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목사/선교지 교회건축 100교회 완성의 해!
(에 1:1-4/6:16-18)
새해가 되면 정부를 비롯해서 국가의 모든 기관들이 한해의 목표를 발표하고 구성원들의 협조를 부탁하는 일들을 합니다. 갈보리교회 2011년 교회 표어는 “선교지 교회건축 100교회 완성의 해”로 정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가 왜 이렇게 세계 성전 건축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 배경을 오늘 말씀에서 찾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바벨로니아는 지금의 이라크 땅이고 페르시아는 이란 땅에 속합니다. 한 때는 바벨로니아가 세계 역사 무대의 주역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유대 나라까지 침략을 해서 BC 586년에 바벨론 나라로 유대 백성이 포로로 대량 잡혀갔습니다. 그래서 잡혀간 사람들이 모두 무엇을 했느냐? 사막에 막대한 건축 사업을 했는데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 공사를 했습니다. 그 사업장에 유대인들을 전원 투입해서 노동의 효과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들은 다 금으로 되어 있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국가적 보물인데 다 훔쳐 갔습니다. 바벨론은 영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사의 무대에서 바벨로니아가 사라지고 페르시아 시대가 왔습니다. 오늘 성경말씀 1절에 “바사왕 고레스”라고 했는데 이 바사가 곧 페르시아입니다. 고레스왕은 자기가 이렇게 천하에 여러 나라를 점령하고 보니까 유대인들이 거기 와서 많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선한 통치자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대단히 고마운 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에스라 성경이 첫 번째로 증거하고자 하는 뜻이 1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벌써 오래 전에 예레미야가 유대 백성은 70년 동안 그런 생활을 할 것이라고 예언해 왔는데 70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이 예언하신 기간이 끝났으므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의 소원이 뭐냐?”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로 돌아가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 다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여기 살아도 좋다. 마음대로 해라.” “그 다음에 예루살렘에 가서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우리들의 소원입니다.” “그렇게 하라.” 그래서 이 고레스의 유대인에 대한 선정이 포로로 70년 동안 고생하던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되돌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페르시아와 유대 관계는 아주 좋게 나타납니다. 고레스왕 원년에 유대인 해방을 선포함으로 고국 땅 귀환이 유대인들에게 이루어졌고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가지고 왔다고 성경에 나왔는데 이 사람들이 곧 페르시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데 때로는 포로가 되게 하시고 때로는 돌아가게 하시는데 마지막에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애굽에서 430년 있다가 돌아왔고, 바벨로니아에서 70년 있다가 돌아왔고, 근래 역사에서는 유대인들이 세계에 다 흩어져서 나라 없는 백성이 되었다가 지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는 늘 택한 백성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고레스에 대한 평가는 공식화되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페르시아 자국민들은 이 고레스왕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헬라인들은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은 “해방의 은혜자”라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어떻게 말했느냐? “그의 무덤을 영구보존하라.” 그래서 지금 이란의 바사르가에 고레스왕의 무덤이 석회석과 강철로 영구 보존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때가 되면 회복시키시는데 바벨로니아에 살 때 얼마나 예루살렘에 돌아가고 싶었는지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수로 공사의 노동자로 살면서 그 강변 언덕에 고국을 그리워하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이러한 시를 써서 예루살렘을 그리워한 것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제 페르시아 시대를 맞으면서 예레미야의 예언이 성취되면서 약속의 땅, 예루살렘을 오게 되었는데 이때 이들의 모습은 아주 남루한 옷차림의 유대인들이어서 약간의 거지 떼처럼 보따리 하나 매고 70년 만에 고국으로 걸어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한 살 때 그곳에 간 사람이 70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 땅에 돌아와야 될 1세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줄기차게 들은 신앙 교육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나라 민족의 노예가 되어서 고생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다. 하나님의 채찍을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돌아가서 예루살렘에 가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성전으로 재건하라. 다 부서진 것을 새로 재건해서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라. 그것이 너희가 사는 길이다.”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사실 이 사람들을 바벨로니아에서 수천 킬로 사막을 걸어온 피난민이요 나그네요 지치고 지친 일종의 민족 구걸자들이 되었습니다. 70년 동안 종살이하다 왔으니 가지고 온 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고난의 군중들에게 성전 건축이라는 무거운 짐이 과연 설득력 있는 사명이었을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부터 하라고 에스라, 느헤미야에게 집중적으로 예언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레스왕의 협조를 얻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고레스는 명령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유로이 고국에 돌아갈 것!” 여기서 ‘자유로이’라고 하는 말은 “여기 남아도 좋다. 마음대로 하라.” 