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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 김정태는 남후면 무릉3리 출신으로 남후초등 17회 졸업생이고 안동사범병설중학교 7회 졸업생, 안동사범 본과 11회 졸업생으로 현재 재경향우회원임
곤명 가족여행 기행록
우리 딸 여섯과 사위들과 함께 외국여행을 하고픈 생각을 늘상 품고 있었는데 내 나이 79살에 접어들고 안사람 건강도 안 좋아 좀 초조한 마음이 들어 지난해 11월 어느날 딸들 모두가 함께 하는 자리에 전격 여행 제안을 하였다. 애비의 제안을 들은 딸들 모두가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로 환영을 하였다. ‘언제 어디로 가요?, 누구랑 가요?. 아부지 돈 많이 들 텐데요?’ 한꺼번에 질문이 쏟아졌다.
나의 답... “가는 시기는 너희 자매들이 수의해서 가장 편한 때로 결정하고 가는 곳은 잠정적으로 중국 곤명으로 할 예정이다.”라고 내 복안을 알렸다. 또 손자만 15명이나 되어 손자들과는 함께 가지는 못함을 알렸다. 그러자 먼저 튀어나온 걱정이 아이들 처리 문제였다. 내가 말하길 아이들은 친할머니께 맡기던지 고모나 누구에게 맡기던지 저들끼리 밥해 먹고 지내던지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자 모두들 제 나름의 해결 방법을 내 놓았다. 시기는 학교 다니는 손자녀들 때문에 방학에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두 다 해결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미국에 사는 둘째 사위 윤서방에게 전화로 계획을 알리자 다짜 고짜로 ‘예, 아버님 저희들도 갈 거예요.’라고 확답을 주었다.
그런데 우리 맏딸이 동행하지 못할 사유가 생겼다. 무릎 관절 수술 후 아직 많이 걷는 게 불가능하고 맏사위가 운영하는 전자제품 생산 공장이 이전한지 불과 한 달 남짓이어서 맏사위도 동행이 어렵다는 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행사에서 1월 4일까지는 중국 입국 단체 비자가 나왔으나 1월 5일부터 단체비자 발급이 안 되고 개인비자 만 발급이 되어 1월 2일 날 미리 혼자 입국한 둘째 딸은 문제가 없으나 1월 16일에 한국에 입국하기로 한 둘째 사위는 미국 현지에서 중국 입국 개인 비자를 발급 받아야 하기에 미국에서는 비자 발급이 8일 정도 소요됨으로 시간이 촉박하여 동행이 어렵게 되었다. 예정 인원이 14명인데 3사람이나 유고하여 상계동 사는 여동생과 공릉동 사는 사촌동생을 합류 시켜 13명이 출발하게 되었다. 남동생이 있으나 직장 일 관계로 동참이 안 되고 여동생 한 명도 임박해 알려서 여권도 새로 내야하고 여권이 나와야 비자 신청이 됨으로 아쉽게 되었다.
이 모두가 중국 당국의 몽니 때문....
이번에 함께 여행하지 못하는 맏딸에겐 다리가 다 나으면 너희 내외만 따로 여행 할 수 있을 때 경비를 지원해 줄 테니까 얼른 잘 걸을 수 있도록 하라고 위로해 주었다.
◎ 여행 계획 확정
딸들이 저희끼리 의논한 결과 방학 중인 1월 18일을 출발 날짜로 잡고 18일(금) 출발, 22일(화)에 도착하기로 여행 기간을 확정 하였다.
여행사는 「하나투어」로 하고 1인당 경비로 980,000원인 상품을 골랐다. 여기에는 아래의 세 가지 선택관광을 포함 시킨 가격이다.
①‘운남영상 가무 쇼’, ②‘백련스파온천’, ③‘전신 맛사지’
◇ 총 금액 : 13,680,000원
◇ 참가 인원: 성인 13인 (방 7개 이용)
※상품명 - [단독행사]곤명/석림 5일◈핵심관광지일주◈
[미팅 일자 01월 18일] [미팅 시간 오후 16:00]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 H카운터 옆 여행사 미팅장소 하나투어 테이블
「하나투어」에서 받은 확정 일정표는 아래와 같다.
일 자 | 지 역 | 교통편 | 현지 시간 | 일 정 | |||
제 1 일 1월18일 (금)
| 인 천
곤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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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885 전용차량
| 14:00 18:30 22:45
| 인천공항2터미날3층 H카운터 집합 인천공항 출발(5시간 15분 소요) 가이드 미팅 후 호텔 체크인 *호텔 : 곤명 중황호텔(ZHONGHUANG HOTEL(4성급) | |||
조식 : | 중식 : | 석식 : 기내식 | |||||
제 2 일 1월19일 (토)
| 곤 명
| 전용차량
| 전 일
| 호텔 조식 후 태화궁(금전),원통사,취호공원,운남 육군강무당 관광, 운남민족촌 후 중식 서산용문(전동차+리프트)등정과 곤명호 조망 후 운남민족촌 석식 후 운남 영상가무쇼 관람 호텔투숙 및 휴식 *호텔 : 곤명 중황호텔(ZHONGHUANG HOTEL(4성급) | |||
조식 : 호텔식 | 중식 : 쌀국수 | 석식 : 현지식 | |||||
제 3 일 1월20일 (일)
| 곤 명
| 전용차량
| 전 일
| 호텔 조식 후 대,소석림 관광(전동차 포함) 구향동굴 관광(리프트 포함) 후 중식 후 편백나무 제품 매장 백련스파 온천욕(수영복 필수지참) 무제한 삼겹살로 석식 후 호텔투숙 및 휴식 *호텔 : 곤명 중황호텔(ZHONGHUANG HOTEL(4성급) | |||
조식 : 호텔식 | 중식 : 오리구이 | 석식 : 삼겹살 | |||||
제 4 일 1월21일 (월) | 곤 명
곤 명 | 전용차량
KE886 | 전일
23:50 | 호텔 조식 후 관도고진 관광 후 보이차 매장 여행의 피로를 풀어 주는 전신 맛사지(팁 별도) 송이버섯 샤브샤브로 석식 곤명출발 * 예정호텔 : 기내 1박 | |||
조식 : 호텔식 | 중식 : 현지식 | 석식 : 샤브샤브 | |||||
제5일 1월22일 (화) | 인 천
|
| 05:00
| 인천공항 도착 및 해산 | |||
조식 : 기내식 | 중식 : | 석식 : |
「하나투어」 정주희 과장이 보내 온 마지막 문자
◇날씨 : 곤명의 1월 평균 기온 1 ~ 15℃ 정도입니다.
+초겨울/겨울으로 생각하시어 여행준비 부탁드립니다.
+아침저녁 일교차가 커 유의하여 의복 준비 부탁드립니다.
+비가 올 경우도 있으므로 휴대용 우산 챙기셔야합니다.
◇전압 : 220V로 한국과 동일합니다.
◇평소에 복용하는 약, 지사제, 소화제, 신경안정제, 진통제, 멀미약, 감기약, 피로회복제, 1회용 밴드 등 준비 합니다
◇환전 : US 달러로 해주시면 편리합니다.
+가이드/기사 경비 40$ + 옵션비용 + 개인 경비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중국의 경우 1인 약 40만원을 환전 안내 드립니다.
- 환전은 200USD, 나머지는 중국 돈(위안화)로 환전함이 좋음
+해외에서 사용가능한 신용카드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1장 정도 준비합니다.
*출발 당일 - 넷째네가 우리 내외와 미국 사는 딸, 5명을 저네 차로 인천공항으로 가기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넷째 박서방(박희수)은 장기 주차 위탁을 하였다.
*은영이 신랑 박서방(박희수)은 몇 년 전까지 대우중공업에서 부장으로 재직하다가 미국회사인 GE(제네랄 일렉트릭)로 전직해 근무 중인데 업무 특성상 해외 출장이 잦아 공항을 이용할 기회가 많다. 그래서 이번 여행 시 VIP공항 라운지 이용권 4장을 받아다가 우리 내외, 여동생, 사촌동생 넷이 난생 처음 VIP공항 라운지에서 비행기 탑승시간이 될 때 까지 편안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에 냉장이 잘 된 수박과 오랜지를 공짜로 먹으며... 여기 이용객 중 컵라면을 먹는 이도 여럿 보였다. 어깨가 우쭐!!!
*또 비행기 좌석도 1등석 바로 안쪽, 맨 앞자리에 네 자리를 배정 받아 다리를 맘대로 쭈욱 뻗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어 잘난 사위 덕을 보았다.
*18:30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곤명장수국제공항’에 현지 시각으로 22:45분에 도착했다. 장장 5시간 15분 소요
*곤명은 우리보다 1시간이 늦다. 1시간 시차 발생!!!
*곤명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 라문걸씨가 ‘하나투어 김정태님 가족’이란 팻말을 들고 우리 일행을 맞았다. 곤명이 ‘꽃의 도시’임을 증거라도 하듯 일행에게 일일이 장미 한 송이씩 선물해서 모두 입이 벌어졌다.
*곤명은 사철 따뜻해 ‘봄의 도시(春城)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곤명공항은 새로 지은 지 10년 된 공항으로 연간 1000만 명이 이용
*중국 전체의 연간 관광객 1억 5000만명
*중국 인구 : 약 15억 명
- 호적에 올라 있는 인구는 13억 5000만 명
*2013년부터 2자녀 허용
쿤밍(곤명 昆明)
*윈난성(雲南省) 성도(省都)로 중국에서 면적으로 세 번 째 큰 省
*윈난성(雲南省)의 면적 : 39만㎢
*윈난성(雲南省)의 인구 : 4700만 명
- 윈난성이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은 이유 - 땅의 대부분이 산악지대
*곤명시(昆明市)의 면적은 서울의 30여 배
〃 인구는 7∼800만 명
*운남성 지도
복사해서 클릭↓
http://blog.daum.net/freeleeandkim/79
곤명
행정 단위 | |
청사소재지 | |
21,473km² (96위) | |
6,193,300 (6위) 288.4/km² (16위) | |
민족 | |
지역전화 | 871 |
ISO 3166-2 | CN-52 |
우편번호 | 650011 |
시차 | UTC+8 |
웹사이트: http://www.km.gov.cn/ |
쿤밍(míng)은 중화인민공화국 윈난 성의 성도이다. 2006년 인구는 405만5천여명으로 추정된다. 이 도시는 거대한 호수 뎬츠 호의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로 인하여 때때로 봄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昆明Kūn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가계도 운남성에 소재
*별 다섯 개의 관광지가 중국에서 200곳
*운남성은 해발고도가 1980m - 한라산 정상에 해당
*우리는 3박(泊)을 계속 ‘곤명 중황호텔(ZHONGHUANG HOTEL(4성급)’에 투숙함
- 모두 10층에 방 배정
- 식당은 1층
*윈난성에서는 매년 국제회의가 열림
- 이유 : 윈난성은 기온이 25℃, 사람 살기 좋은 곳이기에....
