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무교절 첫째 날에,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가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드시게 준비하려 하는데 어디에다 하기를 바라십니까?"
13. 예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를 따라 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가서, 그 집 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내 사랑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자리를 깔아서 준비한 큰 다락방을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니, 거기에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를 하여라."
16. 제자들이 떠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였다.
17. 저녁때가 되어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가셨다.
18.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 줄 것이다."
19. 그들은 근심에 싸여 "나는 아니지요?" 하고 예수께 말하기 시작하였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다.
21.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 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22.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23.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24.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막14:12-25)
12 On the first day of 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 the day the lambs for the Passover meal were killed, Jesus' disciples asked him, “Where do you want us to go and get the Passover meal ready for you?”
13 Then Jesus sent two of them with these instructions: “Go into the city, and a man carrying a jar of water will meet you. Follow him 14 to the house he enters, and say to the owner of the house: ‘The Teacher says, Where is the room where my disciples and I will eat the Passover meal?’ 15 Then he will show you a large upstairs room, fixed up and furnished, where you will get everything ready for us.”
16 The disciples left, went to the city, and found everything just as Jesus had told them; and they prepared the Passover meal.
17 When it was evening, Jesus came with the twelve disciples. 18 While they were at the table eating, Jesus said, “I tell you that one of you will betray me—one who is eating with me.”
19 The disciples were upset and began to ask him, one after the other, “Surely you don't mean me, do you?”
20 Jesus answered, “It will be one of you twelve, one who dips his bread in the dish with me. 21 The Son of Man will die as the Scriptures say he will; but how terrible for that man who will betray the Son of Man! It would have been better for that man if he had never been born!”
22 While they were eating, Jesus took a piece of bread, gave a prayer of thanks, broke it, and gave it to his disciples. “Take it,” he said, “this is my body.”
23 Then he took a cup, gave thanks to God, and handed it to them; and they all drank from it. 24 Jesus said, “This is my blood which is poured out for many, my blood which seals God's covenant. 25 I tell you, I will never again drink this wine until the day I drink the new wine in the Kingdom of God.”
12. 무교절 첫째 날에,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가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드시게 준비하려 하는데 어디에다 하기를 바라십니까?"
12 On the first day of 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 the day the lambs for the Passover meal were killed, Jesus' disciples asked him, “Where do you want us to go and get the Passover meal ready for you?”
가나안 땅의 심한 가뭄으로 야곱의 식구들은 애급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그 나라에 요셉이 총리로 있었습니다.
그 덕에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400년이 흐르는 사이 그 후손들은 거기에서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애급의 흙벽돌을 만들며 살았습니다.
우리 삶과 똑같습니다.
영락없습니다.
돈 벌어서 살려고 갔다가 거기서 종이 되었습니다.
죽을 맛입니다.
그래도 그런가 보다 하며 견뎌냈습니다.
애급왕 바로가 이 명령을 내릴 때까지는 그랬습니다.
총을 들려주더니 그 총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를 쏴 죽이라는 것입니다.
아들까지 말입니다.
식구들이 길바닥에 시체로 나가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절규했습니다.
그 절규가 하나님의 귀에 들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더니 바로 왕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바로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 누구냐며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번씩 한 번씩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셨습니다.
아홉 번 하나님을 보여 주어도 바로는 제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열 번째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양을 잡은 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마지막 열 번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애급 사람들의 집에 난리가 났습니다.
모든 장자가 죽었습니다.
하지만 양의 피가 발린 히브리인들의 집은 재앙이 유월해 갔습니다.
그 때 히브리 백성들이 애급에서 도망 나왔던 것입니다.
양의 피를 보고 죽음을 면한 날!
종살이에서 그의 백성을 해방시키신 날!
유대인들은 그 날을 1,500년 동안 기념해 왔습니다.
주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실 것입니다.
그 날을 맞아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명절을 어떻게 지키느냐고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13. 예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를 따라 가거라.
13 Then Jesus sent two of them with these instructions: “Go into the city, and a man carrying a jar of water will meet you. Follow him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니 온 동네가 바빴을 것입니다.
우리 설날에도 마트며 방앗간은 보통 바쁘지 않습니다.
떡국 빼는 것이 온 동네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의 마을에는 물동이 메고 가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물동이 메고 오는 그 사람을 만나라는 것입니다.
탈북자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북한에서 군인 장교였습니다.
어느 날 친한 친구에게 뜬금없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성경책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했답니다.