그 다음에 “바벨론 정부가 과거에 노략질 온 솔로몬 성전의 금 기구들을 돌려줘라. 다 가지고 가라.” 그 다음에 “유대인들의 소원인 예루살렘 성전 재건하는데 모두가 협조하라.” 그리고 마지막에 아주 좋은 말을 합니다. “성전 건축의 비용을 국고에서 지원하라.” 그래서 1차 귀환이 이루어졌는데 이 1차에 42,000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까 뭐가 있습니까?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뭄과 흉년, 빈 터와 굶주림, 폐허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웅장했던 솔로몬 성전은 폐허가 되어 버린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BC 957년 노동자 3만 명을 동원해서 7년이나 걸려 건축했던 화려한 성전, 그 후로 약 4백 년 동안 히브리 민족의 정신적 고향이요 마음의 안식처요 하나님의 임재 현장이었던 성전이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이것부터 하라고 하나님이 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피난민들이 돈도 없고 거짓꼴이 되었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에스라, 느헤미야를 시켜서 “이것부터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까운 주변 역사 중에서 성전의 건축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미국의 큰 성전을 돌아다니면서 다 구경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저렇게 잘 살고 세계 경제 대국이 되었는데도 요즘에 대형교회가 절대로 안 나오고 있습니다. 안하는 겁니다. 언제 했느냐? 경제 대공황으로 미국이 경제적으로 고통 받던 1930~1950년인 그 20년 사이에 미국의 대형교회들이 다 세워졌고 그 유명한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1930년대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의 전은 굉장히 훌륭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미국에 대형교회들, 큰 성전들도 그 시절에 다 건축했고, 그 이후로 미국은 가장 빛난 삶을 살았던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교도들부터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지었습니다. 도망 온 청교도들이 무슨 돈이 있습니까? 인디언들한테 가서 옥수수와 감자를 얻어먹으며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여기 왔으니까 하나님 성전 먼저 짓자.” 그러지 않았습니까? 유대인들은 그때 BC 516년에 제2성전이 완성이 되어서 그 후로 500년가량 성전 중심의 삶을 행복하게 살았고 AD 70년에 다시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고 남아있는 벽 하나가 지금 썰렁하게 있어서 통곡의 벽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다 옛날 솔로몬 성전과 같은 성전을 또 지어야 한다고 모두들 말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과 접경지대라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위치에 지금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삶의 중심을 하나님의 임재성에다 두었는데 그 하나님의 임재성을 어디다 두었느냐 하면 성막 출애굽기 시절부터 두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가장 강하게 하나님의 임재성을 성막에다 두고 성막을 중심해서 세 지파씩 동서남북으로 중앙에 성막을 모신 그런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경험한 것이 있습니다. 한참 유럽에서 반유태인 운동이 일어나서 유대인들이 쫓겨났습니다. 어디로 갈 것인가? 그때 미국으로 모두들 몰려 왔습니다. 그 시절에 약 20만 명의 유대인들이 로스앤젤레스로 몰려왔는데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뭔가?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지금 그 성전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다운타운 한 복판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외에 유태인이라면 일주일에 의무적으로 6시간에서 8시간씩 이 성전에 와서 모세 오경을 배워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남의 나라에 왔는데 우리가 사는 길은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다 그곳에 모였습니다. 의무적으로 6~8시간 모세오경을 여기 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병원에서도 그들의 전통 의식 예배를 행사해야 되는데 남의 나라 병원에 와서 그런 의식을 마음대로 하기가 거북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병원도 자신들의 것을 세웠습니다. 그 병원이 세계에서 제일 훌륭하다는 로스앤젤레스 싸이나이 병원인데 세계에서 제일 기술이 좋고 제일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된 병원입니다. 전 세계 대통령들 병나면 거의 그 병원으로 치료 받으러 옵니다. 그 시절에 30년 전에 유태인 지도자들을 만났을 때 1년에 자기들은 LA에서만 5천만 달러를 모금해서 50퍼센트를 본국에 보냈는데 누가 하느냐? 교회에서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상식적 판단을 해보십시오. 그렇게 외국에서 쫓겨 온 사람들이 성전 짓느라고 얼마나 많은 돈을 썼겠습니까? 유태인들의 성전은 또 안식일 날 멀리 가면 안 된다고 해서 거리 가깝게 몇 블록마다 하나씩 지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당을 많이 짓고 본국에 그렇게 많은 돈을 보내면 그 사회에서 유태인들은 가난뱅이로 삽니까? 아닙니다. 제일 잘 삽니다. 지금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타운에 한국인들이 아주 많지만 빌딩들은 다 유태인 것입니다. 어디나 그렇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들은 유태인들입니다. 얼마나 잘 사느냐 하면 유태인들이 돈을 움켜잡으면 미국 정부도 벌벌 떱니다. 그만큼 잘 살고 아주 튼튼한 자리 매김을 한 역사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정리하십시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몇 가지 일 가운데 성전 건축은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제 주장을 강조합니다. “예배당만 짓느냐? 그러면 뭐 할 건데?” 듣지 마십시오. 그 이유는 제가 경험한 간증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46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성전 건축에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과 반대한 사람들의 경우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절대로 이것은 제가 굽히지 않습니다. “성전 건축은 많이 할수록 좋다.” 저는 그렇게 주장하는 목회자입니다.
