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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의 뷰 포인트로 꼽히는 선유봉에서 바라본 장자도와 대장도. 선유도와
장자도를 잇는 장자대교도 보인다.<사진 / 군산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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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복이 많았다. 바로 대박이었다.
나는 1978년 10월 그리고 1982년 6월, 2개월 60일 동안 서해바다
고군산군도(전북)와 덕적군도(경기)를 떠돌아 다니는 팔자였다.
대한민국 해군군함(LST)을 모함으로 낮시간은 '낙도'를 순회하고
밤에는 함정으로 귀환, 잠을 자는 정말 행복한 생활을 했다.
해군홍보단은 인구가 가장 적은 섬 25개를 선정, 순회를 하면서 위
문공연을 하고 의료진료, 선물전달을 하는 것이 홍보단의 기본적인
임무였다.
나는 민간인 신분으로 정부가 파견한 해군홍보단의 일원으로 '특수
한 임무'를 수행했다.
나에게는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들을 쌓았고 낙도주민들에게는 영원
토록 기록될 업적(?)들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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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군산군도 명도(明島)의 추억
(1)
동화속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동화속의 이야기 같습니다.
작은 섬마을 선착장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박재곤선생님 우리섬에 오신 것을 충심으로 환영합니다 - 명도주민 일동 - '
선착장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 적힌 글귀였습니다.
그리고 선착장에는 국민학교 분교생 8명이 멜로디온으로 ‘고향의 봄’을 연주
하는 가운데 섬주민 모두가 나와서 ‘박재곤 선생님 환영행사’를 펼쳤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섬에 내리자 말자 산
속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마을 부녀자 몇 사람이 산속으로 나를 찾아 왔고 나는 그들의 손에 끌려 선착
장에 펼쳐 놓은 ‘환영행사장’으로 갔습니다.
해군홍보단의 우렁찬 ‘해군가’와 ‘흘러 온 가요’들이 연주되었습니다. ‘삼팔선의
봄’ ‘모정’ ‘전선야곡’ ‘황성옛터’ 등이 해군홍보단이 찾아 가는 섬마을에서 연주
하는 단골 ‘레파토리’였습니다.
‘명도’는 고군산열도에 있는 11가구, 인구 57명이 살고 있던 작은 섬입니다.
1982년 6월 어느 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2)
1978년 10월 어느 날, 해군홍보단이 명도에 도착하던 시각, 선착장에는 국민학교
분교 재학생 8명이 나와서 ‘피리’로 ‘고향의 봄’을 연주하면서 해군홍보단을 환영
했습니다.
나는 해군이 아니면서 해군홍보단의 일원이 되어 그해 10월 한 달 동안 서해바다,
덕적군도와 고군산군도 등의 25개 섬마을을 순회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섬마을을 순회한 이야기를 주간으로 발행하던 어느 수산신문에 기고했고 ‘가정의 벗’
이라는 손바닥만한 월간지에도 기고했습니다.
(2011. 11. 05. 토. 02:07. 서해바다위에서 ‘해군가’를 들으며 이 글을 작성 중)
‘작은 섬마을에 울러 퍼지는 멜로디’라는 두 쪽짜리 글이 ‘가정의 벗’에 실렸습니다.
그 글을 읽었다는 독자 한 분이 전화를 주었습니다. 수원 팔달문 골목안에 있는 맥주
집에서 그 독자를 만났습니다. 그 독자는 수원의 삼일여자고등학교의 음악교사 ‘배용
재 선생님. 선생님은 뒷날 이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으로 정년을 맞이하신 분입니다.
‘명도’ 섬마을 분교 학생들에게 악기를 사서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섬마을에는 하모니카와 멜로디온, 멜로디카 8개 씩이 전해졌습니다.
(3)
명도분교의 고석구선생님은 이 악기들로 학생들을 훌륭하게 지도하셨고 이 사실들이
군산에 소재했던 ‘서해방송’에 알려져 분교학생 8명이 서해방송에 초빙되어 연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의 TBC(중앙일보)는 서해방송과 제휴를 했던 방송으로 당시, 아침 출근시간대의
최고 인기프로 ‘가로수를 누비며’(송해 진행)에서 섬마을의 고석구선생님과 나를 아침
방송에 출연토록 요청을 했습니다.
아침 방송이 나가고 사무실로 출근을 했더니 3곳에서 나를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사무
실에 와 있었습니다. 3곳 모두가 섬마을 사람들을 서울로 초청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
니다.
그 3곳 중 ‘전국관광버스조합’에서 섬 주민들과 학생들을 서울로 초청을 하게 되었습니
다. 섬마을 학생들이 TBC방송에 출연을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정이었습니다.
이런 일연의 일들로 MBC TV가 '아름다운 명도‘를 방영했고 ’해군홍보단‘에 각별한 관
심을 가졌던 박졍희대통령은 ‘섬마을의 숙원사업’을 보고 받고는 특별지시로 엄청난 예
산지원을 했습니다. 섬에는 대형선착시설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연한 귀결로 섬마을에는 그 때까지 없었던 5톤짜리 고깃배까지 장만하는 경사로운 일
까지 생겼습니다.
내가 쓴 불과 수백자의 ‘글’이 엄청난 ‘사고(?)’를 쳤다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행복합니다.
(2011년 11월 5일. 토. 02시 49분. 인천에서 산동으로 가는 화동페리 선상에서)
이제 배가 공해상에 왔는가 보다. 조금 흔들린다. 이제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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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0월 해군홍보단 1차 참여. 25개 낙도 순방 중 명도방문
1978년 12월 명도에 악기전달
1978년 12월 18일 동두천 부녀회 회원 70명 해군군함(북한함.함장 백남영중령) 위문공연 (서해 해상)
1979년 봄 명도주민 서울초청(3박4일 일정) / 전국관광버스노동조합
1979년 봄 미8군 장교부인회 바자회 모금 500만원 중 250만원 명도지원
1979년 여름 청와대에서 명도대형선착장 공사 및 재정지원
1982년 6월 해군홍보단 2차 참여. 25개 낙도 순방 중 명도방문.
1984년 7월 명도주민들의 초청으로 명도방문.
* 1978년 12월 덕적군도 '울도분교 교가' 작사
* 1978년 12월 덕적군도 '굴업도의 노래' 작사
* 1979년 봄 미8군 장교부인회 바자회 모금 500만원 중 250만원 덕적군도 굴업도 지원
* 해군홍보단장 이필은 중령 (2차 참여때는 대령으로 진급) / 북한해군장교로 귀순한 분임
동 연배인 이필은 대령은 좋은 술친구가 되어 독한 양주 많이 마셨고
자신의 집으로도 초청을 해 주었는데..
무엇이 그렇게도 급했을까.
저 세상 사람이 된지도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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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국관광공사)
선유도(仙遊島)라. 이름을 그대로 풀어내면 '신선이 노니는 섬'이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신선도 머문다는 아름다움을 엿보러 나섰다.
선유도는 전북 군산 앞바다 고군산군도의 가운데 즈음, 섬과 바다에
안겨 자리한다.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와는 다리로 연결되어 한 몸이나 진배없다.
우선 고군산군도의 위치부터 찾아보자. 서해안을 따라 내려 오면 위
아래로 길게 뻗은 태안반도와 닿는다.
아래로 서천과 군산을 지나면 해안으로 툭 튀어나온 변산반도가 보인
다. 고군산군도는 군산과 변산반도 사이 서해에 자리한다.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계시군요.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