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 2022년 2월 23일(수) 맑음, 기온(-7℃~-1℃, 바람 3~4m/s)
★참석자(9명): 운암 김종철, 청천 김용하, 박평순, 소종섭, 보리송 송명수, 이혁진(진희), 정상범 회장, 백사 조운제, 후묵 채희묵
★만남의 장소: 홍제역1번출구 (10:00)
★코스: 홍제역 – 홍제원터- 유진상가- 실락어린이공원 정자- 북한산자락길 - 홍지문 - 세검정 정자 – 홍제천 – 홍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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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홍제역 1번출구
10:15 홍제원표지석과 홍제원터
10:35 홍제역 1번출구 신인 혁진 상봉
10:37~43 유진상가
10:58~11:20 실락어린이공원정자/통닭구이
11:25 북한산자락길 들머리
11:52~58 팔각정자(전망데크)
12:12~35 정자(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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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9 보도각 마애불
13;12 오간대수문
13:16 홍지문
13:34 세검정
13:42~48 석파정 사랑채(석파랑)
13:55~15:05 청와설렁탕(점심)
15:29 방포시장남문
15:44 복개한 열린홍제천길 북단 입구
15:54 홍은사거리(서석게다리표지석)
16:20~18:10 행운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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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북한산자락길
조선시대 중국에서 드나드는 사신들이 묵었던 국립호텔인 홍제원의 터를 확인했고 홍은사거리에서 1970년 홍제천에 지어올린 초기 주상복합인 유진맨션/상가 2층에 올라가 이 건물에 얽힌 얘기를 소환해보았다.
기온은 영하였지만 햇살이 내리쪼이는데다 양지끝을 따라 걷게되어 봄기운을 받을 수 있었다. 북한산자락길 들머리 코앞에 있는 실락어린이공원 정자에서는 식기전에 먹어야된다며 종섭회원이 꺼낸 ‘특미‘ 통닭구이를 뜯기도 했다.
무장애 데크길을 걸으며 안산, 인왕산을 방향을 바꿔가면서 조망하는 맛도 있었다. 북한산의 남쪽 불쑥 솟아오른 보현봉(714m)이 그렇게 뾰족하고 힘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서쪽으로 비봉능선이 서서히 흘러내려오는 것도 보였다.
눈 아래 펼쳐진 홍은1동은 북한산과 미인 허리 휘어감듯 흘러돌아가는 홍제천이 최고의 양택지로 꼽는 ’배산임수‘형으로 보기만하여도 포근하고 평화스럽다. 내부순환고속도로가 정릉터널속으로 숨어들어가고 이 고가도로가 생기기전 정릉으로 이어주는 구기터널도 형제봉아래 보토현 속으로 머리를 감춘다.
홍제천변으로 내려서니 옥천암(玉川庵)이 새가 둥지 틀 듯 개천을 내려다보며 벼랑에 붙어있는데 그중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잘 되기를 빌었다던 보도각(普渡閣) 백불(白佛)이 지나가는 탐방객과 불자들의 눈을 붙든다.
그걸 보고 나면 바로 무지개수문 5개가 돌다리 아래 크게 나 있다. 형제봉능선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빠지는 곳. 이는 탕춘대성의 정문격인 홍지문과 홍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오수대간문(五間大水門)이다. 탕춘대성은 숙종때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성으로 유사시 이 성을 통해 북한산성으로 도피하기 위해 쌓은것이라고 한다. 홍지문에서 인증샷 한컷.
이번에는 지명과 이 이름이 붙은 각종 상호등으로부터 귀에 익은 세검정(洗劍亭). 인조반정을 주도한 이귀, 김류(金瑬) 등의 반정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세검입의(洗劍立義: 칼을 씻어 정의를 세움)를 했다며 여기에서 세검정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멋직 기역자 정자가 튼튼한 반석위에 날렵하게 서 있다.
세검정교차로 한 귀퉁이에 고급 한정식집 <석파랑(石坡廊)>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의 사랑채가 옮겨져온 곳으로 아담한 기역자 건물을 한번 둘러볼만하다. 석파정은 자하문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서울미술관이 있는데 경내 뒷뜰에 있다. 종섭은 코로나19로 식사도 하지 않고 귀가했고, 그 대신 일을 마치고 합류한 운암과 함께 설렁탕집에서 점을 찍었다. 이번에는 백사는 탕춘대성에 관심을 갖고 성으로 갔고, 명수, 용하 회원은 귀가했으며, 5명이 쇠백로, 중대백로, 왜가리가 먹이 사냥하며 한가롭게 놀고 있는 홍제천을 따라 홍제역까지 걸었다.
