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삼한시대는 오직 천자(天子)만이 제사장(祭司長)이 될 수 있고, 그 외 어떤 나라의 왕도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즉 天壇(천단:원구단:중국 북경)에서 삼신(三神, 옥황상제, 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主祭)한 제사장(祭司長)을 단군(壇君,檀君)이라 칭했습니다. 단군은 진리의 정법(하도(河圖:天符道)을 전 세계에 전파하며, 인류를 구제(救濟)했습니다.
고조선 삼한시대 말기(末期)의 후3한 시대부터 난세(亂世)를 맞아 국력에 따라 자칭 천자 혹은 황제라 자칭하게 된다. 특히 중국 왕들은 스스로 천자(天子)라 자칭하며 황제(皇帝)라 칭했으나, 모두 다 하느님(옥황상제)으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한 가짜 황제(천자)들이다.
▶ 하늘에는 삼신(三神:옥황상제)이 있고,
▶땅에는 삼한(진한, 마한, 변한)이 있었다.
우리 대한민족은 아득한 옛날부터 삼신(옥황상제,하느님)을 공경하고, 숭배하며 자손들의 번영과 아들을 점지해 주기를 기원하는 풍속은 널리 퍼져있었다. 우리나라는 천제 환웅천왕시대부터 임금이 친히 제천단에서 삼신(하느님)에게 제사를 올리었다. 고조선 삼한, 부여, 예, 맥, 신라, 고구려 등은 10월 상달에 [삼신할머니]에게 제사 지내고, 백제는 四仲月(4중월)에 제사를 지냈는데 禱天(도천), 舞天(무천), 祭天(제천), 迎鼓(영고), 東盟(동맹)이라 하였다.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대한민족만의 고유한 풍속이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오직 하느님(삼신,옥황상제)을 숭배한 단군왕검의 후손들이여...!
BC 2333년 天壇(천단:원구단:중국 북경)에서 삼신(三神, 옥황상제, 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한 제사장(祭司長)이 중국의 요(堯)임금인가? 이스라엘 민족인가? 고조선의 단군인가?
고조선 삼한 중의 진한은 국왕이 친히 매년 10월 3일 天壇(천단:원구단:중국 북경)에 나아가 삼신(옥황상제, 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한 제사장(祭司長)이며, 삼한의 영토를 관리하고 삼한의 제후를 임명하는 왕권을 갖고 있었다. 마한은 54개 제후를 거느리고,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의 제후국이 있었다. 고조선의 단군왕검은 천리(天理:하도, 진리의 정법)를 전 세계 만국에 전도하며 어리석은 중생을 교화하여 인류를 구제한 종주국(宗主國)이다.
고조선 삼한 중의 진한은 신라이고, 마한은 고구려이며, 변한은 백제가 된다. 삼한 중의 진한(辰韓)의 법통을 계승한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왕은 진실로 천자(天子, 聖人(성인)이시며, 祭司長(제사장)으로서 天壇(천단:원구단)에서 흰옷을 입고 백의제(白衣祭)를 행하였다. 한편 천부도(天符都)를 굳게 지키며 오직 삼신(옥황상제, 하느님)을 숭배하며, 불교(佛敎)를 신앙하였습니다. 특히 신라의 진평왕(서기 579-632년)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사가 신라의 진평대왕을 배알하고 옥으로 만든 天賜玉帶(천사옥대)를 하사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오직 천자(天子)만이 옥황상제(하느님)에게 제사를 주제(主祭)할 수 있는 제사장(祭司長)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삼국사기의 제사(祭祀)]에 대한 기록은 곧 신라의 국왕이 진짜 천자인가? 중국의 국왕이 가짜 천자인가? 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삼국사기 雜誌 第一 祭祀(잡지 제1 제사]
신라의 宗廟(종묘) 제도를 살펴보면 제 2대 南海王(남해왕) 3년 봄에 비로소 시조 혁거세 廟(종묘)를 세우고 4시에 제사를 올렸으며 손아래 친누이 阿老(아로)가 主祭(주제)하였다 제 22대 지증왕은 시조께서 탄강하신 지역의 奈乙(내을)에 神宮(신궁)을 창립하여 祭享(제향)을 올렸다. 제 36대 惠恭王(혜공왕)에 이르러 비로소 五廟(오묘)를 정하였는데 味鄒王(미추왕)은 金씨 姓(성)의 시조가 되고 太宗大王(태종대왕)과 文武大王(문무대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한 큰 전공이 있었으므로 아울러 자손 대대로 宗廟(종묘)를 훼손하지 못하게하고 친(시조 부모) 두 분을 겸하여 五廟(5묘)가 되었던 것이다.
