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불멸, 고통 없는 삶을 거부한다.>
▲ <캐리비안의 해적들 - 블랙펄의 저주>
해적선 블랙펄의 해적들이 받아 안은 ‘보물이 내린 저주’는 이런 것이었다. 영원불멸의 삶. 고통의 느낌이 없는 삶. 영원불멸에다가 고통의 느낌까지 없는 삶? 그것, 혹시 진시황이 꿈꾸던 상태가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그런 삶을 꿈꾼 적이 있지 않을까? 그것, 참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복에 겨웠겠군, 하고 예측하지 말라. 블랙펄에 승선해있는 해적들은 좌절하고 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으며, (고통의 느낌뿐 아니라) 몸이 감지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당장 죽고 싶어하는 자살충동자들은 아니며 고통의 느낌을 즐기는 매저키스트들도 아니다. 그저 그들은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고 싶으며, 고통의 느낌까지 감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캡틴 바르보사(제프리 러쉬)는 영원불멸, 무고통의 삶에서 벗어나면 제일 먼저 사과를 먹겠다고 말한다. 무지 소박한 꿈을 지닌 해적.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들―블랙펄의 저주>는 삶의 유한성,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의 철학적 의미를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사상을 설파하려고 하지 않으며, 짐짓 예술을 하려고 폼 잡지도 않는다. 색이 분명한 스크린 속에 유한한 사람들과 무한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을 경쾌하게 엮고 있을 뿐이다.
저주받은 해적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항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한한 삶을 되찾기 위해 항해한다. 고통을 포함해 생의 모든 감각을 앗아간 저주를 풀기 위해 항해한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에 엄청난 희생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 목걸이와 약간의 핏방울이면 O.K.
영화 중반에 이르면 스크린 속의 해적들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상태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뿌듯하다. 적어도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들―블랙펄의 저주>를 보는 동안만큼은 다른 영화를 관람할 때와는 달리, 스크린 속 주인공들로부터 ‘처절한’ 부러움의 대상이 된 나 자신, 보통사람의 ‘현실’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새로이 발견하는 영화 관람의 기쁨.
이 영화에서는 새로운 캐릭터를 발견하는 기쁨 또한 크다. 캐릭터의 스테레오 타입(전형)에서 조금씩은 어긋나있는 듯한 인물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해적선장이면서도 후크보다는 피터 팬 쪽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이는 잭 스패로우(조니 뎁), 코르셋을 입고 숨쉴 때보다 항해술을 활용할 때 더 능수능란한 아가씨 엘리자베스 스완(카리아 나이틀리), 백마 탄 기사의 용감성만큼이나 얌전함을 갖춘 청년 윌 터너(올란도 블룸).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보게 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인식을 방해하는 것은 어쩌면, 스테레오 타입에 푹 절어있는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리라. 해적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 사랑은 이러이러해야 한다 등등…. 그러나, 현실의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언제까지나 스테레오타입들만이 살아 움직이는 공간(다시 말하면, 비현실의 장소)은 없는 것이다.
이 영화는 스테레오타입으로부터 조금씩 비껴나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인물, 그리고 유한한 인생사의 현실을 보여준다. 너무 거창하게 이 영화를 분석하고 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저, 이 글은 <캐리비안의 해적들―블랙펄의 저주>가 지닌 다종다기한 맛의 갈래 중 하나만을 뽑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의미는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의 영화는 하나의 분석과 평가로만 귀결되지 않으므로.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
(감독 고어 버빈스키/주연 조니 뎁,올란도 블룸)
부모와 아이가 함께 극장가 나들이에 나선다면 가장 먼저 추천할 만한 가족영화다. 모험과 스릴,그리고 러브로망을 결합한 블록버스터 해적이야기이다. 무대는 18세기 카리브 해. 난파된 해적선에서 살아남은 해적의 아들 윌 터너가 대장장이로 자라나 총독의 딸을 사랑하게 되고 해적들에게 납치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조니 뎁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조니 뎁은 낙관적이면서도 장난기 어린 캐릭터로 잭 스패로우라는 ‘멋진 로맨티스트 해적’을 창조해냈다. 대장장이 윌 터너는 ‘반지의 제왕’에서 꽃미남 궁사로 출연했던 올란도 블룸이 맡았다. 저주를 받아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 되면 해골로 변하는 해적들의 ‘흉칙한 누드’는 이 영화의 색다른 볼거리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
해골이 그려져 있고 사람 뼈가 X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깃발을 본 적이 있는가. 해적의 상징기호는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이 드러난 것이며 죽음을 암시한다. 옛날 사람들에게 해적은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그들은 사람을 납치, 살인하고 보물을 강탈하는 무법자들이었다. 어떤 국가권력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었으며 바다를 무대로 신출귀몰하며 기존체제를 교란하였다.