상보~~~~
낮 최고기온도 영하라서 두꺼운 겨울모자, 두툼한 자켓과 바지, 벙어리장갑까지 끼고 나갔다. 조선시대 공무수행관리들이나 중국사신들의 숙소인 관영호텔격인 홍제원터에 가 표지석도 보고 건물이 있었다는 자리도 보고, 유진상가도 한번 다시 보고 싶어 30분넘게 일찍 나갔다.
10:20 도착하겠다고 카톡을 올렸더니 정회장이 20분이나 늦다는 것이다. 10:30분으로 멀리에 입력이 된 것이다. 문제는 처음 나오는 노원구의 혁진이 문제다. 제시각에나 도착할 것같단다.
그래도 필자가 10시전에 도착했다. 백사와 정회장이 홍제역1번출구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모처럼 나온 청천, 명수, 평순, 종섭 회원이 제시각에 다 도착했다. 먼저 홍제원터를 둘러보고 돌아와서 새 손님 혁진과 만나기로 했다.
해가 나니 영하라도 춥지는 않다. 인터넷에서 확인한데로 무학재역쪽으로 갔더니 MG새마을금고 앞 보도에 표지석이 서있다. 차를 바짝 주차해놓아 측면에서 가까스로 사진 한 장 만들었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데 이곳에 원불교 교당에 다니고 있어 이 네 음식점을 좀 안다는 청천이 추어탕집 등을 추천한다. <대가추어탕> 위의 오피스텔 어반힐스(홍제동 138번지)일대가 홍제원이 있던 곳.
서대문(돈의문)밖의 홍제원은 조선시대 동대문(흥인문) 밖 보제원(普濟院), 광희문 밖 전곶원(箭串院, 살곶이원), 남대문(숭례문)밖 이태원(梨泰院)과 함께 관영 여관으로 성문밖에 있었다. 홍제원과 이태원은 동이름으로 살아있지만 보제원과 전곶원(행당중 교문옆에 표지석)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인터넷에는 헐리기전 기와집의 홍제원 건물이 돓아다니기도 한다.
다시 홍제역에 돌아와서 10시 30분이 되자 혁진이 1번출구를 빠져나온다. 대부분 오랜만에 만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홍은사거리를 건너기전 복개된 홍제천에 길게 서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2층으로 잠깐 안내했다. 1970년 7월 서울 초기 1층 상가, 2~5층 33평~66평의 고급 아파트로 인기를 누렸던 유진맨션(상가)이다. 길이가 220m나 되는 바람에 2층 가운데에 중정(中庭)을 두어 어린이들이나 주민들의 활동공간이다. 나이가 52살이다보니 많이 낡았다. 김현옥 불도저 시장시절 그린벨트위 세운상가(1968년), 도로위 낙원상가(1969년)과 함께 필로티로 아래 양측면으로 차를 댈수 있거나 사람이 비를 맞지 않고 다닐수 있는 주상복합을 만든 것이다.
유진상가는 1999년 내부순환로가 위로 지나가면서 B동(홍제천변)의 4, 5층이 철거되었고 나머지 2, 3층에 서대문구 신지식산업센터가 들어가 주거 기능이 많이 축소되었다. 지도상으로 홍제동에 속할 것 같은데 서쪽의 홍은동 소속이다. 유진상가는 10여년전 옆 재래시장 인왕시장과 함께 48층으주상복합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개천 위라 대지분이 없는데다 홍제천 북쪽 천변의 홍제초교의 일조권문제로 무산됐다. 회원들은 70년대 화려했던 맨션이 쇠락한 모습을 볼수 있었다.
복개된 홍은사거리는 예전에는 의주로가는 홍제교가 있었고 주민들은 서석게다리로 부르기도 했다.
홍제동과 홍은동
홍제동(弘濟洞)과 홍은동(弘恩洞)은 통일로와 홍제천의 교차점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다. 홍제천이 동서로 홍제동과 홍은동으로 나눠놓았고, 통일로는 홍제동을 남쪽에 홍제1동, 북쪽에 홍제 2,3동으로, 홍은동은 남북으로 홍은2동, 홍은1동으로 나눠놓았다.
홍제동은 중국으로 통하는 중요 육로인 의주로(통일로) 무학재 인근에 중국사신 및 여행객들이 머물렀던 현재의 국립호텔격인 홍제원이 자리잡고 있었기에 동명(洞名)으로 채용되었다. 홍제동은 홍제내리가 바뀐것이고, 홍은동은 홍제외리인데 홍제내리의 홍(弘)자와 고양군 은평면(恩平面)의 은(恩)자를 합성해 만들어진 것이다
은평면의 유래
은평면은 현재 은평뉴타운으로 서울 동북부 거점으로 우뚝 일어선 은평구로 커졌지만 이 이름은 연은방(延恩方), 상평방(常平坊)에서 한자씩 빼 만들어진 것이다. 연은방과 상평방은 영조 27년(1751) 한성부 북부(北部)의 성내 명통방을 폐지하고 성밖의 연은방과 상평방을 편입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유진상가의 행정구역도 이상해보이지만 홍제초교가 홍은동에 있고 홍은초교가 홍제동에 있는 것도 재미있다.
