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7 일 일요일 소백산
고인돌 님, 사니조은 님 부부 그리고 파라텍소미스트 회원님들과 함께
산행코스 : 새밭 – 늦은맥이 – 상월봉 – 국망봉 – 원점회귀
산행거리 : 약 16 km 산행시간 : 약 7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2098164
거리 16.2 km
소요 시간 8h 47m 44s
이동 시간 7h 16m 55s
휴식 시간 1h 30m 49s
평균 속도 2.2 km/h
최고점 1,440 m
총 획득고도 805 m
난이도 보통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수요일에 비가 그쳤다. 지난주부터 제주도 영실코스에 털진달래가 만발했다는 기사가 올라와 주중에 하루 휴가를 내서 제주도에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여러가지 여건상 올해도 제주도 한라산의 진달래 구경은 그저 신문기사로 대신해야 했다. 일주일 중에 목요일 하루 햇빛이 좋고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었다. 고인돌 님께서 소백산에 미리 답사를 다녀오면서 카톡에 올린 야생화가 이번 주말 산행지를 미리 예고한다.
전에는 기껏해야 철쭉 축제때 한 번 그리고 겨울 눈꽃 산행 한 번 다녀왔던 소백산이다. 그리고 작년에는 백두대간 종주산행으로 소백산을 걸었으니 다 합쳐봐야 다섯 번 정도 다녀왔던 산인데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찾아가는 산이고 앞으로 더욱 자주 찾아가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드는 산이다.
천둥산 휴게소
안양에 사는 사니조은 님의 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 6시 30분에 도착하여 내 차를 주차해놓고 신갈 고속도로 버스정류장에서 고인돌 님을 태우고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평택 제천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천둥산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사니조은님의 부인께서 준비한 김밥과 과일로 미리 에너지를 보충한다. 옛날 고구려가 지배했던 땅이었슴을 보여주듯 휴게소에는 북한에 있는 고분의 벽화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또 고구려 기마병의 늠름한 모습을 생동감있게 만들어 놓았다. 다시 제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북단양 나들목으로 빠져나간다.
5번 국도를 거쳐 다시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도담삼봉 앞을 지나 고수리를 거쳐 천동계곡 주차장으로 향한다. 석회암 동굴로 유명한 고수동굴이 있는 곳이 단양군 고수리다. 이 곳 지리에 대해 해박한 고인돌 님이 고수리 지명유래에 대해 설명한다. 이 지역의 강물(남한강)이 구불구불 굽이져 흐르는데 우리 옛말에 구부러진 것을 ‘고수’라고 했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말이 ‘고수머리’다. 고수머리는 곱슬머리와 같은 뜻인데 이 고수리 지명이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의 모양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설득력있어 보인다.
천동 주차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대전과 대구에서 각가 차를 타고 온 파라 꽃탐방팀 회원들이 도착한다. 우선 차 한 대는 이 곳에 주차하고 모두 어의곡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 계획은 어의곡에서 을전(乙田 – 새밭)을 거쳐 늦은맥이로 올랐다가 국망봉과 비로봉을 거쳐 천동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날씨는 청명하고 몸 컨디션도 좋다.
어의곡으로 가는 길에 지나치는 가곡리에 관해 고인돌 님께서 지명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가곡’이라는 말은 이 지역이 고구려의 변두리 즉 가(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계곡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얼핏 흔히 쓰는 한자어를 연상하여 아름다운 계곡(佳谷)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처럼 순수한 우리나라말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는 것도 꽤 의미있고 흥미있는 일이다.
어의곡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옛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왕에게 옷을 하사하였다고 전하는데 이는 고구려 왕이 신하의 나라인 신라왕에게 고구려 복식에 맞는 의관을 보냈다는 뜻이다. 이 때 옷을 지은 곳이 바로 어의곡(御衣谷)이라는 설이 그 첫 번째다. 산행을 하면서 지명의 유래에 관해 관심을 가지면서 한자와 우리 고유어가 혼재되어 있는데다 한자라 하더라도 발음이 같은 단어가 많이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의곡의 유래에 관한 두 번째 설(說)은 우리 고유어를 한자화한 것이다. 이 마을이 소백산에서 흘러내리는 두 개의 계곡이 어우러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므로 ‘엉이실’ 또는 ‘응실’이라 부르다가 한자화하면서 어의곡(於儀谷)이 되었다는 설이다.
