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행운·풍년 기원부터 공동체놀이까지
힘든 삶 살아온 선조들의 지혜 담겨
2월 14일은 음력 1월 15일로 정월대보름이다. 설·추석과 함께 우리 겨레가 지금까지 이어오는 큰 명절 중 하나다. 명절과 각종 절기에는 나름의 의미를 담은 세시풍속이 전해온다. 농경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세시풍속은 건강과 행운, 풍년을 기원하는 것부터 공동체의식을 심어주는 놀이, 평소 범접하기 어려운 행동의 허용 등 다양하다. 힘든 삶을 살아온 선조들의 지혜까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이 아마 가장 많고 다양할 듯하다.
예전엔 설날인 정월초하루부터 시작돼 대보름까지 명절 분위기가 이어졌다. 산업화·도시화의 가속으로 점점 잊혀져가는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일상에서 접하기 어렵지만 아직도 농촌마을과 전통을 계승하는 단체 등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을 한 번쯤 되새겨보고 아이들과 함께 대보름 행사가 열리는 곳을 찾아보는 것도 선조들과 소통하고 현세대와 공감하는 게 아닐까?
글 이한나 편집위원
정월대보름 음식
부럼 깨물고 귀밝이술로 대보름 아침 시작
정월대보름엔 유난히 음식과 관련된 세시풍속이 많다. 기나긴 겨울동안 허기진 배를 채우고 쇠약해진 원기를 회복하기 위한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생겨난 풍속이다. 여기에 오랫동안 내려오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까지 묻어있어 현대인들의 건강식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음식들이다.
오곡밥 정월대보름 대표음식은 다섯 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 지은 오곡밥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곡으로 기장·피·콩·보리·벼를 적고 있다. 벼 대신 조 또는 밀, 콩 대신 녹두나 팥을 넣는 지방도 있다. 찰밥은 멥쌀밥보다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도 잘 되기 때문에 찹쌀과 찰수수·차조를 넣기도 한다.
약밥 정월대보름에 먹는 찰밥은 신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약밥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대보름날 까마귀의 도움으로 화를 면한 신라 소지왕(炤智王·479~500)이 이날을 까마귀 제삿날(오기일·烏忌日)로 정하고 까마귀를 닮은 검은색 밥을 지어 먹이로 주었다는데서 유래한다.
진채식 옛날에는 겨울에 푸른 채소를 먹지 못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지혜의 음식이 진채식(陣菜食)이다. 호박고지와 외고지, 무말랭이, 시래기를 비롯해 고구마순, 가지, 박, 버섯, 고사리 등을 겨울이 오기 전에 말려 두었다가 정월대보름날 삶아 나물로 만들어 먹었다. 진채식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복쌈 정월대보름날에는 김이나 말린 취나물에 밥을 싸서 먹었는데 이를 복쌈이라 한다. 아주까리 잎을 말려두었다가 데쳐 싸먹기도 했다. 요즘은 들깻잎이나 상추, 배추쌈으로 대용하기도 한다. 진주지역에 전해오는 '진주복쌈'은 채소 잎의 안쪽을 바깥으로 해 겉쪽에 밥을 싼다.
부럼 정월대보름날 아침에 일어나면 밤이나 호두, 잣, 은행 등 견과류를 깨무는데 이 풍습을 부럼깨기라고 한다. 깨물 때 나는 '딱'하는 소리에 놀라 잡귀가 물러간다고 생각했다. 부럼을 먹으면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도 여겼다.
귀밝이술 정월대보름날 아침 일찍 데우지 않은 찬 술을 한 잔씩 마신다. 이렇게 하면 귓병이 나지 않고 좋은 말만 듣는다는 풍습이 전해온다. 이를 '귀밝이술' 또는 '이명주(耳明酒)'라고 했다. 부녀자와 아이들도 이날 아침만은 귀밝이술을 마시는 게 허용됐다. 동국세시기에 그 유래가 있다.
삼성식·백가반 대보름날에는 성이 다른 세 집의 밥을 얻어먹어야 그해의 운이 좋다고 하는 삼성식(三姓食), 백 집에서 얻어온 밥을 먹으면 아이들이 건강하고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는 백가반(百家飯)의 풍습이 있다. 또 아홉 가지 나물에 아홉 번 밥을 먹고, 나무 아홉 짐을 해야 한다는 풍습도 전해온다.
정월대보름 놀이
묵은해 보내고 한 해 시작하는 놀이 많아
예전엔 정원대보름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마을제사를 지내거나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의미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 가마니를 짜고, 새끼를 꼬며 놀았다. 이외에도 각종 명절놀이 중에 정월대보름 놀이가 가장 많다.