고발은 안 할 테니 다시 가져가라고 했는데 그 친구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앙의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고, 남한의 한 기독교 방송을 듣다가 남한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가 중국으로 탈북했는데 남한으로 오는 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땅에서 그 일을 두고 상의할 수 없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 기도하던 어느 날 버스를 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동이 멘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바로 버스 옆 좌석에 남한의 목사님을 앉혀두셨습니다.
그렇게 그의 손에 들려있던 남한 기독교 방송국으로 가는 편지가 전해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통하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멀리 간증 들으러 멀리 안 가고 여러분 자신이 그보다 더한 간증거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물동이를 메고 걷던 사람을 수두룩하게 만났습니다.
인간 존재 자체가 또 그 삶이 정말로 기가 막히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경이 그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7.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2:7)
이 기적은 물통 들고 가는 사람 만나는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흑암의 깊음 위에서 쓰레기 더미로 뒹굴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여러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어디 간증 들으러 여기저기 다니지 말고 창세기를 읽으시고 여러분 손가락 발가락을 찬찬히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묘한가!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가서, 그 집 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내 사랑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여라.
14 to the house he enters, and say to the owner of the house: ‘The Teacher says, Where is the room where my disciples and I will eat the Passover meal?’
주님의 말씀은 이 물동이 멘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저 따라갈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의 주인을 상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집 주인에게 “주님과 주님의 제자들이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내 사랑방이 어디입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엉뚱한 생각인지 몰라도 당시 그런 집을 가진 사람은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제 집 하나 장만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도 돈 잘 버는 것입니다.
여관집에서 하룻밤을 자도 공짜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집주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냥 집을 비어주었습니다.
정말로 자신의 집주인이 예수님이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농장의 모든 것을 마련하셨습니다.
포도나무도 심고
농장의 담도 만들고
녹이 안 스는 스탠레스스틸로 포도주 발효통도 만들고.......
그리고 그 포도 농장을 종들에게 맡기고 먼 길을 떠난 것입니다.
이 때 주인이 알아보려는 것이 있었습니다.
당장 주인이 눈에 안 보여도 포도원의 종들이 제가 주인인 줄로 알고 있는지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그들에게 종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웬걸 종들이 그 포도원에서 완전히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인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만 죽이면 완전하게 자기의 것이 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보내신 이 집의 주인은 달랐습니다.
15. 그러면 그 사람이 자리를 깔아서 준비한 큰 다락방을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니, 거기에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를 하여라.“
15 Then he will show you a large upstairs room, fixed up and furnished, where you will get everything ready for us.”
그 주인은 기꺼이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집을 내어주었습니다.
주님은 그 주인의 마음까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또 주님은 그 집의 구조까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거기에서 제자들은 주님의 마지막 만찬을 준비할 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는데 제주도에서 봉성 교회를 건축할 때였습니다.
목사인 제가 요구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집을 내주면 자리를 깔더니 주님 쓰시라고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습니다.
16. 제자들이 떠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였다.
16 The disciples left, went to the city, and found everything just as Jesus had told them; and they prepared the Passover meal.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셨던 말씀대로 그 일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성안의 거리에는 물 나르는 그렇게 많던 사람들은 순간 사라지고 만나야 할 단 한 사람만 눈앞에서 물동이를 메고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성안까지 가던 길에 두 사람이 목말라 우물에서 물을 얻어먹었고, 땀을 닦으면서 잠시 쉬었다가, 성안으로 걷기도 했습니다.
화장실도 가고.......
그러다가 버스가 보여서 그 버스를 탔던 것인데 바로 옆 좌석에 남한의 목사님이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대로 꼭 그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17. 저녁때가 되어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가셨다.
17 When it was evening, Jesus came with the twelve disciples.
주님은 그날 저녁이 되어서 준비된 장소에 오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즐겁게 명절을 지냈습니다.
18.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 줄 것이다.“
18 While they were at the table eating, Jesus said, “I tell you that one of you will betray me—one who is eating with me.”
거기에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열두 명만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그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잔치에 참여한 그 12명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여러분도 그런 배신을 당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가까운 자에게 배신당한 그런 일 말입니다.
생각지도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조차 그런 일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배신을 당하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아실 것이 있습니다.
그런 배신으로 다 끝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배신당하신 것이 승리로 가는 중요한 하나님의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배신 위에 계십니다.
의외로 신앙인들이 그 소리를 많이 합니다.
