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사천왕문의 사천왕상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46호인 사천왕문은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창건되어 혜공왕(惠恭王) 12년(776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중창되고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백암선사(碧岩禪師)가 다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천왕문 안에는 손에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용과 여의보주를 들고 있는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칼을 잡고 있으는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보탑을 들고 있는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의 사천왕아 절을 수호하고 있다. 법주사 사천왕상은 우리나라 최고의 사천왕상으로 평가된다.
동서양 시계 변천사에 대한 단상(斷想)
시계는 중요한 문명의 이기입니다. 우리말로 시계라 통칭하지만 영어(서양 언어)로는 다양한 이름이 있습니다. 해시계 (sun dial), 물시계 (water clock, clepsydra), 벽이나 탑에 설치하는 벽시계 (clock), 모래시계 (hourglass), 회중시계, 손목시계 (pocket watch, wrist watch) 등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사용되면서 쓰였던 시계 종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 것인데 이것만 보면 시계가 서양의 전유물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다릅니다.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은 동서고금을 통해 사회⋅경제⋅종교적 활동이 복잡해지면서 더 중요해졌습니다. 7세기 이슬람교 시작과 함께 매일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 의례가 되며 이슬람 문화권에서 천문학과 시계가 더 발달하게 됩니다. 해시계 외에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하는 장치와 시각을 알려주는 부품들이 계속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배터리로 대체되기 이전 시계는 물, 추의 움직임, 태엽(스프링)이 그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물의 흐름을 활용한 물시계도 해시계 못지않게 오래전부터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시계의 걸작품은 송나라의 과학자 소송(蘇頌)이 11세기 말에 만든 수운의상대(水運儀象台)였다고 합니다. 황제의 지시로 당시까지의 지식과 기술을 집대성해서 매우 정교하고 거대한 물시계 탑을 수도 카이펑(開封)에 설치했는데, 여진족이 침입하였을 때 이 장치를 해체해 가져갔으나 너무 복잡해 다시 설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15세기 조선 세종 때 장영실이 제작한 자격루(自擊漏)가 물시계의 일종입니다.
유럽에서는 물시계가 용수철과 추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시계에 밀려 도태되었습니다.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것이 17세기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워덤 칼리지(Wadham College)에 설치되어 실제로 사용되었던 벽시계 장치입니다. 이 장치는 특히 그림 2와 3에서 보는 정교한 중국의 향료, 불시계(incense, fire clock)에 비교하면 고철 덩어리로 보입니다. 이들은 19세기 중국에서 사용되었던 것인데 향료와 향대와 같은 연료를 태워서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향료시계(그림 2)의 경우 정해진 시간 동안 탈 만큼의 여러 종류의 마른 향료를 한옥 창틀문양의 흠에 넣어 불을 붙이면 타는 향의 냄새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매우 낭만적입니다. 한문(漢文)에 능하고 문학적 재능이 많은 분들에게는 한시 몇 소절이 저절로 떠오를 듯합니다. “밤이 깊어 쑥 향시(香時)가 되었건만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고 .....” 등과 같이 말입니다.
두 번째(그림 3)는 배(龍船) 가운데 가로 칸막이 중앙 상단에 홈이 파여 있습니다. 거기에 향대를 길게 놓을 수 있죠. 그 위로 가로 칸막이에 맞추어 양쪽에 쇠 구슬을 매단 실을 늘여 놓은 후 배의 길이 방향으로 파진 흠에 놓은 향대에 불을 붙이면 타들어가면서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된 실을 태워 양쪽에 매달린 쇠구슬을 떨어뜨리고 그때 나는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장치입니다.
