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줌마
- 문하 정영인
이젠 억척스러움을 상징하던 ‘아줌마’소리가 잘못하면 화를 불러 오기도 한다. 지하철 안에서 아줌마라고 했다가 된통 혼이 나고 칼부림을 당하기도 했다. “아줌마, 휴대폰 소리를 줄여 주세요.” 했다가 회칼로 칼부림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줌마라는 소리에 그 아가씨는 꼭지가 돌았다고 한다.
아줌마는 아주머니의 준말이다. 사실, 아줌마와 아주머니는 같은 말이지만 언어 감정은 좀 차이가 있다. 숱한 시대를 지나오면서 다정스럽던 동네 아줌마에서 고난의 시대를 거친 한국 아줌마는 억척스러움을 가진 대명사가 되었다. 경상도 아지매, 생선장수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등.
대개 결혼해서 나이 든 여자의 호칭이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아저씨의 맞서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어린 사람이 나이 든 여자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여자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아가씨, 아주머니, 할머니의 호칭의 변화 단계를 거친다. 대개 아줌마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요소는 주로 외모, 결혼 여부, 나이 등이다. 나이는 대개가 30을 넘어야 하지만 지금은 30을 넘어 보인다고 해서 아줌마라고 했다고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만혼이나 나이든 아가씨가 많아서 잘못 호칭하다가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하기야 아가씨를 아줌마라고 부르니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아줌마’라는 낱말에는 약간의 멸시(蔑視)의 뜻이 담겨 있다. 거기다가 언어 감정이 비하하는 분위기로 들어간다면 상대편이 기분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아줌마의 사전적 의미는 전에는 ‘남남 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에서 지금은 달라져 ‘남남끼리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로 바뀌었다. 사회도 변하면 언어도 변하기 마련이다. 지금은 60대 먹은 이른 할머니도 아줌마라고 부르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나이, 결혼 여부를 파악하기 어려우니 우리는 외모를 보고 판단하여 아줌마라고 부른다. 결국 30~40대 여자에게 아줌마라고 부르면 자기의 외모, 나이 등을 비하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줌마는 당연히 부르거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투를 했다간 호되게 당한다. 결국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30~60대 남자는 자기들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이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세상은 점차 성별을 지우는 경향이다. 성(性)의 중립을 지향하고 있다. 회장을 체언 맨(chair man)이라 하지 않고 체어(chair)로 바뀌듯이 수평적인 호칭으로 바뀌고 있다. 회사 내에서도 ‘~님, ~씨’로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이즈음 호칭은 인플레이션 현상을 겪고 있다. 흔히 선생님, 사장님, 사모님, 이모님, 언니 등으로…. 우리말에서 존댓말 사용으로 수평적인 호칭으로 교체하기 어렵다보니 그런 말이 나오는가 보다. 그렇다고 이름을 아는 경우에 ‘~씨’라고 부르기도 극히 제한적이다. 요즈음 호칭 중에 제일 무난한 말이 “저기요, 여기요” 란다. 나도 식당에 가서는 한국 사회에서 휘뚜루마뚜루 쓸 수 있는 ”저기요“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전에는 웬만하면 “사장님”이라고 하였지만 ….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제일 흔해 빠진 말이 ‘사장님’이 아닌가 한다.
자주 모이는 친구 모임이 있다. 벌써 80줄을 넘고 있으니 호칭이 마땅치 않다. “사장, 교장이나 어릴 적 친구처럼 ○○야” 하고 이름 부르기 그렇다. 그래서 무난하게 부르는 호칭이 “이회장, 김회장”으로 부른다. 하기야 친목 모임에 회장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제는 조선시대의 서얼(庶孼)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는 시절처럼 함부로 눈치 없이 아줌마를 아줌마라고 부르지 못하는 시절인가 보다. 아줌마라고 함부로 부르다가 화를 당하기 쉽다. 60~70대 여자 조차 아줌마라고 부르면 발끈하며 화를 낸단다. 20대 여자 보고 아줌마라 했다가 야구방망이로 맞을 뻔했다. 특히 아줌마뻘 여자에게 말을 가려서 하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즘 젊은 세대는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 같이 개성이 강한 감성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아줌마’는 우리 사회에서 멸칭(蔑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수준 미달이라든가 인격이나 격식의 비하로 받아드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기다가 언어 감정을 잘못 표현하면 문제가 된다. 이젠 우리 사회도 다른 나라처럼 호칭도 남녀평등으로 수직적에서 수평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높임말과 낮춤말이 까다로운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다르게 분화될 수 있으니 말이다. 갈수록 호칭의 수평화 현상이 벌어진다고 한다. 한번은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 일본 초등 교사들이 방문했다.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에게 존댓말를 씁니까?”하였더니 “아이들이 나에게 존댓말을 쓰면 나도 존댓말을 쓰고 반말을 하면 나도 반말을 합니다.”
한국의 국회의원 아저씨, 아줌마들이 마구 내뱉는 말을 보면 그들에게 인격과 격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모가(李某)가 이모(姨母)로 둔갑하고 ‘ㄸㄸㄸ’이가 ‘ㅉㅉㅉ’이로 요상하게 변한다. 이규호 교수는 “언어는 단순한 표현수단을 넘어 사람됨을 이룩한다” 라고 했고, 말뭉치 연구가 김한샘 교수는 “사회에 의해 언어가 바뀔 수 있고 언어에 의해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한국 국회의원들은 사람됨에 문제가 다분히 있다. 언어가 사회를 변화 시킨 대표적인 단어는 내로남불이 아닐까?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버럭 호통 치고 반말을 밥 먹듯이 하는 선량(選良)들도 국회의원 됨됨으로 변하는 사회가 올 것이다. 그렇게 변화 시키는 것은 오직 국민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아줌마’라는 말이 변하듯이…. 이젠 ‘아줌마’가 아니라 ‘저기요’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저기요,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
첫댓글 호칭!
참 애매할 때가 있긴 합니다
포청 선배님~
무심코 지나처 버린 호칭에 대해서
헌번쯤 느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외모를 보고 판단하여 아줌마라고 부릅니다.
가끔은 어떻게 부를까 망설일 때가 있는데
장소와 외모로 보아 불러왔습니다.
아주 조심은 해야겠습니다.
가을 향기 물씬 풍겨 옵니다.
행복 넘치는 날 되세요.
네, 샛별사랑님,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