해적은 까마득한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도 있었다. 로마의 사학자 폴리비우스가 해적(pirate)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했을 때가 기원전 140년이었다. 각 국가의 해양경계선이 뚜렷하고 해군이나 해병대가 철통같이 바다를 지키는 지금도 있다. 오늘날의 국제법에도 사적 목적을 위해 약탈과 폭행을 자행하며 항해를 위험하게 하는 집단을 해적이라고 칭하고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는 새롭게 창조된 해적들의 이야기다. 보물과 약탈, 납치 등이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해적들의 이야기는 특히 스티븐슨의 ‘보물섬’ 이후 수많은 소설, 만화, 영화 속에서 반복되었다. 해적들은 황금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대리배설한다.
우리는 그런 작품들을 통해 해적들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애꾸눈이거나, 한쪽팔이 갈고리로 되어 있고 혹은 상어에게 한쪽 다리를 먹혀 외다리로 목발을 짚고 다닌다.
그러나 조니 뎁이 연기한 ‘캐리비안의 해적’ 속의 캡틴 잭 스패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눈에 힘주고 걸걸한 목소리로 호령하지 않는다. 악한이라고 볼 수도 없다. 게으른 사기꾼이지만 오히려 낭만적이며 정의롭기까지 하다. 또 유머 넘치고 삶에 대한 낙관적 태도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조니 뎁이 창조한 새로운 캐릭터를 보는 것이다. 마치 요네하라 히데유키의 만화 ‘풀 어헤드 코코’에 등장하는 유쾌한 해적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 영화는 전체가 픽션이지만 해적들의 황금기인 172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그때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이후 유럽 대륙과 해상교역이 빈번해지면서 이름 없는 수많은 섬들로 둘러 쌓인 카리브해 지역을 무대로 해적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에 등장하는 갈등 요소는 크게 해적과 영국 해군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각각의 집단 내에도 갈등이 겹쳐지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해적 내의 갈등은 해적선 블랙펄의 선장이었던 잭 스패로(조니 뎁 분)와 그를 몰아내고 현재 두목이 된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분) 사이에 있고, 영국 해군 내의 갈등은 총독의 딸 엘리자베스(카이라 나이틀리 분)를 둘러싸고 그녀에게 청혼한 제독과 그녀를 사랑하는 평민 신분의 대장장이 윌 터너(올란도 블룸 분) 사이에서 발생한다.
해적 내의 갈등은 잃어버린 해적선을 되찾으려는 세력다툼이고, 여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사랑 때문이다. 물론 외형적 내러티브는 전자에 의존해서 펼쳐지지만 내면적으로 관객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후자이다. 이야기는 이런 블록버스터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권선징악, 악은 멸망하고 선이 승리한다. 사랑도 역시 권력자보다는 도전하는 평민이 쟁취한다. 진정한 사랑이 승리하는 것으로 항상 결론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볼만한 장면은 보물을 훔친 뒤 저주를 받고 죽지 못하는 해적들이 달빛을 받으면 해골로 변하는 모습이다. 그런 장면만으로도 블록버스터의 쾌감을 충분히 안겨준다.
<캐리비안의 해적>
(브에나비스타배급, 고어 버빈스키 감독)
자유의 바다 카리브해 배경
해적·황금…테마파크 같은 영화
▲저주 받은 황금의 더 큰 저주
해적과 황금은 절묘한 앙상블. 니모를 찾아서 와 함께 올 여름 미국 극장가를 휩쓸었던 캐리비안의 해적 이 한국의 추석을 찾아온다. 해골 깃발을 펄럭이며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해적은 상선에겐 공포의 대상이고 해군에겐 소탕의 대상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는다는 점에서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다 거대한 황금이 함께 하면 재미는 배가 된다.