운치가 있으나 이 장치들은 쓰임에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사용자가 감기로 냄새를 못 맡을 수도 있고, 연료를 태우니 습도, 바람의 영향을 받아 정확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전담 인력이 필요할 것이니 보급용 모형은 아니겠죠.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는 그림 1의 투박한 장치의 후손인 태엽방식의 회중시계가 대량 생산되어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왜 소송의 수운의상대와 장영실의 자격루와 같은 뛰어난 발명품이 널리 쓰이는 실용적 제품으로 개발되지 못했는지 궁금해집니다. 한 가지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경제 분야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절대 왕정이 오래 유지되었던 중국과 한국에서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은 정부(왕과 조정)의 필요와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절대 왕정이 일찍 쇠퇴한 유럽에서는 권력이 여러 지역의 정부, 교회(구교 및 신교), 상인, 대학 등 다양한 주체들에 분산되었습니다. 그 결과 평가자, 수요처가 다양해졌습니다. 발명에 대한 지원을 정부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되었고, 완성된 제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자리 잡으며 새 발명품의 개선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근래 세계 양대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아직도 공산당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국가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지도부 임기가 십년인 것만 빼면 왕조 시대와 닮아 보입니다. 유인 우주선을 궤도에 올리는 과학 수준을 과시하지만 구글 검색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그간 노정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자원이 정부와 공공부문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대 일간지 주필 사건이 보여주듯 핵심 민간분야인 언론도 사회의 독자적 일각을 이루기보다 공공분야와 공생하는 관계를 못 벗어나고 있어 보입니다. 이런 모습이 지속되면 시계의 변천이 서양에 의해 결정되었던 역사가 되풀이될 개연성이 커 보입니다. 이미 익숙했던 손목시계가 다양한 기능을 지닌 컴퓨터로 변화하고 있지요. 앞으로 기술발전 과정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집니다.
*사진의 물건은 영국 옥스퍼드시의 과학사박물관 (Museum of the History of Science)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임. 중세 이후 쓰였던 각종 과학적 도구들을 모아 놓은 이 박물관의 소장품 중 하나는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1931년 옥스퍼드대학 공개강의 때 판서한 내용을 그대로 보관한 칠판임.
[펌] / 필자소개; 허찬국(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 2016년 09월 30일 (금) 02:38:21
맥문동
헷갈리는 지진 척도
‘진도 5.8 최대 지진’ ‘월성 원전 진도 6.5 땐 자동 운영 중단’ ‘2년 반 후 진도 8.0 이상 대지진 가능성’….
모두가 지진 용어를 뒤죽박죽으로 쓰고 있다. ‘규모’와 ‘진도’의 의미를 모르는 것부터가 그렇다. 용어의 혼란 때문에 불안과 공포만 더 커진다.
지진의 크기를 나타내는 척도는 ‘규모’와 ‘진도’로 나눈다. 규모(magnitude)란 지진 자체의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 지진파의 총에너지를 지수로 환산한 것이다. 제안자인 미국 지질학자 리히터의 이름을 따서 ‘리히터 규모’라고도 한다. 규모 5.0 등 소수 한 자리까지 표시한다. 에너지는 규모 1.0이 증가할 때마다 약 32배 커진다. 예를 들어 규모 7.0은 규모 6.0보다 32배, 규모 5.0보다 1000배 크다.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규모 2.9 이하 지진은 지구에서 하루 9000건 정도 발생한다. 건물에 손상이 갈 정도의 규모 5.0~5.9는 1년에 800건 정도로 얼마 전 경주 지진(규모 5.8)이 이에 속한다. 규모 7.0~7.9는 훨씬 강하다. 1976년 중국에서(규모 7.8) 24만여 명이 사망했다. 2011년 일본 대지진(규모 9.0) 같은 것은 20년에 한 건 꼴이다. 역대 최대 지진은 1960년 칠레의 규모 9.5다.
진도(intensity)는 사람이 느끼는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탈리아 학자 메르칼리의 이른바 12단계 진도를 대부분 국가가 쓰고 있다.
진도 4는 실내에서 느낄 수 있지만 바깥에서는 거의 모를 정도, 진도 6은 사람들이 놀라서 뛰어나가는 상태를 가리킨다. 진도 10~11이면 건물과 다리가 부서지고 땅이 갈라진다.
그런데 일본은 10단계를 쓴다. 그 전엔 8단계였으나 1996년에 바꿨다. 일본식 진도 3(약진)은 집이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지며, 진도 5(강진)는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무너진다. 진도 7(격진)은 산사태가 나고 단층이 생길 정도로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일본식 진도를 써오다 2001년부터 메르칼리 단위로 조정했다.