10시 20분경 어의곡에 도착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한 동안 야외활동이 멈칫했지만 이제 봄도 야속하게 지나가고 여름으로 가는 문턱에서 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보니 산악회버스 운행도 시작되었나보다. 주차장엔 승용차가 가득 주차되어있고 대형 버스도 보인다. 우리는 새밭계곡으로 올라갈 계획이기에 차를 새밭교 아래 팬션에 주차했으나 주차장을 새로 포장하는 중이라며 차를 옮기라 하여 좀 더 아래쪽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하고 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단체 산객들이 들이닥친다. 30여명 되는 큰 무리가 시끌벅적 떠들면서 올라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이정표를 보면서 한참 궁리하는데 얼핏 보기에 원래 계획했던 코스가 아닌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어의곡 계곡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잘못 왔다면서 다시 어의곡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간다. 한 차례 들어왔던 물이 빠지고 난 뒤의 고요함이 좋다.
유럽나도냉이
새밭계곡입구
나도국수나무
고광나무
야생 오미자
물참대
대구에서 올라온 파라 꽃탐방 팀 김회장님과 동행하신 회원 한 분 그리고 대전에서 오신 총무님과 우리팀 네 명 이렇게 일곱 명이 호젓하게 벌바위골을 오른다. 늦은맥이재까지 4.5 km 완만한 경사길이다. 2016년 이맘때 비로봉에 올랐다가 국망봉을 거쳐 이 계곡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지만 당시 산악회 버스를 타고 왔던 관계로 잰걸음으로 내려왔기에 자세한 풍경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경사가 완만하고 걷기에 편안했다는 느낌이 남아있다.
예전의 계곡길을 우회하는 다리가 새로 놓여졌다. 다리 건너 리끼다 소나무가 심어진 곳은 옛날 화전민들이 농사짓던 땅이 아닐까 한다. 내려오는 길에 확인한 결과 이 곳은 계단식 밭이 있었다. 나는 새밭마을이라는 이 마을 이름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달리 을전(乙田)이라는 한자이름을 알지 못할 때였기에 나는 새로 일군 밭(新田)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했었다. 고인돌 님은 이 곳에 산까치(어치)가 많이 살고 있어 새밭 즉 을전(乙田)이라고 부른다고 해석하신다. 이미 지명으로 을전이라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새로 일군 밭이라는 해석이 무색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런 숲 속에 새가 많다고 하여 새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 안된다.
새로 생긴 다리
이 소나무 숲은 예전에 밭이 있던 자리다.
길 가에 풀꽃이 많이 나 있으니 발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다. 미나리냉이와 산장대는 꽃이 져가고 있고 광대수염과 둥굴레는 이제 꽃이 피고 있는 중이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하는 꽃탐방은 신선놀음이다. 급할 것도 없다. 가다가 시장하면 잠시 앉아 배낭 가득 들어있는 음식을 꺼내먹으면 된다.
산길을 따라 차례차례 봄꽃이 도열해있다. 제일 먼저 선보인 것은 감자난초다. 난초과에 속하는 노란 금빛 감자난초는 뿌리가 감자처럼 구근으로 생겼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겨우내 댓잎같은 푸른색 잎을 눈속에 펼쳐놓고 지내다가 이렇게 5~6월이 되면 꽃대 하나 쑥 올리고 예쁜 꽃을 피운다. 내가 처음으로 이 감자난초를 본 것이 바로 2016년 5월 늦은맥이에서 내려오는 이 길이었기에 이 소백산에서 보는 감자난초는 남다르다. 감자난초 군락지에서 조금 더 오르다가 바위 앞에 난 것을 또 만났는데 아무래도 2016년에 보았던 그 감자난초꽃이다.
광대수염
산장대
은대난초
감자난초
이제까지 꽃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삿갓나물꽃도 이 곳에서 보니 아름답다. 고도가 높아지니 미나리냉이꽃도 싱싱하게 피어있고 물이 흐르는 곳에는 꽃황새냉이도 하얀 꽃을 가득 피웠다. 조릿대 사이에서 큰구슬붕이 한 포기가 보이길래 귀한 임 만난 듯 정성들여 사진을 찍고 오르다보니 여기저기 온천지에 큰구슬붕이꽃이 피어있다. 홀아비바람꽃도 꽃잎이 지고 난 자리에 씨앗이 맺혀 있더니 조금 고도를 높이자 새로 핀 꽃이 흐드러진다. 덩굴개별꽃은 제 철을 만난 듯 구석구석 하얗게 피어 있다.
