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장애가 있는 플로리스트이다. 정신장애를 가진 플로리스트라면 흔하지 않을 것이다. 플로리스트라는 멋져 보이는 단어보다, 정신장애가 발병하게 된 이유와 그 후의 생활을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2003년도에 2년제 전문대학을 졸업. 정신장애가 발병, 그 이유는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친구들 간의 경쟁, 미움 때문이었다. 그 후 정신장애사회복귀시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거쳐 가면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였다. 꾸준히 하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의 일자리를 전전하였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 미래형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 정착해 사무보조 근로장애인으로 근무하고 있다.
꽃꽂이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내일배움카드를 만들어 재직자과정을 통해서이다. 2018년 9월 플로리스트 실무 향상과정을 시작으로 2019년 프렌치 스타일 플라워, 꽃다발&꽃바구니, 식물연출(미니가드닝/그린테리어) 등을 수료했다.
나는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그래서 주로 야간반에 꽃꽂이 수업을 들었다. 매일 밤 꽃다발과 완성된 꽃꽂이 작품을 집에 들고 가면 어머니께서는 기뻐하셨다. 꽃 주인은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미소는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내가 들었던 꽃꽂이 수업 중 가장 좋았던 수업은 플로리스트 실무시간에 수국으로 부케를 만들었던 시간이다. 꽃꽂이 선생님과의 첫 만남도 이 수업에서였다. 장애인지방경기대회를 나가게 된 것은 학원에서 게시된 포스터였다. 선생님께 문의했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대회까지 나가게 되었다.
2019년에 3개월간 대회준비를 시작. 장애인지방경기대회에서 운 좋게 동상을 수상하였다. 2020년에는 꾸준히 훈련하여 은상을 수상하였다. 장애인지방경기대회를 나갔을 때 제일로 감동받았던 적은 청각장애인이 시상식에서 수화로 애국가를 부를 때였다. 나의 마음이 뭉클하였다. 나와 같이 2019년도에 장애인지방경기대회에 화훼장식부문에 나왔던 휠체어를 타신 장애인분은 최선을 다해서 꽃꽂이를 하시는 모습에 나는 큰 도전을 받았다. 각자 장애의 유형을 떠나서 자신만의 무대를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내가 꽃꽂이를 꾸준히 하게 된 이유는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미소 때문이었다. 식물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 국비지원 덕분에 무료로 꽃을 만질 수 있었다. 꽃을 오아시스에 각도에 맞추어 꾸밀 때마다, 꽃다발이 만들어지기 전에 구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완성되면 뿌듯함을 느낀다. 꽃만이 가진 색상과 향기가 난 참 좋다. 여러 꽃을 다루면서 꽃의 특성도 알게 되고 배워가는 과정이 참 좋다. 꽃꽂이를 하면서 알게 된 선생님과 다른 장애인들이 나를 배려해주시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정신장애가 있지만 손으로 꽃을 꾸밈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다. 꽃을 만지는 동안은 나의 아픈 상처가 치유되는 것 같다. 꽃이 자신을 치료해준다. 나의 손재주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싶다.
나는 플로리스트~
앞으로도 2021년도 대회 준비를 하면서 나의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첫댓글 화이팅 응원합니다!!
늘항상 응원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