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에 대한 나의 오랜 관심
이승하
2023. 2. 13.
『집 떠난 이들의 노래―재외동포 문학 연구』을 내고
요즈음 우리들 귓가에 자주 들려오는 말로 디아스포라Diaspora가 있다. 디아스포라의 사전적인 정의는 “유대 왕국이 패망하여 바빌로니아로 유폐幽閉된 뒤 이방인 사이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이다. 이 말이 오늘날에는 전쟁과 식민지화로 고국을 등져야 했던 난민과 그 후손들을 통칭하는 단어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특히 고국을 떠난 이민자들이 고국과 관련지어 쓴 문학작품을 통틀어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는 한반도에서 태어났으나 이국에 가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삶은 무척 고달팠으리라. 그 나라의 말을 배우고 관습을 익혀야지만 먹고살 길이 생겼을 것이다. 말뿐만 아니라 피부색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입맛도 다르니 서러운 일을 어디 한두 번만 겪었을 것인가. 집 떠나면 고생인데 이민자들은 서러워도 괴로워도 먼 이역의 하늘 아래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 그들이 시를 쓰고 소설을 썼다. 한글로 쓴 이도 있었고 그 나라의 언어로 쓴 이도 있었다. 이민 1.5세대만 해도 모국어 구사에 서툴게 되고 이민 2세대가 한글로 글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외동포가 구사한 언어가 모국어가 아닐지라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에 골몰하고 이민자로서의 애환을 다루었다면 한국문학의 변방에 위치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화를 말로만 부르짖지 말고 우리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의미에서 그들의 문학을 포용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재외동포 문학을 제대로, 본격적으로 연구하자는 취지에서 출범한 국제한인문학회에 초창기부터 몸담으면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재외동포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연유가 있다. 1999년이었다. 윤동주의 발자취를 찾아서 중국 여행을 하였다. 연길시의 한 서점에 들렀을 때 내 눈에 띈 것은 조선족 중·고교 학생들이 공부하는 조선어 교과서였다. 교과서를 보니까 조병화의 시와 정완영의 시조도 실려 있고 북한 시인 조기천의 시도 실려 있고 연변의 대표적인 시인 김성휘ㆍ김철ㆍ리상각ㆍ리욱ㆍ박화의 시도 실려 있었다. 연변 조선족 시인 석화 씨의 도움으로 나머지 교과서를 전부 구입하여 논문을 한 편 써보았다. 처음 써본 재외동포문학에 대한 논문 「연변 조선족 중·고교 교과서 수록 시 연구」를 2005년에 발표하고는 다음해에 펴낸 『한국 시문학의 빈터를 찾아서』라는 책에 실었다.
이 책을 내고 나서 중국 여행을 다시 할 기회가 있어 연길시에 갔는데 이번에도 들른 그 서점에서 발견한 교과서는 판형이 바뀌어 있었다. 권두에 칼라 화보도 싣고 판형도 키우는 등 상당히 계량돼(?) 있는 것이었다. 다시 또 석화 시인의 도움을 받아 전권을 구해 살펴보았더니 놀랍게도 북한 시인의 시는 한 편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 대신 김광섭ㆍ김현승ㆍ김춘수ㆍ허영자ㆍ정현종ㆍ안도현 등의 시가 새롭게 실려 있었다. 교과서 개편의 양상을 연구하여 「연변 조선족 중·고교 개편 교과서에 수록된 시」라는 글을 섰다. 그 이후 내 관심사는 재러시아 고려인 문학, 재일교포 문학, 재미교포 문학 등으로 확대되어 이런저런 연구를 해보게 되었다.