제가 어려서 다니던 시골 교회가 있습니다. 가난한 시골의 부녀 중심의 교회라서 자력으로 도저히 건축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름철에 밤마다 일을 마치고 횃불을 밝히고 산에서 진흙을 이겨서 짚을 썰어서 넣어서 그것을 이겨서 흙벽돌을 수천 장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쌓아서 지붕만 해서 덮으면 그래도 예배 장소가 생기니까 우리 힘으로, 우리 손으로 수고한 예배당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노력 봉사밖에 할 것이 없으니까 수천 장의 벽돌을 찍어놨습니다. ‘전부 희망을 가지고 이것만 잘 쌓으면 예배당이 생긴다.’ 그런데 하루 저녁 폭우가 쏟아져서 그 수천 장의 흙벽돌이 다 뭉그러졌습니다. 그때 우리 교인들이 낙심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거기 털벅 주저앉아서 울기도 하고 하늘을 쳐다보며 원망스럽게 이야기하고 “아! 어디서 예배를 드리냐? 예배당만 있으면 살만 하겠다.” 그러며 모두 낙심이 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천사 같은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당시 서울 새문안 교회 기업인 장로님 한분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오셨습니다. 내용을 전부 살피더니 자기 사재를 다 털어서 그 당시 40평짜리 교회 건축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우리 가난한 교인들은 그 장로님이 예수님 같이 보였습니다. 천사 같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예배당이 기와로 잘 지었는지 너무나 멋졌습니다. 지금 갈보리교회가 선교지에 건축한 교회들은 다 똑같은 상황입니다. 아주 매우 귀한 사역입니다. 교회 잘 다니던 교인도 교회 건축 소리만 나면 도망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 내기 싫기 때문입니다. 갈보리교인들 어디 가서 절대 그런 거 하지 마십시오. 복을 버리고 도망가는 겁니다. 적극 참여하십시오. 여러분! 세상에서 교회 제일 많이 지은 두 사람을 아시죠? 록 펠로우와 카네기입니다. 한 사람이 5천개씩 건축했습니다. 그러면 돈 벌어서 5천개씩 건축하느라 이 사람들은 가난한가? 그 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부자입니다. 그러니까 담임 목사는 여러분과 여러분 후손이 이 땅에서 길이 번영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항상 영적으로 제시하는데 때로는 원망도 받습니다. 목표라는 것이 잘못되면 말만 앞세우는 물거품이 될 수도 있고 잘 하면 훌륭한 성취가 될 수도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목표로 세우고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것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한국 독립교회 연합회 총회장이라고 하는 직분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8년 전에 처음으로 일을 시작할 때 우리 회원 교회가 3백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임원회할 때 제가 말했습니다. “이왕 이런 간판을 걸었다면 3천 교회는 되어야지 3백 교회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랬더니 “한국에는 교파 의식들이 너무나도 강해서 그렇게까지 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고 해봅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데요.” 그런데 지금 현재 회원 교회가 3천3백개입니다. 앞으로 5천 교회까지 만들어서 제가 후임자에게 회장직을 넘겨주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저는 희망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 목표로 제가 혼자 기도해 오던 것인데 오늘 처음으로 발표합니다. 숫자로 ‘3-3-3 목표’를 저는 기도하고 오래전부터 추진해왔습니다. 이 ‘3-3-3 목표’란 뭐냐? 2015년이 되면 갈보리교회가 30주년이 되니까 거기서 ‘3’자 하나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 그때까지 선교지 교회 건축 ‘300’교회, 그리고 2010년 12월까지 선교사 파송은 ‘3,000’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3-3-3’입니다. 틀림없이 저는 이것이 우리 교인들이 협조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출석하고 계시고 몸을 바치는 교회가 이 지상에서 역사를 쓰는 교회가 되는 것을 기뻐하고 ‘아! 이것은 어떤 교회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우리 갈보리교회가 해내고 있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서 협조하시는데 “구체적 대안이 담임 목사님은 뭡니까?” 물으신다면 확실하게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갈보리교회 출석하는 모든 교인들이 십일조 운동을 하시면 됩니다. 어느 교회나 약 30~40퍼센트 정도가 십일조 생활을 합니다. 우리 갈보리 교회가 약 80퍼센트 정도만 그렇게 해주신다면 이 일은 새로운 제안이 아니고 성경에 있는 것이니까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는 계산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형편대로 하시면 됩니다. 