*보이차(普洱茶) 우리는 병을 1인당 1개씩 지급
- 병 안에 든 건조제를 제거하고 나누어 준 보이차를 1/2개 또는 1/4개를 넣고 끓인 물을 부으면 보아차가 되고 갖고 다니며 마실 것
*곤명의 4색(色)
흑(黑) - 보이차
백(白) - 송이버섯 : 연간 8만톤 채취 (한국에서는 연간 5천 톤 채취)
청(靑) - 여강의 ‘청해호수’에서 나는 ‘스피룰리나’(단세포 식물)
황(黃) - 담배. 세계 4대 담배 생산지 중 한 곳
곤명(쿤밍)은 운남성(윈난성)의 수도입니다.
운남성은 중국 서남쪽의 따뜻한 자치구로서 우리나라엔 보이차 산지와 골프 관광지로 최근에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은 아직은 우리나라에 덜 알려져 있지만 '석림' '구향동굴' '여강고성' '옥룡설산' 등으로 주목 받고 있는 곳입니다.
차례로 소개하겠습니다.
운남성은 중국에서 4번째로 큰 성으로서 서쪽으로 미얀마,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라오스 및 베트남과 국경으로 맞닿아 있는 곳입니다.
곳
1253년 몽골족이 이곳을 점령하여 중국 제국의 성으로 편입시켰다 합니다. 운남성은 중국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 중의 한 곳이며 북 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집니다. 티벳자치구와 인접하여 최근 우리나라 방송에서 소개된 '차마고도'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곤명시는 북위 25도 아열대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국가와 달리 덥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평균 고도 1891m의 고원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연평균 22도이며, 여름철 가장 더울 때는 29도, 한 겨울철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때문에 곤명은 '춘성(春城)'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봄의 도시'라는 뜻이죠. 하지만 일교차가 심하고 자외선이 강한 높은 지대이기 때문에 여행 때는 감기와 피부 보호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운남성은 꽃 재배, 보이차, 옥수수, 밀, 사탕수수, 담배 등의 농업이 주를 이루며, 1999년 엑스포를 개최한 곤명시는 그 후 공업도시로 고도 성장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운남성은 여름철에는 냉방을, 겨울철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 곳입니다. 때문에 고급 호텔에서도 새벽에는 보일러를 중지시킵니다. 겨울철 여행 시 두터운 의류도 필수입니다.
쿤밍은 윈난성 중동부에 위치한다. 북위 24°23´와 26°22´, 동경 102°10´와 103°40´ 사이에 위치한다. 동서의 길이는 140km, 남북의 길이는 220km에 달한다.
뎬츠호 북안의 비옥한 호수 분지에 위치하며 북쪽, 서쪽, 동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쿤밍은 항상 중국 남서부의 통신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뎬츠호는 "고원의 진주"로 불리며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담수호이자 윈난성에서 가장 큰 호수로 면적은 340㎢에 달한다.
낮은 위도와 윈구이고원의 1890m의 높은 고도에 위치하여 연중 온화한 기후가 계속된다. 춥고 건조한 겨울은 짧고 따뜻하고 습한 여름은 길다. 여름은 결코 덥지 않아 기온이 30°C 이상 한두 차례 오를 뿐이다. 그러나 겨울에는 때때로 변덕스럽게 눈이 오기도 한다.
온화한 고원 계절풍 기후로 겨울의 평균최고기온은 15°C이고 여름의 평균최고기온은 24°C이다. 항상 봄같은 날씨는 식물과 꽃이 자라기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쿤밍은 "영원한 봄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는 연중 꽃이 만개하고 푸르른 숲으로 덮여있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우기이고 나머지 기간은 건조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1000mm이고 연일조시간은 2250시간이며 무상 일수는 230일이다.
쿤밍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루취안에 있는 자오쯔산의 마쭝 능선으로 4247m이고 가장 낮은 지점은 둥촨구의 샤오강과 진사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695m이다. 시가지의 고도는 1891m이다.
도시에서 동남쪽으로 96km 떨어진 곳에는 카르스트 지형이 형성되어있어 동굴, 아치가 많아 많은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스피루리나 혹은 스피룰리나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한국어 표기는 스피'룰'리나가 맞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 된 생명체인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의 일종이다.단백질을 포함한 인체 필수 영양소가 풍부하고 항산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건강식품으로 소개되거나 NASA에서 슈퍼푸드로 꼽히기도 했다. 역시 가장 접하기 쉬운 것은 말려서 알약으로 정제되어 있는 형태.한국에서는 2000년대 후반에 일본을 통해 유명해졌다. 일본은 스피루리나의 효능을 가장 먼저 밝힌 나라고, 세계적인 스피루리나 양식장도 운영하는 나라라 인접국인 한국이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마침 한국에 분 웰빙 열풍에, 이미 들어와있는 클로렐라와 비슷해서 큰 거부감 없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 1월 19일(목)▣
*아침 - 모닝콜 06;00, 식사 07:00, 출발 08:00
◈오늘의 일정
태화궁(금전)→원통사→500m 걸어→취호공원→육군 강무단→점심 식사→서산과 용문→운남민족촌→석식 후 →운남 영상 가무 쇼
*3일간 아침식사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함
-호텔식 뷔페 조식(朝食) - 뷔페가 다양해 먹을 만 했는데 특이한 메뉴로는 ‘운남성 칼국수’로 모두 한 번은 가져다 먹었는데 입맛에 썩 들지는 않았음. ‘파란 대추’가 나왔는데 달큰하고 사각거려 끼니마다 모두들 가져다 먹음. 우리나라 대추는 익으면 붉은데 이곳의 익은 대추가 파란게 이색적임
*이곳 사람들의 主食이 쌀국수, 만두, 두유, 국이라는데
*중국 만두는 밀가루로 만든 고명이 안든 빵
*사천요리 - 향신료인 산초가루가 많이 들어감
*중국에서 떠도는 말 - ‘살아서는 소항에서, 죽어서는 유주에서’
- ‘소항’ - 소주와 항주를 합해서 '소항'이라고하는데, '소항'의 음식은 대중적이서 누구나 적응 가능
- 소주와 항주에는 미녀가 많다. 북경에서 소주와 항주까지 운하를 뚫었는데 황제가 이곳 미녀들을 쉽게 데려가기 위함
- 유주에서 나는 목제는 장례용 관을 만들기에 최적인데 이는 여기서 나는 목제로 만든 관은 수천 년이 지나도 썩지 않음
*‘술 취하려면 사천성으로 가라’
- 사천성은 술이 유명, 중국의 10대 명주(名酒)중 여럿이 사천성 産, 그 유명한 오량주와 풍곡주가 사천성에서 생산함
*고량주- 좋은 술 고르는 법 : 흔들어서 거품이 오래 가면 좋은 술, 따를 때 술 줄기가 끊어지지 않으면 술의 돗수가 높음
*남쪽 지방 : 음료수도 뜨거운 걸 먹고 사천지방에서는 모든 채소를 데쳐서 먹음
*맥주가 잘 팔리는 곳 : 산동성과 청도 그리고 연변 지방
*다양한 먹거리를 찾으려면 광동성으로 가라 : 하늘-비행기, 땅-책상, 바다-배 이외의 것은 다 먹음
- 귀뚜라미를 튀겨 먹음,
* 중국의 지도를 보면 전체가 닭 모양인데 운남성은 닭의 엉덩이 부분에 위치하고 베트남과 국경을 이룸
*주변에는 대리, 여강, 상글릴라, 티벳 등이 위치함
*티벳은 해발 3600m의 고지대로
*티벳인들은 오체투지로 라싸의 라마사원까지 참배하는 고행을 함
- 오체투지(五體投肢) - 두 손바닥, 두 무릎, 머리 등 신체의 5개 부위를 땅에 닿게 하며 절하는 행위
- 하루에 빨라야 7∼8Km 나아감
- 고생한 만큼 내세에 좋은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믿음
- 라마 불교 : 환생(還生)을 믿음
*만두(饅頭의 유래) : 만두는 제사용 식빵이었다.
유명한 중국의 역사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만두의 유래가 나옵니다.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올 때 노수라는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강이 심한 파도와 급한 물쌀로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지방의 노인들에게 들으니 말하기를 '이 강에는 황신이라는 신이 살고 있는데 그 신이 노해서 이러하니 사람 머리 99두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갈량은 산 사람을 죽여 머리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신을 속일 계획을 세웁니다. 사람 머리 대신 밀가루 반죽에 고기를 넣어 사람머리처럼 만들어서 강에 던져 주었습니다. 잠시 후 강이 잠잠해졌습니다. 물론 황신이 가짜 머리에 속았는지, 아니면 부러 살짝 속아주었는지는 알 수 없죠. 암튼 이렇게 해서 제갈량은 무사히 노수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짜머리라는 뜻으로 '만두饅頭'라고 이름붙이고, 만들어 먹기 시작하였답니다. 이후 널리 퍼져 지금은 중국과 한국 등 동아사아에서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고, 종류도 다양하게 발전하였습니다.
즉, 만두는 출발부터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음식인 것이었습니다.
*주변에 황과수폭포(귀주성), 구채구와 아미산(사천성)이 있음
*오늘은 토요일이고 휴무라 자동차 소통 원활할 것임
*중국에 외제차로 폭스바겐이 처음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내수(內需)의 20%를 차지할 만큼 많은 차들이 운행 중임
*중국 내에 중국 국산차 공장이 400개나 됨
*중국에는 23개의 성(省)이 있음(우리나라로 치면 道에 해당)
*중국에는 5개의 조선족 자치구가 있음
*운남성에는 26개의 소수민족이 거주
◎중국 3대 악독한 요리
1위 : 살아있는 아기 원숭이를 판자에 구멍을 뚫고 머리만 나오게 하고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은 후 망치로 머리를 때려 깨 골을 먹음
2위 : 오리 발 구이 - 오리의 목에 줄을 걸어 매달고 밑에는 철판을 놓고 철판을 가열. 오리가 발이 뜨거워 발을 들면 목이 조이고 발을 디디면 뜨겁게 달군 철판에 발이 익음
3위 : 3찍 요리 - 금방 태어난 생쥐를 쟁반에 담아 간장과 함께 손님 앞에 내 놓음. 생쥐를 젓가락으로 집을 때 ‘찍’, 간장에 찍을 때 ‘찍’, 입 안에서 씹을 때 ‘찍’,
4위 : 모기 눈알 요리 - 박쥐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동굴에서 박쥐의 배설물을 거두어 물로 씻으면 소화가 되지 않은 모기의 눈알만 모을 수 있음. 이 모기의 눈알이 천하 별미라나....