권사님이 장로님이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처럼 오른뺨을 맞은 다음에 왼뺨을 대세요.
여러분이 하나님 안에 계신다면 그 사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도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주님을 가장 잘 이해했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은 죽이려고 했는데 그들이 정한 시간을 그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1.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흉계를 꾸며서 예수를 죽일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런데 그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막14:1,2)
이 가까운 제자의 배신이 정확히 하나님의 시간을 조율한 셈입니다.
구약의 출애급 당시 양의 피 흘리며 죽던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을 죽으시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 위에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배신을 경고하셨는데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둘러보았을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을 알 수 없고 이제 자신이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아니냐고 차례로 자신을 두고 주님께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선발되고 또다시 선발된 그 12명 중에 바로 그 배신자가 있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19. 그들은 근심에 싸여 "나는 아니지요?" 하고 예수께 말하기 시작하였다.
19 The disciples were upset and began to ask him, one after the other, “Surely you don't mean me, do you?”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할지 아닐지 내가 잘 알지 어떻게 다른 사람인 예수님께 나를 묻느냐는 것입니다.
자기를 자신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였습니다.
자신은 주님이 죽음의 장소에 가셔도 거기까지 쫓아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반박했습니다.
내가 나를 잘 알지 주님이 아십니까?
그 당시 베드로에게는 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닭이 두 번 울었을 때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한 것입니다.
72.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서 울었다.(막14:72)
물론 이 문제는 베드로가 성령을 받자 사라졌습니다.
그 때는 하녀 앞에서 맹세를 하며 주님을 부인하던 사람이 성령을 받자 공회원을 앞에 두고 사람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오 했습니다.
27. 그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의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그대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중히 명령하였거늘,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퍼뜨렸으니, 그대들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행5:27-29)
베드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을 받지 않고는 자신도 자신을 잘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베드로처럼 사실을 말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더 제대로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주님은 배신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경우입니다.
이 배신자는 예수님의 사건을 오직 윤리적 잣대를 가지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 잣대가 절대화되어 있었습니다.
4.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기를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하였다. 그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막14:4,5)
마태복음을 보면 유다가 이 언급을 한 후에 곧바로 대제사장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14. 그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라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묻기를
15. "내가 예수를 넘겨 주면, 내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였다. 그들은 유다에게 은돈 서른 닢을 셈하여 주었다.
16. 그 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 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마26:14-16)
유다는 그 많은 돈을 구제에 써야 옳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의 이런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예수님의 해석은 그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머리에 부은 일이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한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 예수님의 해석에 분을 냈던 것이 분명합니다.
셋째입니다.
그런데 이뿐 아닙니다.
주님을 부인하는 일에 이보다 더한 상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적용 가치 자체를 부인해 버리는 현실이 그것입니다.
이 시조는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읊어진 것입니다.
물론 부패했던 당시의 정치 배경과 문학적 과장이 섞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 장소에서 어떻게 이런 주장이 공존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읊은 것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우리는 지금 본인에게 똥냄새가 나니 세상을 똥통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가치를 부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현실 보장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갈 때입니다.
발을 못 쓰는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의 종이 많은 음식과 나귀를 챙겨서 다윗에게 나타났습니다.
3. 왕이 또 물었다. "그런데, 네가 섬기는 상전의 손자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시바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그는 지금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제야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할아버지의 나라를 자기에게 되돌려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왕이 시바에게 말하였다. "므비보셋의 재산을 네가 모두 가져라." 시바가 대답하였다. "임금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임금님의 은총을 입는 몸이 되기를 바랍니다."(삼하16:3,4)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 종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애자 주인 므비보셋을 속이고 모든 재산을 가로챈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것을 챙기면 그것이 그의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고 있는 사람이다.
20 Jesus answered, “It will be one of you twelve, one who dips his bread in the dish with me.
제자들이 불안해서 저 아니냐고 묻자 예수님께서 다시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 대답은 지극히 가까운 자라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그 주후 30년에
수억의 인구 중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중에 12명으로 뽑혀서 한 식탁에 앉은 사람 중에 배신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함께 떡을 나눌 것입니다.
이런 외적인 선민의 요소가 그의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배신자가 있습니다.
소속이 주는 안일한 안정감은 위협적인 거짓 평화입니다.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눅3:8,9)
특별히 빵을 함께 적시는 공동의 활동에 속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일에 의미는 없습니다.