과거 해적이었던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는 카리브 해에서 한적한 삶을 살고 있다. 영화가 이를 가만히 놔두면 재미가 없는 법. 사악한 해적 캡틴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분)에 의해 위기를 맞는다. 해적선 블랙펄을 훔친 후 한 여자를 납치한다. 문제는 그 여자는 총독의 딸 엘리자베스 스완(카이라 나이틀리 분). 그녀의 친구 오랜 친구 윌 터너(올랜도 블롬 분)는 스패로와 손을 잡고 바르보사를 찾아 나선다.
▲조니 뎁의 시원스런 액션
가위손, 슬리피 할로우 의 조니 뎁은 바다를 무대로 펼쳐지는 액션에 시원스러움을 더했다.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리고 갈고리 손을 흔드는 일반적인 해적 선장과 사뭇 다르다. 얄미워 보이기까지 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성격의 잭 스패로우 선장 역을 제대로 해냈다. 후크 선장보다는 피터팬에 가까운 조니 뎁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미국판 링 의 고어 버빈스키
미국판 링 을 만들었던 버빈스키 감독은 CF 감독 출신. 테마 파크의 놀이 시설처럼 아찔하고 신나는 장면을 쉴 새 없이 선보인다.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는 한 인터뷰에서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놓아 두었다. 그는 잘 놀게 해주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감독"이라고 치켜세웠다. 브룩하이머는 실제와 똑같아 보이는 오픈 세트와 범선을 만들어 감독을 도왔다.
<블록버스터 '캐리비안의 해적'>
9월 5일 "해골의 저주 풀어라"
올여름 미국 영화시장을 후끈 달구며 흥행가도를 달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블랙펄의 저주’(감독 고어 버빈스키)가 오는 9월5일 국내에서도 개봉된다. 모처럼 등장한 해적이야기에,스케일 웅장한 액션 등으로 기대를 모아온 영화를 살짝 들여다본다.
#모험과 스릴,그리고 러브로망을 결합한 블록버스터 해적이야기
무대는 해적들의 황금기가 끝나가던 18세기 카리브해. 영국령 자메이카 포트 로열 총독인 웨더비 스완(조너선 프라이스)의 딸 엘리자베스 스완(카이라 나이틀리)은 배를 타고 가다가 실신한 채 바다에 표류하던 소년 윌 터너(올랜도 블룸)를 발견한다. 그는 윌의 목에 걸려 있던 해골 디자인이 새겨진 목걸이를 벗겨 간직한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소재인 해적들에게 내려진 저주를 암시하는 복선이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매력 넘치는 해적 캡틴 잭 스패로우(조니 뎁)에게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카리브해는 어드벤처와 미스터리로 가득한 세계다. 그는 현재 해적생활을 그만두고 한적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인생이 사악한 해적 캡틴 바르보사(제프리 러시)에 의해 위기를 맞는다. 잭의 해적선 ‘블랙펄’을 훔쳤던 바르보사는 포트 로열을 습격하여 총독의 아름다운 딸 엘리자베스 스완을 납치해갔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와 어린 시절 친구인 윌 터너는 잭과 손잡고 엘리자베스도 구하고 블랙펄 호도 되찾으려는 작전에 돌입하는데….
#매력적인 캐릭터
조니 뎁은 해적이다. 하지만 그가 맡은 해적 잭 스패로우는 자유를 사랑하는 로맨티스트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미 조니 뎁의 연기는 정평이 난 것처럼 탁월 그 자체다. 그 어느 배우보다 개성이 강한 조니 뎁은 낙관적이면서도 장난기 어린 캐릭터로 해적 잭 스패로를 창조해내며 관객의 호응을 받는다. 윌 터너 역의 올란도 블룸도 눈에 띈다. 그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꽃미남 궁사로 출연했던 그 배우. 이번 영화에선 정의롭고 정직한 평민출신으로 총독의 딸과 로맨스를 펼쳤다. 엘리자베스 스완을 연기한 카이라 나이틀리가 맡은 엘리자베스 스완도 매력적이다. 관습에 얽매기를 싫어하는 엘리자베스는 비록 18세기의 신분을 가졌지만 21세기의 사고방식을 가진 ‘용감한 여성’으로 등장했다.
