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제 38 장. 上德不德(상덕불덕)
- 백서본 제1장
餘韻 이준호 풀어씀
38. 上德不德, 是以有德。下德不失德, 是以無德。上德無爲而無以爲。下德無爲而有以爲。上仁爲之而無以爲。上義爲之而有以爲。上禮爲之而莫之以應, 則攘臂而扔之。故失道而後德。失德而後仁。失仁而後義。失義而後禮。夫禮者忠信之薄而亂之首。前識者, 道之華而愚之始。是以大丈夫, 處其厚不居其薄。處其實, 不居其華。故去彼取此。
큰 덕을 지닌 사람의 마음은(上德) 그를 억지로 얻으려 아니하므로(不德), 그런 까닭에(是以) 자연스레 덕이 생기는 것이다(有德)。덕이 낮은 사람의 마음은(下德) 덕이 달아나지 않도록 억지 쓰니(不失德), 그런 까닭에(是以) 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無德). 큰 덕을 지닌 사람의 마음은(上德) 다스리려 하지 않기에(無爲而)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는 까닭이다(無以爲). 덕이 낮은 사람의 마음은(下德) 다스리려 하기에(爲而) 더욱 지배하려 들기 때문이다(有以爲). 커다란 인자함으로(上仁)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爲之而) 지배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無以爲). 커다란 권위로(上義) 다스릴 수 있는 것은(爲之而)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有以爲). 커다란 의식으로(上禮) 다스려 따르게 한다는 것은(爲之而) 거부감 없이(莫之) 순응하도록(以應) 사람들의 팔을 잡아채 끌어당겨(攘臂) 억지로 시켜 복종하게 하여(而扔) 본보기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則之). 도리어(故) 도를 잃고 난 뒤에서나(道而後) 곧은 마음이 나타나고(德), 덕을 잃고(失德) 난 뒤에서야(而後) 어진 마음을 얻게 된다(仁). 도리어(故) 인을 잃고 난 뒤에서나(仁而後) 의가 나타나고(義), 의를 잃고(失義) 난 뒤에서야(而後) 예를 얻게 된다(禮). 무릇(夫) 예라는 것은(禮者) 진심과 신의가(忠信) 엷기에(之薄) 난리가 났을 때나(而亂) 으뜸으로 치는 것이다(之首). 조금 먼저 안다고 나불거리는 것들은(前識者) 도가 가진(道之) 화려함만 쫓는(華而) 우매함의 근원이다(愚之始). 그런 까닭에(是以) 대장부는(大丈夫) 그 지극함에 머무르며(處其厚), 그 엷음에(其薄) 거하지 않는 것이다(不居). 그 열매가 열리는(其實) 때를 알기에(處), 화려함에 취해 그 꽃에(其華) 머무르지 않는다(不居). 도리어(故) 저것(彼)을 버리고(去) 이것(此)을 얻는다고 함이다(取).
(Those who) possessed in highest degree the attributes (of the Tao) did not (seek) to show them, and therefore they possessed them(in fullest measure).
(Those who) possessed in a lower degree those attributes (sought how) not to lose them, and therefore they did notpossess them (in fullest measure).
(Those who) possessed in the highest degree those attributes did nothing (with a purpose), and had no need to do anything.
(Those who) possessed them in a lower degree were (always) doing, and had need to be so doing.
(Those who) possessed the highest benevolence were (always seeking) to carry it out, and had no need to be doing so.
(Those who) possessed the highest righteousness were (always seeking) to carry it out, and had need to be so doing.
(Those who) possessed the highest (sense of) propriety were (always seeking) to show it, and when men did not respond to it, they bared the arm and marched up to them.
Thus it was that when the Tao was lost, its attributes appeared; when its attributes were lost, benevolence appeared; when benevolence was lost, righteousness appeared; and when righteousness was lost, the proprieties appeared.
Now propriety is the attenuated form of leal-heartedness and good faith, and is also the commencement of disorder; swift apprehension is (only) a flower of the Tao, and is the beginning of stupidity.
Thus it is that the Great man abides by what is solid, and eschews what is flimsy; dwells with the fruit and not with the flower.
It is thus that he puts away the one and makes choice of the other.
上德不德(상덕불덕), 是以有德(시이유덕)。下德不失德(하덕부실덕), 是以無德(시이무덕)。
큰 덕을 지닌 사람은(上德) 그것을 억지로 얻으려 하지 아니하므로(不德), 그런 까닭에(是以) 자연스레 덕이 생기는 것이다(有德). 덕이 낮은 사람의 마음은(下德) 덕이 달아나지 않도록 억지 쓰니(不失德), 그러므로(是以) 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無德).
