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허무 인식 혹은 기원의 지향 --오희창 시집 『날고 싶다』 김 송 배 (시인 .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나는 알았다’라는 인식의 정점 현대시의 지향점인 주제의 투영은 대체로 자신의 궤적(軌跡)에서 각인된 체험의 통각(統覺)에서 추출한 진실이 창조적으로 발현되는 경향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는 한 시인이 선험적(先驗的)이거나 생(生)에서 접맥한 모든 삶의 지향점이 인본주의(humanism)에 정점을 두고 인식과 성찰의 인생관을 주제로 정립하여 발전하기 때문에 다수의 시인들이 선호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주제는 작품의 중심적인 골격으로써 인생의 도덕적인 명제일수도 있어서 현실적인 묘사를 필요로 한다. 작품의 중심 사상이나 정서가 다양하게 현현되는데 그 시인이 체득한 체험에서 새롭고 지적으로 창조해낸 진실이라는 것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 삼호당(三乎堂) 오희창 시인이 상재하는 제4시집 『날고 싶다』에서도 이와 같은 인식의 원류에서는 그에게 내재된 한생의 심연(深淵)에 흐르고 있는 진실이 용암으로 분출하고 있다는 시법(詩法)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이미 ‘책머리에’에서 ‘이제라도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훨훨 날아다니며 바람소리가 무슨 뜻인지도 알아보고 너울너울 춤을 추는 숲은 얼마나 즐거운지도, 구름은 바람을 만나야만 변덕을 부리는 지도 헤아려야겠다. 그리고 뜨는 해 지는 해 태양의 온도가 다른지 같은지도 알아보고 별들이 반짝임은 무슨 뜻인지도 살펴보고 하늘 끝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아야겠다.’는 성찰의 메시지를 띄우고 있어서 그가 ‘날고 싶’은 이미지를 소상하게 적시하고 있다 단풍잎이 발갛지만 야하지 않고 지천으로 달렸지만 곱기만 한 연유(緣由)를 나는 안다 진눈개비 그친 오후 코끝이 싸하고 귀때기 얼얼한 겨울 숲 속을 헤맨 끝에 꽃피고 열매 달리는 이파리 일곱 쪽이 하나로 발개진 단풍잎을 보고 꽃도 열매도 있고 없고 좋고 싫음도 가리지 말아야 뭇 생명들이 어울려 사는 것을 일탈을 꿈꾸고 약탈을 일삼는 무리들 탐욕만 버리면 고운 세상 오는 것을 타향살이 털어내야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제야…. --「나는 알았다」 전문 우선 이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울려서 살아가는 ‘뭇 생명들’의 애환이 절실하게 적시되어 있어서 오희창 시인이 인식한 내면에는 자연의 환희와 그 시간성에 따라서 변하는 자연의 향기가 바로 우리 인간들과 접목하면서 그가 인식하는 ‘일탈을 꿈꾸고 / 약탈을 일삼는 무리들 / 탐욕만 버리면 / 고운 세상 오는 것을 / 타향살이 털어내야 /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제사 인식하게 되는 시적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시법은 그가 ‘아! / 이제야 알겠네 / 아픔도 그리움도 / 벙글기 전에 / 텅어야 하는 것을(「이제야」중에서)’ 이라는 어조와 같이 그가 평소에 지론(持論)으로 간직한 인식의 범주(範疇)에서 허무의식이 잠재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다시 그는 ‘놓고 지우면 시원하고 / 움켜잡고 그리면 / 달콤한 맛, 그 맛으로 / 세월은 곰삭고… / 다 그런 게지.(「다 그런 게지」중에서)’라는 긍정적인 그의 관념적인 어조를 확인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정립되어 있는 생활 철학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그가 깊게 담고 있는 허무의식은 ‘흙은 / 씨 뿌리면 키워주고 / 가고 오는 길 내어주고 / 묻어주면 삭히며 살라하네 // 물은 / 모든 생명 찾아가 / 어질게 키우고 살피면서 / 순리대로 서로 돕고 살라하네(「지수화풍」중에서)’와같이 현실을 수용하고 살아가라는 명제를 실현하려는 의식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다시 흙과 물 이외에 ‘불은 / 이글거리는 분노도 / 욕망도 다 털어버리고 / 지혜의 등불로 살라하네 // 바람은 / 구름 한 점 일어났다 / 사라지는 게 인생인데 / 걸림 없이 자유로이 살라하네.’