달집태우기 가장 대표적인 정월대보름 놀이다. 달집태우기는 달이 막 떠오르는 순간에 불을 붙인다. 달집에 가장 먼저 불을 지르면 총각은 장가를 가고, 유부남은 득남을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먼저 불을 붙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불붙일 권리를 팔기도 했다. 달집의 불이 활활 잘 타고 연기가 많이 날수록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믿어 생소나무와 대나무를 두껍게 쌓고 마른 짚을 사이사이 넣어 만들었다. 대보름엔 달집태우기 외에 쥐불놀이, 숯불놀이 등 불과 관련된 놀이를 통해 풍년을 기원했다.
지신밟기 설을 쇠고 나면 마을 사람들은 농악대를 앞세워 동네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이 때 거둔 돈을 마을기금으로 확보한다. 지신밟기는 대보름에 절정을 이룬다. 진주 지역에서는 지신밟기를 메구쫓기 또는 메구놀이라고도 한다.
오광대놀이 경남지역에서는 대보름날 오광대놀이도 많이 했다. 오광대의 시작은 보름과 관계없으나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노는 정월대보름에 자연스럽게 놀이가 이루어졌다. 대보름 밤에 동네마당이나 타작마당에서 마을 사람들이 장작불을 피우고 오광대놀이를 해 왔다.
줄다리기 마을과 마을 사이의 공동체놀이인 줄다리기도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많이 이루어진다. 경남지역에는 진주줄다리기와 의령줄다리기, 진동큰줄다리기 등이 있다. 정월대보름 행사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진동큰줄다리기다. 의령줄다리기는 의병제전 때 열린다. 옛날 진주지역에서는 정월대보름 다음날과 가을 추수 뒤에 각각 열렸다. 워낙 큰 행사라 1939년을 끝으로 재현되지 못하고 있다.
연날리기 겨우내 연날리기를 하며 놀았던 아이들은 대보름에 연줄을 끊어 연을 날려 보냈다. 이를 '액연(厄鳶) 띄운다'고 하는데, 액을 날려 보내고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타오르는 달집에 얼레를 던져 태우는 풍습도 있다.
정월대보름 속신
금기·기원 나타내는 민간신앙 풍속 즐겨
정월대보름에 전해오는 음식과 놀이는 대부분 민간신앙을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정월대보름에는 금기사항이나 기원을 나타내는 속신(俗信·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신앙) 관련 세시풍속이 많다.
더위팔기 대보름날 아침에 사람들과 첫 만남에서 이름을 부르고,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여름에 더위를 덜 탄다고 믿는 풍습이다. 형제자매나 친구들끼리 서로 놀려주는 놀이이기도 했다.
보름병 정월대보름에 처녀들은 공식적으로 외출을 허락 받는다. '탑돌이'를 위한 외출인데, 미혼의 젊은 남녀가 탑을 돌다가 눈이 맞아 마음이 통하면 사랑을 나누는 날이다. 마음에 드는 남정네를 만났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처녀의 상사병(相思病)을 '보름병'이라고 했다. 조선 세조 때는 풍기가 문란하다고 하여 '탑돌이' 금지령까지 내리기도 했다. 신라시대 때부터 전해온다.
곡식 안 내기 정월대보름 세시풍속 중에 일종의 금기사항에 해당하는 속신도 있다. 그 중 정초에 곡식이나 돈을 남에게 빌려주거나 팔지 않는 풍습이 있다. 정초부터 곡식이나 돈을 남에게 빌려주거나 팔게 되면 한 해 동안 재산이 나갈 일만 생기게 된다고 믿은 데서 유래했다. 진주지역에서 내려오던 세시풍속이다.
개보름 보내기 정월대보름날은 사람들이 많은 음식을 먹으며 즐겨 노는데 반해 개는 굶주려야 하는 날이다. 대보름날에 개에게 먹이를 주면 개가 마르고 파리가 잘 붙는다고 하여 하루 종일 굶겼다. 동국세시기에 이 풍습이 기록돼 있다. 굶는 것을 비유한 속담에 '정월대보름날 개 같다' '개 보름 쇠듯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풍습에서 유래된 속담이다.
달맞이·달점 소원을 빌기 위해 언덕위에 올라가 솟아오르는 달을 맞는 달맞이, 달을 보고 한 해의 점을 치는 달점 등의 풍습도 놀이와 함께 정월대보름의 재밋거리다.
과일나무 시집보내기 정월대보름 속신적인 풍습 중에 '과일나무 시집보내기'가 있다. 과일나무의 가지를 친 곳에 돌을 끼워 두면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하면서 전해오는 풍속이다.
