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세 번째-3)
(강진 영랑생가∼장흥 이청준생가, 2023년 4월 29일∼30일)
瓦也 정유순
햇살이 옆으로 누워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릴 때 발길은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에 위치한 고려청자박물관에 도착한다. 1997년 개관한 고려청자박물관(高麗靑磁博物館)은 1913년~1914년 강진군 청자 요지 발견 및 일제강점기 당시 이왕직(李王職)박물관의 현지 조사 이후 1959년부터 1992년 사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주도로 진행된 조사 및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1997년 강진청자자료전시관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되었다. 2007년 강진청자박물관으로 변경되었다가 2015년 고려청자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강진 고려청자박물관>
고려청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도자기사(陶瓷器史)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강진군 대구면의 용운리·계율리·사당리와 수동리 일대는 고려 시대에 관요(官窯)가 있던 곳으로, 전라북도 부안의 보안면 유천리와 함께 고려청자 생산의 중심지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견된 옛 가마터 400여 곳 중 이곳에서는 180여 곳의 가마터가 발견된 것은 고려청자 생산의 본거지라는 뜻 같다. 박물관에는 강진군에 분포한 청자요지에서 발굴된 청자 및 파편 30,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 정원의 홍가시나무>
마감시간에 쫓기어 고려청자박물관을 찾아 바삐 이동하는데, 박물관 앞의 사각의 연못 중간에 원형의 섬을 만들어 놓고 나무를 심어 놓았다. 이는 우리 선조들의 우주관인 천원지방을 나타내는 것으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이다. 그리고 섬에 나무를 심은 것은 천지인(天地人)을 표방하는 원방각을 표시한 것으로, 원(圓, ○), 방(方, □), 각(角, △)은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코드다.
<박물관 연못>
박물관 입구에는 청자장인상이 고려의 세상을 빗고 있다. 고려청자는 흙을 다루는 장인의 손길에서 시작하여 1300℃의 높은 온도에서 예술성이 결정된다. 혼을 담아 청자를 빚어내는 고려 도공의 장인정신을 함께 느껴보기 위해 이곳에 건립하였다. 고려청자의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청자매병을 만들고 있는 도공의 모습으로, 강진지역에서 채취한 점토를 사용하여 2010년 목포대학교 조형미술연구소(전병근 작가)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고려청자 장인상>
고려청자박물관은 고려청자의 발생과 발전, 쇠퇴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세계에서 청자를 가장 먼저 만든 중국인마저 천하제일이라 칭송한 고려청자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박물관에 고스란히 담겼다. 청자는 중국 송나라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데, 옥을 흙으로 빚어보려는 시도가 그 시작이라고 한다. 도자기를 구울 때 표면에 달라붙은 나뭇재가 푸른색으로 변한 데서 힌트를 얻었다.
<청자음각모란문매병>
그렇게 태어난 푸른빛 도자기 청자가 우리 땅에서 제작된 때는 신라 말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9~10세기다. 당시 청자는 찻잔으로 사용하는 완(사발)이 대부분이며, 따로 문양을 새기지 않았다. 11세기 들어 청자에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려 비색(翡色)’으로 불리는 비취색 고려청자는 12~13세기에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음각한 도자기에 백토와 황토를 채워 각기 다른 색 문양을 만든 상감기법이 이때 등장한다.
<모란무늬매병>
청자는 문양을 장식하는 기법에 따라 종류를 구분한다. 크게는 조각적 장식의 순청자(純靑瓷)와 회화적 장식의 화청자(畵靑磁), 이 두 가지 장점을 응용한 상감청자(象嵌靑瓷) 세 가지가 있다. 상감기법은 고려의 도공들이 처음 창안해 낸 방법이다. 상감청자의 처음 제작 시기는 12세기 중엽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1159년에 세상을 떠난 문유(文裕)의 묘에서는 청자상감보상당초문(靑磁象嵌寶相唐草文)의 대접이 발견된 데 근거하고 있다.