라는 불과 바람 등이 서로 융합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는 수사법을 적용하여 인식의 지향점과 그 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순환」중에서 ‘핏줄이 터지는 아픔일지라도 / 눈보라 살바람의 한풀이를 / 무심하게 끌어안으니 / 주고받을 게 없어 / 텅 비어버린다’거나 작품「바다와 하나 되기」중에서도 ‘애지중지 싸들고 다닌 / 보따리 풀어 / 하나 둘 / 벗어 던진다’라는 허무의 의식으로 현현하는 시법을 대할 수가 있다. 이렇게 허무는 흔히들 인생무상이니 염세주의의 산물이니 하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허무는 일찍이 파스칼이 그의 글 「팡세」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자연 속의 인간의 존재는 무한에 비하면 허무하고 허무에 비하면 일체라고 한다. 그래서 허무는 무와 일체 사이의 중간물이라는 설명이다. 오희창 시인의 인식에는 존재에 근원을 두고 자연과의 일체감이 그의 내면에서 성찰이라는 대단원을 형성하면서 감정(emotion)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의 세계는 어떤 관련된 새로운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인들은 이 시법을 자주 응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2. 불심(佛心)과 동행하는 기원의식 오희창 시인에게서 다시 감응(感應)할 수 있는 것은 불심을 기초로 하는 심리적인 정화작용이 그의 절대적인 성찰로써 카타르시스(catharsis)를 탐색하고 있다. 그가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면 맑은 영성으로 창작하게 되고 이런 작품이라야 혼돈과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영혼이 감동하고 정화되어 지혜와 용기로 새롭고 풍요로운 생활을 되찾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활과 창작의 중심체계를 명징(明澄)하게 정립하고 있어서 그의 의시의 흐름에는 ‘부처와 중생’이 동행하거나 공존하는 지향점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한 생각이 세상을 불집으로 만들지만 그 속에 먼저 들어가 재가 되는 바가지 차면 곳간 채우고 태산같이 쌓고 바다같이 넓히는 사이 그 속에 파묻혀 팔딱거리는 안에 두고 밖에서 찾고 빛 속에 살면서 그늘에 숨어 영원히 살 것 같이 날뛰는 가는 길 인연 따라 다르듯 멋대로 천당 짓고 지옥 만들어 제 발로 들고 나며 울고 웃는 이들 중생이야! 분명 중생들이야- 아니야! 그들도 헐떡이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부처지 암 그렇다마다. --「부처와 중생 사이」전문 그렇다. 오희창 시인의 시적 원류에는 항상 ‘중생들’이 갈구(渴求)하는 고뇌와 번민이 상존(常存)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정화하거나 화해하는 불법(佛法)의 원용(援用)으로 그 해법을 탐구하는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결론적으로 ‘그들도 / 헐떡이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 부처지 암 / 그렇다마다.’라는 의미심장하게 그가 설정한 진리가 바로 작품과 상관하면서 부처님이 설법하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실천을 위한 그의 심안(心眼)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그의 사유에는 천당과 지옥의 상반된 상황을 설정하고 ‘중생들’이 ‘그 속에 먼저 들어가 / 재가 되’기도 하고 ‘그 속에 파묻혀 / 팔딱거리’거나 ‘영원히 살 것 같이 / 날뛰는’ 다양한 심저(心底)의 변화를 그는 측은(惻隱)하게 분사(噴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색성향미촉법」중에서는 부처님이 무상(無上)대도(大道)를 깨시신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육진(六塵)을 통해서 자신과 중생들에게 나누려는 메시지가 우리의 눈길을 멈추게 한다. 