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성월을 지내는 가운데, 또 다시 우리는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성모님 신앙의 성장 여정이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나자렛 산골의 시골 소녀에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서 성모님은 사도들의 우리 모두의 어머니, 교회 공동체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마침내 승천하신 성모님은 하늘의 어머니, 하늘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십니다.
성인치고 성모 신심이 없거나 부족한 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우셨던 분, 예수님을 가장 잘 알고 계셨던 분, 예수님과 일심동체였던 분으로서, 오늘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모델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의 성모 신심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돈독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입만 열면, 성모님, 성모님이라고 외치셨습니다.
여자 청소년들을 위한 수녀회를 창립하셨는데, 수녀회 이름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의미에서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회’로 명명하셨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업적을 칭찬하면, 이 모든 것은 성모님이 하신 것이라며 성모님께 공을 돌렸습니다.
돈보스코 성인께서 돌아가시기 3년 전, 1885년 6월의 일입니다. 당시 살레시오 수녀님들은 프랑스 니짜 몬페라토란 곳에서 총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력이 쇠한 돈보스코 성인께서 수녀님들에게 총회 마무리 말씀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쇠한 돈보스코 성인은 알아듣기 힘든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많은 것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지만, 보시다시피 나는 이미 늙었고 말하기 조차 힘듭니다. 그래서 간단히 한 말씀만 드리자면 성모님께서 여러분을 정말 사랑하신다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십니까? 성모님께서는 여기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
당시 돈보스코 성인을 수행하던 보네티라는 사제가 돈보스코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그분의 말을 받아 수녀님에게 큰 소리로 통역 아닌 통역을 해드렸습니다.
“돈보스코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여러분의 어머니시고 여러분을 보시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보네티 신부의 전언이 마음에 안 들었던 돈보스코 성인께서는 그게 아니라며 안간힘을 다해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게 아닙니다. 성모님께서 바로 이 집에 계시며 여러분들에게 흡족해하고 계십니다.”
보네티 신부가 다시 돈보스코 성인의 말을 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돈보스코께서 말씀하시길, 여러분이 항상 잘하신다면 성모님께서 여러분에 대해 만족하실 것입니다.”
또다시 엉뚱한 말을 전하는 보네티 신부에 화가 난 돈보스코 성인은 젖먹던 힘까지 다해 크게 외치십니다.
“성모님께서 바로 여기 여러분 가운데 정말로 계십니다. 성모님께서 이 집안을 거닐고 계시며 당신의 망토로 이곳을 덮고 계십니다.”
돈보스코 성인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성모님은 도움이신 성모님이십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극진히 사랑하십니다.
그 표시로 성모님께서는 항상 우리 옆에 현존하시며 우리의 일생을 동반하십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를 보호하시고 우리의 모든 걸음에 함께 하십니다. 결국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2024년 나해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하느님은 뽑으실 때도 목숨을 거신다>
복음: 요한 19,25-34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는 미국의 노예 해방과 여성 인권 운동의 선구자입니다. 본명은 이사벨라 바움프리(Isabella Baumfree)였으며, 1797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소저너 트루스는 신앙심이 깊었던 인물로, 그녀의 삶과 활동에 있어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Sojourner Truth’로 바꾸었는데, 이는 ‘진리를 위한 여행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결정을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였습니다. 소저너는 하느님께서 그녀를 부르시어, 진리를 전하고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설교하라는 영감을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소저너 트루스는 뉴욕주의 한 노예 가정에서 태어나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가운데 자랐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노예로서의 가혹한 대우와 노동에 시달렸고, 가족과의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노예 생활했지만, 1826년에 뉴욕주의 노예제도가 점차 폐지되면서 그녀는 두 자녀와 함께 도망쳐 자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트루스는 자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법정에서 자기 아들을 주인에게서 되찾기 위해 싸웠으며, 이는 뉴욕주에서 흑인이 백인에게서 법적으로 아이를 되찾아온 첫 사례였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투쟁은 자녀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위한 강한 신념을 심어주었습니다.