태화궁(금전金殿)
*(금전金殿)입구 주차장에서 내려 한참을 오르니 구리로 만들고 금칠을 한 불상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전각 앞에 이르렀다.
*화려하고 고색창연한 삼천문을 지나 오르는 길 옆에 수 백년은 됨직한 노거수가 말없이 절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일행 열셋이 도열하여 인증 샷을 시작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외부에 우아하게 조각한 커다란 항아리 물속에 잠긴 잉어의 입에 동전 넣기를 했는데 막내 유서방이 성공하여 가이드 왈 여러 번 왔지만 물 속 잉어 입에 동전을 용케 넣는 건 오늘 처음 본단다. 유서방 앞날에 좋은 일 있을 거라 모두 박수를 쳤다.
도교 사원 무당산에 있는 진무전을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금전은 사내에 있는 여러 관광지 가운데 관광객들과 곤명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시내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도교 사원은 명나라 말인 1602년 만들어져 현재의 사원은 1671년 청나라 초기에 재건된 것으로 원래의 주전은 기단을 제외하고 모두 윈난성의 대표 광무인 동으로 만들어져 있어 이 때문에 동와사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금전을 구경하려면 주차장에서 북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하는데 금전에 들어서기 전에 일천문. 이천문. 삼천문을 먼저 만나게 되는데 일천문에 이르는 72계단은 철십이지살을, 일천문에서 이천문에 이르는 36계단은 삼십륙천강을 상징하며 삼천문은 우리나라의 내삼문 격이에요.금전을 둘러싼 자금성은 둘레가 약 120m, 높이 3m가 넘는데 문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있어 자금성의 중심을 이루는 전가이 금전으로 길이 7.8m의 정사각형이며 무게가 약 250톤에 달하며 전당 안에는 진무대제의 신상이 있어 금전 앞에 있는 칠성동기는 높이가 무려 9m나 되는 거대한 깃대로 중국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유물인 이 깃대 한가운데는 북두칠성과 천하태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깃대 가장자리에는 풍조우순 국태민안의 8글자가 새겨져 있어요.
금전에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는 종루가 있는데 높이 2.1m, 둘레 6.7m의 동종인 봉명종 소리는 50km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어 이 종을 3번 치면 행운을 얻는다고 하여 너도나도 종을 3번씩 치고 내려오며 종루에서 멀리 있는 곤명 시내의 풍경도 감상할 수 있답니다.
원통사(圓通寺)
*원통사는 곤명 시민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하는 사찰로 많은 신도를 거느리고 있단다.
*1372년에 세워졌는데 절이 너무 낡아 철거하기로 했다. 그런데 강희황제가 꿈에 관음보살이 승천하는 장면을 보고 대 보수를 했다고 한다. 이는 500년이 채 안된다고 함
*절이 엄청나게 크고 전각들도 여럿이라 둘러보는데도 1시간여가 걸렸다.
✻쿤밍시 위안퉁산(圆通山) 자락에 위치한 불교 사원으로 원림 건축과 종교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원통(圆通)’이란 ‘절대적인 진리는 모든 것에 두루 통한다.’라는 뜻으로, 원통사 에는 대승 불교, 소승 불교, 티베트 불교가 조화롭게 공존한다. 당나라 때인 8세기 말에 처음 세워졌고 1255년 몽골의 침입으로 파괴된 것을 1301년 원나라 때 재건하여, 역사가 1200년에 달한다.
특이하게도 사원에 들어서면 중심까지 지세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낮아진다. 입구에 ‘원통승경(圆通胜境)’이란 패방이 서 있고, 극락세계에 이르는 통로를 상징하는 연못의 팔각정(八角亭)을 지나면, 사찰의 핵심인 원통보전(圆通宝殿)을 만난다.
언제나 참배객으로 북적이는 원통보전은 대승 불교의 양식으로 지어진 반면, 뒤쪽 계단을 오르면 소승 불교 양식으로 지은 동불전(铜佛殿)이 있다. 태국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외관이 눈길을 끄는데, 실제로 내부에는 태국에서 모셔온 불상이 안치돼 있다. 원통보전의 동편에 티베트 불전이 있다. 원통사는 취호 공원과 연계해서 1일 쿤밍 시내 투어를 하기 좋은 곳이다.
◎중국 말 몇 마디
* ‘워부지도아’ - 나 아무 것도 모릅니다.
* ‘니 하오’ - 안녕하십니까?
* ‘찡콜라’ - 안녕히 계셔요.
* ‘쓰팔르마’ - 식사 하셨습니까?
* ‘썅 발로마’ - 출근 하세요?
* ‘샤 발로마’ - 왜 아직도 안갔느냐?(퇴근 안하느냐?)
◎ 곤명의 동북쪽 인근 도시 충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도시
*작년에 문대통령이 방문 후 한국 방문객이 엄청 늘어남
*중국에서 제일 더운 도시 : 보통 38℃ 넘음
- 지면(地面) 온도가 80℃ 넘음
취호공원 (翠湖公园)
*원통사에서 나와 500 여m를 걸으면 취호공원에 이르름
*취호공원은 간신(奸臣) 오삼계가 자기의 애첩 ‘진원원’을 위해 조성
*오삼계는 한족(漢族)으로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워 청나라 황제로부터 이곳의 왕으로 임명을 받은 인물
- 당시 몽고족이 청나라를 세우자 한족들은 암암리에 반청복명(反淸復明-‘청나라를 반대하고 명나라를 다시 세우자’)의 기치아래 한족끼리 뭉쳐 청나라를 타도하자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던 시기)
*취(翠)라는 글자는 ‘푸를 취’인데 비취(翡翠) 玉색을 말한다. 즉 취호(翠湖)는 푸른 호수라는 의미인데 물 비취(水翠), 대나무 비취(竹翠), 버드나무 비취(柳翠)... 등으로 취호(翠湖)에는 아름다운 연못(물)이 장관이고 푸른 대나무 숲이 좋고 늘어진 버드나무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게 일품인 공원이다.
*이곳은 육지 깊숙한 내륙지대인데 기이하게도 공원의 연못에 수많은 갈매기들이 하얗게 떠 놀고 있었다. 갈매기의 울음소리와 내갈기는 떵(?)은 방문자에게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선물(???)
곤명 취호공원(昆明翠湖公园)은 운남성 곤명시(昆明市) 시내의 북쪽 나봉산(螺峰山) 아래이자 운남대학교[云南大学] 정문 반대 편에 있는 공원이다. 사방의 물이 푸르고[翠], 사계절 내내 대나무가 푸르고[翠], 봄여름으로 버드나무가 푸르다[翠]해서 취호(翠湖)라고 불리게 되었다. 원나라 이전에 여기는 일찌기 전지(滇池) 중의 일개 호만(湖湾) 으로 여기서 논답, 채마밭, 연못이 많이 있어 채해자(菜海子)라고 불렸다. 또한 동북쪽에 구고천(九股泉)이 있어 이 물들이 합쳐저 생긴 못이라 하여 구룡지(九龙池)라고도 불렸다. 민국 초년인 1912년 즈음에 여기를 유람하고 노는 장소로 바꾸고 안쪽으로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호수에 여러 종류의 연꽃이 많이 있어 취호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명나라 때 운남의 행정관원을 역임했던 이들이 여기에 정건루 (亭建楼)를 세운 후에 이를 계속 수리했었다. 현재 취호는 남북을 관통하는 제방인 완제(阮堤, 1834년 운귀총독(云贵总督) 완원발 (阮元拨)이 돈을 내어 쌓음)와 동서를 가로지르는 당제(唐堤, 1919년 전천검 삼성 국연합총사령(滇川黔三省建国联军总司令)인 당계요(唐继尧)가 쌓음)가 있어 취호를 5개의 경구로 나뉘고 있다. 취호의 볼거리로는 호심도(湖心岛, 호심정(湖心亭)과 관어루 (观鱼楼) 등 청대의 건물이 있다), 동남쪽의 수월간(水月轩)과 금어도(金鱼岛), 동북쪽의 죽어도(竹林岛)와 구룡지(九龙池), 남쪽의 호로도(葫芦岛)와 구곡교(九曲桥), 서쪽의 정(是海心亭)이 있다.
*공원이 워낙 넓어 관람하는데 한참을 걸렸고 다리도 아프고 힘도 들어 호숫가에서 휴식을 하는데 작은 박서방이 시원한 음료수를 사와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공동경비로 1인당 중국 돈 2000위안(한화로 약 17만원)을 갹출하여 사용하였다. 눈치를 보니 이 금액이 모자라 얼마씩 더 거둔 모양인데 우리 내외와 상계동 동생과 공릉동 사촌에게는 부담을 드리기 싫어 넷은 빼고 저들끼리 셈을 한 모양이다. 기특해라!!!
이곳은 육지 깊숙한 내륙지대인데 기이하게도 공원의 연못에 수많은 갈매기들이 하얗게 떠 놀고 있었다.↓
*여행 공동경비에 대한 회계를 작은 박서방(박희수-넷째 사위)이 맡아 했는데 아주 잘 한 듯..... 석림에서 생과일, 취호공원에서 음료수, 어느 저녁식사에서 식당에서 주는 술과 삼겹살구이가 모자라 추가 주문해 먹었는데 무제한으로 더 주문한 경비, 내가 모르는 경비들을 저들끼리 숙덕숙덕 처리해 주어 고맙고 기특했다. 뭘 필요하다 싶으면 달려가고 뛰어가서 사오곤 해 완전한 해결사였다.
*큰박(큰박서방-박종익-셋째 사위)은 완전 분위기 메이커!!! 어디서나 통큰 목소리로 분위기를 이끌고 웃음거리를 만들어서 시끄러우면서 꼭 필요한 존재였다. 제 마누라와 사진 찍을 때 마누라를 폭 감싸 안고 찍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안사람이 내 귀에 대고 ‘박서방이 있어 심심할 틈이 없어’라고 했다.