그는 눈과 귀, 코, 혀, 몸 그리고 생각(이것은 眼耳鼻舌身意-六根에서 空을 취함)이라는 우리의 신체의 오관(五官)과 정신(意)을 그에게서는 ‘살라하네’와 같이 ‘하네’라는 화법(話法)으로 진정한 삶의 지표를 적시하고 있다. 그는 대체로 ‘눈=높게 푸르게 / 비우고 살라하네’, ‘귀=바위같이 ? 흔들리지 말라하네’, ‘코=시궁창 냄새에도 / 찡그리지 말라하네’, ‘혀=가릉빈가처럼 / 살라하네’, ‘몸=봄빛처럼 포근하게 / 살라하네’ 그리고 ‘생각=바로 그 자리에 / 머물라하네’라는 등의 어조로 불심괴 연결되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제공하고 있어서 우리의 공감을 흡인(吸引)하고 있다. 이처럼 불심과 동행하는 작품은 「무상 Ⅱ」「범종소리」「손이나 씻게」「할! 한방으로」등에서 그가 진실로 구현하려는 진정한 인간의 가치관 정립의 지표를 묵시적으로 제시하는 수양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햇살이 추녀 끝을 베어 문 고드름을 반짝이는 아침 활~짝 핀 눈꽃이 흘리는 시린 향기 코끝을 때린다 해도 낭만을 뜨겁게 구르다가, 뒹굴다가 사라진 순정을 찾아 눈 오는 날이면 하늘 땅 가득 핀 눈꽃처럼 하~얗게 피었다 사라지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잔문 다시 오희창 시인은 그가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하는 중요한 기원의 의지가 생성하고 있다. 위의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법이나 화법이 ‘.....싶다’라는 보조 형용사를 사용함으로써 그가 간구(懇求)하는 새로운 삶의 세계나 정신을 형성하고자 하는 간절한 성취의 관념적 언어가 어떤 욕구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사라지고 싶다’는 어조는 앞에서도 살펴본 허무의식과도 상통하는 정신의 소통이다. 이러한 통섭(通涉)의 욕구는 허(虛)를 탐색하면서 ‘향기’와 ‘낭만’과 ‘순정’ 등이 사라지는 무(無)의 세계를 염원하고 있는 것이다. 오희창 시인이 이 시집 제호가 『날고 싶다』 인 것을 살펴보면 ‘올해 내 나이 산수(傘壽)에 이르고 보니 모두 다 털어버리고 훨훨 날고 싶어진다’는 그의 의식이 바로 이러한 ‘싶다’의 소망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작품「방랑자이고 싶다」중에서는 ‘오직 / 그리움 하나 가슴에 품고 / 시공을 넘나드는 / 방랑자이고 싶다 / 눈물이 / 바다처럼 / 흐를지라도.’라거나 작품「지하철 망상」중에서 ‘차라리 / 화탕지옥(火湯地獄)에 들어가 죗값 사른 후 / 산뜻하게 돌아와 / 붉어지는 / 목련이고 싶다.’, 그리고 작품「흐르는 눈꽃」중에서도 ‘바라만 보고 서 있는 / 나도 / 흘러내리고 내려 / 흔적 없이 / 너를 따라가고 싶어 / 가고 싶어.’라는 간절한 어조가 그의 염원으로 승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모정(母情)과 가족애 그리고 향수 오희창 시인의 사유 그 심연에는 일생 동안 불망(不忘)의 이미지가 그의 뇌리에서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다. 그것은 모정과 가족애에서 창출하는 사랑의 메시지이다. 그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에 대한 정한(情恨)으로 시적 상황이 설정되고 회한(悔恨)의 정감으로 전개하는 시법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대체로 어머니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는 소중한 새 생명의 모태(母胎)로서의 탄생이며 생명의 유지에 대한 보답으로 현현하게 되는데 이는 모성(母性)이 중심축으로 창조되는 지혜와 교훈을 내포(內包)하는 특별한 상징과 비유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첼로의 낮은 소리에 실려 오는 밤비소리는 어머니 정갈스런 말씀 때로는 솔바람으로 봄 향기로 가슴을 헤집고 선 어머니 초상 하늘 넘치는 사랑으로 불효를 덮어 주신 어머니! 