자유를 찾은 후, 녀는 자신의 삶을 노예 해방 운동과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며, 연설과 노래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유명한 연설 “나도 똑같은 여자가 아닙니까?”는 여성의 권리와 인종 평등을 강력하게 주장한 연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소저너 트루스의 자유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투쟁은 그녀의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자유의 중요성과 인권을 위한 싸움의 가치를 가르쳤습니다. 특히, 그녀의 아들 피터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유를 찾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자녀가 자유인이 되려면 당연히 엄마도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트루스가 독립시킨 자녀들은 다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트루스 먼저 자유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계시가 중요했습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는 믿음은 그녀가 노예제도에서 벗어나 인권 운동을 위해 싸우는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하와는 자유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뱀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자신이 이미 하느님임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려고 하였습니다. 이미 하느님 자녀가 되었다는 권리를 스스로 걷어찬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셨습니다. 이로써 그분을 어머니로 믿는 이들 또한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하와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밟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와는 존재한다, 생존한다는 뜻의 ‘하야’에서 파생된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 하와는 바로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고 옛 하와는 죽은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본인 스스로 죄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실 때 예수님은 성모님을 여인이라 부르십니다. 두 번째 하와이고 당신이 두 번째 아담이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나는 오늘 요한으로 상징되는 교회는 성모님을 어머니, 그리스도를 아버지로 모시게 됩니다. 그렇게 두 자유인에게서 태어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우리가 이미 하느님 자녀가 되었고 하느님처럼 되었음을 믿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어머니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까지 믿었는데, 우리는 성체를 영하면서도 그냥 인간에 불과하다면 성모님을 어머니로 부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스스로 하느님처럼 될 필요가 없는 이미 하느님처럼 된 존재임을 믿었기에 참 자유인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도 당연히 그렇게 믿어야만 합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복음: 요한 19,25-34: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공경하는 날이다. 마리아께서는 성령강림 때에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으며, 늘 교회와 함께하셨다. 여기서 마리아의 영적 모성이 드러난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조하며 2018년 성령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새로운 자녀들을 잉태하는 신비를 담고 있다. 우선은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라고 기도하시면서 숨을 거두셨다. 이렇게 아들의 영은 아버지께로 갔다가 다시 아들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지며, 그 아들의 영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와같이,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26절) 그리고 사도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27절) 라고 하시며 우리를 마리아의 자녀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교회의 표상이시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낳아주셨고, 교회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계속 낳아주고 있다. 교회는 그러므로 마리아의 모습을 완전히 구현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 교회의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모두 마리아가 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아들을 낳아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시고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셨던 마리아와 같이 되는 것이다.
“목마르다.”(28절)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사람들의 믿음을 목말라 하셨다. 목말라하시는 그분께 우리는 무엇을 드리고 있는가? 믿음이 없음을 나타내는 신 포도주를 드리고 있지나 않은지? “다 이루어졌다.”(30절) 주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하신다. 십자가의 신비가 모두 이루어졌고, 고개를 숙이시고 숨을 거두심으로써 사흗날에 다시 일어날 당신의 육신에 평화로운 잠이라는 휴식을 주셨다. 착한 목자께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34절) 인간이 죽으면 피는 엉기고 흘러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주님의 몸에서는 피와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는 죽었지만, 생명의 원천을 쏟아부어 줄 수 있는, 그 육신 안에 있는 위대한 생명의 힘을 알도록 일어난 일이었다. 첫째 아담이 잠들었을 때, 하와가 그 옆구리에서 나왔듯이, 둘째 아담이 십자가에서 잠드셨을 때, 그 옆구리에서 신부인 교회가 탄생하였다. 교회는 새 아담의 신부이다. 우리가 모두 마리아를 닮아 참으로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며 이끌어주시는 신부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신비를 사는 의미일 것이다. 언제나 신랑과 일치하려는 신부가 되어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파우스티나 성녀가 남긴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만일 천사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수 있다면, 그들은 두 가지를 부러워할 것이다. 하나는 영성체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이다.”
많은 이가 영성체에 대해 무관심하고, 또 고통과 무관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바로 천사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이유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들은 영이기에 성체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 육체가 없기에 고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성체와 고통은 모두 예수님과 결합할 수 있는 은총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예수님과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게 됩니다. 따라서 영성체를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고통을 없어져야 할 악(惡)처럼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보다 예수님과 일치하는 은총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 이 점을 성모님께서도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기도하여라. 많이 기도하여라. 죄인들을 위해 희생을 바쳐라. 많은 영혼이 지옥에 가는데, 아무도 희생으로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신 성모님께서 어떻게 보면 하늘 나라의 신비라고 할 수 있는 이 점을 알려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기 직전, 우리 교회의 어머니로 맡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모님께서는 온전히 예수님과 함께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시기 위해 메시지를 남기시고, 또 우리 곁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께 전구해 주십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과 무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안에서도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큰 기도라고 하는 미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성모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부족하고 나약하기에, 그리고 너무 자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기에, 가장 큰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성모님 곁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주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시는 성모님을 늘 떠올리면서 함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여러분과 리무진을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작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이 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입니다(오프라 윈프리).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주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제자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맡기던 날부터
성모님은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우리의 어머니가 되었네.
믿는 이들은
기도와 순명의 스승이신
주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시고
성모님을 바라보며
그분과 함께
인생의 고락을 나누며 살아간다네.
복음 말씀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25-34
그때에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28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29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31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