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가곡들
슈만, Andre Boucourchliev 저, 김 방현 역
삼호 출판사 작곡가 전기 시리즈(폐간) 가운데서 발췌
독일 낭만파 시인들은 빈번하게 민중시로부터 주제나 형식상의 영감을 얻어 냈다. 음악가들도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민요(Volkslied)는 낭만 리트를 낳게 되었으며, 둘은 서로 영향을 미쳐 그 경계가 불분명하여, 유동적이었다.
시와 음악은 동일한 원천으로부터 나왔으며, 낭만파라는 테두리 안에서 상호 융합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껏 성취된 적이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채 '언어 저편에 있는 불가해한 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야심은 좁다란 본래의 원형의 틀로부터 빠져나오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18세기 말경 경직되고, 그 때문에 표현이 풍부하지 못했던 민요의 유절 형식으로부터 차츰 해방되게 된다. 이 유절형식은 낭만주의 리트에서도 가끔 이용되기는 했지만, 절마다 선율이 변형되는 형태로 유연하게 사용되었다. 뉘앙스가 풍부한 감정들과 더욱 복잡한 심적 상태를 표현해줄 수 있는, 자유로운 표현 형식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점점 커졌고, 심지어는 진짜 극 형식을 취하는 경향이 증대된다. 이미 베에토벤의 리트 '이 어두운 무덤 속에(in questa tomba oscura)'는 본질상 순수한 극적 전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백여 곡 이상의 리트를 쓴 바 있는 베버(Weber), 카를 뢰베(Carl Loewe), 슈만에 의해 높이 평가된 츔슈테크(Johan Rudolf Zumsteeg)와 같은 이들이 이러한 발전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속에 있던 형식의 풍부함과 궁극적인 위대함을 이룩한 것은 슈만의 천재성이었다. 이제 리트는 다층적이며 심오하고 극적인 소우주가 된다. 슈만은 기존 형식으로 출발하여 그것을 최상의 정도까지 완성시킨다.
슈만은 음악적 착상에서 자신의 인간적 체험과 문학 체험을 극히 풍부하게 수용하였다. 높은 지성의 소유자로서 당대 예술과 철학에 대한 폭 넓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자기 내면의 보다 다면적이고, 다양한 뉘앙스의 표현이 가능했으며, 직접적이고 깊은 느낌의 기쁨과 고통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 자신의 문학 체험, 젊은 시절 작가가 되려 했던 시도, 그리고 그로 하여금 논쟁적인 음악가로서 일익을 담당하게 했던 시적이며, 비평적인 관념은 결정적으로 그가 풍부한 교양을 지니도록 도움을 주었다. 놀랄 만치 다층적인 천성때문에 그는 온갖 다양한 정신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들 안에서 다시금 스스로를 인식하였고, 그러면서도 늘 자신에게 충실하였다.
슈만이 이처럼 풍부한 층의 인물들과 정신적 교감을 가졌다는 사실은 전례 없이 다양한 그의 양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울러 가사의 내적 리듬과 영혼의 억양을 항상 독특하게 융화시키고 있는, 새롭고 다른 형식들을 매우 자유스럽게 사용하는 대가적 풍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피아노는 슈만의 '자아'를 분명하게 표현해 준다. 그것은 인간 목소리와 대화하면서 그것에 필적하는 제2의 '인물'임을 주장하려 한다. 심지어 위험스럽게도 목소리를 누르고 한층 돋보이고 싶어한다. 서로 대화하기도 하며 극적인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서로 의존해 나아가는 관계에 있는, 노래와 피아노 사이에 존재하는 이 통일성이야말로 전형적인 슈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긴 전주가 나오고, 때문에 목소리가 두드러지면, 아울러 긴 후주를 통해 목소리가 사라져가는 방식은 슈만이 리트 영역에서 새로이 성취한 것으로, 이 전주와 후주는 조용하고 낭만적인 세계를 감싸고 있다.