도내에서 열리는 정월대보름 행사
진동큰줄다리기
볏짚 700여동으로 만든 200m 줄에
수 천 명이 힘 겨루며 장관 연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동촌냇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진동큰줄다리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곳 줄다리기는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됐다. 삼한이 망한 뒤 포상팔국이라는 부족국가가 진동 지역에 형성되었고, 이들 부족 간 힘겨루기에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고려 때부터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주민의 화합을 위한 정월대보름의 대표적 세시풍속으로 전해온다.
'삼진줄다리기'로 이어져오다 일제 강점기 때 중단됐다. 지난 1992년에 복원돼 올해로 22회째 열린다. 2003년부터는 진동민속문화보존회가 주관하면서 주민 노래자랑, 전통혼례, 달맞이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해 정월대보름 지역주민의 공동체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진동큰줄다리기는 이름에 걸맞게 줄의 규모가 엄청나다. 예전에 줄은 길이 200m에 지름 1.5m 정도였다고 한다. 젖줄과 꼬리줄까지 만드는데 700여동의 볏짚이 사용될 정도다. 마을 주민들이 모여 줄을 만드는데 한 달 넘게 걸렸다고 한다. 요즘은 줄의 굵기가 예전보다 줄었지만, 길이는 200m를 유지한다.
요즘 진동큰줄다리기는 문화행사까지 곁들여 관광상품의 역할까지 한다. 정월대보름이면 농악대가 진동 시가지를 돌며 분위기를 잡는 것부터 시작해 동촌냇가에서는 축하공연 등으로 흥을 돋운다.
그리고 지역주민과 외지인 구분 없이 관람 온 사람들이 동편과 서편으로 나눠 줄다리기에 참여한다. 수 천 명이 힘겨루기를 하며 장관을 연출한다. 그리고 달이 뜨는 것과 함께 높이 10m가 넘는 달집에 소원을 적은 쪽지를 담아 불을 붙이는 것으로 행사는 절정을 이룬다.
◆제22회 진동큰줄다리기 및 달맞이
장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동촌마을 냇가
행사 당산제, 시가행진, 시민노래자랑, 큰줄다리기, 축하공연, 달집태우기/국밥·막걸리·팥죽 등 제공
◆창원시립마산박물관 제2회 정월대보름 맞이
장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추산동 박물관 야외마당 및 회원현성 일원
행사 회원현성 밟기, 윷놀이, 투호놀이, 제기차기, 달맞이/이명주 나누기
◆합천군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장소 합천군 합천읍 군민생활체육공원
행사 소지올리기, 용왕제, 합천전통음악회 풍물패의 농악놀이, 기원제, 지신밟기
◆진주시 정월대보름 민속축제
장소 진주시 칠암동 남강 둔치
행사 시조창, 전통무용, 전통민요, 풍물공연, 시민노래자랑, 제기차기, 널뛰기, 달집태우기
◆제7회 봉하마을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축제
장소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행사 사물놀이, 윷놀이, 연날리기, 정월대보름 고사, 달집태우기
◆밀양백중놀이 정월대보름
장소 밀양시 삼문동 밀양강 둔치
행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68호 밀양백중놀이 공연, 달집태우기
◆제17회 정월대보름맞이 달집사르기
장소 함안군 가야읍 검암천 주변
행사 연날리기, 쥐불놀이, 윷놀이, 길놀이, 고유제, 대동놀이, 달집태우기
◆제17회 정월대보름 상주달맞이 축제
장소 남해군 상주은모래비치 야영장
행사 메구패 지신밟기, 면민안녕기원제, 사물놀이, 국악공연, 널뛰기, 풍물한마당, 달집태우기
◆제22회 거창대동제
장소 거창군 거창읍 영호강 둔치
행사 군민기원제,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윷놀이 대회, 투호던지기, 줄다리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쥐불놀이, 귀밝이술 먹기, 부럼먹기, 오곡밥과 나물먹기, 떡판치기
◆제28회 하동송림 정월대보름 민속축제
장소 하동군 하동읍 송림백사장
행사 소망기원제, 연날리기, 부럼깨기, 윷놀이, 투호던지기, 지신밟기, 달집태우기, 농악놀이, 섬진교 답교놀이
◆제31회 통영전통연날리기 및 민속놀이 경연대회
제20회 정월대보름맞이 범시민달집태우기
장소 통영시 도남동 트라이애슬론광장
행사 연날리기 읍·면·동별 단체전, 개인전, 연싸움,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등/달집태우기, 불꽃놀이/음복주점 운영
첫댓글 보름을 지나고나면 농사일을 시작하는 시기,
설날부터 보름날까지는 명절로치고 세배를 했다,
절월대보름 달집태우기등 불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