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장,
박정구는 김 여인을 부축해서 중환자실로 들어간다.
“안심하십시오. 이제 한 고비가 넘어 간 것만 같습니다. 환자가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의 말에 그들은 잠시 멍해진다.
“선미야!”
김 여인은 선미의 곁으로 다가간다.
“안정이 필요하니까 너무 자극을 주지는 마세요. 이 상태로 좋아진다면 오늘 중으로 일반 병실로 올라 갈 수가 있을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딸을 살려주셨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환자의 의지가 상당히 강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가족들의 힘이기도 하고요.“
“선미야! 고맙다.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선미씨! 내가 누군지 알겠어요?“
선미는 한참만에야 힘들게 눈을 뜬다.
“아이고, 우리 선미가 눈을 뜨네!“
김 여인의 얼굴은 온통 눈물 투성이다.
김 여인은 딸의 손을 부여잡는다.
“선미야! 엄마다. 엄마를 알아보겠니?“
선미는 고개를 돌려서 김 여인을 힘겹게 바라본다.
잠시의 면회를 마치고 박정구는 김 여인을 부축하고 중환자실을 나온다.
“이 사람아! 이제 우리 선미가 살아 난 것이 맞지?“
“네! 어머님! 선미씨는 어려운 고비를 잘 이겨냈습니다.“
“정말 자네에게 너무 고맙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자네의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할지 모르겠네!“
”어머님! 정말 마음고생이 심하셨습니다. 이제 선미씨는 제가 지키고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해 주겠습니다.“
“고맙네! 난 자네만을 믿겠네!“
김 여인은 박정구의 손을 꽉 잡는다.
선미의 상태는 빠르게 회복이 된다.
오후에 선미는 일반 병실로 올라간다.
일인실의 조용한 병실이다.
박정구는 선미의 안정을 위해서 다른 환자들이 함께 있는 병실보다 일인 실을 예약을 한 것이다.
“선미! 고마워! 당신의 강한 의지가 어려운 고비를 넘겼어!“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아니요! 난 당신이 내 곁에서 떠나지 않을 줄을 믿고 있었소!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알고 있기에 쉽사리 나를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오.“
박정구는 선미의 손을 잡는다.
선미는 한없이 박정구의 깊은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면서 그를 바라본다.
“엄마! 나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요?“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 엄마는 네가 잘못되는 줄만 알고.........“
김 여인은 또 다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선미야! 엄마는 정말 네게 고맙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모자랄 것만 같구나! 그렇게 어렵고 힘든 고비를 잘 넘겨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엄마! 정말 미안해요. 자꾸 엄마에게 불효를 하는 것만 같아서 죄송스러워요.“
그들이 그런 얘기들을 나누고 있을 때 형제들이 들어선다.
“선미언니!”
선정이는 선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얼마나 고생을 했어요? 아무런 도움도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선미야! 이제 정말 괜찮은 거지?“
병실은 형제들의 방문으로 소란스럽다.
그러나 김 여인은 마음이 흐뭇해져 온다.
그러다 문득 막내아들과 며느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낀다.
“막내는 오지 않았니?”
선정이가 형제들에게 눈짓을 한다.
“으응! 걔네들이 조금 바쁜 모양이에요. 어제 삼우제에도 못 왔어요.“
“뭐?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아버지 삼우제도 참석을 못한다는 말이냐?“
“그럴 사정이 있겠죠!”
“.....................”
김 여인은 무언가 심상치 않는 느낌이 든다.
남편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는 자리에서도 막내며느리와 아들의 표정이 밝지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서로 소 닭 보듯 피하는 모습인 것만 같았던 것이다.
워낙에 거센 며느리의 성격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거센 성격이 항시 마음에 걸렸다.
김재숙은 무엇이든지 거침이 없는 성격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자신의 뜻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격이었다.
김 여인은 막내며느리의 그런 성격을 파악을 하고 나서는 되도록이면 싫은 소리나 듣기 싫다는 말을 회피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막내며느리는 집안 살림과 아이들과 남편을 거두는 데는 나무랄 곳이 없다.
집안은 언제나 정갈하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윤이 나도록 살림을 한다.
막내아들의 모습도 항상 상큼할 정도로 가꾸어 놓는다.
아들만 둘을 낳은 막내며느리의 성격은 아이들에게도 잘 나타나 있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사내 녀석들이 조심스러워하고 얌전한 것이 엄마의 교육 탓이었다.
반듯한 것은 좋지만 놀 때는 마음 놓고 놀아야 하는데도 아이들은 절재를 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김 여인의 가슴은 납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겁다.
아무리 가지 많은 나무 바람이 잘 날이 없다고 해도 모든 자식들이 하나처럼 걱정이 되지 않는 자식들이 없었다.
김 여인은 지금 모든 걱정들을 잊으려 애를 쓴다.
