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국민학교 8회 벗님들-봄 소풍, epilogue
사진 한 장을 본다.
언뜻 교복 입은 소년들이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낯선 뭇 소년들이 아니다.
모두 낯익은 얼굴들이다.
우선 내가 있다.
왼쪽 위의 첫 번째가 만식이 얼굴이고 그 다음이 수옥이 얼굴이고 그 다음 세 번째가 내 얼굴이다.
바로 단기 4293년 그러니까 서기 1960년 3월에 내가 점촌국민학교 8회로 졸업하면서 받은 ‘추억’(追憶)이라는 제목의 졸업기념 앨범 중에 끼어 있는 한 장 사진이다.
그리고 병화 얼굴이 보이고, 태홍이 얼굴이 보이고, 정두 얼굴이 보이고, 경태 얼굴이 보이고, 광석이 얼굴이 보이고, 동효 얼굴이 보이고, 학대 얼굴이 보이고, 대봉이 얼굴이 보이고, 세현이 얼굴이 보이고, 영길이 얼굴이 보이고, 규우 얼굴이 보이고, 선용이 얼굴이 보이고, 진성이 얼굴이 보인다.
그 이름을 잊어버린 얼굴도 몇 있다.
놀라운 것은 같은 창가에서 사진을 찍었으면서도 한 반인 줄을 기억하지 못한 얼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수옥이가 그렇고 ,병화가 그렇고, 정두가 그렇다.
한 반으로 당연히 가까이 지냈을 것인데도, 그동안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으니, 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지없다.
적어도 10여 년 전에 내가 귀향 준비를 할 그 즈음에 만났던 정두가 유독 나를 반겨줄 때 알았어야 했고, 아내가 지난해에 문경읍내 사물놀이 패에 끼어들어 난타를 배우기 시작했을 즈음에 오랫동안 사물놀이에서 북을 쳤던 수옥이가 그 박자를 기록한 노트를 아내에게 선물했을 때 알았어야 했고, 지난해 가을 소풍에 참여하겠다고 부산에서 먼 길을 올라온 병화가 뭔가 섭섭한 분위기로 발걸음을 되돌릴 때 알았어야 했다.
이번의 봄 소풍을 앞두고 그 앨범을 다시 꺼내 보면서, 내 뒤늦게 그 사실을 확인했다.
살아생전에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그 추억의 친구들이 이번 봄 소풍에서 다시 만났다.
그래서 따뜻한 우정의 어깨동무를 할 수 있었으니, 나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노래 한 곡이 입에 실렸고, 마음 내키는 김에 이 눈치 저 눈치 안 보고, 그대로 불러버렸다.
우리들 봄 소풍이 막바지였던 2024년 5월 28일 화요일 오후 4시쯤 해서, 문경새재 옛 과것길에, 영강 그 강가의 맛집인 ‘순희네 꿈’에 이어, 마지막으로 들른 삼강주막 그 무대에서 그랬다.
내 부른 노래, 부드러운 음성의 가수 유익종이 부른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라는 포크송이었다.
다음은 그 노랫말 전문이다.
푸르던 잎새 자취를 감추고
찬바람 불어 또 한해가 가네
교정을 들어서는 길가엔
말없이 내 꿈들이 늘어서 있다
지표 없는 방황도 때로는 했었고
끝없는 삶의 벽에 부딪쳐도 봤지
커다란 내 바램이 꿈으로 남아도
이룰 수 있는 건 그 꿈속에도 있어
다시 올 수 없는 지금의 우리 모습들이여
다들 그런 것처럼 헤어짐은 우릴 기다리네
진리를 믿으며 순수를 지키려는
우리 소중한 꿈들을 이루게 하소서
세상 가장 빛나는 목소리로
우리 헤어짐을 노래하게 하소서
세상 가장 밝은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남을 노래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