슈만은 이처럼 오랫동안 꿈으로만 존재해왔던, 음악과 시의 내적인 통일성을 성취하였다. 게다가 독일 낭만파시는 음악에 의해 규정된다. 특히 뤼케르트와 아이헨도르프의 시는 선율이 붙여지기를 대단히 갈망한다. 선율 없이는 그 효과가 불완전한 상태로 머무르는데, 왜냐하면 음악은 그들의 정신적 반향을 깊게 하며, 그들의 시 자체가 구조와 형식상 음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슈만은 모두 248곡의 리트를 썼는데, 당대 유명, 무명 시인들의 시를 총망라하고 있다. 그는 극히 다층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낭만주의자로 이들 시인들에게서 자기에게 본질적인 모든 주제들을 찾아냈다. 그러나 슈만 음악이 쫓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너무 자주 침묵하면서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보다 깊고 측량할 수 없는 시와 음악간의 친화성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시는 그 의미 내용을 넘어서 시어와 리듬, 구조와 독특한 분위기를 통해 음악가에게 시인 앞에 어른거리는 말과 음의 조화를 실현시키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기존의 완성된 형식과 창작되지 않은 형식에 대한 자발적인 추구야말로 슈만의 두드러진 면모이며, 그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하이네와 아이헨도르프의 시로부터 직접적인 영감의 불꽃을 얻었다. 반면에 괴테는 인간적인 측면이나 풍부한 낭만적인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슈만에게는 낯선 인물로 머물렀으며,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였다.
슈만의 시인적 지평은 첫 리트 작품에서 그 온전한 폭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그는 단순한 독일 낭만주의자라는 한계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첫 성악곡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하이네의 시에 의한 리더크라이스 Op.24가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그대가 원하는 것'에 의한 '광대의 노래(Lied des Narren)' Op.127-5이다. 이것은 1851년에 씌어진 것이 아니라 1840년 2월 1일에 작곡되었다. 슈만에게 셰익스피어는 이 곡에서 유일하게 한 번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청년 시절 좋아하던 이 시인이 그의 리트 세계로부터 배제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어 미르테의 꽃 Op.25에서는 셰익스피어에 이은 세 사람의 영국 시인이 등장한다. 로버트 번즈(Robert Burns)는 넉넉한 민속성과 그의 시 '내 마음은 하일랜드에(My Heart's in the Highlands)'의 순수하고 질박한 성격으로 슈만의 공감을 얻었다. 토마스 무어는 슈만에게 두 개의 '베네치아의 노래'를 선물한다. 이 곡들은 단순한 대위법을 사용한 유려한 리듬이 노의 움직임과 곤돌라 배의 흔들림, 뱃사공의 노래를 짜 나아가고 있다. 바이런은 슈만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미르테의 꽃'에서 '헤브라이 노래' '마음은 무거워(Mein Herz ist schwer)'는 이 두 천재가 서로 얼마나 닮은 지를 입증해주고 있다. 훨씬 후에 역시 바이런의 시에 의한 '세개의 노래' Op.95, 즉 '예프타의 딸', '달에게 부쳐', '영웅에게 부쳐'와 만프레드의 극 장면 음악이 나온다.
그러나 슈만은 뤼케르트에서 하이네까지, 그리고 괴테에서 뫼리케(Eduard Moerike)에 이르는 독일 낭만주의의 보석 같은 시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략 서른 명의 시인들 가운데 뤼케르트, 아이헨도르프, 특히 하이네는 그가 가장 좋아하였던 시인이다.
뤼케르트
뤼케르트(Friedrich Ruechkert)는 연가곡 '미르테의 꽃' 서두를 그의 '헌정'이라는 작품을 통해 열어주고 있다. 이 노래들로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 슈만의 사랑은 신부를 화환으로 장식해 주고 있다. '신부의 노래(Lied der Braut)', '끝으로(Zum Schluss)', '헌정'은 클라라에게 바치는 가장 열정적이며 내면적인 선물이다. 뤼케르트는 또한 무한한 행복의 시인이다. 두 사람은 함께 '가곡집' Op.27을 쓴다. 뤼케르트의 '사랑의 봄'에서 따온 '사랑의 노래' Op.101에서는 남녀가 번갈아가며 두 연인의 순수한 사랑의 행복을 축복하며 노래하고 있다.