*노서방(노영동-다섯째 사위)이 썬글라스 끼고 다니는 모습이 참 멋있고 여럿 중 제일 잘 생긴 것 같다. (다른 사위들 들으면 안되는데....ㅋㅋㅋ)
저들 내외와 눈 맞춤할 때 못본 척 했지만 금슬이 좋아 귀엽다. 가끔 내 작은 가방이나 카메라를 뺏어 매 주기도 하고 날 편하게 해 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는다.
*유서방(유성목-막내 사위)은 요즈음 하는 사업이 잘 되어 나까지 신난다. 은근히 정이 많은 친구다. 암사동에 우리 내외를 초청하여 고급 한우를 대접하고 난 후 “어머님, 암사시장 구경 가실래요?”라고 해 무심코 따라 나섰더니 시장 안 반찬가게에 들러 반찬을 한보따리 사서 안겨 주었다. 요즘 제 장모가 건강이 안 좋아 수고를 덜어 주려는 심정에서 우러나오는 이쁜짓!!! 이번 여행에서 고가(高價)의 보이차(8만∼14만원)를 샀는데 우리 것, 상계동 동생 것, 동참 못한 큰딸네 것 등 계산서를 뺏더니 자기가 계산을 해 주었다.
*참석 못한 맏사위 이서방(이광식)은 누가 봐도 맏이답고 아랫동서들을 잘 다스리고(?) 리더쉽이 훌륭하다. 이서방 말이면 아랫동서들이 의가 없다. 그리고 자타가 공인 하듯 잘 생겼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맏딸이 잘생긴 얼굴보고 제 신랑을 잡은 것으로 안다. 지금은 조그마한 전자제품 제조업을 하는데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재주가 훌륭하다. 극소형 변압기(어답타)를 만들었는데 전자제품 기기의 부품으로 많이 팔렸다고 하더라. 얼마 전 공장을 이사해 지금은 많이 바쁜가 보더라.
*어른 노릇 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 마음은 다 같은데 혹 어느 사위가 곱다느니 뭘 해 줬느니 등을 다른 사위가 들으면 서운할 지도 모를 일이 가끔 있는데 칭찬해 주고 싶거나 자랑해 주고 싶어도 말 못할 경우가 있다. 입은 간지러운데,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소리를 참아야 할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보이차 대금으로 큰돈을 지불한 막내를 여럿 앞에서 칭찬해 주고 싶긴 하지만 할 수 없는 경우 말이다.
운남 육군 강무당 (雲南陸軍 講武堂)
*취호공원에서 나와 걸어서 얼마를 안가 육군 강무당이 있었다.
*육군 강무당은 말하자면 중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셈이다. 우리의 독립군 대장 이범석장군께서 여기를 졸업하셨다.
*이범석 장군의 흔적은 볼 수 없었고 중국의 군 요직에 오른 분들의 업적, 사진, 흉상 등이 진열, 전시되어 있었다.
*이범석장군의 흔적을 볼 수 없어서 우리가 왜 여길 와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름도 얼굴도 그 분들의 업적도 전혀 모르는데 중국 軍 內 요직을 거친 분들의 면면을 보러 오다니....
이범석 장군이 다닌 운남 육군강무당 군관학교
이범석장군과 최초의 여류비행사 권기옥여사 등 독립운동가들이 다닌 운남육군강무당 군관학교입니다.
현재는 뒷편에 운동장이 있으며 건물은 운남육군강무단 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었답니다.
참고로 이범석장군(1900.10.20~1972.5.11)은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로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15년 경성보통학교 재학 중 중국으로 망명, 1919년 윈난(雲南)에 있는 중국육군강무학교 기병과를 졸업하고 둥베이(東北:만주)로 진출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중대장으로 참가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다.
1922년 소련합동민족군 연해주 지구 지휘관으로 소련혁명전에 참가하였고, 1933년 중국 뤄양(洛陽)군관학교 한인장교대장,
1936년 중국 제3로군 사령관, 1940년 중국 중앙훈련단 중대장
1941년 한국광복군 참모장에 취임하고, 1945년 광복군 중장으로 8월 귀국하였다. 1946년 조선민족청년당을 창설하였으며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초대국무총리에 기용되고 국방장관을 겸임하였다.
*명절이나 노동절에 고속도로에서 2∼3시간 동안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한 경우 종종 있음
- 화장실 못 가 어려움
- 음식이 떨어져 곤욕, 도로변 민가에서 조리한 음식을 턱없이 비싸게 파는 일 많음. 피할 수 없는 기현상.
* 중국 관광 시 피할 시기
- 설, 노동절(5얼 1일), 10월(날짜는 ??)
- 뜻밖에 길에서 갇히거나 많은 인파 때문에 시간 허비하는 수가 있음
* 가이드의 당부
- 혼자 화장실 갈 때는 반드시 가이드에게 말하고 가시라!!!
- 휴식은 일행과 함께 하시라. 혼자 떨어져 휴식하다가 미아가 되는 수가 있음
서산과 용문, 곤명호 조망 관광
*서산 용문 입구까지 꼬불꼬불 산길을 셔틀버스로 올랐다. 버스는 걸어 오르는 관광객을 비집고 빵빵 크락숀을 울리며 올라, 쉽게 차를 타고 오르는 내 맘까지 송구스러웠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식당엘 갔는데 언덕 위에 지은 집이라 우리가 밥 먹을 저 아래 층까지 많은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4층 쯤 내려 간 것 같다.
*와우!!! 이번 여행에서 한 식사 중 최악!!! 중국 특유의 고약한 향신료가 들어가 먹을 수가 없었다. 가져간 고추장이 없었으면 고스라니 굶을 판!!! 나온 요리는 손도 안 대고 밥에 고추장으로 비벼 한 끼를 떼웠다. 항의쪼로 가이드에게 말하자 가이드 놈 “이게 그래도 향신료를 덜 넣으라고 부탁해 잘 나온 겁니다.”
*이제 그 유명한 서산을 리프트로 오를 판! 리프트는 우리나라 스키장에서 사용하는 리프트와 꼭 같았다.
*우리 딸들이 그렇게나 겁이 많은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저들 말로는 ‘고소공포증’이 심하다나!!! 둘째는 고개는 들었는데 완전 눈을 감고 전진!!! 넷째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 아예 제 신랑 품에 머리를 완전히 박고 고개를 들지 못한다. 여기서와 구향동굴에서 마찬가지!!! 나중 찍힌 사진을 보고 많이 웃었다.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게 상당히 원거리였다. 아마 2∼30분은 오른 것 같았다.
*리프트에서 내려 걸어 절벽 옆댕이에 난 길을 내려오는데 이 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가파른 길이 모두 험한 계단이어서 계단 옆 방책을 잡고 엉금엉금 내려왔다. 걷는 길 또한 상당히 원거리!!!
*그러나 경관 하나는 끝내 주는 절경!!!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절벽 아래 곤명호는 탄사가 절로 나왔다. 오금이 새큼거렸다. 그리고 내려오는 곳곳에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게 곧이 들리지 않을 여러 가지 조형물을 보는 재미에 심심할 여가가 없었다.
*이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괭이와 곡괭이, 그리고 끌과 망치로 바위를 깎아 길을 낸 일은 불가사이에 가까왔다. 그 길은 상당히 멀었다.
곤명여행에서 감초 같은 곳이 서산용문입니다
서산은 쿤밍시 서쪽으로 약 15km 떨어져 있습니다. 화정산, 태화산, 라한산으로 구성되었으며 해발은 약 1900m - 2350m 입니다 국가 AAAA급 여행지입니다
서산에 올라가면 뎬츠호와 쿤밍 전경을 바라 볼 수가 있어 아주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상고 시대 봉황이 이곳 서산에 날아와 잠시 휴식하였는데 봉황을 본 사람들은 봉황인 줄 모르고 아름다운 녹색 새로만 인지 하여 그 당시 녹색을 벽색(碧色)이라 하였으며, 새는 계(鸡) 라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서산을 벽계산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옛부터 서산에 가지 않았다면 쿤밍에 가지 않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으며, 서산에 갔으나 용문에 가지 않았다면 헛걸음 한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곤명여행에서 꼭 서산에 가봐야 하며, 서산에 갔다면 꼭 용문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매표소에서 환경보호버스에 탑승하여 산길 따라 올라가다보면
왼쪽 편에서는 곤명의 호수와 곤명 시내가 보이며, 오른쪽은 아름다운 산 풍경이 나타납니다.
서산용문의 석굴은 중국 석조 미술의 최고봉이라 불려집니다
이 석굴은 1781년부터 1853년까지의 역사를 지니고 있답니다.
또한 오래청, 양여란, 양제태 라는 3개 도교가 약72년의 3대에 걸쳐 석굴을 완성 하였다고 합니다
"용문" "원보"라는 글자가 있는데 전설에 이것을 만지면 부자가 될 수 있고, 뜻대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뎬츠호(호수) 면적이 330㎢이며 해발은1886m이고 가장 깊은 수면은 8m이며 평균수심은 5.5m라고 합니다
이 호수는 옛날부터 "고원의 보배"로 칭송을 받으면서 중국 서남지구의 제1호수라 합니다
중국 전체 호수에서 제6번째로 큰 호수입니다
딸아,
고개를 들어라!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 앞에 펼쳐진 멋진 경치를 보고
탄사를 발해라!!!
서산 용문에 전해오는 전설 세가지
◆전설 1
옛날 한 공주가 궁전에서 살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궁 밖으로 나와 우연하게 만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애지중지하던 공주가 사라지자 왕은 신하를 시켜 전국을 샅샅이 뒤져 공주가 깊은 산골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와 살고 있는 것을 찾아내게 되었다. 왕은 공주에게 궁으로 돌아 올 것을 명했으나 공주가 듣지 않자 둘을 강제로 헤어지게 하기 위해 공주와 결혼한 남자를 죽여 버렸다고 한다. 이에 공주는 통곡하며 눈물로 나날을 지새 공주가 흘린 눈물이 모여 곤명의 "뎬츠호 (전지호-殿池湖)"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얼굴을 들고 넘어져 서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 때문인지 결혼하지 않은 커플은 절대로 서산에 올라가면 안된다는 소문도 있다. 미혼 커플이 서산에 올라가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속설도 있다.
◆전설 2
곤명에 예쁜 아내를 둔 어떤 가난한 평민이 살았는데, 지주가 땅을 미끼로 아내를 빼앗아 차지해 버렸다. 상심한 농민은 자살을 기도했는데 비몽사몽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죽지 말고 용문을 조각하라고 했다. 절벽을 깎아 길을 내고, 중간중간에 불상을 조각하였다. 그 중에 바위를 그대로 깎아 들어가 불상을 조각했는데 그게 용문굴이다.
