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의 ☞병풍산,낙상산,둔진산,성안산을 산행하며 거치게 되는 문화유적은 임진왜란의 영웅 ‘정기룡 장군’이 주요 인물이다.
‘상주 충의사(尙州 忠毅祠)’는 조선 중기의 무신인 ‘정기룡 장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신도비·묘소와 함께 ‘정기룡 장군 유적(鄭起龍 將軍 遺蹟, 경상북도 기념물 제13호)’으로 분류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사당이었으나 1978년 사당·전시관·내외삼문·기념비·관리사무소 등을 세워 확장 정비하였다.
전시관에는 보물 제669호인 5점(교서 2점,교지,신패,옥대 각1점)과 동산문화재(교지19점,매헌실기 판목 58판)를 전시하고 있다.
정기룡(鄭起龍, 1562∼1622)의 본관은 곤양(昆陽), 호는 매헌(梅軒)으로 곤양정씨의 시조다.
그는 무과에 급제하여 신립(申砬) 휘하에 들어가 훈련원 봉사가 되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성 탈환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경상우도병마절도사상호군(慶尙右道兵馬節度使上護軍) 등을 역임하고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三道統制使兼慶尙右道水軍節度使)로 1622년(광해군 14) 진중(陣中)에서 작고하였다.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이세재(李世載)가 글을 썼으며, 김수용(金壽勇)이 전(篆)하였다.
‘정기룡 장군 묘소’에는 묘비를 비롯한 석물이 고루 갖추어져 있어 조선시대의 묘장제도(墓葬制度)의 좋은 예가 된다.
봉분은 단분(單墳)이고 호석은 없다.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 경상북도 기념물)’은 삼국시대 사벌국의 왕릉으로 전해오는 능(陵)이다.
화달리 둔진산(屯鎭山) 남쪽 기슭에 원형봉토분으로 있으며 주위에 여러 석물(石物)들이 있다.
사벌왕릉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8명 중 다섯째 아들인 언창(彦昌)의 무덤이라고 전한다.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尙州 化達里 三層石塔,보물 제117호)’은 ‘傳사벌왕릉’ 서쪽에 있는 남북국 시대의 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며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성안산(이부곡토성)과 낙상산을 산행한 뒤 '충의사'를 답사한다.
고풍스런 담장을 끼고 정면으로 돌아가...
먼저 충의사 관리사무소를 찾아본다. '한덤'님이 관리소 직원을 만나 자세히 물어볼 게 있어서란다.
국기 게양대가 우뚝 선 충의사.
우측 외삼문인 충의문으로 들어가며...
현판을 올려다 본다.
정기룡 장군 유적을 정화하였다는 기념비가 있고...
그 뒷면에 1979년이라는 정화연도가 새겨져 있다.
우측 잠겨진 듯하였으나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
묵념을 한 뒤 장군의 영정과 유물에 카메라를 갖다댔다.
정기룡 장군 영정.
양 벽면에 교지와 교서를 비롯한 유물들이...
유리벽 안에 진열돼 있고...
정면에 옥대와 신패가 보관되어 있다.
교지, 유서, 옥대, 신패 등 6점은 1980년 8월 23일 보물 제669호로 지정되었다.
내삼문인 충렬문을 들어서면...
세 칸 팔작지붕의 충의사(忠毅祠).
충의사(忠毅祠) 현판.
충의사 안의 향로와 장군의 영정.
충의사를 나오면 화장실이 있는 주차장이다.
이제 둔진산을 오른 뒤...
내려선 곳에 '傳사벌왕릉'과 '화달리 삼층석탑'이 있다.
고풍서린 담장을 끼고 들어서자 완충문.
솟을 삼문인 숭인문.
중앙은 신도(신神道)로서 신이 드나드는 문이고, 우측에 동입(東入), 좌측에 서출(西出)이니 우로 들어가서 좌로 나오라는 말씀.
모두 문이 잠겨 담넘어로 카메라를 높이 든다. 영사전이다.
숭의각.
삼층석탑의 안내판.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尙州 化達里 三層石塔 보물 제117호)'은 남북국 시대의 삼층석탑 이다.
카메라가 탈이나 화면이 흐려져버린 삼층석탑.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는 6.2m이며, 건립연대는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8매의 장대석으로 구축한 지대석 위에 탑을 세웠는데, 기단부는 단층으로서 하층기단 면석을 생략한 형식이다.
이는 상주나 문경지방에 분포된 탑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대석은 마치 하층기단의 덮개돌과도 같이 그 상면에 높직한 원호와 낮은 각형의 핌을 즈츨하여 그 위에 기단 면석을 받고 있으며, 상면 네 귀퉁이에는 약간의 경사로 합각이 뚜렷하다.
기단 면석은 8매석으로 짜여지고 있고 각면에는 모서리 기둥과 안기둥이 정연하다.
기단 덮개돌은 다른 석탑에 비하여 이례적으로 넓어서 신부와 면석 보다 상당히 내밀어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기단 덮개돌 위에 목 없는 불상 1구가 정좌하고 있다.
석탑과는 무관해 뵈지 않으나 이 지역이 절터로 추정되는 이유다.
비각 안엔 비석 2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벌국왕릉사적비.
사벌국왕신도비다.
신도비는 1945년 건립되었으며, 전체 높이 3.04m, 귀부 높이 45㎝, 너비 1.56m, 비신 높이 2.04m, 폭 60.25㎝, 두께 20.67㎝이다.