슈만은 아무리 현학적일지라도 민요의 엄격하고 소박한 형식에 가깝고, 리듬적이고 기교적인 대가적 품격을 좋아했다. 슈만은 뤼케르트를 자신의 사랑의 시인으로 떠받든다. 아울러 거의 유치함에 가깝게, 때때로 실패한 방식으로 광기와 죽음을 노래하는 또 다른 뤼케르트, 즉 '어린이의 죽음의 노래(Kindertotenlieder)'의 시인을 의식적으로 배제시킨다.
아이헨도르프
슈만은 아이헨도르프(Joseph Eichendorff)에게서 그처럼 많고 심오한 영감들을 비치고 있는 자연의 마력을 다시금 발견해낸다. 민요를 바탕으로 한 아이헨도르프의 시는 소박한 전통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독특한 힘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시인은 슐레지엔의 신비로 가득한 숲을 찬미하며, 먼 곳의 경이로운 노래를 지각하고, 그것을 노래하면서 응답하던 방랑자였다.
아이헨도르프와 슈만 모두 예의 그 놀라운 노래에 빠진다. '리더 크라이스' Op.39에서만큼 창작상의 선택 유사성이 지속되며, 행복하게 효과를 발하는 경우도 없다. 황혼으로 가는 전주는 너무나 애틋하게 저녁 분위기를 일깨워주고 있으며, 숲이 시인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들로 예감에 가득차게 될 때 나직하고 비밀스럽게 노래가 시작된다.
목소리와 피아노는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영묘한 음의 그물을 짜나간다. '아름다운 낯선 땅에서', '고요', '봄밤'은 이 연작 리트에 들어있는 곡으로 슈만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에 속한다. '달밤'에서는 시인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자유스럽게 피어 오르고 있다. 피아노에 의한 짤막한 도입부는 분산되지 않고 고집스럽게 지속되는 화음의 연속으로 변하게 되며, 그 화음 위에서 목소리가 떨리듯이 펼쳐진다. 화성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서로 유동적으로 흐르며, 모든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시간도 공간도 없이...
하이네
슈만은 하이네(Heinrich Heine)에게서 다시금 무한정 자신을 발견해내며, 내적인 모순이라는 그의 천성을 전개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이네도 역시 분열된 천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낭만적이고 순수한 영혼과 파괴적인 아이러니간의 화해할 길 없는 대립은 슈만을 사로잡았다. 비록 좌절당한 아이러니와 때때로 허황스럽게 울리는 아이러니, 그리고 엄청나게 큰소리로 가슴을 자극하는 음울한 패러디가 그에게 철저히 낯선 것이었을 때도 있기는 했다. 때로 혹독하기 조차한 슈만의 아이러니는 확신에 가득찬 것이었지, 순전히 의혹에서 비롯된 무기는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하이네에서처럼 간단없는 깊은 감정들의 순결함을 흐리게 하지는 않는다. 시적인 차원을 떠나 두 사람이 순전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만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학창 시절이었으며 하이네의 시에 열광하던 젊은 시절, 슈만은 뮌헨에서 하이네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는 존경하는 시인이 점잔 빼면서 냉담하게 대하자 상처를 입었다. 청년 시절 상처 입은 자존심을 보상 받기 위해, 슈만은 '리더크라이스' Op.24를 완성시켜 즉시 존경하던 시인에게 보낸다.
헌정하면서 함께 보낸 편지에 슈만은 몇 년 전 혈기왕성한 학생 시절 시인과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이 리트의 헌정을 수락한다는 말을 짤막하게나마 해달라고 청하였다. 승락을 받은 슈만은 엄청난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슈만이 이런 기쁨을 느낀 적은 결코 없었다. 건망증이 심한 하이네는 3년 후, 독일에서 작곡된 자신의 시에 의한 단 하나의 노래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나 시인과 음악가는 그들을 분리시켰던 것 저편에서 서로를 다시 발견하였다. 슈만은 하이네의 시 38편에다 곡을 붙였다. 그는 하이네의 시에서 자신의 갈등들과 변덕스러운 정서를 다시 발견하였다. 아울러 그 자신의 음악에 비밀스럽게 상응하고 있었고, 융합되어 있는 어떤 음악성의 의혹들도 발견하였다.