上(위 상) - 위, 윗, 앞, 첫째, 옛날, 이전, 임금, 군주, 높다, 올리다, 드리다, 오르다.
德(클 덕) - 크다, 곧은 마음, 베풀다, 고맙게 생각하다, 오르다, 도덕, 은덕, 능력, 가르침.
不(아니 불/부) - 아니다, 아니하다, 못하다, 없다, 말라.
是(이 시) - 이, 이것, 여기, 무릇, 이에, 옳다, 바르다, 바로잡다, 다스리다.
以(써 이) - ~써, ~로, ~가지고, ~때문에, ~까닭에, ~인하여, ~하여,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有(있을 유) - 있다, 소유하다, 존재하다, 많다, 알다, 소유, 자재, 경역.
下(아래 하) - 아래, 밑, 뒤, 끝, 부하, 하급, 열등, 내리다, 낮추다, 못하다,
失(잃을 실) - 잃다, 달아나다, 남기다, 잘못 보다, 틀어지다, 가다, 잘못하다.
無(없을 무) - 없다, 아니다, 아니하다, 말다, ~하지 않다.
도덕경의 하편 38장의 첫 장이다. 그런데 이장은 1973년 마왕퇴 고분에서 발견된 백서본(帛書本)과 2009년 연구된 전한 시대의 한간본(漢簡本)에는 도덕경의 첫 번째 장으로 맨 앞에 배치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도덕경’이 아닌 ‘덕도경’인 것이다. 도경 1장에서 도의 코스몰로지에 대한 위대한 여정을 밝혔다면, 덕경 1장은 덕에 대한 인간 내면의 깊숙한 원리 즉, 인간의 도이다. 도가 우주의 원리라면 덕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내면의 덕성 즉, 인간성이다. 나는 줄곧 도덕경을 주해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진화생물학, 진화인류학, 동물행동학, 행동생태학 관점에서 논해왔다. 찰스 다윈은 1871년 출간한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에서 “인간은 침팬지로부터 공통 조상에서 진화했다.”라고 단정 지었다. 이 글에서 인간과 침팬지에 대한 차이를 수없이 언급했다. 현대의 비교 심리학은 대형 유인원 사촌들과 인간 행동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동물적 본능과 인간 고유의 본성으로써 덕을 획득함으로써 인간성의 획득으로 인한 인격이 생성되었다고 본다. 찰스 다윈과 진화인류학자들에게 도덕심은 자연선택에 의해 인간에게 아주 우연히 뇌의 폭발적 진화와 함께 주어진 능력이다. 이타심과 도덕심, 자비심 그리고 정교하게 협력할 줄 아는 언어능력이 주어졌기에 모진 환경에서 살아남아 현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럼 과연 사피엔스에게 도덕성을 획득했다고 그럼 진정한 인간이 되었는가?
노자는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라며 인간의 품성을 더욱 상세하게 구분한다. 노자의 말씀대로 인간을 구분 짓자면 현대사회에서 인간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최상의 인간은 상덕(上德)이요, 다음은 상인(上仁), 상의(上義), 상례(上禮)의 인간으로 엄격한 위계(位階, Hierarchy)에 의해 구분하고 있다. 그나마 이러한 방식으로 구분한 인간은 이기적인 소인배들은 엄격하게 배제한 상태에서의 참사람, 대인배적 인간의 구분이다. 인면수심의 소인들은 철저하게 배제한 상태이다. 上德不德(상덕부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최상의 덕은 덕이 아니다’라고 해석하면 전체 장에 영향을 주는 번역의 큰 오류를 낳는다. 뒤이어 나오는 是以有德(시이유덕) ‘이런 까닭에 덕이 생긴다.’ ‘최상의 덕은 덕이 아닌데 이런 까닭에 덕이 생긴다.’ 이런 식으로 다음 절을 해석하면 ‘下德不失德(하덕부실덕) 하덕은 덕을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是以無德(시이무덕) 이런 연유에 덕이 없다.’가 된다. 뭔 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노자의 도덕경이 어려운 이유다. 어떤 이는 해석이 원활히 되지 않으면 통행본의 주저자인 왕필 탓, 나중에는 노자가 잘못됐다고 욕한다. 자신의 안목과 실력을 반성해야지 2천 년 넘게 지배해온 사상을 왜 흠을 잡는지 이해가 불가하다. 나 역식 초간본, 백서본, 하상공본, 왕필본을 두루 읽어 보니 부분에 대한 약간의 오해 소지는 있어도 노자가 설파하고자 하는 본질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핵심 사상과 철학은 더욱 돋보였다. 138억 년의 도와 사피엔스가 획득한 도덕성은 20만 년 동안 변함없이 유지되어 흘러온 우리의 유전자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큰 덕을 지닌 사람은(上德) 그것을 억지로 얻으려 하지 아니하므로(不德), 그런 까닭에(是以) 자연스레 덕이 생기는 것이다(有德).” 