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으로 잘 산다는 게
김 상 립
우리네 노인 인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늘어 가는데, 사회나 국가의 준비는 이에 미치지 못하니 사방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린다. 따져보면 노인들이 처신하기가 참 어려운 시절인데도, 나이 많다고 막무가내로 평소 습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사회적 갈등이 더 증폭되는 것 같다. 또한 노령연금이나 기초생계비 지급, 건강보험료와 기타 복지비용 지출도, 젊은 이들 입장에서는 저들이 번 돈을 노인들에게 왕창 쓴다고 불평할 수도 있을 터이다. 이럴 때일수록 노인들은 과거사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굳건하게 현재를 딛고 서서 세대간의 소통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처신할 필요가 있겠다.
매사에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정치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견해차이는 노, 소가 극명하여, 진보성향의 젊은 이들은 노인들을 싸잡아 골통보수로 내몰고 있다. 더러는‘내가 젊었을 때 어떤 고생을 해가며 돈 벌어 살아왔는데’또는‘누구 덕분에 너희들이 이만큼이라도 잘 살게 되었는데’라고 핏대를 세워보아도, 가슴을 열고 들어줄 젊은 이들은 많지 않다. 가정 내에서도 유산 때문에 늙은 아버지가 자식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일이 잦고, 병든 노인들이 집안에서 내쳐지는 일이 뉴스로도 취급되지 않는 나날이다. 노인이 길을 가다가 젊은이와 어깨라도 부딪치면 화를 내기는커녕 얼른 움츠리고 상대방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술 먹고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주로 핸드폰이나 인터넷으로 지내는 젊은 이들은 노인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잘 소통하려 들지 않는다. 노인 입장에서도 낯선 전문용어도 그렇고 전자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힘들고, 외국어를 섞어 만든 축약된 언어는 마치 이방인들이 쓰는 말같이 들린다.
한편 보이스피싱이나 사기도박, 다단계 판매조직들은 노인들이 주 수입원이다. 온갖 사기꾼이나 가짜 패거리들도 찰싹 달라붙어 돈을 빨아당기려 안달이 났다. 노인들의 휴대전화를 보면 수신전화의 반 이상이 불필요한 전화다. 지금 그들의 삶이 얼마나 신경 쓰이며 피로한지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거기다가 젊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든지, 아예 존재자체를 달갑지 않게 여기기라도 한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사사건건 세대간에 충돌은 일어나고 해결방안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이런 형편에 놓이자 살만한 노인들은 끼리 문화를 만들어 스스로 방어하려 한다. 소위 노인학교라든가 노래교실, 등산이나 파크골프 모임, 기타 여러 놀이문화그룹이 그런 사례다. 그들과 만나 얘기를 나누어보면 속으로 놀라게 된다.“뭐 그렇게 신경을 씁니까?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 겁니까. 그냥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는 것이 행복 아닐까요?”하니 말이다. 내가 느끼기에 이 쪽의 분위기는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기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 같다. 그것도 경제적 사정이 나을수록 그런 행동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다.
장차 생활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수명은 자꾸 길어져 가니, 주체가 되는 노인 스스로가 변해야만 무사히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앞으로 10여년만 지나면 젊은이 두 사람이 노인 한 사람을 봉양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데, 과연 그들이 그 짐을 져줄 형편이 될지 확신을 못하겠으니 더욱 그러하다. 장차 농촌을 중심으로 다문화가정은 더욱 늘 것이고, 외국인의 유입도 큰 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니 미래의 생활환경은 나와 내 가족 만을 감싸고 위할 것이 아니라, 생활 터전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의식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노인들도 지식이든 돈이든 가진 만큼에 비례하여 닥쳐오고 있는 사회적 고민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나는 코로나와 내 건강문제를 빌미로 3년이 넘도록 외부출입을 삼가 하고 있다. 내가 관계하던 여러 단체들에서 맡고 있던 고문이나 자문위원 같은 자리도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그러니 어떤 모임에서 부르던 선뜻 확약을 못한다. 어디든 일단 참석하게 되면 원로라 하여 인사도 받게 되고 나도 모르게 한 마디씩 거들게 된다. 사람 나이가 어느 선에 이르면 남 앞에 나서서 큰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불필요하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공연한 자기 과시나 자랑을 내세우기가 십상인 게 사람의 약점이다. 가급적 말을 줄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매사 양보하며 사는 게 속 편하다.
또 내 이미 고령인데 턱없는 욕심을 내어 남을 아프게 하거나 타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면, 마지막 자존심마저 지킬 수가 없을 터라 극구 피하는 중이다. 나는 주식이나 복권 또는 부동산 등에 처음부터 관심도 없었고, 지금은 돈 자체를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한다. 세상의 중심을 돈이 잡는 판에 이런 성격의 내가 여유 있게 살리는 만무하지만, 그렇다고 배 곯을 처지는 면했으니 천행이다. 동료가 동사무소에다 이런저런 서류를 신청하면 돈을 제법 받는다고 부추기지만, 나는 아직 실행해본 적이 없다. 만일 내가 정부나 무슨 단체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든지, 누가 공짜로 뭘 해줄 것을 바라고 살면, 공연한 아쉬움 때문에 오히려 더 불편하지 싶다. 오늘 당장 굶어 죽지 않는 한, 어떤 방법으로라도 남을 도울 여지가 생기는 게 삶의 현장이다. 따뜻한 손길이나 편안한 미소만으로도 주위를 좀 더 평온하게 해줄 수도 있으니, 그게 바로 인간 세상이다.
불행하게도 늙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픔을 가진 사람이 예상외로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당신의 처지를 주변에 꼬치꼬치 자주 들어내면 도리어 불리해진다. 지금 세상은 상대가 약점을 드러내면, 위로해주고 도와줄 것 같아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노인들이 자기가 처한 고통을 암만 하소연 해 보았자 돌아오는 것은 적고, 도리어 주변으로부터 외면 받기가 쉬우니 웬만하면 참고 참아야 한다. 나는 보호자를 대동하라는 특별한 요청이 없으면, 복잡하다는 대학병원에 늘 혼자 다닌다. 아내의 병이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지칠 대로 지친 가족들에게 나까지 끼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수년 전 연명치료에 대한 절차를 마쳤고, 스스로 절식하면 며칠만이면 생을 마감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죽음을 좀 더 우아하게 마무리하지는 못해도, 내 의지가 무시당하지 않을 방안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늙더라도 정상적으로 흘러가려는 사회적 흐름에는 방해가 되는 인간이면 안 될 터이다. 나는 나의 존재의미와 진리를 추구하는 노력만은 끝까지 놓지 말게 되기를 소원한다. 그러다 때가 오면 생이라는 열차에서 말없이 내릴 것이다. 좌우간 노인으로서 잘 산다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다.
첫댓글 값싼 동정을 받지 않고 마지막 까지 삶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내 의지로 살아내겠다는 결심에 저도 동참 합니다.
요즘 젊은이는 젊음이 힘들다고 합니다. 저도 어중간한 이 지점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ㅎㅎ
진지한 삶의 자세가 어디에 있던 어려운가 싶습니다.
선생님의 현재는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