구원의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실존적인 문제입니다.
그 내면의 문제입니다.
2. 사람의 행위는 자기 눈에는 모두 깨끗하게 보이나, 주께서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신다.(잠16:2)
끌어안고 뽀뽀를 해도 정말 사랑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21.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 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
21 The Son of Man will die as the Scriptures say he will; but how terrible for that man who will betray the Son of Man! It would have been better for that man if he had never been born!”
예수께서는 유다를 앞에 앉혀두시고 이 경고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쯤에는 유다의 머릿속에 자신이 할 일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주님의 말씀은 유다에 대한 공격 행위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주님은 그 때에도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충고의 수용 여부는 유다에게 있습니다.
유다는 주님의 충고를 듣고 속으로 분노했을 것입니다.
300 데나리온의 무모한 희생을 한 여인 두고 내린 주님의 해석은 너무 자신 중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유다가 나중에 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 그는 자결하고 말았습니다.
대화란 일단 말하는 자의 표현이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말하는 자의 표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의 곡해 없는 해석과 그 수용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삐딱한 시각으로 들을 경우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해석을 듣더니 곧바로 대제사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14. 그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라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묻기를
15. "내가 예수를 넘겨 주면, 내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였다. 그들은 유다에게 은돈 서른 닢을 셈하여 주었다.
16. 그 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 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마26:14-16)
가인도 아벨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제사가 믿음의 제사니 아니니가 아닙니다.
자신의 것만 거부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가인을 훈계하셨던 것입니다.
6. 주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색이 변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7.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을 펴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하니,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4:6,7)
가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수용했더라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화나게 하신 분이 하나님 아니신가!
왜 나의 제사만 거부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원인 제공을 하셨으면서 이런 충고까지 하시는가!’
그는 최악의 선택을 했는데 동생을 죽여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충고하셨을 때 그는 하나님의 충고를 부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충고를 보면 예수님은 먼저 인자와 또 인자를 넘겨주는 사람을 구분하고 계셨습니다.
먼저 인자이신 예수님을 봅시다.
예수님은 당장 비참한 죽임을 당하실 것입니다.
손과 발이 못박히고 허리를 찢어지고.......
그리고 인자를 넘겨준 사람은 제 뜻을 이룬 것입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가?
우리는 그 현실을 보고 예수님이 처절히 당하셨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성경이 기록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면 주님은 자신의 생명까지 바치실 것입니다.
주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많은 사람의 죄를 속하실 대속제물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게 성경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인자를 넘겨줄 사람은 전혀 다른 근거를 가지고 행동할 것입니다.
그는 치명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예수님을 고발하고 돈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는 선택된 중 또 12명으로 선택이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으로 선택되지 말았으면 나을 뻔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세상이 갖지 못하는 다른 가치를 말씀에서 찾아 실천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유다는 당장에 자신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전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무리 중에도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39. 예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백부장이, 예수께서 이와 같이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서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고 말하였다.(막15:39)
백부장은 그 피비린내 나는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22.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22 While they were eating, Jesus took a piece of bread, gave a prayer of thanks, broke it, and gave it to his disciples. “Take it,” he said, “this is my body.”
그들은 빠짐없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명절을 맞았을 것입니다.
이 명절을 맞아서 예수님께서 이 날을 준비하셨습니다.
성안으로 가거라 물동이를 들고 가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 사람을 따라가서 그 집주인에게 너희들과 주님이 명절을 보낼 방을 달라고 해라.
주님의 말씀 꼭 그대로 이런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은 이 일을 간증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기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강력하게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기쁜 명절의 자리에서 배신자가 여기 있다고 하시더니 빵을 손에 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에 드신 빵은 예수님의 찢어진 살이 되었습니다.
1,500년 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들은 400년의 애급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런데 애급은 초상집이었습니다.
오직 히브리 백성에게만 축제의 날이 된 것입니다.
생명의 날!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첫발을 내디딘 날!
그런데 죽음과 생명을 가르는 그 장소에는 양이 있었습니다.
그것의 목이 칼에 찔리고 그것은 피흘리며 죽었습니다.
그 희생의 피가 문설주에 발린 것입니다.
그 양이 그림자였다면 주님은 그 실체가 되신 것입니다.
빵이 곧 예수님의 찢겨진 살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안에서 당시 히브리인에게 애급이 우리에게는 세상이 되고 또 히브리인에게 가나안이 우리에게는 영생하는 하나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 실체가 된 것입니다.