덕은 자연선택 즉, 도의 끊임없는 작용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획득한 능력이다. 그래서 덕(德)을 득(得)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탐욕이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 20만 년은 실오라기 하나 걸친 풍전등화 앞에선 여인의 모습과 같다. 아슬아슬한 인간의 본성인 우리의 덕은 언제 달아날지 모른다. 우리가 가진 동물적 본능은 5억 년이 넘는다. 자연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다스림의 주체인 위(爲)가 누구 손에 넘어가느냐이다. 자연이냐 사람이냐? 찰스 다윈은 이를 자연선택(自然選擇, Natural Selection)과 인위선택(人爲選擇, Artificial Selection)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자연이 하던 일을 이제 인간이 대체하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까지만 해도 자연이 선사한 대로 배고프면 잡아먹고 철마다 열리는 열매를 따 먹거나 주워 먹으면서 생존할 수 있었다. 인간이 풀을 인위적으로 길들이면서 수렵채집인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를 사용하게 된다. 바로 10시간이 넘는 노동력이다. 그리고 강력한 소유욕이 생성된다.
법정 스님(1932~2010)은 평생 중생들에게 무소유(無所有)를 가르쳤다. 나는 경제인으로 살 때, 무소유라니 참으로 부질없는 가르침이라고 일침을 가해 버렸다.
사실 그때는 탐욕이 나를 지배하던 시절이라 무소유가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수 많은 땡중들이 입버릇처럼 떠드는 부처님 말씀 정도로 치부했었다. 아니 무식했었다. 이제는 똥구녕에 낀 콩나물 대가리의 소중함을 깨닫고는 무소유가 체화되었다. 인위적, 작위적 행위에는 그만한 관리비용이 투입된다. 이건희 회장이 살던 한남동 자택의 한 달 전기료가 8천만 원이 넘었다고 들었다. 현재 내가 거처하고 있는 곳의 월 전기료가 2만 원이 채 안 나온다. 경제인으로 살 때 내가 필요한 돈은 월 5천만 원 정도였다. 그래도 늘 모자랐다. 지금은 줄이고 줄여 80만 원 미만이다. 뒤에서 0이 두 개나 빠졌다. 그래서 내가 지금 불행한가? 아니다. 그러나 조금 불편할 뿐이다. 남의 경조사에 잘 기지도 않지만 가야만 하는 경조사가 있으면 약간 휘청한다. 탐욕을 내려놓으니 제일 큰 변화는 감정의 기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만사에 무덤덤하다.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졌다. 경제인 시절에는 매일 큰일이다. 이달에 돌아오는 어음만기, 직원들 월급날, 들쭉날쭉한 납품일에 대한 고객의 폭풍 같은 독촉, 지인이 건물을 샀다고 하면 형용할 수 없는 배 아픔과 부러움이 날 지배했다.
지난 10여 년을 내가 지배했던 날 버리고 자연의 순리에 맡겼다. 한 갑 이상 피우던 담배부터 끊었다. 늙어서 병원에 안 가기 위해 매일 두 시간씩 산에 올랐다. 그리고 매일 도서관에 가서 최소 5시간은 책을 읽었다. 점차 미련과 집착을 버리기 시작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전인권의 노래를 매일 읊조렸다. 그러니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남들에게 큰일이 내게는 그저 평범한 일이 되었다. 돈벌이, 이혼, 아이의 교육, 노후, 체면 따위에서 조금씩 해방되었다.
“덕이 낮은 사람의 마음은(下德) 덕이 달아나지 않도록 억지 쓰니(不失德), 그러므로(是以) 덕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無德).” 억지 부리지 않고, 애써 체면 차리지 않아도 무례를 범하지 않으니 큰 탈이 생기지 않았다. 단 하나, 술! 술이 문제다!
上德無爲而無以爲(상덕무위이무이위)。下德爲之而有以爲(하덕무위지이유이위)。
큰 덕을 지닌 사람은(上德) 다스리려 의도하지 않기에(無爲而)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는 이유다(無以爲). 덕이 낮은 사람은(下德) 인위적으로 다스리려 하기에(爲而) 더욱 지배하려 드는 것이다(有以爲).
爲(위할 위) - 하다, 위하다, 다스리다, 되다, 생각하다, 길들이다, 삼다, 속하다.
