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장소 :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관람일시 11/25일 문화가 있는 날 (매주 마지막 수요일, 관람료 무료)
아라리오 갤러리에 들어가기 전에 (아라리오 조각공원)
천안은 에술계에서 유명한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제 군대 후임이 얘기를 해주더군요.
바로 아라리오 갤러리를 들어가기전에 아라리로 조각공원때문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라리오 갤러리에 들어가기전 신세계 백화점 앞에는 조각광장이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 광장은 아라리오 갤러리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외부 전시물에 대해서는 저의 별다른 감상후기 같은건 없습니다.
너무 자주봐서 큰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천안시민의 관점에서 동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서술하였습니다.
아르망의 [수백만 마일] 이라는 작품입니다. 999개 차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광장에 오는 분들께 가장 눈에 들어오는 조각품입니다. 저는 천안에 오래 살아서 어릴때는 이게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 미술책에 이걸 발견하고 사실 그 광장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차축이라는 개념을 여러개 쌓음으로써 탑이라는 차축과 멀리있는 개념을 연상하게 함으로써 새로움을 주고 그 스케일로 큰 인상을 주기 위한 작품이라고 생각 합니다.
저는 이 작품에 대해서 이름과 작가를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수백만 마일과 더불어 이 작품이 천안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다른도시에서 천안을 시외버스를 통해서 올때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으로 이도시에 대해서 강렬한 첫 인상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유는 이 작품의 위치로 시외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올때 그 입구에 이 작품이 있어서 시외버스에서 막 깨서 터미널을 구경할때 여행객을 반겨주기 좋은 위치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님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터미널로 만들자는 의지가 담겨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라리오 조각공원에서 약속장소로 많이 쓰이는 빨간 가방상이 있습니다.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일본 시부야의 하치코상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라리오갤러리에 들어가기전에(건물 외관)
이 건물은 내용물뿐만 아니라 외관도 특별합니다. 특히 이곳에는 에슐리가 있어서 천안시민분들이 외식장소로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아라리오 갤러리에 오면 가장 눈에 띄이는 것은 저 인체 해부상같은 동상입니다.
천안사시는 분들중에서는 아라리오갤러리 한번도 안 가보셨어도 저 동상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마치 아라리오 갤러리의 유튜브 썸네일과 같은 역할은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라리오 갤러리를 둘러보기 전까지는 저 동상을 플라스틱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가서 설명을 읽으니깐 브론즈라고 합니다. 사실 그게 가장 놀라웠습니다.
갤러리의 전경입니다. 제가 어렸을때 이곳에 방문 했을때는 저 높은곳에 벤치가 있고 사람이 있는것을 보고 저사람 되게 아슬아슬한 곳에 있다. 위험해 보인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치웠지만 예전에는 이 곳에 사다리차타는 사람 동상이 있어서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동상도 있었어서 상당히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동상이 사라졌다는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아라리오 갤러리 들어가기 전에 한 컷 보통 벤치 하면 연상되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붙어있습니다. 아라리오 갤러리의 간판과 같은곳에 위치한 벤치는 마치 중력을 거스른듯한 느낌을 주며 기존의 뇌에 각인된 패턴과 다른 신비함으로 아라리오 갤러리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설명서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건물 내부 (3F)
아라리오 갤러리 감상은 3층부터 시작입니다.
아라리오 갤러리 3층은 충남의 동양화가 특별전입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입니다.
작품은 쌀포대에 그려져 있으며 제가 직점 옆에서 확인해보니 쌀포대 느낌을 준것이 아니라 진짜 쌀포대였습니다. 아마 정부수매양곡이라는 글씨도 원래 적혀있던 글귀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정부 수매양곡과 새마을 운동 모자를 쓴 아저씨는 처음보면 미스매치입니다. 뜬금없이 왠 정부수매양곡이지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저 글귀와 재질 아저씨는 다 연관이 되어있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글귀와 사람의 배치가 마치 88년도 영화 포스터의 프레임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처음의 이질감과 후의 편안함, 구도의 대칭성 개념의 신비함과 연관성을 모두 담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매겼습니다.
건물 내부(4F)
4층의 압권은 김웅현 작가의 [Hell Bovine and Pony] 입니다.
일단 계단 올라오면서 바로 있으며 저 현대미술의 특징중 하나인 두 서로다른 개념을 조합해 이질감을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형태이면서 저 프로젝터로 나오는 마이 리틀 포니 이후에 나오는 북한에서 유니콘 찾는 다큐는 첫 인상부터 이질감을 만들어 냅니다.