구제금을 타서 살아가는 교인들도 지난번에 보니까 70가정으로 확인이 되어서 우리가 쌀을 보냈잖아요? 그런 분도 구제금을 타지만 십일조를 하시고 재산이 수백억씩 되시는 분들은 그대로 십일조도 하십시오. “이거 너무 많다.” 그러지만 마십시오. 그러면 얼마든지 갈보리교회는 이 땅에 우리 세대에서 분명한 역사를 쓰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왕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신앙생활 하는 거 그렇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은 구제역이라는 재앙적 사건 때문에 수십만 마리의 가축이 매몰되고 있습니다. 시작을 보면 한 사람이 외국 여행을 가서 발바닥에 묻혀온 균 하나 때문에 이렇게 나라가 다 재앙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나쁜 일인데 좋은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갈보리교회 한 교회가 이런 역사를 이루어가면 이것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성격은 본래 겨자씨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하나 때문에 겨자씨 때문에 온 세상에 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이제 2011년도 첫 주일을 맞이했는데 나이가 많으신 사람들은 ‘참 세월이 빠르다.’ 이런 생각들을 하실 것입니다. 저는 젊은 청년 시절에 제 가족의 건강을 의사와 상의하다가 거기서 아주 느낀 것이 많았는데 그것이 저에게 목회에 도움도 주었고 제 인생에 도움도 주었습니다. 제 가족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55세에, 아버지는 70세에 두 분 다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희 형님은 사고가 아닌 질병으로 28세에 세상을 떠나셨고, 그 다음에 제 위의 형들도 두 사람이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다들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 아버지,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돌아다닐 때 의사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의사 선생님이 저에게 말해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가족 히스토리이다. 너도 이 히스토리에 들어있다. 아버지, 어머니의 체질을 받고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기능이 그렇다.” 결국 나도 일찍 죽는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그러므로 건강에 주의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인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이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영향이 있는 것은 여러분이 지금 아파서 병원에 가보십시오. 의사 선생님이 묻지 않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가운데 누가 이런 병에 걸린 적이 있었나요?” 왜 묻는 겁니까? 이것이 절대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문맥을 찾아서 병을 치료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생각한 것이 ‘아! 어머니 55세, 아버지 70세에 돌아가셨으니 그 중간이면 나는 아마 과학적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체질이 60세에서 65세가 내 운명적인 시간이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신앙적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 정도까지 살 수 있으니까 열심히 일을 하자.’ 그래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회를 열심히 한 것입니다. ‘하나라도 더 해야지.’ 그러면서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아직은 안 죽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들은 다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살라.” 그래서 어떤 부자를 보고 뭐라 하셨습니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종말론적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 있는 삶이라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저는 젊은 시절에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깨닫게 된 것이 삶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포로로 잡혔던 자들이 돌아와서” 이렇게 성전을 마침내 완성시킨 것입니다. 너무 기뻐서 그날 짐승을 잡았는데 소 100마리, 수양 200마리, 어린 양 400마리, 한 지파에서 숫염소 한 마리씩 12마리로 700마리의 짐승을 잡아 봉헌식 잔치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가장 큰 하나님의 임재성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2011년 우리 100교회 선교지 건축 완성이 이루어지고 완성된 다음에는 또 100교회를 향하여 쓰임 받는 우리 갈보리교회와 갈보리 교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