이번 행선의 모양은 이렇다. 맨 앞에 사니조은 님 부부가 가고 그 뒤에 고인돌 형님이 지난 번에 보아둔 귀한 꽃을 탐색하면서 따르고 그 뒤에 내가 길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걸어 오른다. 내 뒤쪽에 파라 꽃탐방팀이 눈에 보이는 야생화를 모두 세세하게 사진에 담으면서 올라온다. 대략 이런 모양세인데 실제로 앞과 뒤의 차이가 그리 멀지는 않다. 한참 오르다보니 앞서가던 고인돌 형님이 서서 기다리고 계신다. 뭔가 발견하면 으레 이렇게 기다렸다가 가리켜 주신다.
“이 근처에 연령초, 동의나물 그리고 큰앵초가 있을 거 같애” 배낭을 벗어두고 쉬는 겸 해서 주변을 수색한다.
아니나 다를까, 고인돌 형님은 이미 연령초 여러 포기를 보아 놓았다. 작년 방태산에서 처음으로 연령초 꽃을 보았다. 긴 판초 우의를 덮어쓴 기사(騎士)처럼 늠름한 모습이다. 뿌리줄기가 비늘로 덮여 있으며 백합과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 풀의 뿌리를 약으로 복용하면 수명이 연장된다고 하여 연령초(延齡草)라 부르는데 이 한약은 주로 통증이나 소화기 장애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땅에서 올라온 줄기에 커다란 잎 세 장이 돌려나고 그 위에 꽃 받침이 세 장 그리고 꽃잎이 세 장이다. 이처럼 잎과 꽃받침과 꽃잎이 모두 3.3.3.이라서 학명도 Trillum 이라 부르는데 어째서 이 연령초의 생약명은 모두 우아칠 芋兒七, 옥아칠 玉兒七, 어아칠 魚兒七, 불수칠 佛手七 처럼 7자가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근처에는 노란꽃을 피우고 있는 동의나물도 많이 보인다. 지난번 이 소백산에 왔을 때 꽃봉오리 맺은것만 몇 개 보았는데 지금은 활짝피었다. 동의나물은 주로 높은 산지의 물가에서 잘 자라는데 이 풀 잎을 말아서 물을 떠 마실 수 있다 하여 물동이를 연상하는 동이나물로 부르다가 지금은 동의나물로 부른다고 하는 설이 있다. 생약명은 잎의 모양이 말 발굽 모양이라 하여 마제엽(馬蹄葉) 또는 당나귀 발굽 모양이라 하여 여제초(驪蹄草)라 부른다. 나물이라 부르지만 독이 있어 나물로 먹으려면 어린 잎을 데쳐서 물에 오래 담가놓아 독을 제거한 후에 먹어야 한다.
노루삼
삿갓나물
나도황새냉이
는쟁이냉이
동이나물
연령초
곧이어 늦은맥이까지 0.5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그 구간은 온갖 야생화가 풍성하게 자라는 화원(花園)이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연령초, 동의나물부터 시작하여 홀아비바람꽃, 피나물, 덩굴개별꽃 등 온갖 야생화가 만발해있다.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오르다보니 행선이 더딜밖에. 쉼터가 있는 늦은맥이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4.5 km 거리를 네 시간동안 걸었다. 거의 기어서 올라온 모양새다. 쉼터 데크에 자리를 잡고 각자 먹을 것을 내놓는데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올라오면서 계곡에서 간식을 먹었기에 시장하지도 않은데 또 여럿이 모여서 떡이며 빵이며 과일 등을 내 놓으니 또 과식하게 된다.
상월봉으로 오르는 길 가에는 노랑무늬붓꽃이 눈에 띈다. 이른 봄 각시붓꽃과 금붓꽃이 피고 지고 이제 이 높은 고산지대에 노랑무늬붓꽃이 피었다. 흰색 바탕에 노란색 무늬가 있는 이 붓꽃은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어 멸종위기 2급 보호종이라 한다. 이렇게 귀한 것일수록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이 인지상정인가보다. 곧게 올라간 잎은 칼이라 하고 뭉툭한 꽃봉오리 모양이 옛날 선비들이 즐겨 쓰던 붓모양이라 하여 붓꽃일 부른다. 한 줄기에 두 송이 꽃이 피는데 학명 Iris Odaesanensis 는 오대산에서 처음 발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백두대간 종주할 때 도솔봉에서 내려오는 길 옆에서 처음 보고 이번에 두 번째로 만난 꽃이다.
벌깨덩굴 - 높은 산에는 아직도 많이 피어 있다.
피나물
홀아비바람꽃
동이나물
양지꽃
아직 나뭇잎이 나지 않은 능선 숲에는 풀들이 봄 햇볕을 받으려 분주하게 자라난다.