而(말 이을 이) - 잇다, 같다, 만약, 뿐, 따름, 그리고, ~로서, ~하면서.
以(써 이) - ~써, ~로, ~가지고, ~때문에, ~까닭에, ~인하여, ~하여, ~함으로써, ~하기 위하여.
자연의 순리대로 살면서 내가 나를 지배하려 하지 않으니, 조급하거나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가장 힘든 시절, 내 생각이 맞는다고 확인시켜 주신 분이 있다. 2010년 스마트폰 기반으로 팟캐스트가 유행을 탔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산을 오를 때마다 들었다. 스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과거를 반성하고 현실 세계에 대한 좌표를 잡아갔다. 수정되고 재계획된 삶은 최소한 컴퍼스의 축을 움직이는 크나큰 과실은 더 이상 저지르지 않게 되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과거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한방을 꿈꾸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다. 나는 과거에 내 한방을 썼었기에 나는 두 번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큰 덕을 지닌 사람은(上德) 다스리려 의도하지 않기에(無爲而)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는 이유이다(無以爲).” 내가 만일 이 원칙을 망각했다면 도서관에 평온하게 앉아 학자들이 땀 흘려 해석한 도덕경을 참조해 가며 내 나름의 번역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예전에 나는 사업상 또는 관광 목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카지노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놀음을 증오한다. 카지노도 내 자의보다는 지인 또는 클라이언트들의 요구에 의해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난 골프를 싫어한다. 그러나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골고다의 언덕을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예수의 심정으로 가야 할 때가 많다. 난 카지노에서 게임시 플레이어를 하게 되면 반드시 원칙을 세우고 들어간다. 하루에 U.S 달러 200불 이상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불을 잃으면 난 무조건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역시 200불 이상 따면 무조건 일어난다. 먹는 것을 즐기는 나는 카지노의 뷔페를 돌아다니며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즐기거나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면 환호와 탄식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었다. 유난히 한국 사람 중에는 카지노를 이기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이 많았다. 수중의 돈을 다 잃고 나면 나중에는 넋이 나간 상태에서 한국으로 전화해 돈을 송금하라고 재촉한다. 만류해도 방법이 없다. 한마디라도 거들면 기를 빠지게 한다느니, 이제 감을 잡았으니 재수 없게 하지 말라던지, 한 번 사는 인생 뭐 있냐? 인생은 결국 한방이라며 만류하는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역정을 낸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출장을 왔건 여행을 왔건 거의 첫 끗발이 개 끗발의 법칙이 작동해 나머지 소화해야 할 일정에 엄청난 지장을 남긴다는 데 있다. 문제는 또 있다. 한국에 귀국해서 처해 있는 상황을 보면 공금횡령 또는 그달에 반드시 지출해야 할 돈을 끌어다 카지노에 바친 꼴이다. 그때 만났던 사람 중 지금까지 유지되는 관계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덕이 낮은 사람은(下德) 인위적으로 다스리려 하기에(爲而) 더욱 지배하려 드는 것이다(有以爲).”
안되면 빨리 포기하는 것도 지혜이다.
上仁爲之而無以爲(상인위지이무이위)。上義爲之而有以爲(상의위지이유이위)。
커다란 인자함으로(上仁)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爲之而) 지배하려 하고자 않기 때문이다(無以爲). 커다란 권위로(上義)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爲之而)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다(有以爲).
仁(인자할 인) - 어질다, 자애롭다, 사랑하다, 불쌍히 여기다. 현자, 박애, 씨.
義(옳을 의) - 옳다, 의롭다, 바르다, 착하다, 맺다, 정의, 의리, 명분, 법도, 권위, 관계.
노자는 인의예지가 강조되는 이유에 대하여 인간 세상에 도를 상실했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규율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도덕(道德)은 내면적 자기 길들이기이다. 한비자(韓非子, BC280~233)는 해로 편에서 “덕(德)은 내면적이고 득(得)은 외면적이다. ‘상덕부덕’이란 그 정신이 외부의 사물에 의해서 어지럽혀지지 않은 상태다.” 했다. 윤리는 득에 가까운 외적 타율의 성격에 가깝다. 윤리와 법은 그래서 한 몸이다.
나는 항상 이러한 생각에 몰두한다. 인간이 자연선택이 부여한 도덕 감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반대로 자연선택이 인간에게 도덕성을 부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경우는 과거사와 현대사 모두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가장 근례로 전두환이 저지른 광주 민중 학살이다.
