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 정재욱
토요일 오후 퇴근 길에 스타벅스 커피점을 지나면서 음료를 주문하려고 들렀다.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나서 각자 먹고싶은 메뉴를 보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각자 원하는 음료를 시켰는데, 아내와 큰 아들의 간단한 메뉴선정과는 달리 딸아이의 기다란 메시지 답장이 왔다.
‘그란데 사이즈로 차가운 차이 라떼 한 잔.
추가 선택사항으로는
얼음은 약간, 차이 펌프는 2번만, 블론드샷으로 에스프레소 추가, 그리고, 귀리 우유’
메시지를 다 읽고도 한 번에 암기가 되지 않아 주문을 하기 위해 핸드폰 메시지에 쓰여진 주문내역을 한참동안 읽어내려가야 했다. 한 가지 메뉴에 대해 다양하게 선택사항들을 자신이 원하는 걸로 고를 수 있게 되어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내가 주문을 하면서도, ‘주문을 뭐 이렇게 까다롭고, 자세하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요즘 신세대들은 참 자기 취향이 뚜렷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상세하고 확실하게 표현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마시는 음료 하나까지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따지는 것과는 달리 무조건 복잡하고, 귀찮은 것은 멀리하는 우리 세대와는 극명한 차이가 난다고 느꼈다. 이것이 세대차인가 싶었다. 내가 고른 메뉴는 그냥 라떼 한 잔이었다.
보통 회식이나 여러 사람들이 모인 모임같은 데 가면, 주문을 할 때, 뭘 먹을 건지 망설이게 된다. 어떤 메뉴를 선택할 건지 질문을 받으면 내가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딱 집어서 얘기하기 보단 ‘아무거나.’라고 답하거나, 아니면 앞에서 다른 사람이 시킨 메뉴를 가리키며 ‘나도 같은 걸로.’ 란 말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인 성격탓일 수도 있겠지만 괜히 까다롭고, 유별난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나의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아니면 특별히 먹는데 있어서 가리는 것이 없고, 맛에 대한 섬세하고, 탁월한 미각을 가지지 못한 탓일 수도 있고, 약간의 결정장애가 있을 수도 있다.
요즘엔 펜데믹 시대를 거치고, 인건비가 상승되어 직접 사람이 주문 서비스를 받는 것보다 키오스크 (터치 스크린 방식의 정보 전달 시스템인 무인 단말기) 나 앉은 자리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직접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처럼 단순히 세트 메뉴나 콤보 메뉴를 손으로 가리키면 되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최근 뉴스에선 나이드신 분들이나 디지털 매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문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도 화면에서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가 이루어지기까지 여러 과정과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중간에 잘못 눌러서 다시 처음으로 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내가 원하는 메뉴를 찾기 까지 한참동안 헤매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선택해야 하는 다양한 추가 선택사항들도 많아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기 보단 나 자신에 대해 점점 무덤덤해짐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이제부터 나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데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딸아이가 했던 주문처럼, 앞으로 당당하게 나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겠다는 주문을 외워본다.
첫댓글 이번 주(5/17)조선일보에 발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