나도개감채
늦은맥이재
상월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큰앵초가 부드러운 잎을 피우며 올라오고 있다. 작년 6월 초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이 곳 상월봉에서 큰앵초꽃을 많이 보았다. 넓은 잎 사이로 긴 꽃대를 올리고 아래서부터 차례로 올라가며 주홍빛 꽃을 피우는 모습은 가히 딴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을 준다. 지금 이 순간 이 큰앵초는 그런 마술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나도옥잠화도 넓은 잎새 사이에 꽃대를 숨기고 있다. 1~2주 안에 여인의 옥비녀처럼 기다란 꽃대 위에 하얀 꽃을 피울 것이다.
상월봉(上月峰 1372 m) 정상에 선다. 작년에는 저녁 늦은 시간에 대간길을 넘어온 안개로 인해 조망이 없어 아쉬웠는데 오늘은 다행히 안개가 바람에 흩어져 오히려 신비스러운 풍경을 자아낸다. 상월봉은 소백산 아래 신선봉에 이어진 9봉 8문에 자리잡은 구인사를 창건한 상월 원각조사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삼척이 고향인 상월 원각 스님(19411-1974)은 1946년 소백산 연화지에 초암을 짓고 정진하다가 1967년 9봉8문 아래 천태종을 창종하고 구인사를 창건하였다. 1974년 64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상월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경사가 지지 않은 평탄한 오솔길이다. 철쭉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등산객들이 내 놓은 길이 이어지고 중간 중간 나무가 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철쭉은 아직 꽃봉오리가 터질 듯 부풀어 있고 나무 아래에는 풀솜대가 큰 군락을 이루어 꽃봉오리가 예쁘게 맺어있다. 산장대와 덩굴개별꽃도 하얗게 무리 지어 피어있다.
노랑무늬붓꽃
산장대
병풍취
나도옥잠화
큰앵초
상월봉에서 바라본 신선봉
오후 3시 40분 국망봉에 도착했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산과 이름이 똑 같지만 그 유래는 다르다. 소백산 국망봉(國望峰)은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자 끝까지 항전을 주장했던 태자(마의태자)가 개골산으로 가는 도중 이 소백산에서 고향산천을 뒤돌아보며 비탄의 눈물을 흘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비로봉을 거쳐 천동계곡으로 하산하려던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된데다 몸이 지쳐 더 이상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아직 솜나물도 보지 못한 나에 대한 배려로 고인돌 형님은 왕관바위를 거쳐 초암사 삼거리까지 내려가자고 한다. 나무가 자라지 않은 작은 초지에 솜나물꽃이 몇 개 피어있다.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작은 몸에 솜처럼 가는 털을 덮어쓰고 나와 앙증맞도록 작은 꽃을 피웠다. 봄만 되면 여기저기 낮은 산에도 많이 피는 솜나물 꽃을 이제까지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참취와 마찬가지로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달리 부시깃나물 또는 까치취라고 부른다. 국화처럼 꽃잎이 가지런히 돌려나는데 안쪽은 흰색이지만 뒷면은 홍자색이라서 꽃이 더욱 예쁘게 보인다.
신선봉 너머 구인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저 앞에 솟은 봉우리가 국망봉이다.
국망봉에서 바라본 비로봉 - 비로봉은 안개에 덮여있다.
솜나물 - 내 생애 처음으로 인식하고 만난 꽃
오후 4시 15분 국망봉을 떠난다. 날이 무척이나 길어졌다. 겨울날이면 벌써 해가 서산 너머로 지고 있을 시간이지만 소백산 등줄기엔 아직도 햇볕이 쉼없이 내리쬔다. 올라올 때에 비해 하산길은 빠르다. 앞서 내려가던 고인돌 님이 잠시 길에서 벗어나더니 또 ‘어이’하고 부르신다. 뭔가 큰 것을 발견했을 때 부르는 소리다. 아직 나뭇잎이 피기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어야 하는 봄풀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숲으로 들어간다. 눈개승마가 벌써 무릎까지 자라나 있고 박새가 사이사이 배추처럼 커 있다. 그런 푸른색 풀밭에 노랑무늬붓꽃이 군락을 이루고 피어있다. 이렇게 많이 자라는데 누가 이걸 멸종위기에 처해있다는 말을 믿을까? 부드러운 칼잎으로 하늘을 찌르고 붓처럼 생긴 꽃봉오리와 노랑무늬가 선명한 흰꽃이 조화를 이룬다. 주변에 파란색의 갈퀴현호색과 홍자색의 얼레지도 드문드문 피어있지만 귀하신 몸 노랑무늬붓꽃에 쏠린 눈은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노랑무늬붓꽃
얼레지와 현호색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니 행선이 빠르다. 지는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한 자태를 내보이는 꽃들도 애써 외면하면서 내리막길을 달리듯 걸어간다. 오늘은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큰앵초의 우아한 눈빛과 마주치기 전까지는. 한참 앞서 내려가던 고인돌 님이 길에서 조금 벗어난 숲속에서 또 ‘어이 !’하고 부르신다. 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의 앞에 선홍빛 꽃 한포기 서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큰앵초꽃이다. 그 동안 여러해 산행을 하면서 숱하게 많이 보아온 꽃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또 보고 싶어지는 꽃이다. 마치 뭉게구름 위에 선녀가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다. ‘젊은날의 사랑’ 또는 ‘행운의 열쇠’가 이 앵초의 꽃말이다.