“커다란 인자함으로(上仁)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爲之而) 지배하려 하고자 않기 때문이다(無以爲). 커다란 권위로(上義)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爲之而) 지배하려 의도하기 때문이다(有以爲).” 지배하려 들지 않는 자야 세상을 얻을 것이요, 백성을 지배하려 들고 복종시키고자 하는 자의 말로는 국립 교도소 행이다.
上禮爲之而莫之以應(상례위지이막지이응), 則攘臂而扔之(즉양비이잉지)。
커다란 의식으로(上禮) 다스려 따르게 한다는 것은(爲之而) 거부감 없이(莫之) 순응하도록(以應) 사람들의 팔을 잡아채 끌어당겨(攘臂) 억지로 시켜 복종하게 하여(而扔) 본보기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則之).
禮(예도 례) - 예도, 예절, 절, 인사, 예물, 의식, 예우하다, 풍성하다, 공경하다.
莫(없을 막/모/멱) - 없다, 말다, 불가하다, 조용하다, 드넓다, 장막, 저물다, 어둡다, 덮다.
之(갈지) - 가다, 도착하다, 끼치다, 어조사, ~의, 에, 이에, 을, 그리고, 만일.
應(응할 응) - 응하다, 대답하다, 응답하다, 맞장구, 승낙하다, 응당 ~하다, 받다, 아마도.
則(곧 즉/칙) - 법칙, 준칙, 이치, 본보기로 삼다, 곧, ~하면.
攘(물리칠 양) - 물리치다, 내쫓다, 제거하다, 없애다, 훔치다, 사양하다, 걷다, 어지럽다.
臂(팔 비) - 팔, 팔뚝, 쇠뇌 자루.
扔(당길 잉) - 당기다, 끌어당기다, 부수다, 깨뜨리다, 내버리다, 버리다.
사회적 동물은 어쩔 수 없이 자연선택에 의해 무리나 집단을 이루고 살 수밖에 없다. 그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본능적으로 무리를 이루고 사회를 이루게 되면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구성원을 대표해서 집단을 이끌 리더가 있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덕이 작동하는 사회와 그 반대의 사회를 가정할 수 있다. 도덕심=이타심=자비심=배려심=양보심=평등심=공정심=책임감=자발적인 수평적 사회로 귀결된다. 도덕심은 자율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사회이다. 그러나 도덕심이 없는 동물 사회는 이기심=탐욕심=공격심=독점욕=지배욕=불평등=차별=무책임=강압적인 수직적 사회로 귀결된다. 힘으로 지배하여 다스려야만 한다. 힘이 사라지면 지배권이 사라져 누군가에 복종해야 한다. 도덕심이 사라진 세상은 힘이 정의가 되는 세상이다. 즉, 돈과 권력이 정의가 되어 약자를 지배하고 굴종을 강요하며, 강압적으로 다스리기에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 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도덕적 해이(道德的解弛, moral hazard)라 한다. 법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여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집단 이기주의를 나타내는 상태나 행위를 뜻한다. 특히, 2007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전 세계를 흔드는 전 지구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나 역시도 이때 계기가 돼서 거지 신세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프로그램되어있다. 자본이 힘이기 때문이다. 자본으로 권력을 사고 자본으로 여론을 잠재우고 자본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경제학은 이익이 최우선의 가치이기에 그렇다.
“커다란 의식으로(上禮) 다스려 따르게 한다는 것은(爲之而) 거부감 없이(莫之) 순응하도록(以應) 사람들의 팔을 잡아채 끌어당겨(攘臂) 억지로 시켜서 복종하게 하여(而扔) 본보기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則之).” 우리는 날마다 세뇌당한다. 내가 20대 중반에 쓴 시의 제목이다. 세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지배하고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참과 거짓의 구분은 사라지고 목소리 크고 많이 떠드는 놈이 정의가 되었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원전 수의 방류가 결정되자, 대한민국의 보수 정치인들과 이와 연관된 관료들이 서로 마시겠다고 자청한다. 그 약속 제발 지켜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본인이 죄다 마시고 골로 가시길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그게 애국이자, 지구 애를 몸소 실현하는 희생정신이다. 국민에게 피해 주지 말고 자발적으로 마시겠다고 자청한 사람들은 그 가족과 사돈의 팔촌까지 또한 그를 지지하는 세력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수도를 연결해주어야 한다. 평생 무상으로 제공해 주길 간청한다. 반드시 약속을 이행해라!
故失道而後德(고실도이후덕), 失德而後仁(실덕이후인),
도리어(故) 도를 잃고 난 뒤에서나(道而後) 곧은 마음이 나타나고(德),덕을 잃고(失德) 난 뒤에서야(而後) 어진 마음을 얻게 된다(仁).
故(연고 고) - 연고, 사유, 까닭, 이유, 도리, 사리, 예, 옛날.