제 37대 宣德王(선덕왕)에 이르러 社稷壇(사직단)을 세웠다. 또 祀典(사전)에 나타나 보이는 신라 국경내의 산천에 모두 다 미치지는 못했으나 천지(天地)에 제사하는 것은 대개 왕실의 제도로서 天子(천자)는 七廟(7묘)에 지내고 諸侯(제후)는 五廟(5묘)와 二昭(이소)와 二穆(이목)에 지내고 太祖(태조)는 五廟(5묘)에 제사를 올렸다.
또 말하기를 天子(천자)는 천지(天地)와 천하의 名山大川(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고 諸侯(제후)는 社稷(사직)과 名山大川(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는 제례(祭禮)가 있어서 감히 함부로 예를 넘어서 행사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壇當(단당)의 高下 遺門(고하 유문)의 內外 次位(차위)의 尊卑(존비) 陳設登降節(진설등강절), 尊爵(존작) 변豆(변두) 牲牢冊祝(생뢰책축)의 禮(예)에 대하여 추진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기록을 대략 적어 보면 1년에 여섯 번을 五廟(오묘)에 제사를 지내는데 <정월은 2일과 5일> <5월은 5일> <7월은 10일> <8월은 1일과 15일> 12월은 寅日(인일)이였다.
[신라는 산서성] 新城(신성)의 北門(북문)에서 八착(납향 제사)를 지내는데 풍년에는 大牢(대뢰: 소, 양, 돼지의 세 가지의 희생물을 갖춘 제수(祭需)를 사용하고, 흉년에는 小牢(소뢰:양과 돼지 두 가지의 희생물을 갖춘 제수(祭需)를 사용 하였다.
立春(입춘) 후의 亥(해)일에는 明活城(명활성) 남쪽 熊殺谷(웅살곡)에서 [신라]의 先世(선세)의 조상이신 염제신농(炎帝神農)에게 제사 지내고, 立夏(입하)후의 亥(해)일은 [산서성] 新城(신성) 北門(북문)에서 中農祭(중농제)를 지내었다.
또한 立秋(입추) 후 亥(해)일에는 蒜園(산원)에서 後農祭(후농제)를 지내고, 立春(입춘) 후 丑(축)일은 犬首谷門(견수곡문)에서 風伯祭(풍백제)를 지내고, 立夏(입하)후 申(신)일은 卓渚(탁저 : 하북성 탁주)에서 雨師祭(우사제)를 지내고 立秋(입추)후 辰(진)일은 本彼遊村(본피유촌)에서 靈星祭(령성제)를 지내고 있었다. 註: 하북성(河北省)의 탁록현(涿鹿縣)에 "계명산(鷄鳴山)이 있습니다. 이산을 마고산(할머니 산)혹은 삼신(山神)산이라고도 합니다. 이곳이 신라의 계림(鷄林)이 아니고 무엇인가?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은 모든 禮典(예전)을 다 조사해 보아도 [신라]는 다만 先農祭(선농제:농업의 시조 염제신농)만 있고 中農(중농), 後農祭(후농제)는 없었다. 三山五岳(삼산오악) 이하 名山大川(명산대천)은 大中小(대중소)로 나누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후략)
엉터리로 얽어 맞춘 신라 五岳(오악)의 中祭祀(중제사)
東 → 吐含山(大城郡) ---------> 동 토함산(대성군)
南 → 地理山(菁州) -----------> 남 지리산(청주)
西 → 鷄龍山(熊川州)----------> 서 계룡산(웅천주)
北 → 太伯山(奈巳郡) ---------> 북 태백산(내사군)
中 → 父岳(一云公山押督郡) -----> 중 부악(일명 팔공산 압독군)
신라의 5악(五岳)이었던 중국의 5대 명산
1. 東岳(동악)은 산동성의 泰山(태산)이고, 2. 西岳(서악)은 섬서성의 華山(화산)이고, 3. 하남성의 嵩山(숭산)을 중앙 팔공산이라 한다. 4. 호남성의 衡山(형산)은 南岳(남악)이고, 5. 산서성의 恒山(항산)이 北岳(북악)이다. 각산의 위치에 따라 五岳(5악)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