좀 있으면 흔해 빠질 큰앵초지만 이렇게 일찍 피어나니 만인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잠깐의 행복한 흥분이 저녁 햇빛에 녹아 계곡속으로 번진다. 일본잎갈나무라 부르는 낙엽송 숲 속에 날개를 활짝 편 관중이 또 다른 숲을 이룬다. “저 관중을 보고 있으면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장면이 연상돼요.” 사니조은 님의 부인이 감명 깊게 보았다는 영화를 떠올린다. “관중은 숲을 지켜주고 유지시켜주는 파수꾼이에요!” 고인돌 형님은 실용적인 면에서 관중을 높이 치켜세운다. 고사리와 같은 앙치류(羊齒類)에 속하는 관중은 반그늘 나무숲속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겨울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이른 봄에는 누런 구렁이처럼 또아리를 틀고 올라오다가 고사리손을 점점 펼쳐간다. 한 여름 다 자라면 어른 허리까지 키가 올라온다. 숲 전체가 매크로 세계라면 관중은 마이크로 숲을 만들어낸다. 그 잎새 하나하나에 또 다른 우주를 품고 저 옛날 공룡이 지배하던 원시시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박대감님, 이렇게 관중이 많은데 노래 한 곡 하시죠.” 하대감이 관중(貫衆)이라는 풀 이름을 동음이의어인 관객으로 풀이하여 농담을 건네온다. 얼마 남지 않은 하산길에 우리는 송창식의 선운사 노랫말을 조금 바꿔 부르면서 걸었다. 앵초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조금 어색하지만 꽃동무들끼리 어우러져 걷는 길에는 노랫말이나 음정 박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잎을 말이에요.
관중
올괴불나무 열매
물참대
오후 7시 계곡을 나와 산행을 마친다.
민들레 홀씨
갈림길에서 아침에 올라온 길과 다른 옛 탐방길을 찾았다. 리끼다 소나무가 심어진 자리에는 작은 돌로 축대를 쌓아 올려 예전에 집터가 있었거나 아니면 화전민들이 일궈먹던 밭이 있었던 곳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곳이 새밭(乙田)이다. 나무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밭농사를 그만둔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느낌이다. 어쩌면 70년대 말에도 이 곳에서 누군가 농사를 지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골이 깊어 물이 많은 계곡에는 나무로 얽어놓았던 다리가 떠내려가고 큰 돌이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계곡에 물참대 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이제 얼마간 계곡과 숲 속을 아름답게 수놓을 것이다. 아직 황금빛 햇살이 한 줌 남아 노랗게 피어있는 유럽나도냉이 꽃을 물들인다. 저녁 7시 산행을 마무리하고 단양시내로 이동하여 이 곳 특산 식품인 통마늘 순대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인가요? 오늘 산행에 대한 감상을 묻는 말이다. 단연 노랑무늬붓꽃이 최고였다. 넓은 판초우의를 입은 연령초는 노랑무늬붓꽃에 비해 흔하다는 이유로 뒤로 밀렸다. 동의나물이나 피나물 또는 홀아비바람꽃도 하이라이트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럼 능선길 길가에 줄지어 피어있던 큰구슬붕이는 어땟나요? 하산길에 딱 한 포기 피어있던 큰앵초는요? 아니면 숲길을 하얗게 수놓았던 산장대꽃이나 덩굴개별꽃은? 오늘 산 길에서 만났던 예쁜 꽃들이 하나 하나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쳐간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소백산이지요. 커다란 황소 잔등이처럼 넓직한 등짝이 벌써 그리워진다. 초록빛 풀밭에 서럽게 우는 소쩍새가 토해놓은 붉은 핏빛 진달래가 아름다운 소백산이다. 그 큰 산을 하얀 안개띠로 보일 듯 말 듯 감춰가면서 웅장함을 뽐내는 소백산이 오늘의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