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39~40)
본문에서 사용된 '하욤'(hayom) 즉 '오늘'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현재의 시점과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역사가 과거에 묻혀진 고고학적인 유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언제나 현재의 시점에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로 번역된 '하셰보타 엘 레바베카'(hashebothael
lebabeka)에서 '하셰보타'는 '돌아가다'란 뜻의 '슈브'(shub)의 사역형으로
'다시 돌이키다', '다시 회복하다'란 뜻이며, 전치사 '엘'(el)은 돌이켜야 되는
방향을 말해주고, '레바베카'는 '너의 마음'이란 뜻이다.
따라서 '너의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다'는 뜻으로 새 성경에서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로 잘 번역되었다.
이것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결코 과거 한 순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부패하고 타락하기 쉽고 하느님을 멀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항상 '오늘'이라는 현재의 시간에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새롭게 마음에 회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의 땅 이집트에서 이방의 문화와 종교에 둘러싸인 채로
430년을 살아온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가나안 땅 역시 거짓된 이방의 신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현재라는 시점에서 마음에 항상 하느님께서 유일하신 분이란 사실을
새롭게 다짐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오늘날 종교 다원 주의의 물결 가운데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중요한 문제이다.
'그것을 너희에게 보여 주신 것은 주님께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신명4,35)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본문에서 관계 대명사 '아셰르'(asher)는 '그래야(그래서) ~ 하도록'으로 번역할 수 있다.
즉 '아셰르'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말해주기 위해
쓰인 관계 대명사이다.
한편, '잘되고'로 번역된 '이타브'(itab)의 원형은 '아타브'(yatab)로서 '좋은'이란 뜻의
'토브'(tob)와 어근이 같은 말이며, 거기에 전치사 '레'(le)와 함께 쓰여서 '~에게 잘
되어가다', '~에게 기쁨이 되다'란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주어는 바로 앞에서 다룬 내용 전체, 즉 '모세가 명하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는 행동'이다.
이런 의미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너희와 너희
자손들에게 기쁨이 되고 좋은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과 하느님 백성의 삶의 행복은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결과는 복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곧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자신의 복(福)에 관련시키는 자기
중심적인 기복신앙(祈福信仰)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하느님 중심의 차원 높은 신앙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