연주되는 경우가 드문 Op. 24의 리더크라이스는 슈만이 그에게는 미지였던 새로운 음악 세계로 첫발을 내딛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처음에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더듬거리며 앞으로 움직인다. 서서히 이 놀라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며, 3곡 '나무 밑을 거닐며(Ich wandelte unter den Baeumen)'로 자신의 개인 양식을 창조해낸다. 이 리트는 풍부하지만 스케치처럼 전개된 폴리포니의 서주로 시작된다. 노래의 첫 단어와 함께 성악과 피아노 간의 수렴이 증대하면서도 양자는 동등하며, 독립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이 수렴이야말로 슈만 리트 고유의 특징이다. '기다리라, 거친 뱃사람들아'에서는 풍부한 대조를 지닌 그의 본질의 극적인 측면이 활기차게 등장하며, 길게 늘려져 있는 후주에서는 이 이별의 슬픔이 잔향처럼 흐르고 있다. 마지막 리트 '미르테와 함께 장미꽃을'에서는 보다 풍부하고 발전된 형식을 취하고 자유자재로 주무르고 있다. 폭 넓게 흐르며, 커다란 호흡으로 전달되는 노래는 피아노를 사로잡는다. 이것은 긴 후주를 통해 리더크라이스 처음 리듬으로 되돌아가며, 이를 통해 전체의 통일성을 쟁취하고 있다.
리더크라이스가 작품으로 이미 성공을 거두고 있다면 동일한 창작기인 1840년에 나온 유명한 '시인의 사랑(Dichterliebe)' Op.48은 완성을 성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곡 하나하나가 비할 데 없는 작품으로 영감, 분위기가 변화무쌍한 이 열 일곱 곡의 리트들은 독특한 '월계관'으로 함께 만나고 있다.
첫 곡 '아름다운 5월에'에서는 성악이 자유로이 펼쳐지며, 피아노는 끊임없이 동일한 리듬형을 반복한다. 짧고 날쌔며 나직한 '장미, 백합, 비둘기(Die Rose, die Lilie, die Taube)'는 단 하나의 단순한 동기를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자취를 감춘다.....
'나는 원망하지 않으리(Ich grolle nicht)'는 슈만의 리트 가운데 특히 아름다운 곡이다. 반쯤 아이러니적인 하이네의 시에다 극히 고양된 극적 내용을 채우고 있다. 열정적으로 높은 음으로 비약하는 목소리는 피아노의 깊고 음울한 베이스 음들과 떨릴 듯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강압적 어조의 리트는 '꽃이 안다면(Und wuessten's die Blumen)'의 가볍고 빛나는 무지개 빛에 응답한다. 무게도 없으며 뿌리도 없는 음악이다. 끊임없이 찰랑거리는 흐름으로 속삭이는 목소리의 투명한 노래가 그 흐름에 더 이상 잡히지 않은 형상을 부여하고 있다. 리트 '울리는 것은 플루트와 바이올린'에서는 다시금 슈만의 새로운 면모가 모습을 드러낸다. 피아노는 성악과 무관하게 거듭해서 노래와 교차하다 마침내 하나로 끝맺음하는 길다란 선율선을 발전시킨다. 악기와 목소리간의 이러한 놀이는 독립적이면서도 무용의 리듬과 얽혀있다.
리트 '한 젊은이가 소녀를 사랑했네(Ein Juengling liebt ein Maedche)'는 하이네의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슈만은 시가 갖고 있는 쓰고 달콤한 아이러니를 음악으로 번역해내고 있다. 피아노는 성악의 감동을 조소하며, 반대 리듬의 악센트로 의연히 대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곡 '지겨운 추억의 노래(Die alten boesen Lieder)'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깊은 저음역은 목소리, 아울러 모든 선율선은 마치 뒤에 자석을 달고 있는 것처럼 끌어당긴다. 드문 전조는 노래가 끝났음을 강조한다. 피아노는 보다 긴 후주를 펼친다. 이 후주에서는 처음부터 길게 늘려진 새로운 음들이 혼합된 선율에 점차 형상을 부여하며, 꽃을 피우고, 뽐내고 다시 한 번 돋보이고는 짙은 암흑의 화음으로 끝난다.