◆전설 3
서산을 내려오다 보면 어미 소와 송아지 조각이 있는데 여기에 관한 전설!!!
곤명호 부근 어느 마을에 소를 잡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새끼 딸린 어미 소를 잡아 팔기로 하고 칼을 갈았는데 잠간 볼일이 생겨 칼 가는 일을 멈추고 자리를 떴다가 되돌아 와 보니 열심히 갈아 둔 칼이 보이지 않았다. 칼을 찾기 위해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 아니, 송아지가 자기 배 밑에 칼을 감추고 누워 있지 않은가? 죽게 될 제 어미를 살리고자 배 밑에 칼을 감춘 송아지를 보자 그 사람은 크게 감동을 받고 그 날 이후 도축업을 그만 두고 어미 소와 송아지를 이끌고 서산으로 올라가 살게 되었다. 그런데 서산 중턱에는 먹을 물이 없어서 매일 저 아래 곤명호까지 내려가 힘들게 물을 길어다 먹어,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를 본 송아지가 하루는 제 머리로 바위를 들이 받아 바위를 깨자 절대 물이 날 곳이 아닌 바위 틈에서 물이 샘 솟앗다. 어미를 살려 준 주인에게 보은을 한 것!!! 듣는 사람을 감동 시킨 아름다운 전설이다.
운남민족촌(雲南民族村)
*운남민족촌은 10여 년 전에 왔을 때와 100% 달라졌다. 주차장에서부터 눈이 휘둥그래졌다. 우선 입구에 세워진 중국 특유의 거대한 문루(門樓)가 눈을 압도했고 왠 상가가 그리도 많아졌는지 장사 잘하는 중국다운 시설을 해놓았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가게가 줄잡아 100곳을 될 것 같았다. 가게마다 요란한 상품들이 가득했는데 우리가 오후 늦게 입장해서 그런지 관광객은 별로 보이지 않아 아주 한산한 느낌이었다.
*전에 본 것보다 경내가 훨씬 넓어졌고 새로운 건물과 시설들도 많이 더 새겼다. 다닥 붙어 있질 않고 26개 소수민족들의 마을을 재현해 놓았다. 그러나 전에는 마을마다 민속 공연을 해 주었는데 오늘은 늦게 입장해서 그런지 아니면 비수기라서 그런지 공연은 한군데서만 볼 수 있어서 많이 실망했다. 전엔 관광객과 공연자들이 함께 어울려 신나게 춤추기도 해서 아주 좋았는데.....
*가이드에게 경내 이동을 전동차를 이용하도록 여행사와 약조가 되었다고 하니 여행사에서 온 플랜에는 그런 게 포함되어 있질 않다고 하여 작은박과 노서방이 입구로 다시 되걸어가 전동차를 예약하여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전동차를 타고 넓은 경내를 관광하고 보니 걸어다녔으면 엄청 고생할 뻔 했다.
*그리고 소수민족들이 살아가는 실제를 보고자 입장을 했는데, 민족 고유의 복장을 하고 집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촬영하려고 하니 대부분이 거절을 해 분통이 터졌다. 여길 왜 오는지 그들은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오로지 장사에만, 돈 벌이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전엔 어느 소수민족촌에서 그 민족이 잘 빚는다는 독한 술을 팔아 사 마셨는데 그런 체험도 할 수 없어서 “아, 옛날이여!!!”를 뇌이며
실망을 가득 안고 민족촌을 떠났다. 물건 파는 상가만 싫건 보고....
*점심식사는 향신료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했으나 저녁식사는 ‘동북요리’로 입맛에 맞고 질도 좋아 맘껏 배를 불렸다. ‘아, 잘 먹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운남성에는 26개 소수민족이 산다고 한다. 이 소수민족들은 각각의 고유한 언어와 문자가 있어서 독립된 생활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의도적으로 각각의 소수민족에게 경제권을 주지 않고 있어서 독립의 기틀을 제거하고 있다.
티벳이 독립 운동을 하고 있는데 경제적 기반이 없어서 독립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가난하게 살더라도 독립을 추구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거대한 땅 중국은 50개가 넘는 소수민족국가로 분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운남성에는 소수민족을 모두 한곳에서 볼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민속촌처럼 민족촌을 지어서 각각의 소수민족들의 생활 모습들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다분히 상업적 가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어서 너무나 감동이 없었다. 곤명시 남쪽 교외에서 8km 떨어진 전지(澱池) 변에 위치한 대형 민족촌이다. 총 넓이가 83만 핵타아르로 운남성의 26개 소수민족의 정취와 사회문화를 재현해 놓은 곳으로, 소수민족문화의 창구라 불린다. 운남성은 중국의 여러 성중에서도 소수민족이 집중해 있는 곳으로, 그 소수민족의 삶을 모두 체험하기란 불가능할 정도다. 이곳 운남민속촌에서 짧은 시간에 여러 소수민족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소수민족들의 건축물과 의복, 전통의식과 음악, 전통춤이 재현되어 있고,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그것들을 박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야영을 통해 체험할 수도 있다. 또 민족촌에는 운남성 곳곳에 퍼져 있는 운남 각지의 주요한 명승고적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길양 태족의 백탑(白塔)이나 대리의 삼탑(三塔), 목고(木鼓) 등이 그것이다. 또 이곳에서는 각 민족들의 전통음식도 맛볼 수 있다.
운남영상 가무 쇼(雲南影像 歌舞 쇼)
*이 쇼는 처음 우리 일정에는 들어있지 않은 불포함 프로로 내가 여행사에 부탁해 일정에 포함시킨 거다.
*중국은 큰 나라이고 이런 대형 가무 쇼가 매우 훌륭한 나라이다.
내가 중국 여행에서 본 가무 쇼만 해도 이걸 포함해 3가지다. 계림에서 본 ‘이강 쇼’, 항주에서 본 ‘송성 가무 쇼’인데 모두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며 세련된 쇼였다.
운남영상은 2003년 8월8일에 처음으로 공연이 열렸고 운남성 소수민족 대표 가무 쇼이다
감독은 중국 유명무도가인 양리핑이고 양리핑은 백족 소수민족 이며 대리 쐉랑진에서 태어났다
운남성 전통적인 모습 소수민족 그대로 보여주어서 원시적인 무대로써 중국, 세계에서 유명하게 알려졌다
배우 총 90명이로 형성되었는데 70% 이상인 무도배우는 모두 소수민족 민간 마을에서 왔으며 가무복장도 민간에서 차려입는 그대로 보여 준다
지금까지 중국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 미국, 유럽 등 나라에서 약 천극 이상 열린 무대이고 양리핑은 2011년 중국성도에서 마지막으로 출연하였고 그게 양리핑에 마미막 공연이라 한다. 운남영상은 중국명합이 라고도 한다
인류세계에서 남긴 위대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고 자연보호 유산이다.
운남성 다채로운 26개 소수민족의 톡특한 각자의 문화, 운남 자연 풍경, 카르스트 지형, 좋은 기후, 민족문화의 보물이다
2014년부터 새로운 버전이 나왔으며 전국 각지 18개 도시에서 공연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 새 버전은 풍푸한 소수민족 가무 더욱 순수하고 더욱 진실적 인 운남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양리핑의 공작무 - 공연시간은 매일 저녁 20:00부터 21:30 까지이고 곤명시 운남예술관에서 열린다. 극장 총 좌석은 588 개이고 vip표 갑표, 을표, 병표로 나뉜다
배우들은 순수한 소수민족이며 배우가 아닌 시골에 농민 출신이다
◎우리들만의 밤 모임
*내가 주선한 외국 여행에서는 반드시 우리들만의 야회(夜會)를 갖도록 해 왔다. 하루의 일정을 끝내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그면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가? 일행들이 모두 한방에 모여 부족하지만 가져 간 술과 안주나 과자, 또는 현지에서 구한 술이나 과일을 곁드려 파티를 열면 그보다 더 즐거울 수가 없다. 한잔 거나해지면 못할 소리가 없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건배’소리도 높이 외치고 우애를 다지고 흉금을 털게 되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오는 것이다.
*첫날은 12시가 너머 호텔에 도착해서 못하고,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노서방네 방에 모여 웃음꽃을 피웠다. 한국에서 각자 준비 해 온 안주와 술, 호텔 입구에서 산 열대과일과 오늘 저녁 식당에서 다 처분하지 못해 포장해 온 안주, 그리고 인천공항에서 서비스로 받은 컵라면까지 동원하여 멋진 파티를 열었다. 우리 사위들, 딸들 만세!!!!
▣ 1월 20일(금)▣
*06:00 모닝콜, 07:00 아침식사, 07:30 출발
◈오늘의 일정
대·소석림→구향동굴→중식→편백나무 제품매장→백련 스파 온천욕 →운남민족촌→저녘 식사
대·소석림(大·小石林)
*곤명 관광의 하일라이트는 석림관광이다.
*석림의 주차장에 우리의 관광버스가 닿자 눈에 띄는 건 곱게 단장한 이족 여인들이다. 특이한 모자에 화려한 민속복장의 이족 여인들을 쫓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았다. 대부분은 포즈를 취해 주지만 어느 분은 얼굴을 돌리고 어느 분은 아예 사진 찍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자기들 보러 멀리 여기까지 왔는데 상냥한 포즈를 취해 주는 게 의무 아닐까?
* 우리 안동사범 11회 동기생 11명이 2008년 4월 27일부터 6박 7일간 다녀갔는데 벌써 11년 전이다. 석림은 입구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아름답게 정리되고 그리고 깨끗하게 바뀌었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전동차도 바뀌었고 걸어 오르는 길도 바뀌었고 입구도 전보다 내려와 대석림까지는 더 멀어졌다. 공간이 더 시원하게 뚫린 느낌이다. 모두 다 더 좋게 바뀌었다.
*이를 두고 기암괴석(奇巖怪石)이라 하겠지? 마치 일부러 바위를 동강내 쌓아 올린듯한 바위, 뾰족이 하늘을 찌를 자세로 솟아있는 바위들의 경연은 정말 볼만 했다. 일행들 모두 각자 가진 모바일로 사진을 찍었다, 석회암 지대에만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이란다.
*여기가 원래는 바다 밑이었는데 융기해서 이렇게 되었단다. 조개껍질이 발견되어 바다 밑이었음을 증거한단다.
*꼭대기 전망대 정자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박서방이 사 온 생과일을 맛나게 먹고 입구로 향했다.