지금은 오직 선미 생각에만 몰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김 여인은 애써 막내아들 정원이의 생각을 지우려한다.
이제 겨우 선미의 상태가 호전이 되어간다.
모든 정성을 다 기울여 선미를 보호하고 선미의 뒷바라지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미의 간호를 박정구가 팔을 걷고 나선다.
“어머님! 이제 그만 집으로 가셔서 쉬십시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마음도 추스르시지도 못하시고 이렇게 신경을 쓰시면서 고생을 하고 계시니 어머님께서 쓰러지실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이 사람아! 자식이 이렇게 된 상황에 어떻게 마음 편히 쉴 수가 있겠는가? 내 몸과 마음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다 해도 우리 선미를 돌봐야 하는 것이 어미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어머님! 이제 선미씨는 한고비 넘겼습니다. 이제는 위험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예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선미씨는 분명히 제 안식구입니다. 그러니 어머님보다는 제가 돌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자네가 있어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어디 자네 같은 사람이 우리 선미 앞에 나타났는지 정말 고맙네!“
“어머님! 선미씨는 제가 맡기시고 그만 들어가셔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십시오.“
박정구는 기어이 김 여인을 집으로 들여보낸다.
김 여인 또한 못 이기는 척 자식들을 따라서 집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당신의 몸을 편하게 쉬려는 것이 아니고 막내의 일과 집안일이 걱정이 되어서였다.
무언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집안이 모두 먹구름이 몰려올 것만 같은 생각에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김 여인이다.
김 여인은 집으로 돌아오자 막내아들 정원이를 부른다.
그러나 정원이는 쉽게 오지를 않고 있었다.
김 여인은 마음이 초조했지만 막내아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막내 정원이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삼일이 지나서야 어머니 앞에 나타난다.
막내아들의 얼굴이 수척해진 것을 보고 김 여인의 마음은 또 다시 고통스럽다.
“막내야! 무슨 일이 있는지 어미에게 솔직하게 말을 해 봐라!“
“...........신경 쓰시지 마세요.”
막내는 말을 하지 않으려한다.
“어미도 네가 왜 그러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원인이 무엇이냐? 너 혹시 나쁜 짓이라도 했니?“
“나쁜 짓이라니요? 그런 것은 아니에요.“
“그럼 무엇 때문인지 어미가 알면 안 되겠니?”
“엄마! 그 사람이 성격이 거침없고 거세다는 것을 생각하고 한 결혼이지만 거칠어도 너무 거칠고 거세요. 이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요.“
“너 처음부터 그런 각오를 했으면 네가 끝까지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 네가 이길 수가 없다면 져주면 되는 것이고.........“
“자꾸 직장을 그만두고 장사를 하라고 하는데 전 도저히 장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요.”
“장사라니? 무슨 장사를 하라는 말이냐?“
“전라도 완도에서 큰 처형이 건어물을 생산하고 있거든요. 그 건어물을 우리가 가게를 내서 팔자는 말이에요.“
“가게를 차릴 자금은 어디서 나고?”
“집을 빼고 단칸 셋방으로 옮기고 그 돈으로 가게를 알아본다고 저 야단이에요.”
“뭐라고? 네 큰 형이 전셋돈을 빼서 사업을 하다가 고생을 한 것을 잊었니?“
“고생을 하든 말든 간에 저는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둘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이제 승진도 눈앞에 두고 있고 지금 하는 일이 성취감을 느끼고 만족하고 있는데 왜 직장을 그만 둡니까?“
“정말 그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이냐?”
“도저히 이겨낼 재간이 없어요. 처형하고 무엇이라 약속을 했는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아니거든요.“
“정말 큰일이구나!"
김 여인은 큰 한숨을 내 쉰다.
남편이 세상을 뜨자마자 이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자식들 문제가 김 여인의 가슴을 새카맣게 타 들어가게 하고 있었다.
“막내야! 우선 네 집사람을 살살 달래서 조용하게 살자! 지금 둘째 누나가 어려운 고비에 있으니 우리 다 함께 누나에게 힘을 실어 주어야하지 않겠니?“
“엄마! 정말 죄송스러워요! 아무도 모르게 해결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어요. 그러나 그 사람의 고집을 도저히 당할 재간이 없어요.“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다독거리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정 그렇게 장사가 하고 싶다면 애미 혼자서 하라고 해 보거라!“
“.............집을 빼서 하라고요?”
“어쩌겠니? 그렇게 하고 싶다면 혼자서라도 해 보는 수밖에!“
“..............................”
김 여인은 막내아들을 다독인다.
어떻게 하든 이혼소리는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만 한다.
막내아들이 돌아가자 김 여인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살아 갈수록 커다란 파도가 연이어 밀어 닥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을 쉬고 싶었다.
그러나 잠시 생각을 접고 다시 선미의 병원을 가려고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글: 일향 이봉우 |
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