 10일에 절제사(節制使) 옥산 장공(玉山張公)이 병으로 집에서 죽으니, 그의 아들 유량(有良)이 나에게 장례를 치렀음을 알려주고 묘지명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였다. 나는 공과 이웃해 살아 공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또 선친과도 교분이 있었으니 감히 사양할 수 있겠는가.
공의 휘는 두빈(斗斌)이고 자는 유헌(惟憲)이다. 시조는 휘가 금용(金用)이니 고려 시대에 상장군이었다. 11대를 지나 휘 안세(安世)는 부윤(府尹)을 지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그로부터 6대 뒤에 죽정(竹亭) 선생 휘 잠(潛)은 조선조 중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조정암(趙靜庵)을 좇아 배웠으며 이회재(李晦齋)와 잘 지내 사류(士類)들에게 추중을 받았는데, 현암서원(賢巖書院)에 제향 되었으니 이분이 공의 10대조가 된다.
증조부의 휘는 태일(台一)로 승지(承旨)에 증직되었으며, 조부의 휘는 성한(成漢)으로 부사(府使)를 지냈으며 병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아버지의 휘는 언극(彦極)으로 진영장(鎭營將)을 지냈으며 80세까지 장수한 덕택으로 동지중추부사의 벼슬을 받았는데, 이분으로 인하여 3대의 벼슬이 추증되었다.
첫 번째 어머니는 함양 박씨(咸陽朴氏)로 수경(守慶)의 따님이고, 두 번째 어머니는 여산 송씨(礪山宋氏)로 두주(斗柱)의 따님이다. 공의 생부는 통덕랑(通德郞) 휘 언국(彦國)이니, 곧 동지중추부사공의 형이다. 생모는 공인(恭人) 선산 김씨(善山金氏)로 하건(廈健)의 따님이다.
공을 건릉(健陵 정조의 능호) 기유년(1789, 정조 13)에 낳았다. 겨우 7세에 생부의 상을 당하였는데, 슬퍼하여 몸이 여윔〔哀毁〕이 마치 성인(成人)과 같았다. 성장하여서는 또한 재주가 있어서 비록 문사(文詞)를 일찍 성취하였으나 무관이 바로 세업(世業)이었기에, 마침내 붓을 던지고 무과 시험을 보았으나 여러 번 낙방하였다.
이 때 공은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기의 도리를 극진히 하였는데, 동지중추부사공이 알아차리고 말하기를 “만일 효성스럽다면 마땅히 보응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더니, 과연 순조 갑오년(1834, 순조34)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였다.
부모님의 봉양을 위하여 황해도(黃海道) 중군(中軍)과 전라도(全羅道) 중군(中軍), 그리고 장기 현감(長鬐縣監)과 통우후(統虞侯)를 지냈는데, 모두 치적의 명성이 있었다. 세 임금을 차례로 섬김에 은총이 더욱 융성하였다. 이미 연로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거처함에 임금께서 특별히 훈융진병마 첨절제사(訓戎鎭兵馬僉節制使)에 임명하시자, 공이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는 한 곡을 노래하였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신 이유로 조정에 가서 임금에게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돌아왔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병이 들어 죽었으니 향년 73세였다. 인동부 북쪽 옥계동(玉溪洞) 뒤 간좌(艮坐) 언덕에 장례를 지냈다. 공은 질박하면서도 곧았고 자애롭고도 믿음직스러웠으며, 강직하고도 반듯하고 효성스럽고도 우애로웠다.
여든의 어버이를 봉양함에 맛있는 음식과 살진 고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형과 조카들을 대함에 너와 나의 구분이 없었으며, 이것을 인척과 빈붕(賓朋)들에게 적용함에 반드시 정성스럽고 흡족함을 다하였다. 오직 의리에 맞지 않으면 준엄하게 물리쳐 용납하지 않았던 것은 본성이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창녕 조씨(昌寧曺氏) 윤탁(胤鐸)의 따님으로, 신해년(1791, 정조15)에 태어나 을해년(1815, 순조15)에 죽었다. 묘소는 인동부 서쪽 양촌(楊村) 뒤 자좌(子坐)에 있다. 외아들을 두었는데, 이름이 유량(有良)으로 지금 부장(部將) 벼슬을 하고 있다.
둘째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순천 김씨(順天金氏) 종권(宗權)의 따님으로 정사년(1797, 정조21)에 태어나 기미년(1859, 철종10)에 죽었다. 묘소는 인동부 서쪽 한천곡(寒泉谷) 묘좌(卯坐)에 있다. 외아들을 두었는데, 이름이 유룡(有龍)이다.
부장(部將) 유량은 3남 2녀를 두었으니 장남은 주익(周翼)으로 지금 무과에 급제하였고, 차남은 승택(升澤)이며 삼남은 규택(奎澤)이고, 두 딸은 정세용(鄭世容)과 윤택규(尹宅逵)에게 각각 시집갔다. 유룡(有龍)은 두 아들을 두었으니 장남은 우익(宇翼)이고 차남은 어리다.
명은 다음과 같다.
효도는 복을 정하고 / 孝可定
치적은 최고였네 / 治可最
하늘이 보답하여 / 天以報
후손을 창대하게 하리 / 俾昌大
<끝>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 송희준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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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通政大夫訓戎鎭兵馬僉節制使玉山張公墓誌銘 並序。
當宁辛酉三月初十日。節制使玉山張公。病卒于私第。其孤有良。以葬聞。責余銘。余於公隣。而知公審。且有先契敢辭諸。公諱斗斌。字惟憲。初祖諱金用。麗上將軍。歷十一世。有諱安世。官府尹。謚忠貞。六傳至竹亭先生諱潛。我中廟朝司馬。從趙靜庵學。與李晦齋善。爲士類重。享賢巖院。是於公爲十世祖也。曾祖諱台一。贈承旨。祖諱成漢。官府使贈兵參。考諱彦極。官營將。以大耋授同樞。追贈三世。先娶咸陽朴氏。守慶女。繼娶礪山宋氏。斗柱女。生考通德郞諱彦國。卽同樞公兄也。妣恭人善山金氏。廈健女。生公 健陵己酉。甫七歲。丁生考憂。能哀毁如成人。長且才。文詞雖夙就。弓釰乃世業也。遂投筆。屢屈兵省。時公處人所難言。惟盡己之道。同樞公感悟曰。若孝宜有報。果登純廟甲午科。爲養爲黃海,全羅中軍,長鬐縣監,統虞侯。皆有治聲。歷事三朝。恩渥彌隆。旣告老居家。而特除訓戎僉使。公唱感君恩一曲。以母夫人在堂。肅謝而還。仍感疾不淑 。享年七十三。葬府北玉溪洞後負艮原。公質直而子諒。剛方而孝友。奉八耋親。不乏甘肥。處兄若姪。無物我。推諸族姻賓朋 。必致款洽。惟非其義。則峻斥不能容。性然也。配淑夫人昌寧曺氏。胤鐸女。生辛亥。卒乙亥。墓府西楊村後子坐。生一男有良。今部將。繼配淑夫人順天金氏。宗權女。生丁巳。卒己未。墓府西寒泉谷卯坐。生一男有龍。部將男三女二。長周翼。今武科。次升澤,奎澤。女鄭世容,尹宅逵。有龍男二。宇翼。餘幼。銘曰。
孝可定。治可最。天以報。俾昌大。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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