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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일 것인가?
데일 카네기의 ‘처세술 혁명’
미국 처세술 전문가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1955)가 1936년에 출간한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카네기가 사망한 1955년까지 31개 언어로 번역돼 5백만권 이상 판매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1500만권 이상 판매되었다.
‘처세술 혁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카네기의 영향력은 책뿐만 아니라 카네기가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조직한 카네기 훈련 프로그램에서 비롯된다. 자기계발, 세일즈 방법, 기업 훈련, 연설, 대인관계 등을 다루는 이 프로그램의 수강생은 오늘날 전 세계 80여개국에 걸쳐 8백만명이 넘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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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세일즈 방법, 기업 훈련, 연설, 대인관계 등을 다루는 데일 카네기의 프로그램은 1912년 처음 개발된 이후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말주변 없는 학생이 스타강사가 되기까지
1888년 미주리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카네기는 주립 사범대학에 진학했지만, 기숙사비를 댈 돈이 없어 매일 6마일 거리를 말을 타고 등교했다. 그는 풋볼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체격 조건이 안돼 토론 동아리에 가입했다. 토론을 잘 해서 가입한 게 아니었다. 그는 말을 너무도 못해 학우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그는 다른 학생들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으며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마음마저 품었다.
그렇지만 그에겐 한가지 큰 장점이 있었으니, 그건 불굴의 투지였다. 그는 말을 잘 하기 위해 색인 카드에 농담을 적어가지고 다닐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 그는 훗날 “나도 그들만큼이나 번듯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방법이 바로 대중연설이었다. 토론 동아리에 들어가 피땀어린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그는 졸업할 무렵 학교에서 알아주는 논객이 되어 있었다.
카네기는 농부들에게 일종의 방송통신대 강좌와 교재 등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여전히 자신의 화술이 부족하다고 느낀 카네기는 다시 웅변을 배우기 위해 보스턴으로 갔다. “연극배우가 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웅변 강사의 말을 듣고, 그는 뉴욕으로 가 연극학교를 거쳐 지방순회극단의 연극배우가 되었다. 부업으로 트럭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뛰기도 했지만 다 재미를 보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데일 카네기. 세일즈맨, 연극배우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그는 뛰어난 화술로 강사로 채용된 후 강의를책으로 엮은 [친구를 만들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어느 날 카네기는 뉴욕 YMCA에서 비즈니스맨을 상대로 대중연설 강좌를 수강했는데, 이게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실패한 세일즈맨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술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다. 카네기는 곧 강사로 채용돼 전국 순회 강연을 다녔는데, 이 강연이 점차 인기를 끌면서 드디어 그의 인생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카네기의 원래 이름은 Dale Carnagey였다. 1919년에 사망한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가 사후 그간의 자선사업으로 큰 존경을 누리게 되자, 그는 1922년 자신의 성을 Carnegie로 바꾸었다. 이를 ‘카네기 마케팅’의 최대 성공 사례 중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카네기가 1930년대초부터 개설한 ‘친구를 만들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이라는 강좌의 수강생이던 사이먼 앤 슈스터(Simon & Schuster) 출판사의 편집자인 레온 쉼킨은 어느날 카네기에게 그 과정을 책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1934년 카네기 강좌 14주를 녹취해 출간한 책이 바로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이다.
당시 미국사회는 대공황과 대량 실업사태에 지칠대로 지쳐 성공에 대한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성공을 위한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의 중요성과 그에 따른 ‘사회적 가면’의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던 때였다.3) 카네기가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시대상황과 맞아 떨어졌다. 전화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화는 1900년 150만대에 불과했지만, 1932년엔 1750만대로 늘었다. 전화의 시대 이전은 주로 글로 소통을 하는 문어의 시대였지만, 전화는 구어의 시대를 활짝 열어 젖혔다. 카네기의 책도 평이한 문체에 광고 카피와 같은 느낌을 주는 구어에 충실했다.
