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나무는 칠절(七絶)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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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당진군 지도 일부. 중앙에 육지에서 바다가 시작되는 오른편에 칠절리가 보이지요?
운양 김윤식의 <면양행견일기(沔陽行遣日記)>에 나오는 기사를 한 대목 더 소개하겠습니다. 마을 이름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바로 칠절리인데요. 지금도 당진시 송산면에는 칠절리가 있지만 130년 전 운양의 일기에도 칠절리가 언급됐습니다.
……柹洞李五衛將庚翼來……持七絶洞七景帖來, 求批評, 七絶洞卽柹洞也……七絶洞詩社諸人賦七景來示, 且乞批評, 余展而讀之, 窅然神?, 如在峯月壁霞之間間佳作也, 夫作者七人固盛事也, 又與洞名相合, 豈不異哉……(1888. 5. 22)
……시동에 사는 오위장 이경익이 왔다. ……칠절동칠경첩을 가지고 와서 비평을 구했다. 칠절동은 즉 시동이다. ……칠절동시사 회원 여러 명이 지은 칠경시를 가지고 와서 비평해주기를 청했다. 내가 펼쳐 읽어보니 시가 깊이가 있고 시심이 ? 산봉우리 위에 뜬 달과 절벽 사이사이에 낀 노을처럼 아름다운 작품이다. 대체로 시를 지은 7인 진실로 장한 일을 했다. 또 마을이름과 서로 부합되니 이 어찌 기이하지 않은가?
시동(柹洞)이란 마을 이름이 나옵니다. 시동은 감나무골 정도가 되겠지요. 그 마을사람들은 ‘감나무골’이라 했을 테고 글을 했다는 사람들은 아마도 柹洞이라고 했을지 모르지요. 또 운양이 일기를 한자로 썼기 때문에 柹洞으로 표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에 칠절동이 곧 시동이라고 합니다.
칠절(七絶)의 뜻은 ‘7가지의 빼어남’인데요. 혹시 칠절동시사에 가입한 회원들이 읊은 7경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석문방조제를 축조해서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당시는 칠절동 앞은 바다였습니다. 1914년 당진지도에도 칠절리가 있습니다. 그런 곳에 살면서 봐왔던 경치 중에 7가지를 가려 뽑아서 7경시를 지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칠절리일까요?
그러나 운양은 특별한 설명 없이 칠절동이 즉 시동이라고 적습니다. 칠절동이 시동으로 불리는 연결고리가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당진의 지명유래>(김추윤, 당진문화원, 2012)를 찾아보았습니다. 칠절리를 소개하면서 자연마을명인 감나무골(七絶)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옛 면천군 송산면 칠절리(七絶里) 지역으로, 금바위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 마을에 감나무가 많이 있었는데 감나무는 일곱 가지의 절(絶)이 있다 한다. 첫째, 나무가 오래 살고 둘째, 그늘이 많고 셋째, 새의 집이 없고 넷째, 벌레가 먹지 않고 다섯째, 서리 맞은 감잎이 보기 좋고 여섯째, 아름다운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일곱째, 떨어진 잎이 커서 붓글씨 쓰기에 좋다 한다. (475쪽)
그렇습니다. 이제 시동이 칠절동이 되는 연결고리를 찾았습니다. 그 마을에 감나무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대체로, 마을명을 1차적으로 연상되는 ‘감나무골’ 또는 ‘柹洞’으로 했을 것입니다. 저의 고향인 충북 청주시(구 청원군) 현도면에도 시목리가 있습니다. 시목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감나무골로 불렀습니다. 당진시에도 시곡동이 있습니다. 물어보니 역시 감나무가 많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 마을사람들은 왜 ‘柹洞’이라고 하지 않고 칠절리를 고집했을까요? 운양은 칠절리 사람들의 성향을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보실까요.
……今七絶洞諸賢, 俱抱塊麗之才, 不市於世, 耦耕于海濱, 隣比相逐, 樂數晨夕, 或蒹葮中洲, 溯洄從之, 或越陌度阡, 枉用相存, 談笑觴詠, 迨無閒日, 其樂可勝言耶……(1888. 6. 16)
……지금의 칠절동의 여러 어진 사람들은 모두 아름다운 재주를 많이 가졌으면서도 세상에 내다 팔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서로 같이 밭을 갈고 이웃끼리 견주기라도 하듯이 서로 쫓아다니며 아침저녁으로 자주 즐긴다. 혹은 모래톱에 갈대가 자라면 물길을 거슬러 따르기도 하고 혹은 논둑과 밭둑을 넘어와 서로 안부를 묻고 이야기하며 웃고 술잔을 들고 시를 읊어 한가로울 새가 없으니 그 즐거움을 말로 다할 수 있으랴.……
좀 과장하자면, 정말 마을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이렇다면, 뭐 무릉도원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원색적으로 柹洞이라고 하지 않고 七絶洞이라고 불렀던 모양입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세상인심은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금암리에서 오도리(鰲島里) 쪽으로 가다보면 그 중간에 칠절리 안내석이 있습니다. 안내석에는 ‘범죄 없는 마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칠절리 전통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 덧붙이는 말
감나무의 네번째 절인 벌레가 먹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의아합니다. 저는 잎이 두꺼워 벌레가 먹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다음 사진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 합니다. 벌레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벌레가 감나무잎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인들이 잘못 판단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열매는 익기도 전에 벌레들이 잔치를 벌이는데 감은 그렇지 않습니다. 익지 않은 감은 떫어서 벌레가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이 점을 감나무의 네번째 절로 삼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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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 8.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필경사 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