*입구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도 하고....
대석림 소석림
석림이란 이름은 돌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인 것 같았다.
이곳 석림(石林:스린)은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형으로 꼽히며 곤명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120㎞ 정도 떨어진 이족 자치현(彛族自治縣) 내에 위치해 있었다.
그 면적이 350㎢ 이며, 돌기둥이 나무줄기처럼 하늘로 치솟아 삼림모양을 이루고 있다.
신비롭고 웅장한 석림은 전형적인 열대 석회암지형으로, 이곳의 해발고도는 현재수준으로 2천m 높이다.
원래 이 곳은 해수면 같이 평평했으나, 약 백만 년 전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하여 지금은 이 일대의 기후 또한 열대에서 온대로 변했다고 한다.
운남성 유일의 이족자치현인 이곳이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에는 이곳에 이족들은 돌더미 속에서 농사만 지으며 못사는 곳이었으나 땅에서 솟아오르고 개발이 되어 관광지로 되면서 관광수입이 커져 모두가 잘 사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한다.
석림풍경구들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제되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석림풍경구는 대소석림(大小石林), 내고석림(乃古石林), 지운동(芝云洞), 장호(長湖), 대첩수폭포(大疊水瀑布), 월호(月湖), 기풍동(奇風洞) 7개의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대소석림은 석림 관광의 중심으로, '대석림(大石林)'과 '소석림(小石林)'으로 나눠 구분되기도 한다.
*부지런히 대석림 앞까지 걸어올라 대석림 앞에서 이족(彜族)의 민속복장을 대여해서 입고 사진 촬영을 했다. 멋지다. 아름답다. 남성들은 위풍당당하고 마치 족장 같아 서로를 보고 웃었다. 여성들은 정망 예쁘다. 꽃바구니를 등 뒤에 멘 화려한 모습은 두고두고 봄직한 모습이었다.
* 사진 찍는 공간 확보가 어려웠다. 중국은 사람 많은 건 다 인정하는 바이지만 오늘 여긴 참 많은 사람이 모였다. 뒷 배경으로 ‘석림(石林)’ 글자가 들어 간 바위가 들어가게 찍어야 하는데 우리가 찍고 있는데 불쑥불쑥 난데없이 사람이 뛰어든다. 남 사정 봐주다간 촬영이 어렵다. 밀어내고 찍고 또 얼른얼른 찍어야 했다.
독사진을 찍고 부부나 커플 사진을 찍고 13명 모두가 단체로 찍고, 남성만 찍고 여성만 찍고..... 전쟁터다!!!
*소수민족 「이족」의 빠른 템포의 연주와 춤(동영상)
구향동굴(九鄕洞窟 )
*구향동굴은 중국 ‘국가중점 풍경구’(國家 重點 風景區)로 지정된 곳이다.
구향 풍경구는 울창한 삼림 속에 자리 잡은 석회암 동굴지대로 총면적 200㎢에 66개의 종유동굴로 이루어져 있으나 일부만이 일반에 개방된다. 구향동굴은 길이가 3000m가 넘고 옥주동, 백옥동 등 크고 작은 방이 1000개 이상 있으며, 2000년 4월 준공한 높이 53m의 협곡관광삭도(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동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동굴은 30m 높이의 자웅폭포(雌雄瀑布), 계단식 논처럼 생긴 연못 신전(神田), 혼협(魂峽), 웅사대청(雄獅大廳), 신녀궁(神女宮), 이가채(彛家寨), 지하도림석(地下倒林石), 취협(翠峽), 여유(旅遊) 등 9개 지역으로 나뉜다. 웅사대청은 거대한 소용돌이형 지형 으로 기둥이 없으며 1999년 세계 최초로 동굴음악회가 열렸다.
동굴 안에는 그림벽화나 사냥을 하고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지역은 2000년대 들어 관광지로 개발되었고 최근 쿤밍의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 구향동굴은 들어가는 입구와 나오는 출구가 다른 곳에 있어 중도에 되돌아 올 수 없다. 다 돌아보는 데 대략 1시간 30분이 소요되고 오르막이 가팔라서, 나와 유서방은 탐방을 포기하고 관광버스에 남기로 했다.
* 탐방을 포기한 나로서는 내부를 본 걸 기록할 수 없어 아쉬움이 크다. 보고 나온 소감이 한마디로 ‘대단하다’였는데 내부의 크기가 대단하다고 했다. 내부에 폭포도 있고 동굴음악회를 열만한 광장도 있다고 한다.
*이동은 리프트를 타고 하는데 리프트를 타고 보는 광경도 찍은 사진을 보니 장관이다.
*노서방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최소한 50컷 이상(상한은 없다) 찍어오라 일렀는데 동굴 안에서 찍은 사진으로는 선명히 잘 찍혀서 만족!!! 아쉬운 점은 사람은 많이 찍었으나 동굴 안 종유석 등 풍경은 거의 안 찍어서 아쉬웠다.
*찍은 사진을 보니 안사람과 여동생을 가마에 태워 가파른 오르막을 올랐는데 그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누가 제안을 해서 가마를 태웠지? 고맙다!!!
*동행치 못한 나는 카메라를 들고 화장실 볼일을 보러 나왔는데 ‘지질공원 박물관’이 보여 입장해 구경도 하고 전시물을 촬영해 왔다.
편백나무 제품 매장 방문
편백나무 효능에는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요?우선 편백나무는 항균 및 살균작용이 뛰어나다고해요~그래서웰빙 용품 소재로도 많이 쓰이는데요 일본에서는 히노끼라고도부른데요 아! 그래서 히노끼탕이 있는 건가 봐요~내수성이 강해서 물에 닿으면 고유의 향이 퍼져서 잡냄새도 잡아주고이러한 이유 덕에 도마재질로도 많이 활용된다고 합니다편백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에 의해 고유의 향이 나는 데요해충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위해 내뿜는 물질이라고 해요그리고 편백나무효능으로는 새집증후군을 예방하기위해 편백나무를 사용한 가구가 많이 이용되는 데요 아이들 책상이나 침대 또는 배게 속에 솜대신 넣어주기도 합니다~마지막으로 편백나무효능으로는 스트레스 해소 및 비염, 천식개선에 좋다고 합니다. 마트에 가니 편백나무를 그램 수로 판매하고 있었는데 저도 이번에 한번 가게 되면 구입을 해봐야겠어요~^^비염, 천식의 예방 및 치료에 좋고 항균작용이 뛰어나서 편백나무를 이용하시면 큰 효과를 보실 수 있다고합니다~
*페키지여행을 하게 되면 필수가 매장에 강제로 들르게 되는 거다. 이번 여행에서는 두 군데 들르게 되어 있다. 편백나무 제품 매장과 보이차 매장이다. 전에 어느 여행에서 8군데를 끌려다닌 적이 있었다. 싸구려 덤핑 여행 상품을 팔고선 매장에 강제로 끌고 다니며 그 적자를 벌충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에는 국가에서 그런 짓을 못하게 하고 있어 그런 피해는 줄어든 셈이다.
*일행 중 안사람을 비롯하여 몇이서 소품 몇 점을 구입한 것 같다.
백련(柏聯)스파 온천욕
* 이 프로도 처음 우리 일정에는 들어있지 않은 옵션관광 프로로 내가 여행사에 부탁해 일정에 포함시킨 거다.
*서산에서 내려다 봐서 곤명호 건너편에 위치하고 고급 온천으로 중국 본토 일반인들이 이용하기는 좀 부담이 되는 고급온천으로 외국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한다.
.*오늘은 석림과 구향동굴에서 제법 많이 걷고 구향동굴에서는 오르막 길을 많이 걸어 온천욕을 하여 피로를 푸는 게 제격이었다.
*온천장에 들어서니 종업원들이 매우 낮은 자세로 손님을 맞았다. 모두 대우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 온천에서는 이용객들에게 별스런 요구를 했다. 문제는 남자의 ‘수영복’. 한국인들이 평소에 이용하는 트렁크형 수용복 착용이 허용되지 않았다. 의의 제기도 소용없었다. 허용되는 수영복은 몸에 착 달라붙는 밀착형만 허용!!! 어쩔 수 없이 온천장에서 판매하는 수영복을 개당 한국 돈 14,000원씩 주고 남자 6인 모두 새로 사 입었다. 입고 보니 앞이 툭 튀어나온 게 한국에선 입지 못할 디자인이었다. 여성들의 수영복은 모두 통과인데 그런 수영복을 꼭 입어야 하는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락카에서 탈의 및 갱의를 하고 온천탕에 들어갔는데 여성 직원들이 따라 다니며 서비스를 제공했다. 탕을 옮겨가면 슬리퍼와 가운도 옮겨주고 따뜻한 차도 제공했다. 나는 마칠 때까지 석잔의 차를 마셨다.
*입욕하자 첫 번 째 탕에 장미꽃을 한바구니 가득 뿌려 주었다. 우리 일행 여성들도 같은 탕에 함께 들어가 지참한 핸드폰으로 여직원의 손을 빌려 인증샷을 했다. 전에 우리 동기생들이 왔을 때는 카메라 지참이 허용되지 않아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팀 욕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은 범위에서 맘대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역시 인기가 있는 탕은 ‘닥터 피쉬’가 있는 곳!!!, 자그마한 물고기가 욕객의 발에 주로 모여 콕콕 찍어 각질을 뜯어 먹는데 무척 간지러웠다.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에게는 닥터 피쉬가 집중적으로 달라붙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한 마리도 접근을 하지 않아 “네 몸이 더럽고 때가 많아 몰려들잖아!”라며 웃었다.
*지금이 한겨울인지라 탕의 온도가 좀 높은 곳을 선호했다. 41℃나 42℃인 탕에 오래 머물렀다.
*온천욕을 민끽하고 곤명호 호변에 나가 사진도 찍으며 낭만의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넘치는 호강에 마음 가득 흐뭇!!!
*오늘 여기 온천을 이용하는 손님은 몇 안되어 한산했다. 이러니 까 손님에게 극진한지 모르겠다.
백련(柏聯,바이리엔) SPA온천
백련스파온천을 2시간 정도 했다.
온천의 따뜻한 물이 좋긴 하지만 생각보다 좋지는 않았다. 물론 잘 꾸며진 노천탕이 여러 곳 있고 경치도 좋은 곳이었지만 탕이 26개 면이면 뭐하노? 우리가 들어간 곳은 3~4곳에 불과 한데. 그것도 많이 있으니 호기심에서 들어가 본 것이지. 조금 특별한 것은 미지근한 물 속에 닥터피시가 노는 탕. 우리 일행이 처음 접하는 것이라 한참을 닥터피시와 놀았다.