국제한인문학회를 비롯한 여러 학회에 관여하게 되면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혹은 자료 조사를 위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중국 연변에, 일본 동경에 다녀오기도 했다. 연변 조선족 문인들은 한글로 글을 쓰고 있어서 언어상의 갈등이 크게 없었지만 러시아어로 소설을 쓰는 박미하일이나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이회성ㆍ이양지ㆍ유미리ㆍ현월 등은 모국어를 모르는 데서 오는 갈등이 대단히 큰 작가임을 작품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한국에서 살면서 자국의 언어로 쓰거나 한글을 배워 한글로 시를 쓰는 제3세계의 시인들이 있다. 흔히 ‘다문화 외국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창작21작가회 주최 ‘다문화 외국인 시낭송회’에 몇 차례 참가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외국인들과 국내에 사는 동안 한글 실력을 키워 시를 쓰는 이들의 작품을 보고 글을 한 편 써보기도 했다.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미얀마에서 온 문인들과 세미나를 갖고 나서 짧은 글을 써보기도 했다.
재미시인들이 한글로 쓴 작품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된 것은 전적으로 경희대 김종회 교수 덕분이다. 미주문인협회에서 내고 있는 계간 『미주문학』의 소설 계간평을 쓰고 있던 김 교수가 시 쪽 평을 써줄 수 있겠냐고 전화를 해온 것은 2003년 초였다. 2005년 겨울호까지 3년 동안 계간평을 쓴 덕에 미주문인협회의 여름 문학 캠프에 연속 두 해 강연자로 초대를 받아 갔다 왔다. 2009년에는 미주시문학회 초청으로 다시 미국 LA에 가서 문학 강연을 하고 왔다. 제Ⅱ부의 글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7명의 시인과 1명의 소설가에 대한 것이다. 이상하게도 재미교포 문단에서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에 비해 한글로 글을 쓰는 작가들은 별달리 주목을 못 받고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 모국어를 지키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일 터이니 이들이 쓴 작품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문학인은 태생적으로 떠돌이이다.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늘 미지의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존재이기에 새로운 글을 쓰고 또 쓰는 것이다. 재외동포 또한 모국을 떠나서,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는 떠돌이들이다. 부모형제나 일가친척이 멀리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외로울 것이고, 명절이면 마음이 더 허전할 것이다. 그 허전함을 달래려 시도 소설도 쓴 것이 아니랴. 2010년 판 『외교백서』(외교통상부 발행)를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삶의 둥지를 튼 동포의 숫자가 682만 명이라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그들 중 일부가 심혈을 기울여 쓴 문학작품에 대한 관심을 갖고서 석탑에 돌을 하나씩 올린다는 심정으로 편편의 글을 썼다.
이 책에 실리게 된 대다수의 글은 2007년 여름방학 이후에 쓴 것들이다. 구설의 아픔이 무척 심했을 때 학과의 신상웅ㆍ이동하ㆍ전영태 선생님, 방현석ㆍ이대영ㆍ박철화 후배교수의 격려는 큰 힘이 되었다. 마음 편히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끔 많은 배려를 해주신 은사님들과 후배교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책은 국학자료원에서 다섯 번째로 내는 것이다. 새미를 통해 1999년에 『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을, 2004년에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10대 명제』를 정찬용 사장의 배려로 낸 바 있었고, 새미작가론총서 13권 『송욱』과 19권 『김현승』을 펴낸 바 있다. 이번에 정구형 대표의 권유로 또 한 권의 책을 내게 되니 감사의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꼼꼼하게 교정을 봐주신 편집부의 박지연 실장님과 표지 디자인을 정성껏 해주신 정현미 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책이란 많이 낸다고 좋은 것이 아닐진대 벌써 몇 권째인지, 부끄럽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을 이루고 있는 글들이 과연 얼마라도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자신이 서질 않는다. 하지만 늘 부족하기에 새로운 도전정신으로 자료를 찾아 헤매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몇 편의 글은 나라 바깥에 가서 자료를 찾아와 쓰기도 했는데, 구상에서 완성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린 것도 있다. 귀한 자료를 구해준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최석 시인, 연길의 석화 시인,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원에 유학 가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 고 박윤희에게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를 드린다. 연변 조선족 시인들의 시집을 빌려준 송희복 교수와 송영순 선생, 고려인 시인 전동혁에 대해 조언을 해주고 귀한 사진까지 보내주신 카자흐스탄의 김병학 시인, ‘다문화 외국인 시낭송회’에 초대해준 문창길 시인에게도 인사를 드린다. 『문예춘추』에 실린 아쿠타가와상 심사평을 한글로 옮겨준 한진숙 석사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필요한 자료 요청에 늘 흔쾌히 응해준 중앙대 도서관 황현준 선생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모든 글을 집에서 쓰는데 늘 배려해주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사진 작업을 도와준 딸 민휘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대학교수란 세 가지 덕목 중 한 가지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훌륭한 인품과 탁월한 교수법과 꾸준한 학문 연구가 그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나와 거리가 먼 것이기에 연구라도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자식이 낸 책을 손에 들면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하신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이 이 책을 쓰고 있던 중에 모두 돌아가셨다. 책을 들고 부모님 묘소를 찾아가 큰절 올리고 싶다.