失(잃을 실) - 잃다, 달아나다, 남기다, 잘못 보다, 틀어지다, 가다, 잘 못하다.
後(뒤 후) - 두, 곁, 딸림, 부하, 뒤떨어지다, 뒤지다, 늦다, 노예의 족쇄.
道(길 도) - 길, 도리, 이치, 재주, 방법, 근원, 바탕, 기능, 사상, 제도, 가다, 따르다.
德(클 덕) - 크다, 곧은 마음, 베풀다, 고맙게 생각하다, 오르다, 도덕, 은덕, 능력, 가르침.
그렇게 야단법석이 일어나야 먼지가 가라앉는다. 인간의 착각 중 하나가 사람은 다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다른 것은 성격(性格)뿐이다. 인성(人性)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로지 양극성으로 극단적이다. 이기적인 본능의 소유자와 이타적인 본성의 소유자로 정치, 경제적으로는 보수와 진보로 나뉜다. 이 둘은 화합이 될 수 없다는 것이 UC버클리대학 인지언어학과 조지 레이코프 교수의 진언이기도 하다.
20만 년 동안 쌓아 올린 사피엔스의 덕(德)은 138억 년, 도(道)의 축적이다. 그러기에 덕은 인간의 취사선택이 아닌 인간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리(道理)일 수밖에 없다.
진화생물학을 전공하신 독자거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고 이해하신 이 구절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으실 걸로 믿는다. 도와 덕은 자연선택의 결과물이다. “도리어(故) 도를 잃고 난 뒤에서나(道而後) 곧은 마음이 나타나고(德), 덕을 잃고(失德) 난 뒤에서야(而後) 어진 마음을 얻게 된다(仁).” 그러나 인의예(仁義禮)는 인간이 스스로 꾸며서 만들어 낸 인위선택의 결과물로 보아야 한다.
失仁而後義(실인이후의), 失義而後禮(실의이후례)。
인을 잃고 난 뒤에서나(仁而後) 의가 나타나고(義), 의를 잃고(失義) 난 뒤에서야(而後) 예를 얻게 된다(禮).
동물은 본능적으로 남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나는 ‘평판본능’ 가설이라 이름 붙였다. 미국 에모리대학 심리학과 프란스 드 발 교수는 네덜란드 아른헴에 자리한 버거 동물원(Burgers' Zoo)에서 침팬지 무리를 관찰한 기록을 책으로 출간하였다.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그는 털 고르기를 자주 해주는 동료일수록 싸움의 횟수가 적다는 것이다. 평소에 평판 관리를 한다는 뜻이다. 자주 반복적으로 털 고르기를 하는 개체일수록 친분이 두텁다. 아무리 이기적인 개체라도 매일 싸우고 다투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해로워 생존에 유리하기 어렵다.
정교하게 말하고 협력하는 인간은 어떤가? 영장류에 털 고르기 같은 행동을 인간도 행한다. 팔을 가볍게 치기도 하고, 궁둥이를 툭툭 치기도 한다. 지금은 큰일 날일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분을 과시하는 행동으로 하기도 했다. 도와 덕은 인간에게 있어 타고난 본성이지만 인의예는 인간관계에 있어 하나의 의식 같은 매너이다. 영국의 귀족사회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에서 드러난 귀족사회의 본모습은 인간의 본성으로서가 아닌 법도와 규칙에 움직이는 게임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소셜리티로 그려졌다.
본질이 사라지면 현상이 판을 치고 현상이 사라지면 사건만 남게 된다. “도리어(故) 인을 잃고 난 뒤에서나(仁而後) 의가 나타나고(義), 의를 잃고(失義) 난 뒤에서야(而後) 예를 얻게 된다(禮).”
夫禮者(부례자), 忠信之薄(충신지박), 而亂之首(이란지수)。
무릇(夫) 예라는 것은(禮者) 진심과 신의가(忠信) 엷기에(之薄) 난리가 났을 때나(而亂) 으뜸으로 치는 것이다(之首).
夫(지아비 부) - 지아비, 남편, 사내, 장정, 선생, 저, 대저, ~도다,~구나, 다스리다, 많다.
禮(예도 례) - 예도, 예절, 절, 인사, 예물, 의식, 예우하다, 풍성하다, 공경하다.
者(놈 자) - 놈, 것, 곳, 장소, 가리켜 이른다. 허락하는 소리, 여러, 무리, 와 같다.
忠(충성 충) - 충성, 진심, 공평, 정성, 공변되다, 정성스럽다, 충성하다.
信(믿을 신) - 믿다, 신임하다, 맡기다, 신봉하다, 성실하다, 신의, 신용, 편지, 정보, 증거.