#시원한 생생 액션
실제 카리브 연안에서 촬영된 ‘캐리비안의 해적’은 요즘 보기 드문 ‘생생 액션’ 영화다. 첨단 무기?컴퓨터 CG가 난무하는 스크린에서 ‘초자연산’ 액션신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복원해낸 18세기 영국의 군함과 해적선 위에서 주인공들이 펼치는 칼싸움은 통쾌함마저 안겨준다. 다양한 시각효과를 이용해 저주받은 해적들이 월광을 받으면 살아있는 해골인간으로 변하는 설정도 스크린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 중의 하나다.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
*감독
고어 버빈스키
*주연
조니 뎁-잭 스패로우
올란도 블룸-윌 터너
제프리 러쉬-바르보사
키라 나이틀리-엘리자베스 스완
잭 대븐포트-노링턴
조나단 프라이스-웨더비 스완 총독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펄의 저주]는 어떻게 보면 이번 여름 시즌 최악의 기획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일단 지난 십여년 동안 만들어진 해적 영화들 중 성공한 작품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레니 할린의 [컷스로트 아일랜드]나 로만 폴란스키의 [해적]은 배우들과 감독들의 경력을 끔찍한 오명의 진흙탕에 빠트릴 정도로 엄청난 실패작이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는 조금 나았지만 그 영화는 정식 해적 영화가 아니었고 최종 결과도 감독의 명성에 비하면 하찮았지요. 게다가 [캐리비안의 해적]의 원작은 더 기가 찹니다. 원작은 소설도 아니고 만화도 아니고 게임도 아닌,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거든요.
이 정도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수준이 바닥을 쳤다고 탄식할만하지만 정작 결과는 썩 좋았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올해 나온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 중 가장 실속있는 성과를 거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비평은 수많은 '그러나'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기대이상으로 호의적이었고 흥행 성적은 그보다 더 좋았지요.
우리가 뭘 놓친 걸까요? 그건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죠.
일단 영화의 줄거리부터. 영화는 새로 부임하는 자메이카 총독을 태운 군함이 해적들에게 격침당한 배에서 살아남은 윌 터너라는 소년을 구출하면서 시작됩니다. 8년 뒤, 유능한 대장장이로 성장한 그는 악명높은 해적 바르보사에게 납치된 총독의 딸 엘리자베스를 구출하기 위해 한물간 해적 잭 스패로우와 함께 대모험을 벌입니다.
영화를 구성하는 것들은 모두 이런 식의 해적 영화들에서 관객들이 기대할 만한 것들입니다. 요란한 칼싸움, 범선들의 해상전, 저주받은 아즈텍의 보물, 무도덕적인 안티 히어로, 모린 오하라 풍의 괄괄한 여자 주인공,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풍의 용감한 남자 주인공, 애완용 앵무새... 아무리봐도 그렇게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진부함이 이 영화의 유일한 결점인 것도 아닙니다. 일단 내용에 비해 너무 길고 늘어져요.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다루어서 종종 영화가 균형을 잃거나 산만해지고요. 각본가들이나 감독이 이를 악물고 30분 정도를 쳐냈으면 영화가 훨씬 나아졌을 겁니다.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은 여전히 흥미진진한 활극 모험담입니다. 그건 이 영화가 [컷스로트 아일랜드]나 [해적]이 놓쳤던 핵심을 어느 정도 잡고 있기 때문이죠.
그건 조합의 방식입니다. 폴란스키가 내세운 [해적]의 캐릭터들은 멋없고 더럽기만 했습니다. 레니 할린이 내세운 [컷스로트 아일랜드]의 캐릭터들은 반대로 너무 모범적이며 뻣뻣했지요. 이들은 모두 해적 영화 장르의 한쪽 측면만 이용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살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장르 공식에 따른 전통적인 캐릭터들과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인물들을 교활하게 뒤섞고 있습니다. 해적 장르에 필수적인 뻔뻔스러운 무도덕성과 결백한 기사도 정신 모두를 아우르고 있고요. 해적들의 지저분함에 질릴 때쯤이면 키라 나이틀리의 화사한 얼굴이 떠오르고 올란도 블룸의 모범적인 행동에 질릴 때쯤이면 잭 스패로우를 연기한 조니 뎁의 거창한 바로코 액션이 튀어나옵니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캐리비안의 해적]은 4관 편성의 해적 교향곡입니다. 구성에 문제가 있고 대위법도 썩 좋지는 않지만 할 건 다하고 있고 듣고 있으면 쿵짝쿵짝 신이 납니다.