사람들은 인정받고 싶어한다
카네기가 이 책에서 첫 번째로 힘주어 던지는 메시지는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판은 쓸모가 없다. 이는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한다. 비판은 위험하다. 이는 사람의 귀중한 긍지에 상처를 주고, 자신의 진가를 상하게 하여 적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카네기는 이 논지의 연장선상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정욕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칭찬을 좋아한다”는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의 말, “인간 본성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인정받으려는 갈망이다”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의 말이 인용된다. 심지어 딜린저라는 은행강도가 FBI의 추적을 받다가 한 농가에 뛰어 들어가 “난 너를 해치지 않겠다. 다만 나는 딜린저다”라고 말했다는 것까지 소개된다. 은행강도가 자신이 공적 제1호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우리 인간의 인정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남을 칭찬하라는 것이다. 카네기는 찬사는 아첨과는 다르다는 걸 강조한다. “찬사와 아첨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전자는 진심이고, 후자는 위선이다. 전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후자는 입에서 흘러 나온다. 전자는 이타적이고, 후자는 이기적이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환영받지만 후자는 일반적으로 비난받는다....아첨을 잊고 거짓 없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하자.”
물론 찬사와 아첨의 구분법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지만, 아첨을 하더라도 수명이 긴 아첨을 하자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반면 이어지는 질문은 귀를 번쩍 열리게 한다. “우리는 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이야기할까?” 헨리 포드(Henry Ford, 1864-1947)의 입을 빌어 답이 제시된다. “성공 비결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능력이다.” 즉, 자기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네기는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사람들의 생일을 기억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나는 점성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우선 상대방에게 생일이 성격이나 기질과 관계가 있다는 걸 믿느냐는 얘기를 꺼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그의 생일을 물어본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11월 24일이 생일이라고 하면 나는 속으로 ‘11월 24일, 11월 24일’을 되뇐다. 그리고 상대가 자리를 비울 때 그의 이름과 생일을 간단히 메모해놓고 나중에 생일 기록장에 옮겨 적는다. 그리고 그 생일을 연초마다 달력에 표시해둔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생일을 신경 쓰게 된다. 생일이 되면, 나는 편지를 보내거나 전보를 쳤다. 이는 엄청난 효과를 낳는다. 나는 종종 그의 생일을 기억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건 ‘미소’다. 체질적으로 미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억지로라도 웃어라. 혼자 있다면, 휘파람을 분다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려라. 나는 이미 행복하다는 듯이 행동하라. 그러면 정말로 행복해질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정말 그런가?” 하고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카네기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전문가들의 이론을 제시한다.
“좋고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생각이 그걸 그것을 만들어낼 뿐이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진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과 더불어 다시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이론이 제시된다. “행동은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행동과 감정은 함께 발생한다. 따라서 더 직접적으로 의지의 통제 하에 잇는 행동을 조절하여 의지의 통제 하에 있지 않은 감정을 간접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쾌하지 않을 때, 저절로 유쾌해지는 최고의 방법은 유쾌한 마음을 먹고 이미 유쾌하다는 듯이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다.”
성공의 열쇠,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
그밖에 카네기는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꼭 외워두라”“남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라”“상대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라”“상대방이 스스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어라” 등과 같은 ‘사람을 다루는 기본적인 기술’을 소개한 후,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비결’을 제시한다.
“논쟁을 피하라. 상대방 의견을 존중하고, 절대로 틀렸다고 말하지 마라. 잘못을 했으면 신속하고 확실하게 인정하라. 우호적인 태도에서 출발하라. 상대방이 신속하게 ‘네’ 하고 답하도록 이끌어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많이 이야기하게 만들어라. 상대방에게 당신의 생각을 상대방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도록 진심을 다하라. 상대방의 생각과 욕구에 공감하라. 상대방의 고결한 동기에 호소하라. 당신의 생각을 극적으로 연출하라.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켜라.”