거북이가 등짐진 비석은 '사벌국왕릉사적비'.
사벌국왕릉사적비 건립기념비. '상주(상산)박씨대종회'.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 경상북도기념물)’에 올라 석물을 비롯한 왕릉을 살펴본다.
'전사별왕릉'은 삼국시대 사벌국의 왕릉으로 전해오는 능으로 둔진산(屯鎭山) 남쪽 기슭에 있는 원형봉토분이다.
본래 사벌국은 점해이사금 때 신라에 병합되어 사벌주(沙伐州)로 되었다.
그 뒤 524년(법흥왕 11)상주(上州)로 고치고 군주(軍主)를 두었고, 557년(진흥왕 18) 상락군(上洛郡)으로 고치고, 687년(신문왕 7) 다시 주로 만들었다.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상주(尙州)로 이름을 고쳤으나, 776년(혜공왕 12) 사벌주로 환원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尙州牧)의 고적(古蹟)조에 의하면 “사벌국의 고성(古城)은 병풍산(屛風山) 아래에 있고, 성 옆에 높고 둥근 구릉이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사벌국의 왕릉이라 한다. 그리고 신라 말에 후백제국의 건국자인 견훤(甄萱)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가 이 성을 차지하고 지켰다.”고 하였다.<자료>
한편, 사벌왕릉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8명 중 다섯째 아들인 언창(彦昌)의 무덤이라고 전한다.
경명왕은 언창을 917년(경명왕 1)사벌주의 사벌대군(沙伐大君)으로 책봉하고 사벌방어장(沙伐防禦將)으로 삼아 사벌주의 수호를 위해 견훤을 격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언창은 견훤의 합천·고령·영천·선산 등의 점거로 본국인 왕경(王京: 경상북도 경주)이 고립상태에 빠지자, 918년 사벌동(沙伐洞)과 흔국촌(欣國村)을 본영으로 해 사벌국이라 칭하고 자립하여 왕이 되어 11년간 통치하다가 견훤의 침공을 받아 929년(경순왕 3) 패망했다고 한다<자료>
사벌국왕지능(沙伐國王之陵).
왕릉 중앙에 석등이 있고, 좌·우로 문·무인석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다시 그 앞에 망주석(望柱石) 두 개가 마주 보고 서 있는데, 오랜 연륜으로 까맣게 이끼가 끼어있다.
석주(石柱)엔 다람쥐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세호(細虎)라고 한다.
다람쥐는 우주상행(右柱上行)과 좌주하행(左柱下行)이 원칙이다.
그러니까 오른쪽은 위로, 왼쪽은 아래로 기어내려가는 모습이다.
새로 세운 듯한 사각 모양의 '관세위(盥洗位)'는 제향 때 제관이 손을 씻는 곳.
우리는 이곳 팔각정자에서 간단요기를 하였다.
일찍 식사를 끝낸 '류찬선' 님이 우기산으로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우리는 정기룡 장군의 신도비와 묘소를 찾아간다.
화달1리 표석 아래에...
마을의 유래가 빼곡하다.
'화달(化達)'은 1914년 '화룡리(化龍里)'와 '달천(達川)'이 병합되며 지어진 지명이고, 둔진산은 '두리봉산'으로도 표기되었다고 한다.
정기룡 장군 묘소와 신도비.
안내판이 있는 지점에서...
장군의 묘소가 올려다 보인다.
확대한 안내도.
신도비각.
‘신도비’는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이세재(李世載)가 글을 썼으며, 김수용(金壽勇)이 전(篆)하였다.
전체 높이 370㎝, 폭 130㎝, 두께 42㎝로서...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갖추었다.
특히 이수의 운룡문(雲龍文)이나 귀부의 용린(龍鱗)·용수(龍首)·구갑(龜甲) 등의 조각수법이 매우 걸출하다.
'정기룡장군 유적(충의사)' 안내판.
이제 조금 위에 있는 묘소를 찾아간다.
'절충장군검지중추부사정공ㅇㅇㅇ지묘'와 '숙부인순천김씨부' 부부 합장묘다.
정기룡 장군의 묘소에는 묘비를 비롯한 석물이 고루 갖추어져 있어 조선시대의 묘장제도(墓葬制度)의 좋은 예가 된다.
봉분은 단분(單墳)이고 호석은 없다.
묘표는 종 모양 삿갓머리를 한 것이 독특하며 혼유석 밑에는 석축으로 층을 이루고 있다.
묘갈명엔 '보국숭록대부행지중추부사겸오위도총부도총관정공휘기룡지묘'와 '정경부인양양권씨부'라 새겨져 있다.
문·무인석과 석주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묘소에 소나무 두 그루가 곧게 자라고 있다.
고개를 든 제일 위의 묘는...
'정경부인분성김씨'.
'숭정갑신후64년ㅇㅇㅇㅇ 立'
숭정(崇禎)은 중국 명나라 숭정제가 1628년을 원년으로 삼아 반포한 연호로서 1628년부터 1644년까지 17년간 사용했다.
2024년이 숭정기원후 397년, 또는 숭정갑신후 381년이다.
충의공 정기룡 장군 묘비 안내판.
1707년(숙종 33) 11월에 식산 이만부가 글을 짓고, 승문원 권지정자 이만유가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