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용의 팩트체크] 아반떼 사러 들어갔다 그랜저 사서 나온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반떼 상위 트림에 옵션을 더하면 어느새 쏘나타 가격으로 뛰어오르죠. 뭐, 이왕 사는 거 좀 더 큰 쏘나타를 사자… 마음먹고 몇몇 사양을 추가하면 이제는 그랜저가 눈에 들어옵니다.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됩니다. 이미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 무리해서라도 그랜저를 살지, 원래 계획대로 아반떼를 살지, 아니면 중간에서 타협을 보고 쏘나타를 살지…
현대차 팰리세이드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가격 대비 상품성이 좋아서 경쟁력이 있다는 기사인데요. 아니나 다를까 부정적인 댓글이 달렸습니다. 시작가격은 꽤 저렴한데, 이것저것 더하면 가격이 훌쩍 뛰어올라 부담스럽다는 내용이네요. 모든 옵션을 더하면 기본 모델의 50%나 차지할 정도로 ‘이상한 가격’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 기사에 달린 댓글
찾아보니 팰리세이드의 시작 가격은 3475만원, 풀옵션 모델은 4904만원입니다. 이 둘의 차액은 1429만원. 계산을 해보니 기본 모델의 41%가 되네요. 댓글처럼 50%까지는 아니지만, 옵션 비중이 꽤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뭐, 현대차가 옵션 장사를 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나온 불만입니다. 실제로도 현대차는 유독 국내에서만 옵션을 다양화해 판매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요. 현대차 측에서는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라 주장하지만, 소비자들에게는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일단 국내와 상황이 비슷한 미국과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단, 보다 현실적인 비교를 위해 팰리세이드가 아니라 미국 현지에서 직접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 싼타페로 하겠습니다. 팰리세이드는 아직 미국에서 팔지도 않으니까요.
현대차 싼타페 가격표
국내에 판매되는 싼타페 가격표입니다. 이보다 더 복잡할 수는 없네요. 2.0 가솔린 터보, 2.0 디젤, 2.2 디젤 등 3가지 파워트레인이 있는데요. 각 파워트레인마다 트림이 다 다릅니다. 2.0 가솔린 터보에는 프리미엄, 익스클루시브 스페셜, 인스퍼레이션 등 3가지 트림이, 2.0 디젤에는 모던, 프리미엄, 익스클루시브, 익스클루시브 스페셜, 프레스티지, 인스퍼레이션 등 6가지 트림이, 2.2 디젤에는 익스클루시브, 프레스티지, 인스퍼레이션 등 3가지 트림이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작 트림은 2842만원인데, 풀옵션은 4471만원으로 뛰어오릅니다(2.0 디젤 기준). 차액은 1629만원으로, 기본 모델의 57%나 되네요. 트림을 올리거나 옵션을 추가할 때마다 가격이 쭉쭉 올라가니 소비자들에게 무척 부담스러울 듯합니다.
더 큰 문제는 12가지나 되는 트림의 옵션이 모두 제각각 다르다는 겁니다. 기본 트림이냐 고급 트림이냐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비슷하지만, 같은 트림이라도 2.0 가솔린 터보와 2.0 디젤 모델의 옵션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현대차 싼타페 미국 가격표
반면 미국 가격표는 너무 깔끔합니다. 현재 미국에는 싼타페는 2.4 가솔린 5개, 2.0 가솔린 터보 2개 등 총 7개 트림이 판매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트림이 곧 옵션입니다. 트림별로 기본 사양을 정하고 여기에 추가 옵션 없이 파는 것이죠. 유일한 옵션은 8단 자동변속기가 포함된 사륜구동 시스템인데요. 이 역시 7개 트림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차 싼타페의 유일한 옵션은 사륜구동&8단변속기다
대신 구급상자와 범퍼 장식, 자물쇠, 플로어 매트를 비롯해 트렁크에 사용하는 스크린, 네트, 트레이 등 차의 기본적인 상품성과 관계없는 실용적인 액세서리가 옵션으로 마련됐네요. 이 모두를 구입하는 비용은 730달러(약 81만원)로, 비싼 옵션이 잔뜩 있는 국내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옵션 대신 실용적인 액세서리를 고를 수 있다
2.4 가솔린 모델 기준, 시작 트림은 2만5500달러, 풀옵션은 3만1750달러입니다. 차액은 1만1650달러고 기본 모델의 약 46%가 됩니다. 꽤 높은 수치지만, 국내보다는 11%P가량 낮습니다.