23.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23 Then he took a cup, gave thanks to God, and handed it to them; and they all drank from it.
유월절의 양의 목을 찌르던 칼이 예수님의 목을 찌른 것입니다.
그 역사적인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포도주는 새 생명의 심장에서 핏줄로 흐르는 피가 되었습니다.
그림자가 실체가 된 것입니다.
주님이 드신 포도주는 36.5°C의 끈끈한 주님의 피가 된 것입니다.
24.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24 Jesus said, “This is my blood which is poured out for many, my blood which seals God's covenant.
유다조차 거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함께 성찬을 나눈 것이 아닙니까!
25. 그 때에 예수를 넘겨 줄 유다가 "선생님, 나입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에게 "네가 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마26:25)
그 성찬의 자리에서 유다는 제 속을 속이며 음흉하게 예수님께 말까지 걸었던 것입니다.
섬뜩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유다도 포도주와 빵을 먹고 마셨습니다.
하지만 그 성찬이 유다를 바꿀 수 없었습니다.
유다의 인격적 결단을 배제한 가운데 어떤 초역사적인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포도주와 빵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과제를 주었을 뿐입니다.
그 역사적 희생을 주님처럼 수용할 것인가?
기독교 신앙이 종교라 불릴 수 없는 것은 그런 종교 예식을 실체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언하고 예언하는 종교 기술을 혹은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자녀로 변화시키는 그런 종교적 신비에 없습니다.
사랑을 가진 사람에 있습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으로 말을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내 모든 재산을 나누어 줄지라도, 자랑스러운 일을 하려고 내 몸을 넘겨 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고전13:1-3)
하지만 사람들은 비역사적인 신비주의 혹은 의도적으로 종교화함으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피해 가기 일쑤입니다.
바울은 이 성찬을 기념하는 일에 엄한 경고를 했습니다.
26.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을 바르게 행하여야 한다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피십시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시십시오.
29. 주님의 몸을 분별함이 없이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기에게 내릴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30. 이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는,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31.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살피면,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고전11:26-31)
바울은 지금 교회에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성찬을 앞두고 죽을 수도 있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심판을 초래하는 죄란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바울은 바로 앞 절에 그 원인을 언급합니다.
21. 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음식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22. 여러분에게는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고전11:21,22)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교회까지 그 음식을 가지고 와서 과시하며 거하게 먹는 행위입니다.
종교적인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남을 고려하지 않은 과시 행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가난한 자를 고려하지 않고 제 부를 과시하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이릅니다.
방언 못 하고 입신 못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사람이 덜된 것입니다.
집에서 먹고 오든지 무슨 벤틀리 롤스 로이스를 타고 교회를 와!
이런 종교적인 선입견을 요한도 공격했습니다.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눅3:7,8)
그들은 세례라는 종교 의식을 기대며 비인간적인 행위를 일삼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그 실존의 중심입니다.
정의롭고 사랑을 품은 사람이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의 지적과 같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입니다.
비인격적인 종교적인 사건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을 백 날 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에게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꽹과리의 소음입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으로 말을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고전13:1,2)
인격적 사건은 신앙의 사건입니다
죽임당한 양이 그림자였다면 주님은 그 양의 실체로써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애급에서 가나안에 이른 것은 상징에 불과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이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야의 40년의 길은 십자가로 그 실체를 드러낼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길은 예수님께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복음에 있어서 구경꾼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3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막8:34)
하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제물로 초청하신 것입니다.
7.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창22:7)
다른 곳에서 찾으시면 안 됩니다.
당신이 제물입니다.
25.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25 I tell you, I will never again drink this wine until the day I drink the new wine in the Kingdom of God.”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경계에 서 계신 것입니다.
빵이 예수님의 살이 된 자리입니다.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가 된 자리입니다.
그 주님의 죽으심이 그 나라를 결정하신 것입니다.
공생애의 초기에 마귀가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보장하는 빵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하시라는 것입니다.
3.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마4:3)
그것은 아주 그럴듯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그 마귀의 기적을 거부하셨습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마4:4)
그렇게 되는 경우 치명적인 오해의 메시지를 남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오직 육신적 빵만 있으면 된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은 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비참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입니다.
주님이 바로 그 십자가를 감당하셨을 때 주님은 이 땅에서의 그 모든 일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주님은 더 이상 이 땅에서 포도주를 마실 일이 없습니다.
주님의 다음 끼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드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