영화가 이 가능성에 도달한 건 우리가 놀려댔던 놀이 기구가 원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놀이 기구를 원작으로 좋은 영화를 만드는 건 컴퓨터 게임을 원작으로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게임의 원작은 영화에 뻣뻣한 캐릭터와 공식적인 액션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놀이 기구 원작은 작가와 감독에게 거의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죠. 가끔 놀이 기구에 나오는 장면들을 영화 중간중간에 넣어주고 주제가를 붙여주면 모두가 만족합니다. 그 뒤로는 완전히 만드는 사람 맘인 거죠.
그리고 그 '만드는 사람들'은 자기 역할을 썩 잘했습니다. 각본가인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시오는 이런 구식 장르에 도가 튼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마스크 오브 조로], [슈렉], [보물성], [엘도라도] 같은 영화들을 통해 이런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 장르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을 익혀왔죠. 그 과정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썩 좋았어요. 전통적인 해적 영화의 드라마와 현대적인 이죽거림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서 영화는 충분히 현대적이면서도 옛 장르의 맛을 많이 놓치지는 않습니다. 고어 버번스키도 해적 영화의 호탕한 활극과 코미디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호러 분위기를 사이에 비벼넣는데 성공했고요.
배우들 역시 자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어요. 올란도 블룸과 키라 나이틀리는 모두 예쁘게 나오고 이런 장르 영화 주인공들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결백한 건전함을 신빙성있게 표현해냅니다. 그렇게 대단한 연기력이 필요한 캐릭터도 아니고 그들이 그런 걸 덤으로 보여주지도 않았지만 이 정도면 무난했어요.
그러나 이 영화에서 진짜로 신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모두 해적들입니다. 특히 잭 스패로우 역의 조니 뎁은 이 영화를 거의 혼자 이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예요. 뻔뻔스럽고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인데다가 은근히 게이스러운 이 닳아빠진 해적 두목은 롱 존 실버에서 출발한 해적 안티 히어로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조니 뎁에 의해 아주 신선하고 괴팍한 이미지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영화의 닳아빠진 공식이 예상외로 신선하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뎁의 요란하고 어처구니없는 연기 때문이지요. 제프리 러쉬는 전형적인 캐릭터 때문에 조금 손해를 보는 편이지만 그의 과장된 연기 역시 신납니다. 둘이 죽도 잘 맞고요.
[캐리비안의 해적]은 [The Country Bears]와 함께 디즈니의 독점이 분명한 놀이기구 영화 장르의 새 장을 연 작품입니다.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 장르에 대해 농담을 퍼붓지만 이 정도 결과만 따라준다면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재능있는' 감독과 '똑똑한' 제작자의 만남에서 나오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코카콜라나 나이키의 광고를 연출해 그 쿨한 영상으로 이름을 쌓고 헐리우드로 입성한 뒤, <마우스 헌트>,<멕시칸>그리고 <링>까지 고어 버번스키 감독이 만든 작품에는 이렇다할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다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 꼼꼼한 연출력과 익살스런 유머감각을 발휘하면서도 줄거리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이 언뜻 보일 뿐이다. 이런 들쭉날쭉한 영화를 만들던 고어 버번스키가 디즈니의 프로젝트를 통해 금세기 최고의 흥행사 제리 브룩하이머와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섣부른 판단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물 만난 고기'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을까.