흐르는 이 밤 눈물만 따라갑니다. --「어머니 Ⅱ」전문 여기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불효가 주제로 발현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이 이를 덮어주고 있다. ‘밤비소리는 / 어머니 / 정갈스런 말씀’이며 ‘봄 향기=어머니의 초상’이라는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통해서 그 때에 다하지 못한 효도가 이제는 ‘눈물만 따라갑니다.’는 어조로 통감(痛感)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인들은 어머니에 대한 시를 많이 창작한다. 이는 어머니가 내 생명의 원천이며 생명의 근본적인 본향(本鄕)이라는 개념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의 체험(어머니에 대한)은 영원한 시적 진실을 제공하여 존재의 이유를 적시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못한다. 이처럼 어머니에 대한 오희창 시인의 의식은 작품「틀니」중에서 ‘석류 알처럼 빛나던 치아 / 다 빠져 합죽이 되고 / 복숭아 빛 볼에 / 주름살 자글거림 / 세월 탓만은 아닐 터’라는 애증(愛憎)의 세월을 탓하는 불효의 정감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작품 「고백」중에서도 ‘부처님 전에 매달린 / 어머님 공덕에 / 이사관 청장이라도 하니 / 반분이나마 풀리셨는지요 / 동생들까지 거두었다면 / 오죽이나 좋았을까요 / 평생 원죄로 알고 삽니다’라는 고백의 어조로 ‘평생 원죄’가 불효의 이미지로 현현되어 모정의 깊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 밖에도 가족애에 관한 이미지가 형상화하는 작품을 많이 대할 수가 있는데 부모님에 대한 불효의 정감도 작품 「속울음」중에서 ‘철이 들어 자식 노릇 / 한 번 하려고 하면 / 이미 세상에 안 계신 분들 / 또한 부모님이다 / 어찌해야 불효를 면할까? / 때 늦은 참회를 하면서 / 속울음을 운다.’거나 아내에게는 작품 「나의 태양」중에서 ‘아내는 / 안방의 해다 / 집안에는 / 해가 떠있어야 / 행복의 성곽(城郭) / 창조의 요람이 된다’는 어조로 사랑과 위무(慰撫)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떠나온 요람(搖籃)이 평생 발목을 잡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아! 내 고향 가루개 나를 부르고 있다 햇살 부서지는 향기로 언 몸 녹여주는 안방으로 나를 오라한다. --「이 순간 고향은」중에서 오희창 시인에게는 이와 같은 모정과 가족애의 원류는 향수의 이미지에서 창출된 고향과의 교감에서 그의 정서나 사유의 진폭은 현실과 대칭을 이루면서 확산되고 있다. 그는 ‘서울 변두리’에서 ‘내 고향 청원’과 ‘화봉산 기슭’ 그리고 ‘내 고향 가루개’까지 연상하는 이미지는 그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의 향수는 작품 「고향을 퍼먹고 산다」중에서도 ‘객수(客愁)에 훌쭉한 볼때기 /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 나그네 흔들리는 다리 / 힘이 뻗친다 // 그래서 오늘을 걸어간다 / 꿈길을 걷는다 / 고향을 헤맨다.’는 오매불망(寤寐不忘)의 내면에서 감로수처럼 샘솟는 이미지의 형상화는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4. 꽃 향기와 ‘그리움’의 서정성 다시 오희창 시인은 그의 서정적인 심성을 투영한 시심을 배제할 수 없는 서정 시인이다. 서정적 자아를 구현하는 시인들은 작품 속에 화자(persona)를 감춰두고 그 시점(視點-point of view)에서 물리적, 정신적으로 객관화하는 특성을 갖게 된다. 우선 그는 친환경적인 착목(着目)에서 동화(同化)한 자연 현상에서 발현하는 이미지가 돋보이는데 이는 우리들의 시각(視覺)에 반추되는 자연의 변화가 곧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취하는 시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야에는 많은 자연을 응시(凝視)하지만 우선 꽃에 대한 서정적인 사유가 깊게 작용하고 있다. 그는 ‘꽃이 좋아 / 꽃 같은 사람 / 더 좋아 / 가슴속 출렁이는 / 아름다움 시들지 않아 / 땀구멍마다 /향기 솟지 / 색깔 따라 / 요리조리 찾아다니며 / 입맞춤하는 사람 /꽃처럼 살아 / 심술궂은 세상 / 향내로.