유럽에서는 트림별 옵션이 같은 대신 파워트레인별 가격이 다르다
유럽은 어떨까요. 독일 현대차 사이트를 찾아봤습니다. 독일에서 싼타페는 2.4 가솔린과 2.0 디젤, 2.2 디젤 등 3가지 파워트레인이 판매되고 있네요.
현대차가 독일에서 싼타페를 파는 방식은 한국과 미국을 적절히 섞은 겁니다. 셀렉트, 트렌드, 스타일, 프리미엄 등 4가지 트림으로 나누고 각 트림에 따라 적절히 사양을 조합합니다. 미국처럼 트림은 곧 옵션입니다. 그 다음에는 파워트레인별로 가격을 매깁니다. 가솔린이냐 디젤이냐, 2.0 디젤이냐 2.2 디젤이냐, 전륜이냐 사륜이냐 등 파워트레인에 맞춰 조절하는 것이죠. 아무리 찾아봐도 추가로 구매해야 하는 옵션은 없네요.
그렇다면 기본 모델과 풀옵션의 차이는 얼마나 날까요. 사륜구동을 지원하는 2.2 디젤 모델을 기준으로 시작가격은 4만2000유로, 풀옵션은 5만2000유로입니다. 차액은 1만유로로, 3개 나라 중 가장 낮은 24% 수준입니다. 2.4 가솔린 모델은 33%로 조금 더 높네요.
해외와 달리 국내에는 엄청난 옵션 패키지가 마련되어 있다
백번 양보를 해 봅시다. 차량의 트림 및 옵션 정책은 각 나라의 시장 상황마다 다르고, 옵션이 많은 것은 본인이 원하는 차량을 만들 수 있는 더 좋은 기회라고요.
그렇더라도 현대차의 국내 옵션 체계는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너무 세분화됐을 뿐 아니라 연관성 없는 사양이 같은 패키지로 묶여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정 사양을 사려면 원치 않는 사양을 함께 넣어야 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합니다.
내비게이션 패키지나 스마트 센스 패키지는 그렇다쳐도 스타일 패키지에 풀 LED 헤드램프와 19인치 휠이 왜 묶여 있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주차 거리 경고는 안전 사양의 일종인데, 센서 때문인지 스마트 파워 테일 게이트와 컨비니언스 패키지에 함께 있네요. 테크 플러스와 프리미어 패키지에 무선충전 시스템과 220V 인버터가 끼어있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프리미어 패키지에는 다이내믹 밴딩 라이트도 들어있습니다. 굳이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다이내믹 밴딩 라이트를 함께 묶은 이유를 모르겠네요.
물론, 옵션은 어디까지나 소비자 선택의 몫입니다. 현대차가 강제로 사라고 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많은 소비자들은 현대차가 강매한 것처럼 느끼며 ‘옵션 장사’라며 불만을 표현합니다. 댓글에 달린 것처럼 ‘옵션 다 넣어서 팔면 비싸고 선택권 없다고 징징,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옵션이 너무 많고 비싸다고 징징’거린다 할 수도 있지만, 소비자는 원래 투덜거리며 요구하는 법입니다. 현대차는 현명한 옵션 정책을 통해 이런 불만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유독 국내에서만 이런 정책을 쓰는 이유에 대해 소비자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설득시켜야 하겠죠.
자동차 칼럼니스트 전승용
전승용 칼럼니스트 : 모터스포츠 영상 PD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담갔으나, 반강제적인 기자 전업 후 <탑라이더>와 <모터그래프> 창간 멤버로 활동하며 몸까지 푹 들어가 버렸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