薄(엷을 박) - 엷다, 얇다, 펴다, 적다, 야박하다, 싱겁다, 묶다, 속박하다, 깔보다, 척박하다.
亂(어지러울 난) - 어지럽다, 손상시키다, 다스리다, 음란하다, 무도하다, 난리, 재앙, 음란.
首(머리 수) - 머리, 우두머리, 임금, 첫째, 칼자루, 요처, 끈, 시작하다, 복종하다, 항복하다.
그러기에 “무릇(夫) 예라는 것은(禮者) 진심과 신의가(忠信) 엷기에(之薄) 난리가 났을 때나(而亂) 으뜸으로 치는 것이다(之首).” 악수의 유례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서 낯선 사람 앞에서 무장 해제의 의미로 무기를 잡는 오른손을 내민 데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자본주의 근간은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불신과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미국이 총기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은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저들의 유전자에는 힘이 정의라는 것이 각인되어 있다는 결과이다. 그걸 증명하는 결과물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백인 우월주의이다. 인간 본성으로서의 도덕심이 아닌 예법과 매너가 저들의 자부심이 된 이유이다.
前識者(전식자), 道之華而愚之始(도지화이우지시)。
조금 먼저 안다고 나불거리는 것들은(前識者) 도가 가진(道之) 화려함만 쫓는(華而) 우매함의 근원이다(愚之始).
前(앞 전) - 앞, 앞서다, 먼저, 미래, 우선, 미리, 앞서서, 가위, 나아가다, 인도하다, 자르다.
識(알 식) - 알다, 지식, 식견, 친분, 적다, 기록하다, 표시하다.
華(빛날 화) - 빛나다, 찬란하다, 화려하다, 사치하다, 호화롭다, 번성하다, 꽃, 광채, 중국.
愚(어리석을 우) - 어리석다, 우직하다, 고지식하다, 나, 어리석은 사람.
始(비로소 시) - 비로소, 바야흐로, 먼저, 옛날에, 처음, 시초, 근본, 근원, 시작하다, 일으키다.
백인 우월주의는 식민지 지배론을 합리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표어로 등장한다. 선진적이고 월등한 백인들이 더럽고 열등한 유색인종을 지배하는 논리로 또한 미개한 민족을 근대화시켜준다는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대한민국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외쳐 일본의 식민 지배의 정당성 앞장서서 찬양하는 친일 매국노들이 아직도 득세하고 있다.
“조금 먼저 안다고 나불거리는 것들은(前識者) 도가 가진(道之) 화려함만 쫓는(華而) 우매함의 근원이다(愚之始).” 결국 인간 불나방이다. 이완용은 1882년 과거에 급제하여 미국에서 2년여 동안 외교관 생활을 한 뛰어난 실력파였다. 그러나 먼저 선진문물을 배워와 국가의 안위에 사용하지 않고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다. 일본은 자각하여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 지리적 여건상 1854년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을 한 것이 서양 문물을 우연히 먼저 받아들이게 된 계기였다. 먼저 알았다고 전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화려함만 좇는 불나방처럼 일본은 스스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왕필은 전식자를 “남보다 먼저 안다고 까부는 하빠리들이다”라고 주석을 달았다.
是以大丈夫處其厚(시이대장부부처기후), 不居其薄(불거기박)。
그런 까닭에(是以) 대장부는(大丈夫) 그 두터움에 머무르며(處其厚), 그 엷음에(其薄) 거하지 않는 것이다(不居).
大(큰 대) - 크다, 심하다, 높다, 훌륭하다, 하늘, 존경.
丈(어른 장) - 어른, 장자, 남자, 남편, 장인, 장(길이), 측량하다.
處(곳 처) - 곳, 처소, 때, 시간, 지위, 부분, 살다, 휴식하다, 머무르다, 누리다, 담당하다.
厚(두터울 후) - 두텁다, 후하다, 두껍다, 짙다, 진하다, 지극하다, 정성스레, 친하다, 무겁다.
居(살 거) - 살다, 거주하다, 차지하다, 처지에 놓이다, 자리 잡다, 앉다, 쌓다, 거만하다.
薄(엷을 박) - 엷다, 얇다, 펴다, 적다, 야박하다, 싱겁다, 묶다, 속박하다, 깔보다, 척박하다.
대장부(大丈夫)라는 말이 이렇게 오래된 말인지 도덕경을 읽고 처음 알았다. 앞 절의 전식자(前識者)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플라톤의 가시 세계와 가지 세계를 구분할 줄 알고, 꽃에 머물지 않고 열매를 기다리는 법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화려함을 좇게 진화되었다. 그래야 익은 열매를 골라서 따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시광선의 약 400nm~780nm까지의 파장을 볼 수 있게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화려한 가시 세계만 좇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또한 이는 우매함의 근원이다(愚之始).