일행은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안산(무악산) 넘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새 아파트 북한산더샵(2017년 건축)으로 들어섰다. 경사가 가파르다. 아파트로둘러싸여있는 실락어린이공원으로 올라갔더니 정상에 정자가 있다.
통닭구이
쉬어가자고 한다. 종섭친구가 통닭구이를 가져왔는데 식기전에 먹어야 한단다. 은박지를 걷어내지 엄청 큰 닭이다. 백사는 한강공원에서 먹었던 기억을 소환한다. 비닐장갑까지 준비해왔다. 다들 장갑을 끼고 다리, 목, 날개를 잡고 뜯는다. TV의 동물세계에서 호랑이어미가 사냥을 해오면 새끼들이 둘러서서 살을 뜯는 것 같았다. 여덟명이 뜯으니 순식간에 뼈만남는다. 먹었으니 일어나야한다.
북한산자락길 들머리
북쪽으로 내려갔더니 북한산자락길 들머리가 나온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자락길 들머리 단체 인증샷 한컷
처음에는 지그제그 목데크다. 무장애 목데크. 최근 지자체들이 휠체어나 유모차로도 산책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무계단 목데크 산책로를 만드는게 유행이다. 평순교장은 모임따라오고난 후 다시 홀로서 탐방했단다. 그 외 회원은 처음. 필자도 다른 모임에서 지난 1월 와보고 좋아서 추천한 둘레길.
남동쪽으로 안산(296m)이고 북쪽 건너편에 인왕산(338m), 북악산(342m)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나뭇가지들에 걸려 확실하게 볼수 없는게 흠이다. 북한산 족두리봉이 흘러내려 구기터널을 지나 탕춘대성과 서울둘레길 옛성길전망대 아래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자락길이다. 정자 하나를 지나고 배드민튼장도 지나간다. 이정표도 잘 만들어놓아 자락길을 빠져나와 북한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아래로 내려가는 하산로 표지가 잘 되어있다.
누가 뒤에서 쫒기라도 하는지 선두는 막 달아난다. 나뭇가지는 아직 겨울이지만 햇살은 봄이다.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지도 사흘이 되었다.
전망데크와 팔각정자
전망이 탁 트인 팔각정자가 나오고 잘 만들어진 전망데크도 있다. 안산과 인왕산 능선이 뚜렷하다. 고가 내부순환고속도로가 고층아파트 아래에서 산속으로 숨어들어가고 홍제천이 휘어돌아간다. 산자락 바로 아래는 신축 고층아파트가 들어섰고 가운데는 또 지을려고 벌건 황토흙이 드러나있다. 단독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있는 자락길 아래가 홍은1동. 북한산과 홍제천이 배산임수 전형적인 양택지다. 전망데크 바로 아래에는 용머리바위가 비상할 태세다.
위에 있는 정자는 신발을 벗어야한다며 올라가지 않고 선두는 내뺀다. 남은 몇 명만 인증샷 만들고 부지런히 따라갔다. 데크길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하나씩 서서 잘 왔다면 인사를 한다.
북한산의 보현봉과 문수봉
이번에는 북한산 남쪽 봉 보현봉과 문수봉, 비봉능선이 시야에 들어온다. 보현봉이 훨씬 높아보인다. 기가 세서 무속인등 종교인들이 치성을 들이러 올라가 오염을 시키는 바랍에 출입금지를 해놓아 필자도 올라간 기억이 없다. 두 봉사이에 대남문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설령 들어오지 않아도 고개에 있다는 것을 올라가 본사람들은 다 안다. 중간중간에 목벤치도 만들어 놓아 앉아 담소하며 쉴수도 있다.
막걸리 한잔
하산로 옆에 있는 평상이 보인다. 거기에가서 순대에 막걸리 한잔 하잔다. 남쪽이라 햇살도 좋다. 평순교장은 16개 들이 단팥호빵, 백사가 잘라온 사과봉다리를 내놓고 필자는 순대를 꺼내 놓았다. 청천이 서울막걸리 2병은 꺼내놓는다. 막걸리 컵을 들고 다같이 건강을 위하여! 다를 맛있게 먹는다. 산에 오면 이런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