'잭 스패로우(조니 뎁)'는 전설적인 해적선인 '블랙 펄호'의 선장이었다. 하지만 저주받은 아즈텍 황금 탈취 여부를 놓고 일어난 선상반란으로 인해 일등 항해사였던 '바르보사(제프리 러쉬 분)'에게 블랙펄 호를 빼앗기고 그는 해적들의 '법전'대로 무인도에 한자루의 총과 한알의 탄환과 함께 버려졌다. 이런 내력을 지닌 '잭 스패로우'는 '바르보사'가 있는 죽음의 섬으로 블랙펄 호를 되찾으러 가기 위해 '포트 로얄'로 배를 훔치러 온다. 하지만 그때 그의 필생의 라이벌 '바르보사'는 '포트 로얄'을 약탈하고 총독의 딸인 '엘리자베스 스완(키라 나이틀리)'을 납치해간다. 평민인 대장장이 신분이지만 '엘리자베스 스완'을 흠모하던 '윌 터너(올란도 블룸)'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잭 스패로우'와 더불어 영국 함대 인터셉터 호를 지휘하여 죽음의 섬으로 향한다. 과연 그들이 아즈텍 황금의 저주로 인해 죽지 않는 '바르보사' 의 무리로부터 '엘리자베스 스완'을 구출 할 수 있을까.
<캐리비안의 해적>을 이야기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시각효과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이 설립한 ILM(Industrial Light & Magic)의 기술력이 고스란히 보여진다. ILM은 특수 효과 분야에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제임스 카메론이 이끄는 디지털 도메인(Digital Domain) 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회사로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에서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ILM이 만든 해골의 이미지는 실사라고 해도 이렇듯 정교하진 못할 것이라는 착각을 준다.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카리브해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월광을 받으면 그로테스크한 해골로 변해버리는 '바르보사' 일당의 모습은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데 일조한다.
이런 특수효과의 힘과 더불어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인다. 언제나 틀에 박힌 배역을 거부하는 '조니 뎁'의 히피 선장 잭 스패로우 연기는 단연 압권이다. 스크린 밖에서도 악취가 나는 듯 더러운 모습을 한 그지만 보면 볼수록 자유분방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조니 뎁은 아주 능숙하게 연기 해낸다. 그는 그동안 해적의 전형이라고 생각했던 <보물섬>의 외다리 실버 선장이나, <피터팬>의 외팔 후크 선장과는 다른 독특한 해적을 보여준다. '바르보사'역의 제프리 러쉬는 헐리우드에서도 손꼽히는 연기파 배우이니 두말할 필요조처 없겠다. <샤이닝>에서 보여준 소름 돋는 연기만큼은 아니겠지만 포악한 해적의 무리를 이끄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배역을 그가 아니면 누가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윌 터너'를 연기한 올란도 블룸은 이미 <반지의 제왕>시리즈의 '레골라스'로 유명세를 찬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제대로 된 '사람' 연기를 보여준다. 그의 첫 작품인
<블랙호크 다운>에서 조쉬 하트넷과 이완 맥그리거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그가
<반지의 제왕>의 인기에 힘입어 주연으로 '신분상승(?)'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캐리비안의 해적>의 히로인 '엘리자베스 스완' 역의 키라 나이틀리는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제든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의 여성들에게 유행이었던 코르셋을 벗어 던지며 모험의 세계로 뛰어드는 모습은 그녀의 이력과 통하는 듯하다. 이미 스타덤에 올라 있는 <레옹>의 나탈리 포트만과 너무도 닮은 외모 때문에 <스타워즈>시리즈에서 조차 그녀를 위장한 시녀의 모습으로 나와야만 했던 키라 나이틀리는 그 이미지를 벗고 자신의 세계를 개척 중이기 때문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면 정말 디즈니 영화답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기존의 디즈니 영화가 전체관람가로 만들어진 반면 이례적으로 12세 이상 관람가로 개봉을 하게 된 차이점도 있지만 디즈니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구성과 판타지적인 내용은 여전하다. 폭발 장면이나 전투장면 마저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영화의 제목을 디즈니에 실제로 있다는 동명의 놀이기구에서 따왔기 때문은 아닐까. 월트 디즈니의 감성과 제리 브룩 하이머의 스케일에 고어 버번스키 감독의 영상이 합쳐진 이 영화가 돌아오는 추석에 한국 영화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관객들을 '훔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할 일이다.
첫댓글 너무 길어서 읽는데 한참 걸렸답니다. ^^ 설마 이걸 직접 치셨나요? 그렇담 정말 대단하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