이 물고기들이 발에 붙어서 입으로 발을 콕콕 찍어 공격하는데 얼마나 간지럽던지. 가만히 있어도 자율신경이 움직여지는 것이었다. 발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흩어졌다가 조금 후에 다시 모여서 먹이 활동을 계속하는데 얼마나 간지럽던지. 참기가 힘들었다.
좌우지간 시원한 42도 탕에서 차를 마시며 놀다 시간이 다 되어서 나왔다.
이곳에는 부자들이 많이 온다고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고 정원처럼 만들어진 노천탕 옆에는 마사지 받는 건물들이 있었다. 온천은 여행사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리 멋있지도 그리 좋은 곳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네 노천탕에 작은 노천탕을 여러 개 만들어 놓고 또 마사지실을 만들어서 영업하는 곳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백련(栢聯)SPA온천은 해발 2,000m나 되는 고산지대 온천으로 곤명시(昆明市) 외곽의 양종해(陽宗海-‘곤명호’의 별칭)라는 거대한 호수 옆에 위치해 대자연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 다. 중국 각지에서 많은 온천이 분포되어 있지만 주위의 자연과 온천을 결합시켜 산과 호수 그리고 지하에서 나오는 온천에서 자연의 기를 받을 수 있는 이 곳은 그 시설과 서비스에 있어 최고를 자랑합니다
뿐만 아니라, 백련 온천에는 품격 있는 식당,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마사지 공간. 어린이 전용 풀장, 화산석 찜질방 여러 가지 부대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백련온천에서 나오는 온천수에는 불소가 9.82~52.52㎎/ℓ, 규산이 84.5 ~144.7㎎/ℓ, 그리고 인체에 유용한 각종 광물질(원소)이 포함되어 있어 각종 피부병이나 관절염에도 좋은 효과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수질은 중성이며 부드럽고 탄산석염천, 칼륨, 칼슘, 나트륨 ,마그네슘 등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인체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 위장병을 비롯해 풍습관절염, 신경쇠약, 피부병 등도 치료하는 등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온천에 도착하면 모든 건축 디자인과 조경이 동남아 지역에 온 것 같은 기분을 주고, 노천으로 되여 있는 온천장 안에 들어가면 마치 열대 지역에 도착한 거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습니다.
온천탕이 26개가 있는데, 온천탕마다 특색 있는 테마를 가지고 디자인 되어 꽃잎이 가득 떠있는 온천탕, 분수 온천탕, 회오리 가 온천탕 등이 있습니다.특히 모리화, 장미, 국화, 자로란(자주붓꽃) 등 다섯 가지 꽃잎 으로 이뤄진 꽃잎 온천은 향기로 가득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주로 해독작용과 우리 인체의 피로와 긴장을 풀어주며, 노화억제 등의 효능을 발휘합니다.
*온천장에서 출발하여 좀 늦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4∼50분을 달려 밤 9시가 넘어서야 곤명 시내의 식당에 도착했다.
*오늘 메뉴는 우리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한다는 삼겹살 구이였다. 기본으로 주는 삼겹살을 다 먹고 자부담으로 삼겹살과 소주를 여러 번 추가 주문하여 배가 땅땅하도록 싫컷 먹었다. 너무 많이 시켜서, 다 먹지 못한 것은 포장해 달래서 호텔로 가져와 우리들만의 밤 파티에서 안주로 모두 소비했다. 어제와 그제는 이상한 향신료를 넣은 음식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오늘은 저녁식사를 만족하게 한 날로 기억된다.
▣ 1월 21일(월)▣
*오늘 일정에 문제가 생겼다. 가이드 왈 오늘은 아무 일정이 없으니 오전에는 호텔에서 편안히 쉬란다. 그리고 12시에 체크아웃하고 오후에 보이차 매장에 들렀다가 전신맛사지를 하고 23:50분 인천 발 비행기를 탄단다. 이게 말이 되는가?
*문제의 발단은 선택관광(옵션투어) 때문!!!
여행 둘째 날 가이드가 말하길 일정을 재구성하여 순서는 바뀌되 여행사가 준 일정을 다 소화할 것이니 염려 말라고 했다. 그리고선 옵션투어를 제안했는데 우리가 의도적으로 일정에서 뺀 ‘토림 관광’을 100US$에, 그리고 이 지방 특산품인 송이버섯 샤브샤브(1인당 200g)를 40US$에, 합하여 1인당 140US$의 옵션투어를 하라는 것, 2시간 후에 시행 여부를 알려 달라했다. 일행이 수의 한 결과 토림 관광은 하지 않고 송이버섯 샤브샤브는 하겠다고 통보했다. 가이드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무시하고 보냈다.
*알고 보니 곤명에서 토림까지는 관광버스로 편도만 3시간 30분이나 소요되는 먼 곳에 위치해 그걸 관광하는 거로 간주하여 완전 히 하루 일정을 만드느라 나머지 관광 코스를 축소해 몰아쳐 관광을 시킨 것!!! ‘하나투어여행사’에서 당초에 준 계획대로 진행하면 느긋이 할 관광을 대충대충 보게 한 것이다.
*오전 9시 30분, 자기 집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이드에게 전화로 강하게 항의를 하였다. 옵션으로 토림관광을 시키려고 몰아쳐 관광을 시키고, 21일 오전은 호텔에 가두어 두고 오후에야 보이차매장과 옵션인 전신맛사지 시키는 걸로 일정을 잡았다니 심히 부당하다고 의의를 제기했다.
*나의 제안 : “11시까지 가이드가 호텔에 나와 우리를 어디든지 데려가 적당 곳을 관광 시키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귀국하여 「하나투어관광」회사에 의의를 제기하고 국토관광부 관광불편신고센터에 민원을 제기 하겠다.”라고 통고했다.
*가이드로부터 응답이 왔다. 11시까지 호텔 정문에 관광버스를 대고 첫날 가이드에게 제안(‘육군강무당’ 대신 ‘관도고진’을 관광 시켜 달라)했던 관도고진(官渡故鎭)을 관광 시켜주겠단다.
- 첫날 제안했을 때 가이드가 답하길 ‘겨울에는 고진은 문을 닫아 관광이 불가능하다.’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는데.....
*어쩌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셈!!! 계획에 없던 관도고진(官渡故鎭) 하나를 더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리하여 새 일정이 시작은 되었으나 맘은 좀 불편했다. 하여 우리 일행들 모르게 가이드에게 슬쩍 100US$의 별도 팁을 찔러 주었다. 모든 게 잘 풀려 무척이나 다행했다.
관도고진(官渡故鎭)
*호텔을 출발하여 3∼40분을 달려 관도고진에 도착했다.
관도고진
관도 고진은 당나라 시절 고위 관료들이 시와 가무를 즐기며 뱃놀이와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지금은 작은 상가들과 음식점, 기념품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사찰과 도교사원도 있다. 이곳에서 노인들과 은퇴자들이 가무를 즐기기도 하고 마작을 즐기기도 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곤명역에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관도고진은 곤명에서 몇 안 되는 고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관광명소이다. 남조-대리국 시절에는 곤명호 동북의 교통의 요충지였고, 당나라 시기에는 남조왕족들이 곤명을 올 경우 쉬었다 가는 곳이기도 한 이곳은 법당을 비롯 다양한 유적을 보유 하고 있으며 현재 많은 시민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고진(故鎭)이란 옛날 건물과 길거리를 보존한 곳을 말한다. 관도고진(官渡故鎭)보다 곤명 북쪽에 위치한 여강고진(麗江故鎭)이 더 유명하고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다고 한다.
*입장히기 전에 가이드가 주의사항을 일러 주었는데 안에 들어가 음식을 사 먹지 말라는 것과 은(銀) 장식 제품 가게가 여럿 있는데 은 제품을 사지 말라고 했다. 음식은 잘못 사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다는 것과 은 제품은 가짜에 속을 수 있다는 것! 이런 말 한 걸 상인들이 들으면 곤란할 텐데 괜찮은지!!!
*입구에서 잘 지은 중국 풍의 거대한 문루(門樓)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나서 일행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리를 쭈욱 걸었는데 완전 중국다운 건물과 가게, 진열된 상품들이 볼꺼리였다. 우리 한국인들의 감성과는 거리가 먼 상품들이라 어느 누구도 기념품을 사지 않았다.
*야시장도 두 군데 있었고 라마 사찰도 보였고 중국다운 도교 사찰, 소림사 등을 보여주기 위해 지어 놓았다. 라마 사찰 안으로 들어가 불상을 촬영하려 하니 라마승이 눈을 부라리며 촬영하지 말란다. 막다른 길거리에서 라마불교의 탑 앞에서 함께 인증샷을 하고 되돌아 나왔다.
*점심식사를 하고 곤명하면 특산품인 보이차 매장으로 갔다.
보이차(普洱茶) 매장 방문
*운남성은 차(茶)의 산지로 유명한데 특히 보이차(普洱茶)는 건강식품으로 세계인들이 즐겨 음용하는 차이다.
*보이차는 잎이 넓은 대엽종(大葉種)의 차나무에서 채취해 여러 해 동안 발효시켜서 만든다.
*대엽종 차나무가 100년 이상 자란 후에야 보이차를 만들기 위해 채다(採茶)를 한다.
*운남성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 나무 - 1800년 된 고목
*보이차(普洱茶)는 ‘살아있는 골동품’
*보이차(普洱茶)는 카페인이 없어서 수면에 지장을 주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줌
*보이차(普洱茶)는 생우유를 섞어서 마시면 좋음
*보이차(普洱茶)는 혈관벽에 붙은 지방질을 청소하는 역할을 해 동물성 식품을 주식으로 하는 티벳인들의 필수품임
*티벳사람들이 운남성에 있는 보이시까지 멀고 험한 길을 와서 사 감 - 차마고도(茶馬古道) 이용
*우리 일행들 많이 구입함
- 3년간 발효 시킨 것 : 8만원
- 5년간 발효 시킨 것 : 14만원
*보이차(普洱茶)의 보관 - 습기 많은 곳은 피하고 집안 일상적인 곳에 보관하면 됨 : 책장 안이나 찬장 안
*보이차(普洱茶)는 가정에서 물 끓이듯 끓인 후 물병에 담아 냉장고 안에 보관하고 끓인 물 마시듯 마시면 좋다.
*보이차(普洱茶)는 한두 번 마셔서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장복(長服)을 해야 몸에 효과가 보인다. 다이어트 효과도 분명히 나타난다.
