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부시 파이어
강애나
화마가 휩쓸고 간 들판에 주검의 행렬이 서 있다
몇천 년 된 앙상한 나무들이 검은 혈서를 쓰고 있다
불 화산 회오리바람 속에서
죽음을 목격한 아기들이
집을 나와서 엄마 찾으며 울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한낮의 열기
천년을 간직해 온 푸른 생애
검은 화석으로 사라지고 있다
블루마운틴에서 타는
유칼립투스의 아우성이
마치 분청사기 깨지는 소리 같다
불자동차가 뒤집혀 갓 결혼한
젊
어린 가축들의 살점이
검게 익은 숯 더미가 되었다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 속에서 구조된
배 주머니에 아기를 간직한 어미 코알라와
어린 코알라에게 젖병을 물려 주자
목이 타는지 거푸 물을 들이켜고 있다
배 주머니에 아기를 간직한 채 죽은
어미 월러비의 영혼이
저 회오리바람을 막아 줄 것을 믿고 싶다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검붉은 연기로
시드니 도시와 마을까지 잿더미가 쌓였다
오 년 후 불탄 희망이 다시 푸르게 자라나길
그때 유칼립투스나무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강애나 시집,『범종과 맥파이』, 천년의 시작, 2022년)
[작가소개]
1983년 호주 시드니 이민. 맥콰리대학 ESOL. CERTIFICATION 6년 수료,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이수,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년 학사 졸업. 2009년《 창조신문》신춘문예 시당선(「목련화를 들여다 보면」). 2020~2021년 호주《한국신문》‘書瑛 강애나 시와 함께’ 연재. 시집『시크릿 가든』,『어머니의 향기』,『오아시스는 말라가다』『밤별마중』. 한국시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회원. 한국문인협회-구연문화위원회 위원. 현)호주 새움한글학교 교사, 동화 구연가.
[시향]
한국에도 3월 초 경북 울진에서 일어난 산불로 인해 여의도 면적의 22배에 달하는 14,140헥타르가 불탔다 수백 년 된 금강송이 불타고 주택 피해 116채, 건물 158동이 소실되었다 송이버섯과 야생화, 야생동물들의 피해는 제대로 파악되지도 못한 실정이다
호주에서도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각처에서 일어난 산림화재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230명의 인명 피해, 1900만 헥타르의 숲이 소실되고, 죽거나 삶의 터전을 잃은 코알라가 약 6만 1000마리나 된다고 보고되었다
시인은 불타버린 들판을 보며
‘몇천 년 된 앙상한 나무들이 검은 혈서를 쓰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블루마운틴에서 타는/ 유칼립투스의 아우성이/ 마치 분청사기 깨지는 소리 같다’고 도 한다 유칼립투스 잎에서는 가연성이 강한 오일이 분비되기 때문에, 이것이 안개처럼 퍼져 쉽게 발화되므로, 숲이 불탈 때 분청사기 깨지는 소리가 났을 것이다 이것이 환경오염과 기상이변 때문이라면 인류는 탄소배출을 어떻게 줄여나가야 하나?
글 : 박정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