앞서 언급한 사라지지 않을 작품 '미르테의 꽃' Op.25에서 유명한 리트 '그대는 한 송이 꽃과 같아라(Du bist wie eine Blume)'과 '연꽃(Die Lotusblume)'이 실려 있다. 유려하고 변화무쌍한 화성 안에서 조용한 발군의 선율이 흐르는 곡들이다. '로만스와 발라드' Op.45, 49, 53은 슈만과 하이네가 합작하여 창조한 또 다른 걸작이다. 이 가운데 '반목하는 형제(Die feindlichen Brueder)'와 '두 사람의 척탄병(Die beiden Grenadiere)'에서는 라 마르세이에즈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으며, Op.53에 있는 3부작 '불쌍한 페터(Der arme Peter)'에서 시인과 작곡가는 극도로 면밀하게 소박하고 민속적인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예술과 민족 본래적인 노래의 기쁨이 이처럼 높은 수준의 내면성과 완벽성을 성취하고 있는 경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이네는 많은 무명 시인들이 귀여운 자장가, 토텐리더(Totenlieder : 죽은 사람의 노래), 토텐탄체(Totentanze : 죽은 사람의 춤)에서 사용해온, 독일 민요의 엄격하고 리드미컬한 형식에 이처럼 암울한 론도를 무자비하게 획득하고 있다. 슈만은 처음에만 하이네를 따르고 있다. 즉, 두 개의 두델작(스코틀랜드 피리)과 같은 화음 - 이 화음 밑에는 사랑 때문에 자살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불쌍한 페터'라는 말이 왈츠 리듬 속에서 배치된다 - 이 그러한 면모이다. 반면 피아노는 사치스러운 폴리포니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3부에서는 성악도 자체의 위기에 빠져 있는 이 후렴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시는 패배한 어조로 계속된다.
그는 연인을 잃었고,
찾아가야 할 곳은 바로 무덤...
이 대목에서 노래는 고통스러운 긴장폭을 지니고 비상하여 최고음에 도달한다. 그리고 종결 종지에서 부서진다. 피아노에서는 장송 행진곡의 드럼 소리가 울려 퍼진다.
1852년 슈만은 다시금 하이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마지막 리트 '나의 수레는 천천히 달리네(Mein Wagen rollet langsam)' Op.142를 쓴다. 이 곡은 전주의 덜컹거리는 리듬이 점점 어두워지는 음 속에서 밀고 당기는 반면 선율선은 길고 평화스럽게 흘러간다. 시인은 꿈꾼다. ...갑작스럽게 두 명의 조소하는 유령이 나타나, 시인 주위를 맴돌다 휘감으며 자취를 감춘다. ...노래는 침묵을 지킨다. 피아노만이 시인의 생각에 더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오랫동안 몽상에 잠긴다. 처음의 가라앉은 리듬 안에서 서서히 작아지며 침묵 상태에 들어간다.
샤미소
슈만은 그림자를 상실한 남자, 즈 유명한 '페터 슐레멜'의 작자인 샤미소(Adelbert Chamisso)로부터 연작 가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의 하나인 '여인의 사랑과 생애'의 가사를 빌려 온다.
그는 클라라와의 결혼 몇 달 전에 이 짧은 시의 순결한 사랑의 분위기에 이끌렸던 것일까, 아니면 유치할 만큼 단순한 리듬과 형식이 그에게 작곡하도록 하였던 것일까. 어쨌든 이 시로부터 만들어낸 것은 오래된 판단과 대치되는 것이다. 즉, 음악은 시로 표현된 감정들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거나, 음악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불식시키고 있다. 음악가들 가운데는 옹색한 텍스트를 가지고 작곡한 이들도 많다. 그러나 슈만 불멸의 작품, '여인의 사랑과 생애'는 시를 완전히 잊게 하면서, 시구들을 리듬과 음들의 순수한 놀이로 변화시키고 있다.
행복은 사랑, 사랑은 행복
하고 싶은 말, 취소하고 싶지 않은 말...
오! 그러나 너무 유감스런 그 남자,
엄마로서의 행복도 느낄 수 없네...