패턴찾기 기준으로 이 작품은 마치 꿀꿀이죽같은 잡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상이 안되는 개념을 섞어논 많은 연산자원을 소모시키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포기하였습니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였다. 전시관의 배치 자체가 관람객에게 이 작품으로 충격을 주는 배치였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작품의 설명을 읽어보니 복제인간을 경고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제 관점으로 이 작품을 얘기하자면 사람같지만 사람이 아닌 대상에서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현상과 멀리서 봤을때는 같은 패턴의 반복을 통한 익숙함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작품은 입체적입니다. 멀리서 보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왜나하면 패턴의 반복이니깐 사람의 뇌는 패턴을 찾는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끌려서 오면 함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작가는 불쾌한 골짜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눈을 보면 양쪽이 짝짝이라서 구도도 맞지 않습니다. 눈코입 다 있는것 같은데 무섭습니다. 저는 경고니깐 전시장에 있으면 보겠는데 집에 두라고 하면 안두겠습니다.
해골은 죽음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공포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눈을 사로잡는 강력한 유튜브 썸네일이 있습니다. 바로 튀어나온 눈입니다.
뇌에세는 해골이라는 개념에는 눈이 없으며 중력이라는 개념에서 공중부양은 강력한 개념파괴의 예시입니다.
제가 줄을 매달았나 볼려고 관찰했는데 압축공기와 베르누이 효과를 이용해 공중부양을 시킨 형태였습니다. 눈 하나는 공중에서 운동상태가 안정되어 있었지만 다른 눈은 회전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예술가들은 작품에 과학을 접목시켰다면서 좋아라 했겠지만 공학도가 봤을때는 그냥 유지비가 많이드는 돈낭비정도로 보였습니다. 첨단 과학같은것을 예술에 접목시켜보고 싶었다면 MEMS를 통해 생산이 가능한 회절격자를 해골에 입히는것도 나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론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 감상한 저의 감상은 이데아의 미스매칭이라고 정의내렸습니다.
참고로 저는 예술에 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하며 제가 교양수준에서 아는 뇌과학이나 심리학의 관점으로
이번 아라리오 갤러리의 예술품에 관해서 감상을 하였음을 알림니다.
해골, 당나귀, 복제인간 등등 아라리오 갤러리의 작품들은 사물의 본질인 이데아를 비틀었습니다.
이데아란 무언가에 대한 본질에 관한 것이였는데 저는 이것에 대해서 뇌가 학습한 패턴이라고 생각합니다.
뇌는 수많은 행렬연산을 진행하는 뉴런의 네트워크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어떠한 개념에 대한 패턴을 쉽게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도 이러한 뇌의 구조를 본딴 인공신경망을 통해 40만장 이상의 사진을 학습시켜 개념을 이해시키는 딥러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플라톤의 시각에서 인공지능을 바라본다면 이데아를 컴퓨터에 주입한다고 서술할수 있습니다.
그렇게 뇌는 패턴을 찾고 패턴을 발견해내는데 전문화 되어 있으며 우리의 뇌는 새로운 패턴을 발견한 경우나 전혀 다른 패턴을 가지고 있는 두 개념을 한 시야에 두었을때 새로움을 느낍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Hell Bovine and Pony]와 같이 서로 미스매치된 작품이 그러한 감정을 유발시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새로움을 학습하는 즐거움과 새로운 개념에 대해 학습하는것에 대한 피로감은 뇌의 연산가용자원의 차이에서 비롯되며 이는 새로운 분야를 만나러 갈때 알고 갔을 때는 연산량이 적어 새로움을 느끼지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갈 경우에는 이해를 위해 사고해야하는 연산량이 많아 피곤하거나 포기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마치 제가 김웅현작가의 작품이해를 포기한것 과 같습니다. 그리고 작품설명에는 이 작가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이 뜻은 이 작품은 여러분의 연산 자원을 많이 잡아먹는 작품입니다. 라고 적힌것과 같습니다. 작가는 이러한 미스매칭으로 인해 오랜시간의 이해가 필요한 점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인 북한의 현실과 어두운 과거를 관객에세 각인하고자 작품을 설계하였습니다. 단지 저는 북한이 어두운건 다 알고 그 작가의 어두운 면을 보고 싶지 않아서 (이해해봤자 보상이 크지 않아서) 포기했고 이점을 짚고 넘어갔다는 점에서 작품의 겉만 핱고 간것이 맞지만 이 역시 제대로 감상한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움이라는 감정은 처음 접하는 새로운 패턴에서 비롯됩니다. 이 뜻은 여러번을 볼 경우 혹은 같은 패턴의 작품이 많이 나올경우 뇌는 이 패턴에 학습이 되어 더이상의 새로움이 없습니다.
제가 본것이 색다름을 주기위한 작품만 모은 곳인지 아니면 현대미술이 원래 그런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색다름을 주기위해서 게속 비틀다 보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대중의 시각에서 벗어나게 되고 아름다움을 주는 것이 목적인 예술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예술은 배운사람은 이해하고 즐겁게 감상할수 있겠지만 그것이 대중의 연산가용자원을 너무 소모시키는 작품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