2013년 봄에
이승하
Ⅰ. 디아스포라의 현장
연변 조선족 중ㆍ고교 개편 교과서에 수록된 시
연변 조선족 시인들의 시에 나타난 '두만강'
연변 조선족 시인들의 시에 나타난 민족의식과 국가관
재러시아 고려인 소설가 박미하일의 작품세계
카자흐스탄 고려인 시인 강태수의 시세계
카자흐스탄 고려인 시인 전동혁의 서사시「박 령감」
카자흐스탄 고려인 시인 이스따니슬라브의 시세계
카자흐스탄 한국인 시인 김병학의 시세계
아쿠타가와상 수상 재일교포 작가의 소설에 나타난 조국과 모국어
재일교포 작가의 소설에 나타난 민단ㆍ조총련 간의 갈등 양상
다문화 시대, 외국인이 쓴 한글 시의 의미와 가치
미얀마 문학의 과거와 현재
Ⅱ. 재미 시인과 소설가를 찾아서
재미 시인 마종기에 대해 쓴 두 편의 글
재미 시인 송석증에 대해 쓴 두 편의 글
재미 시인 박만영에 대해 쓴 두 편의 글
세월의 갈피 속에 접힌 이민자의 아픔-조옥동론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가족에 대한 사랑-차신재론
이민자가 꾸는 꿈속의 아름다운 고향-정국희론
시인-울음소리를 듣고 웃음소리를 내는 자-곽상회론
뿌리 뽑힌 자들이 꾸는 아메리칸 드림-박경숙론
목차
머리말 3
1부
·재미 한인 시에 나타난 자기치료의 양상 연구
-송석증·윤영범·석상길의 경우 | 이승하 11
·엑소더스, 그 시의 치유 양상
-재러 시인 리진의 경우 | 김영미 45
·재호 한인 시인의 치유적 글쓰기
-이기순 시를 중심으로 | 송주영 73
2부
·「그늘의 집」의 장소와 산책자 그리고 치유| 송명희 111
·해외 이민자 작품서사를 통해 본 혐오의 정동
-제니스 Y. K. 리의 『피아노 교사』를 중심으로 -| 류진아 147
·에코페미니즘 치유 관점으로 읽는 허련순의 소설세계
-『바람꽃』을 중심으로- | 김원희 171
·재일 한인의 상처 치유 과정
-이양지의 「나비타령」을 중심으로- | 조민경 205
·김달수 소설 「박달의 재판」의 민족적 각성과 치유| 우남희 237
3부
· 치유의 관점에서 본 러시아 한인들의 한국 전통춤의 특징과 의미에 대
한 연구-한국 전통무용단 “소운(小雲)”을 중심으로- | 양민아 281
· 「남은 여생의 시련」을 통해 본 사할린 한인의 역사적 상처와 치유로
서의 희곡 쓰기 | 김남석 303
· 영이록의 장애 화소와 그 의미 | 권대광 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