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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우연히 들른 곳에서 만난 이가 아버지 친구여서 마치 고향에 온듯한 따스한 마음을 느꼈다는 내용의 시인 백석의 시 '고향'이다.
타향 생활을 오래한 시인 만큼이나 고향과 가족이 그리운 이들을 만나봤다. 새터민과 이주여성 등이다.
새터민 은하씨(가명·31·여)와 수남씨(가명·47)에게 명절은 가고 싶어도 손 닿을 수 없는 고향, 그리고 보고 싶은 가족이 사무치게 보고 싶은 날이다.
10여년전 두만강을 건넌 은하씨는 처음에는 중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싶었다.
하지만 몰래 나온 고향 땅을 다시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09년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온 이후, 정착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남몰래 눈물을 흘린 적도 많다. 특히 명절이 다가오면 더 그렇다.
"명절만 되면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나요. 여기와 북쪽의 풍속이 비슷해서 더 그런 같아요. 이맘때면 가까운 친척끼리 서로 안부도 전하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었는데…."
인민군 군관 출신인 수남씨는 북을 나온지 올해로 벌써 15년째다. 북에서 나름 상류 생활을 했다. 하지만 당시 태풍 등 자연재해가 닥쳐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식량난이 북한사회를 덮치게 되자 수남씨는 홀로 국경을 넘었다. 중국, 베트남, 태국에 이르는 동안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서슬퍼런 중국 공안이 조여오던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그토록 원하던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나라'에 왔건만, 명절만 되면 지금은 꿈 속 모습마저 희미한 '아바이와 어마이, 동생들'이 눈에 밟힌다.
"'어찌 살고 계신지, 식사는 잘하고 계시는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 속을 맴돕니다. 장남이 돼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니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수남씨에게도 소원은 '통일'이다.
"여기서 좋은 배필을 만나 자식들도 뒀습니다. 부모가 돼 보니 알겠습니다. 하루빨리 북에 계신 부모님들에게 손주들을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2010년 한국 남성과 결혼한 중국동포 루언위씨(노은옥·30)는 한국에 온 후부터 지금까지 명절 때 고향을 찾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명절이면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멀기도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좀처럼 여유가 없어요. 저를 포함해 4명 뿐인 단촐한 식구인데, 자주 찾아뵙지 못해 가끔 서글픈 마음도 들어요. 요즘 같을때 더 많이 생각나요."
현재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중국어 통·번역사로 일하고 있는 루씨는 다른 이주여성들의 마음도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서로 의지가 된다.
"한달음에 가족 품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여기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있어 힘이 나요. 제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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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여성 루언위 씨 |
전북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