어쩌면 서투른 듯한 이런 시들은 작곡가에게 주제와 음악적 기본 분위기 외에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다. 슈만은 이들을 가지고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으며, 가사를 바꿀 수도 없고 번역될 수 없는 음악의 고유 의미에 종속시킬 수 있었다. 대립적인 형식들이 대단히 다양하게 교대되며, 슈만이 좋아하였던 예의 긴 후주에 이르면 첫 선율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고 이로써 이 놀라운 리트는 마무리되고, 끝맺음된다.
슈만은 샤미소로부터 '사자의 신부(Die Loewebraut)'도 받아들였다. 사자와 젊은 여인과 총을 지닌 그 애인의 피로써 끝나는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시이다. 샤미소로부터는 '트럼프 점을 치는 여인(Kartenlegerin)', '볼이 빨간 한네(Die rote Hanne)', 뢰베의 발라드 양식을 연상시키는 '세 개의 노래(Drei Lieder)' Op. 31의 텍스트를 빌려온다. 이들은 강렬한 긴장을 지닌 음악적 성부 진행, 풍부한 전조를 지니며 다채로운 리듬 변화를 보여준다.
괴테
슈만은 슈베르트만큼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매우 편협한 음악가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독창,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미뇽을 위한 레퀴엠'이나 강력한 '파우스트'만을 떠올려도 괴테는 슈만의 전체 작품에서 낭만주의 문예계를 능가하는 의미를 가져 마땅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슈만은 괴테의 여러 권의 시집에서 모두 열여덟 편의 시를 택해 곡을 붙였다. '미르테의 꽃'이 나온 직후 '서동 시집'에서 세 편, '자유로운 마음(Freisinn)', '부적(Talismane)', '쥴라이카의 노래(Lieder der Suleika)'에서 뽑은 것이다. 이어 Op.51에서 매우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Liebeslied)'도 괴테의 시에 의한 곡으로 조용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피아노의 깊은 화음들에 의해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슈만이 괴테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것은 그가 특히 좋아하였던 '빌헬름 마이스터'에서 뽑은 시에 의한 곡에서였다. '하프타는 노인의 발라드(Ballade des Harfners)'에서는 노래에 극도로 친밀한 피아노가 시의 깊은 의미들을 따르고 있다. 리트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이'에서는 반주가 회화적이며, 거의 '인상주의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케르너
케르너(Justinus Kerner) 시에 의한 '열 두개의 시' Op.35는 이 대가가 정신적 친근함보다는 시 형식의 매력에 경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처음으로 행복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던 신혼 시절 동안 씌어진 케르너의 시에 의한 곡들은 결코 기쁨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사랑, 그리고 기쁨이여 사라져라(Stirb Lieb' und Freud')', '숲에의 그리움(Sehnsucht)', '죽은 친구의 술잔에(Auf das Trinkglas eines verstrobenen Freundes)', '남 모르는 눈물(Stille Traenen)'과 같은 제목을 지닌 리트들은 모두 슬픔, 고독, 체념을 말하고 있다. 더우기 아무런 극적 움직임 없이 철저히 내면적이며 명상적으로 음유하고 있다. 목소리가 자연이나 열정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앙양되거나 생기를 얻는 것도 잠시뿐, 즉시 급작스러운 낙담이 출구 없는 재앙 앞에서처럼 그러한 비상을 마비시킨다.
레나우
슈만은 레나우(Nikolaus Lenau)의 시로 두 개의 연작 리트를 썼다. 희한하게도 레나우는 슈만을 연상케 하는 운명을 지녔던 시인이다. 서른 여섯 살의 나이에 정신 착란으로 침몰하였으며, 죽음만이 그를 자유롭게 해 주었던 것이다. '네 개의 경기병의 노래' Op.117보다는 '여섯 편의 시(Sechs Gedichte)' Op.90이 보다 슈만의 독자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장례식 종을 연상시키는 리듬의 '마음이 무거운 저녁(Der Schwere Abend)'은 깊은 음악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곡으로 슈만의 가장 뛰어난 리트 가운데 하나이다. 음울한 e-minor에서 느릿느릿 걸어가며, 격렬한 7화음으로 분산되는 노래의 섬뜩한 리듬이 두드러진다. 모든 것은 부유하며 떠있다. 이어 노래가 새로이 시작되며, 보다 깊은 저음역 속으로 가라앉는다. 후주는 장대한 화음의 크레센도이다. 그러나 리트는 미풍처럼 부드러운 화음으로 끝맺음한다.