<청자상감보상당초문 대접>
상감(象嵌)한 도자기를 가마에서 구우면 백토는 흰색, 황토는 검은색을 띤다. 고려청자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瓷象嵌雲鶴文梅甁, 국보 68호)도 이 시기 작품이다. 고려청자의 전성기로 꼽히는 12~13세기에는 상감기법 외에 압출 양각, 투각, 철화, 백화, 퇴화, 철채 상감 등 청자를 돋보이게 하는 다양한 조각 기법을 시도했다.
<고려청자 주전자>
<청자상감운학문 매병-네이버캡쳐>
고려청자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에는 9세기 청자 완(사발), 12세기 청자상감여지문대접, 13세기 청자퇴화연국문과형주자, 상감청자가 쇠퇴해 분청사기로 변모해가는 14세기 청자상감용문매병 등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색과 문양의 변화를 통해 고려청자의 500년 흥망성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참외 모양 청자퇴화연국문과형주자는 백토와 황토를 붓에 묻혀 문양을 넣은 흔치 않은 작품 같다.
<청자퇴화연국문과형주자>
청자범종과 청자인장 등 강진 고려청자 요지(窯址, 사적 68호)에서 출토된 유물 800여 점을 전시한 공간도 볼 만하다. 온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고려청자의 발달 과정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강진 고려청자 요지는 대구면 용운리·계율리·사당리·수동리 일대에 분포한다. 점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수비부터 1300℃에 청자를 굽는 재벌구이까지 청자 제작 과정도 재현하여 볼 수 있다.
<매화 대나무 학무늬 매병>
고려청자박물관 뒤쪽에 자리한 청자재현연구동에서는 도자기의 형태를 잡은 성형과 상형, 건조한 도자기 표면에 상감, 음각, 양각, 투각 등으로 문양을 새기는 조각 작업을 직접 볼 수 있다. 물레를 이용한 형태 잡기를 성형, 연꽃이나 거북처럼 물레로 할 수 없는 기물의 형태를 손으로 잡아가는 작업을 상형이라 한다.
<순청자>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문양은 단연 학과 구름이지만, 연꽃과 모란, 국화 같은 꽃도 즐겨 사용했다. 어깨 넓은 매병에 음각한 모란이 은은한 멋을 풍긴다면, 옥빛 대접에 상감한 모란은 섬세하고 야무지다. 부처님의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과 군자의 고결한 덕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 청자도 눈에 띈다. 연꽃과 버드나무, 학, 갈대 등을 한 작품에 담아낸 청자상감유로수금문병은 수묵화처럼 아름답다.
<청자상감유로수금문병>
멋을 위한 문양과 달리, 청자 표면이나 바닥에 특별한 의도로 글이나 기호를 새기는 명문(銘文)도 있다. ‘금(金)’자는 관청이나 사람 이름, ‘왕(王)’자는 왕실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 전시물 가운데 ‘정릉(正陵)’이라고 상감한 청자 조각이 눈에 띈다. 정릉은 공민왕의 왕비가 된 원나라 사람 노국공주의 능호(陵號)다.
<왕(王)자를새긴청자-네이버캡쳐>
<청자퇴화연국문과형주자>
고려청자박물관에서는 물컵과 화병, 매병 표면에 글씨나 그림을 새기는 조각 체험, 흙 1kg을 물레로 성형해 나만의 그릇을 만드는 물레 체험, 가래떡 모양 흙을 차곡차곡 쌓아 그릇을 만드는 코일링 체험 등 아이와 함께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완성한 작품은 초벌구이, 유약 바르기, 재벌구이를 거쳐 60여 일 뒤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청자빚기체험-강진군청 제공>
고려청자박물관과 나란히 자리한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은 체험과 놀이가 가능한 디지털 미디어 복합관이다. ‘보물선 시간 여행, 그림 속의 청자, 완성된 청자를 구하라, 청자 이야기, 청자가 부르는 노래, 작은 영상관, 나만의 청자 공방, 물속 청자 문양 미디어, 청자 속의 숨은 그림 찾기, 비취빛 꿈을 담은 청자’ 등 10개 디지털 콘텐츠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 내 “천년의 숨결” 주요 청자 유물의 제작 배경을 살펴볼 수 있는 영상이 상영된다.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은 관람료가 무료다.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
<고려청자운반선 수중발굴>
https://blog.naver.com/waya555/223098786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