*녹차는 개봉하면 얼른 다 소비하는 게 좋으나 보이차(普洱茶)는 오래 둘수록 품질이 더 좋아짐.
*10년 전에 구입해 보관해 둔 걸 중국 매장에 되가져오면 구입가보다 훨씬 고가에 매입 가능
*우리가 찾은 「용윤(龍潤)그룹」 - 중국에서 제일 큰 보이차 생산공장 가짐
- ‘하나투어’에서 「용윤(龍潤)그룹」을 찾아 여행사와 관광객이 매장을 이용하도록 계약 제안함
- 다른 매장들은 모두 여행사를 찾아와 관광객 보내 줄 것을 제안(간청)하는 게 현실
普洱茶 중국 윈난 성 지역에서 티벳에 이르는 차마고도 지역의 소수민족들이 먹던 차의 일종이며 지금은 윈난 성 일대에서 만드는 차만을 의미한다. 즉 국산 보이차는 있을 수 없다는 것. 시솽반나(西双版納, 서쌍판납) 일대가 주산지이다. 향긋한 지푸라기 향에 소가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카더라보이차라는 명칭은 차마고도 지역의 교역 거점 중 하나인 푸얼(보이)현(普洱县)이라는 마을에서 주로 거래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후 보이차가 유명해지자, 중국 정부 차원에서 보이차의 주요 생산지 중 하나인 쓰마오 시(思茅市)를 아예 푸얼 시(普洱市)로 개명해버렸다.
원래 오래 전부터 소수 민족들이 마시던 차라서 듣보잡에 속하였으나, 청나라 옹정제 10년에 황실 진상품인 공차(貢茶)로 선정되면서, 황제가 마시는 차로 널리 알려졌다. 청 몰락 이후 보이차는 그 명맥이 거의 끊어지다시피하여 그저 그런 변소차의 일종으로 여겨지는 듯 했지만, 프랑스로 수출된 보이차(숙차라고 한다)의 효능이 논문을 통해 재발견되며 70년대 이후 화려하게 비상했을 뿐 아니라, 호남성 일대의 다른 흑차까지도 덩달아 조명을 받는 계기가 된다.이런 관점에서, 무시무시한 가격의 골동차를 포함, 현재 제조되는 모든 보이차는 일종의 레플리카라 할 수 있다. 오래됐다면 무진장 오래됐고 아니라면 또 아닌 미묘한 차. 그래서인지 상반된 주장이나 자료가 무척 많아 입문자를 당황스럽게 한다.보이차에 대한 이야기로 숙성 기간이 길수록 맛이 깊다 하여 3대의 기간을 둬 마신다는 이야기가 있다. 보이차 장인의 조부모가 만들고 손주가 판 보이차 하나가 수십만 위안에 경매로 판매된 일이 있다.
*중국의 4대 요리 : 사천요리, 광동요리(달다), 동북요리(중국 특유의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음), 호남요리(매움)
*가이드가 검은 구기자를 주었는데 검은 구기자는 레몬보다 비타민C가 13배나 더 들어 있단다. 병에 물을 담고 마른 검은 구기자를 넣고 한참을 기다리자 물이 파래졌다. 들고 다니며 마셨다. 한국에서는 검은 구기자를 100g에 5만원을 받고 판매한다고....
*중국에서는 군대에 가자면 돈을 내야 갈 수 있는데도 지원자 쇄도 : 제대를 하면 정부에서 직장을 알선해 줌으로...
*걷기 어려운 사람은 중국 관광을 복건성 하문시로 가서 하라
- 바닷가 휴양지로 걷는 코스 적음
*중국의 담배 풍습
-남자들의 인사 : 담배 권함
-아랫사람(사원)이 윗사람(사장)보다 더 비싼 담배를 피우면 결례로 인정
-담배의 가격대 차이가 심함 : 1000원∼1만원
-한국 돈으로 5000원짜리 담배를 가장 많이 피움
*술 - 보존기간이 긴 술일수록 고가임
*같은 테이블에서 함께 술 먹다가 과음해서 사망사고 나면 공동으로 벌 받음
이번 여행 중의 식사
*이번 여행 중의 식사는 미안하지만 좋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매일 하는 아침식사는 호텔뷔페라 그런대로 괜찮은 편인데 세 번의 현지식은 매우 불만이었다. 음식의 질이 낮다기 보다 중국음식 고유의 향신료가 들어가 그 냄새가 비위에 거슬려 거의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특히 우리 막내사위 유서방은 유난히도 비위가 약해 밥에 가져간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 게 다였으니...
가이드에게 불만을 말하자 “향신료를 적게 넣으라고 부탁해 이게 잘 나온 겁니다.”라고 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현지식 중 ‘동북요리’는 연변 조선족을 포함한 흑룡강성 등지의 요리로 특이한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아 우리 입맛에 딱 맞아 잘 먹었다.
*우리가 한 식사 중 특이한 식사는 ‘송이버섯 샤브샤브“였는데 옵션으로 40US$를 지불하고 한 식사였다. 기본에 1인당 200g씩 넣어주는 특식이었다. 한국에서는 송이버섯을 1Kg에 1등급은 50만원 이상 줘야 살 수 있는데 그 귀한 송이버섯을 배부르게 싫컷 먹었다. 역사에 남을(???) 일이다.
*다만 사위와 딸, 누이동생, 사촌동생과 함께 밥 먹는 자리라 그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식사가 끝나자 딸들이 찻잔을 챙기고 뜨거운 물을 받아다 가져간 ‘커피믹스’를 타 나와 저들 엄마 앞에 가져다주는 게 너무나 흐뭇했다. 안사람이 “딸이 타 준 커피가 더 맛있네!”라고 해 웃었다.
아래 사진은 1인당 200g씩 먹게 하는 「송이버섯 샤브샤브」
송이버섯을 배부르게 먹어 본 건 난생 처음!!!
◎중국 조선족의 한국행 고찰
*연변 사투리 : 북한말 + 중국말
TV본다 → ‘덴스 본다’(덴스는 중국말로 TV)
*중국에서 자기 글 보존한 소수민족 - 조선족, 티벳족,
*연변지역(용정시 부근)-황무지였던 이곳에 함경도 사람들이 들어와 땅 개간하고 농사 지음
- 거름끼 적은 땅 : 빨강색 땅
- 거름끼 많은 땅 : 검은색 땅
*길림성 : 함경도 사투리 사용
*요녕성과 흑룡강성 : 경상도지역 출신 사람들이 많이 거주
*가이드 라문걸씨 - 할아버지는 경남 창녕 출신이고 할머니는 함경도 출신
*88올림픽 후 중국 조선족들이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 완전히 변함
- 그 전에는 북한에서 오는 정보만 접해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요 거지가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인식
*올림픽을 흑백TV로 시청, 그것도 TV가 귀해 TV있는 집에 몰려가서 시청
*이산가족찾기 신청 거의 안됨 : 편지로 오가면 시간이 6개월이나 걸려 당시 생방송을 하는 TV와 맞지 않음
*극소수가 한국에 가족을 만나러 갔다가 왔는데 중국 당국에서 한국 다녀온 사람에게 잘 사는 한국의 실정을 전하지 못하게 단속을 엄격히 함, 그러나 FILA 신발 얻어 신고 돌아 온 사람들이 한국에 사는 가족에게서 큰돈을 받아와 집 사고 땅 사는 걸 보고 너도 나도 친지 만나러 한국에 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자 한국에서는 찾아 온 친지들에게 돈을 줄 수 없게 됨
*한국인들이 중국제 한약을 좋아 한다는 말을 들은 조선족들은 빚을 내 가짜 한약이나 가짜 웅담을 들고 와 팔았는데 가짜인 걸 안 한국인들이 한약을 안 사 집에 돌아갈 수도 없게 되자 불법체류자로 남아 험한 일 더러운 일 하는 곳에 취업함. 일하다가도 보수 더 많은 직장을 찾아 도망가 조선족은 못 믿을 사람이란 낙인 찍혀 취업도 어려움. 심지어는 여권을 빼앗아 맡아 놓고 일 시킴
◎농산물 구입히다.
*우리나라 농산품보다 중국산 농산물이 값이 싸다는 건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주부들이 중국 여행을 하고 귀국 시 중국산 농산물을 약간씩 구입해 오는 건 불법이지만 현실이다. 상계동 동생이 참깨를 구입하고 싶다고 해 가이드에게 이야기하자 가이드는 얼른 OK였다. 자기 잇속과 결부된 거라 물론 환영을 하는 것
*마지막 날 가이드는 참깨, 팥, 녹두, 건송이버섯, 건석이버섯 등 10여 가지의 농산품 샘플을 보여 주며 주문을 하란다.
- 참깨가 1말에 35,000원, 녹두도 35,000원, 건송이버섯이 1봉에 15,000원 등이었다.
- 우리는 참깨를 두 말과 건송이버섯 1봉을 샀다.
*농삼물을 파는 사람은 공항 인근에 가게를 열었으나 높은 가게세를 부담할 능력이 안 돼 폐업을 하고 가이드를 통해 전화 주문을 받아 직접 공항으로 배송해 주어 우린 그걸 받아 짐 정리를 하여 귀국했다.
◎여행을 마치고......
* 참 좋았다. 학창 동기생들과 하는 여행과는 또 다른 즐거움으로 가슴 저리게 하는 여행이었다. 자식과 부모 사이, 친동기들과 하는 여행이라 ‘살가운 여행’이라 표현하고 싶다.
* 내 앞을 딸 내외가 다정히 뭔가 속삭이며 걸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만도 행복했다. 즐겁게 식사하는 장면을 보아도 대견스러웠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목젖이 보일만큼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연로한 부모를 따뜻이 모시려는 그 참맘이 보여 행복했다. ‘너희들이 네 엄마 팔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닷새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더 늙어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그 전에 한 번 더 가족 여행을 할 작정이다. 이번에는 평생을 개미금탕 모으듯 비자금을 모아 온 네 엄마가 거금을 써 두 번째 가족여행을 시켜 줄 거란다. 서두에 말했듯 돈 물려주는 것보다 아름다운 추억 물려주는 게 더 뜻 깊은 일이라 여기기에....
여행을 마치고 귀국 후 참석 못한 맏사위가 마련한 뒷풀이 자리
*후기(後記) :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단체카톡방을 만들고 모아보니 1,756컷! 이를 모두 서로가 전송해 공유(共有)했다. 그리고 동영상으로 만들어 함께 보도록 했다.
*오래도록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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