이어 카네기는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 없이 상대를 변화시키는 9가지 비결’을 제시한다. “칭찬과 진실된 감사의 인사로 시작하라. 상대방의 실수를 간접적으로 알아차리게 하라. 상대방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실수에 대해 먼저 말하라. 직접적인 명령 대신 질문을 하라. 상대방의 체면을 세워줘라. 작은 발전에 대해 칭찬하고 모든 발전에 대해 칭찬하며, 진심으로 인정해주고, 칭찬을 아끼지 마라. 상대방에게 부응할 만한 훌륭한 명성을 제공하라. 격려하고, 고쳤으면 하는 잘못은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처럼 대하고, 상대방이 했으면 하는 행동이 쉬운 것처럼 보이게 하라. 상대방이 당신이 원하는 바를 기쁜 마음으로 하게 하라.”
카네기의 처세술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면서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심지어 미디어 인터뷰를 공부하는 언론학도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된다. 박성희는 [미디어 인터뷰]에서 “좋은 인터뷰어란 좋은 질문자”라며 카네기의 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좋아하는 질문을 하라. 그들이 스스로 이룩한 성취에 대하여 말하도록 하라. 상대방은 당신이나 당신의 문제보다는 자신의 희망이나 문제에 백 배나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은 본래 백만 명을 희생시킨 중국의 기근보다 자신의 치통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지진보다, 자기 눈앞의 이익이 훨씬 더 중요하다. 다음에 당신이 대화를 시작할 때는 이 점을 꼭 명심하라.”
데일 카네기가 힌두교도들과 그의 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1939, 트리니다드).
새로운 스타일의 미국식 자본주의인가?
많은 독자들은 카네기의 글을 읽으면서 ‘날카롭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인간관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아부의 기술]이란 책을 쓴 저널리스트 리처드 스텐걸(Richard Stengel)도 그런 비판자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인간본성에 대한 카네기의 시각을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이란 매우 비이성적 존재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그저 열중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열중하고 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은 쉽게 속아 넘어간다. 또 자신을 비판할 줄 모르는 존재다. 그들은 존경에 굶주려 있고, 자신의 가치를 남들이 알아주기 몹시 갈망한다. 그 결과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간단한 말이나 행동에, 그리고 사소한 아부에 마음을 쉽게 내어준다....결국 카네기가 마케팅한 상품은 새로운 스타일의 미국식 자본주의이다. 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자신을 팔아야 하는 절박성이다. 인간 자신이야말로 최고의 상품이다.”
카네기의 주요 상품이 새로운 스타일의 미국식 자본주의라면, 오늘날 유행하는 팝 사이콜로지(pop psychology: 대중심리학)는 그 자본주의에 짓눌려 피폐해진 또는 피폐해질까봐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힐링과 멘토링을 주기 위한 건 아닐까? 날이 갈수록 인맥의 중요성이 더해지면서, ‘친구를 얻고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삶의 문법이기에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카네기의 후예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거시적 분석’과 ‘미시적 실천’ 사이의 괴리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다.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애쓰는 대중은 여전히 카네기에 열광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그 수많은 카네기 관련 프로그램의 성황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 열광은 인터넷에서 카네기 책에 대한 독자들의 서평을 잠시라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지식인들은 이념의 좌우(左右)를 막론하고 카네기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사회를 강타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기운이 살아있는 힐링과 멘토 열풍도 마찬가지다. 지식인들은 거의 대부분 이 열풍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구조나 제도 차원의 분석을 제시하면서 개인을 위로하거나 개인적 수준의 처세술을 제시하는 것은 올바른 답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 옳은 말씀이지만, 이런 비판을 대할 때마다 늘 떠오르는 생각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점이다.
힐링과 멘토 열풍에 대한 비판자들은 힐링과 멘토링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이미 자신의 입지를 사회적으로 구축한 사람들이다. 절박한 처지에 놓인 개인에겐 일시적인 위로나마 소중한 게 아닐까? 사회적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는 거라면, 개인 차원에서 강자가 되려고 애쓰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사실 이런 질문이야말로 카네기 연구의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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