화려함만 좇다가 결국은 인생 막장을 보는 경우를 드라마나 현실 세계에서 수없이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왜 반복하는 걸까?
답은 그 나라와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기득권의 가치 추구의 지향성(志向性, intentionality)에 있다. 현상학의 창시자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현상학에서 의식의 지향성에 대해 인식, 믿음, 욕망 그리고 취향과 같은 정신상태를 말한다고 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상류사회 기득권층을 비판하면서 닮아간다. 학벌 타파를 외치면서 새로 소개받은 그녀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궁금해한다. 우리 안의 본능은 평등보다 차별이 월등하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위계를 구성한다. 난 너보다 나아!
외적으로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작용하여 사회적 압력으로 지배당한다. 현실에서는 그걸 천박하다고 부정하지만, 한편으론 강한 동경의 대상이기에 그 자체로 현상으로 인식하고 주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본능적 욕구에 장악당한다. 그를 통해 사회적 안주감(安住感)을 느끼기 때문이다. 상류사회를 천박하다고 생각하면서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하는 박탈감이 동시에 우리 감정 안에 공존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상류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가 구성원의 일환으로써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대장부의 표본이 되길 요구한다. 세상의 질서가 오래 유지되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이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 반례로 대한민국에서 재벌과 언론, 판검사들은 가장 큰 신뢰를 잃은 전식자(前識者)가 되었다. 도의 화려함만 좇았기에 스스로 우매해지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리고 신뢰를 저버림을 넘어 스스로 사회악이 되어가고 있다.
處其實(처기실), 不居其華(불거기화)。故去彼取此(고거피취차)。
그 열매가 열리는(其實) 때를 알기에(處), 화려함에 취해 그 꽃에(其華) 머무르지 않는다(不居). 도리어(故) 저것(彼)을 버리고(去) 이것(此)을 얻는다고 함이다(取).
處(곳 처) - 곳, 처소, 때, 시간, 지위, 부분, 살다, 휴식하다, 머무르다, 누리다, 담당하다.
其(그 기) - 그, 그것, 만약, 어찌, 이미, 이에, 마땅히.
實(열매 실) - 열매, 씨, 종자, 공물, 재물, 내용, 바탕, 자취, 참됨, 자라다.
故(연고 고) - 연고, 사유, 까닭, 도리, 사리, 예, 옛일.
去(갈 거) - 가다, 버리다, 내몰다, 물리치다, 덜다, 거두어들이다, 풀다, 축이다, 과거.
彼(저 피) - 저, 그, 저쪽, 덮다, 아니다.
取(가질 취) - 가지다, 손에 들다, 취하다, 의지하다, 돕다, 채용하다, 받다, 이기다, 다스리다.
此(이 차) - 이, 지금, 이에.
노자의 위대함 아니, 왕필의 명석함이 여기에 있다. “그 열매가 열리는(其實) 때를 알기에(處), 화려함에 취해 그 꽃에(其華) 머무르지 않는다(不居). 도리어(故) 저것(彼)을 버리고(去) 이것(此)을 얻는다고 함이다(取)." 꽃에 머무는 것은 나비와 벌뿐이다.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꽃에 취한다. 취하게 되면 때를 잊는다.
처기실(處其實)은 열매가 열리는(其實)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다(處). 시중(時中)을 아는 것이 자사는 군자의 도리이자 중용의 맛을 아는 인간이라 하였다. 우리는 꽃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다. 꽃이 피는 자리에 열매가 맺힌다. 열매가 맺혔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열매에 식물이 가진 모든 과당이 뭉쳐서 스스로 떨어지거나, 맛있는 과육으로 움직이는 동물을 유혹하여 식물의 씨를 널리 퍼뜨리게 하는 전략을 쓰는 식물과 동물이 서로 돕는 공진화의 결과이다.
자연선택의 결과는 만물이 서로 도와 공생(共生)하며, 고루 진화할 수 있도록 순환하는 메커니즘이다.
인간만이 탐욕으로 저것을 버려야 할 때 취하고 이것을 얻어야 할 때 버린다.
自然의 스스로 그러함의 이치가 道고 그 道의 열매가 德이다.
“큰 덕을 지닌 사람은(上德) 그것을 억지로 얻으려 하지 아니하므로(不德), 그런 까닭에(是以) 자연스레 덕이 생기는 것이다(有德).”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인간만이 그 덕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