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노래...
이제는 울지 않으리...
본 글은 지난날 경상북도 문해행사에서 우리 상록학교 60대 중반 졸업생의 눈물어린 수기공모 수상작 임을알려 드립니다.
나는 강원도 어느 산골에 가난한 농부의 팔남매중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중
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께서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시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진학을 포기하여야만 했습니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을 포기하게되자 부산에 계신 사촌 고모님께서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공부를 시켜 주시겠다고 어머니와 말씀을 나누시는 것을 들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이 은혜를 어찌 다 갚겠느냐 하시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복이 없는 탓인지 제가 고모님 댁에 가서 얼마 안되었을 때 고모부께서뇌암 선고를 받게 되었고 나는 진학은 커녕 그날로 집안 청소며 아기를 보는 신세가되고 말았답니다. 열네살 짜리가 아이를 등에 업고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며 식모아닌 식모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해 열다섯 어린 나이에 옷 만드는 방직공장에 취직을 하였답니다. 첫 월급을 타서"언니나 월급탔어" 하면서 월급 봉투를 내밀며 자랑했더니 언니가 나를 꼭 끓어 안으면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언젠가 한번을 월급날인데 월급 봉투를 시내버스 안에서 소매치기를 당했습니다. 울면서 집에 들어갔더니 언니가 놀라면서 왜 그러냐고 묻길래 "언니 나 월급봉투 몽땅잃어버렸어" 했더니 언니가 나를 안아 주면서 "괜찮아! 뭐 먹고 싶은 것 없니?"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사주더군요. 언니는 산업체 학교라도 가라고 자꾸 권했지만 왠지 친구들은 2학년이고, 3학년에 올라갈텐데 나는 이제 1학년이 된다는 것이 너무 창피하고 싫었습니다.
철없는 생각 때문에 여기까지 먼길을 돌아온 셈이었습니다. 처음 상록학교를 찾을땐얼마나 망설였던지 전화로 몇 번이고 문의를 한 다음 어렵게 결심을 했습니다.
공부는 정말 하고 싶용기가 없어서 하루 이틀 미루다 반 평생이 흘렀구나 생각
하니 너무나 허탈하더군요. 이제 남은 반 평생이라도 보람되게 살아야겠다 마음먹은이상 더 이상은 망설일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사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의식따윈 내게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그 마음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던 악세시키 가게를 정리하고 이제 네겐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고 마음먹
고 먼저 시장에 가서 츄리링을 한벌 구입했습니다.
누가 볼세라 평소와는 달리 꾀제제한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상록학교를 찾았는데 계단을 내려가니 죄진 사람처럼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뛰어서 겨우 교무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 갔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초등학교는 졸업했습니까? 중퇴는 아닙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초등학교 졸업을 못한사람도 있는가 보구나. 용기를 얻어 책을 사 가지고 집에와 생각하니 그곳에 가는 것이 그렇게도 망설여졌는데 이렇게 잠깐이면 갔다올 수 있는 것을 그날부터 나는 세수하는 시간조차도 아까웠습니다.
하지만 또 한가지 고민이 남았으니 나는 못 배운죄로 그렇다 하지만 남편을 생각하
니 너무 미안하고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게 될까 내심 걱정했는데 남편을 괜찮다고하면서 그런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다니라면서 못 배운 것은 죄가 아니오 피한것도 아니라면서 자신에게 좀더 떳떳해지라고 위로해주는 남편 사실 제가 공부를시작하게 된 것도 남편의 도움이었지요.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있다면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첫번째로 부모님이고 두번째로 저의 남편이랍니다.
결혼한지 15년이 지났지만 단 한번도 제 마음을 아프게한 적 없는 너무나도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에게서 모든 것을 받기만 하면서 살았기에 앞으로는 평생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렵니다.
상록학교 입학을 며칠 앞두고 남편이 회사에서 차장으로 승진을 하였답니다. 나는
처음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TV를 볼때면 사람들이 기쁜 일인데 울더라구
요. 그럴 때 저는 기쁠때도 정말 눈물이 날까 했는데 정말 너무 기쁘니까 눈물이 나더라구요. 남들은 IMF 이후에 모두들 직장을 잃고 하는 어려운 시국에 승진이라니 믿기지가 않을 만큼 기뻤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내 인생은 시작된거야. 더욱더 힘을 얻어 꼭 해내리라 마음 먹었습니
다. 야간 수업을 들으러 나갈때면 주위 사람들은 매일 저녁때 어딜 그렇게 가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그럴때면 그저 웃음으로 답하고 했습니다.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하던날 너무 감격스러워 남편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밤새
도록 잠못이루었고 대입검정고시를 합격하면 꼭 부모님 산소에 가서 실컷 울고 오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지난 8월 대입에 합격하고 엄마 산소에 가서 목놓아 울었답니다.
이제 며칠후면 엄마 제사가 돌아올테니 그때 어버이날에 못달아 들였던 꽃을 꼭 달
아드리고 싶네요. 지금껏 살면서 정말 부러운 것이 있었다면 그건 예전에 교복 입은친구들 이었지요. 이젠 친구들도 당당하게 만나고 싶고 초등 한 담임 선생
님도 찾아뵙고 싶습니다.
며칠전 조카돌날 저희 팔 남매가 모인 자리에서 울음바다가 되었지요. 모든 형제들
이 항상 마음아파했는데 드디어 해냈구나. 잘했다. 고생했다. 축하한다 등등.......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지만 먼곳에서 늘 지켜보고 계시리
라 믿어요. 제생에 있어 세번의 기쁨의 눈물을 흘렸군요. 바램이 있다면 그 기쁨의 눈물을 한번더 흘리고 싶네요. 지난 8월에 대입검정고시에 합격을 하고 지금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랑하는 남편에게 합격의 선물을 꼭 안겨주고 싶습니다.
한가지 더 바램이 있다면 저희들처럼 늦은 나이에도 꿈을 버리지 않고 어렵게 공부
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요즘 청소년들은 너무 쉽게 포기하고 배움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저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바른길로 인도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저와 같은 배움에 굶주린 아픔을 가지고 있는분이 계시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이 바로 당신의 행복이 시작될거라고 이제 저는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부러울게 없답니다. 불과 1년 조금 남짓한 시간이 저를 이토록 바꾸어 놓았답니다.
이젠 너무나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학벌 때문에 주눅들고 누가 물어 보는것도 아닌데 괜히 자격지심에 자신감을갖지 못하고 뒷전에서 맴돌기만 했던 소심한 성격도 지금은 너무나 밝아졌답니다.
이젠 저에게 주어진 어떠한 일도 자신있게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남 앞에 나서기 조차 두려웠는데 이젠 자신있어요. 공부가 저의 인생을 이토록 바꾸어 놓은줄 몰랐답니다.
지금도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고 계신 정태하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자원봉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