(「꽃이 좋아」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꽃=사람’이라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탐색하고 있다. 한겨울 가지에 매달린 솜털주머니 입을 벌린다 봄을 활짝 연다 청상과부 치맛바람처럼 시린 순정이 하얗게 핀다 올해도 첫정만 우뚝 세워놓고 자분자분 가려는지 멍든 첫사랑 울근불근하기 전에 꽃보라 날리며 떠나는…. --「백목련 Ⅱ」전문 그는 이처럼 ‘한겨울’과 ‘봄’이라는 시간성에서 변화하는 사물의 외형(外形)이 우리의 감성(感性)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첫정’과 ‘첫사랑’이라는 봄의 시발점이 ‘백목련’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이는 그가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관념의 저변에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공존하게 되는데 만유(萬有)의 자연 현상들에게 연민의 언어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꽃을 통한 그의 서정성은 무한하다. 작품 「꽃이 피기를」중에서 ‘꽃망울이 부풀려는지 / 바짝 마른 나뭇가지 / 몸살을 한다’거나 작품 「꽃빛으로 물든 한숨」중에서도 ‘눈 내리고 / 바람 부는 날 / 멀리멀리 떠나던 뒷모습이 / 눈물샘으로 남은 / 지금’이라는 어조에서 오희창 시인이 발견하는 진실은 꽃의 아름다운 침묵 그 매력에서 사랑과 그리움을 재생하는 상상력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움이 퉁퉁 부어오른 보름달 산마루에 누워 훌쩍거리는 눈물 숲 속에 찰랑거리면 홀쭉해진 하현달 빈가지에 실낱처럼 걸리지 남은 연정(戀情) 한 방울마저 떨어지면 허기진 하현달 고인 눈물 다 들이켜 호수가 되면 별은 참방거리고 구름은 놀다가지. --「호수가 된 만월」전문 여기 자연 사물에서는 ‘그리움이’ 절정을 이룬다. 호수에 담긴 ‘남은 연정’과 ‘허기진 하현달’이 시적 상황으로 설정되어 분위기에 우선 압도되는 서정의 원류를 이해하게 되며 여기에 ‘보름달’과 ‘별’ 그리고 ‘구름’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정경(情景)에서도 서정의 멋과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오희창 시인의 서정은 다양하다. 그는 ‘산촌의 밤’과 ‘전원일지’ 등 현장 중심에서 투사(投射)하는 작품과 그 현장에서 목도(目睹)된 사물 ‘노송’과 ‘단풍’, ‘낙엽’ 등에 대한 순정적인 정서의 발현과 함께 ‘눈꽃’, ‘눈 내리는 밤’, ‘겨울잠’, ‘’낮달 등 시간성에서 탐색하는 서정적 ‘정인(情人)’도 간과할 수 없는 그의 지향성을 함축하는 시법임에 틀림 없다. 이제 오희창 시집 『날고 싶다』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는 대체로 자아인식의 정점을 확인하면서 거기에서 분출한 고뇌와 갈등에 대한 기원 의식 그리고 모정, 가족애, 향수 등과 함께 그가 간직한 서정성에서 그리움으로 변전(變轉)시키는 시법이 우리들을 공감케하는 중요한 동인(動因)이 되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바와 같이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모자라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고 듣는 사람의 영혼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호라티우스의 「시론」을 다시 한번 새겨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볼테르의 명언과 같이 시는 영혼의 음악이라는 시정신이 더욱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오희창 시인도 위대한 영혼과 융합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분노와 탐욕 어리석음까지도 / 털어내어 용서하고 / 알몸으로 기다(「순환」중에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집 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