슈만은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시인들, 이를테면 모젠(Mosen), 유명한 '호도 나무' 작시자인 파리우스(Pfarrius), 슈트라흐비츠(Strachwitz)를 비롯하여, 가이벨이나 뫼리케와 같은 유명 시인들의 작품도 뛰어난 리트로 만들어냈다. 가이벨 시에 의한 리트로는 스페인 주제에 의한 두개의 연작 리트 '스페인 가곡집(Aus dem Spanischen Liederspiel)' Op. 74와 '스페인 사랑의 노래(Spanischen Liebeslieder) Op. 138, 그리고 리트 '숲에의 그리움'을 들 수 있다. '숲에의 그리움'은 정열적이고 매력적인 노래로, 피아노가 강렬한 음파로 시작하고 끝낸다. 피아노 반주는 기존의 피아노 반주와는 다른 순수 인상주의적 수단을 구사하고 있다.
엘리자베트 쿨만, 마리아 스튜어트
엘리자베트 쿨만(Elizabeth Kulmann)은 열 일곱 살에 요절한 여류 시인으로 슈만이 누이와 같은 영혼의 소유자였다. 슈만은 그녀의 시로 누구도 획득할 수 없는 놀라움을 그녀에게 가져다 준다. 그러나 슈만은 그녀의 원초적이며 신비한 시에서 예언적 목소리를 간취해냈다. 그녀에게서 받은 영감의 소산은 '일곱 개의 가곡(Sieben Lieder)' Op.104이다. 리트 '나를 불쌍한 소녀라고 말하더라(Du nennst mich armes Maedchen)'는 특히 아름답다. 철 없는 어린애들이 가엾은 그녀를 갖고 놀리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 리트는 그에 대한 대꾸이다. 달콤한 애수를 지니고 있으며, 4도 음정이 확대되면서 고조되어 간다. 리트 '마지막 꽃도 시들어(Die letzten Blumen starben)'는 풋풋한 여류 시인과 작곡가의 앞날을 어둡게 예감하는 듯하다. 리트 '나의 작은 배는 고난을 겪었네(Gekaempft hat meine Barke)'가 이 명상적인 구애를 마무리한다.
또 다른 비극적인 운명에서 잉태된 작품은 연작 리트 '마리아 스튜어트 여왕의 시' Op.135이다.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비련의 여왕에 관한 다섯 개의 시에 의한 것이다. 음악은 Op.104에서의 '고난의 맹서(Geluebde der Armut)'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 거창하다 싶을 정도로 고통을 전개시켜 나간다. 피아노는 완전히 성악 배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청자들은 노래가 울리자마자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연작 리트가 지닌 장대한 폭에 놀라게 된다.
'아들이 태어난 후(Das Lied nach der Geburt ihres Sohnes)'('아들의 탄생에 부치는 노래'가 더 정확할 듯 - 홈지기)는 아들을 지켜달라고 주께 비는 기도이다. 코랄(찬송가) 풍으로 화성이 붙여져 있으며, 거의 움직임이 없는 목소리는 삼(Psalm : 시편 송가)과도 같다. 무거운 종지가 마지막에 아멘으로 끝맺는다. 리트 '엘리자베스 여왕께(An die Koenigin Elisabeth)'는 예리한 리듬을 지니고 쉴 사이 없이 전달되는 선율을 보여주며, 피아노도 그에 못지 않게 열정으로 가득차 반주한다. 이 연작 리트는 두 개의 암울한 리트 '세상과의 작별'과 '기도'로 끝난다. '기도'의 소박하며 체념하는 듯한 태도는 감당 못한 운명을 다시금 비춰준다. 이 곡은 슈만의 많은 걸작 가운데 하나로, 끓어 오르는 창작의 기쁨 속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나는 나이팅게일처럼 죽을 때까지 노래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