문제는 일본 단위와 국제 단위를 섞어 쓰는 데서 오는 혼란이다. 일본의 진도 5는 우리의 진도 7에 해당한다. 건물과 축대가 붕괴되는 진도 6은 우리의 9와 같다. 더 나쁜 것은 이런 수치 차이를 공포심 조장에 악용하는 세력이다. 국제 표준인 ‘규모’ 대신에 국가별 기준이 다른 ‘진도’를 갖다 붙이면서 겁을 주는 식이다. 이런 차이를 모르면 선동에 휘둘린다. 한국의 수치는 일본식으로 환산하면 아주 약한 지진이다.
[펌] / 출처; 한경닷컴 / 고두현(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16-09-29 23:39:02
황금주(週)
중국인들은 매년 정월 초하루 대문과 방문 등에 복(福) 자를 붙여 행운과 부귀를 기원한다. 많은 집에서는 거꾸로 붙여 놓는다. 넘어진다는 의미인 도(倒⋅다오)와 도달한다는 뜻의 도(到⋅다오)가 발음이 같아 복을 거꾸로 붙여 놓으면 ‘행운과 부귀가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화상(華商)이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바탕은 붉은색 일색이거나 군데군데 노란색이 곁들여져 있고, 글자는 노란색 또는 노란색 띠를 두른 검은색이다. 특유의 노란색은 마치 황금을 연상시킨다. 행운과 재물을 가져다 달라는 뜻이다.
황금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마는 중국인의 황금 집착은 유별나다. 위(余)씨 성의 아버지들은 갓 태어난 자녀의 이름을 황금이라고 짓기도 한다.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하게 성장하고도 황금을 남길 정도로 풍요롭게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 중국이 사실상 전 세계 유통 황금의 ‘블랙홀’인 이유다. 하다못해 황금과 엇비슷한 노란색에도 열광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의 ‘전승절’ 기념 행사에 노란색 재킷을 입고 참석했다. 황금색을 귀하게 여기는 중국인들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고려한 일종의 ‘패션 외교’였던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무비자로 드나드는 제주에서는 2년 전부터 황금색 관광버스가 운행되고 있다고 한다. 차체 외관은 물론 좌석 등 실내 장식까지 온통 황금색이다. 심지어 운전기사도 황금색 복장을 갖춰 있었고, 번호판까지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8888을 부여했다. 다소 지나치다는 평가도 있지만 수요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중국은 건국 기념일인 10월 1일부터 일주일간 전 국민이 장기 휴가에 돌입한다. 이른바 ‘국경절 황금주간’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소비 진작을 위해 장기 휴가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름만큼이나 엄청난 규모의 소비가 이뤄진다. 국내외 유명 관광지가 중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우리나라에도 최소 25만 명 이상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서울 명동은 중국인 관광객 천지다. 어떻게 알았는지 변두리 벼룩시장까지 찾아와 물건을 한아름 안고 환하게 웃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는 황금주를 즐기러 찾아오는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반값 할인 등 중국인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묘안이 쏟아지고, 한류 콘텐츠 체험 등 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각종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일본, 대만, 홍콩, 동남아는 물론 유럽 각국까지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올 황금주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황금주는 이제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금맥(脈)이라고 할 수 있다.
[펌] / 출처: 서울신문 / 박홍환(서울신문 논설위원) / 2016-09-29 21:07
[지리산] / 뱀사골 수달래 / 오휘상
트럼프 미친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첫 TV토론 후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힐러리 승리’라고 보도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가 이겼다”는 정반대 조사 결과를 내놓은 언론도 많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55 대 45로 트럼프가 앞섰고, CNBC방송에서는 67 대 33까지 벌어졌다. 워싱턴타임스는 “유력 매체인 두 조사에는 100여 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며 “두 조사 결과를 합치면 압도적으로 트럼프 승리”라고 했다. 심지어 abc방송은 트럼프가 54%로 1위, 힐러리는 10%로 4위였다.
국내 언론들이 힐러리 승리의 근거로 주로 인용한 CNN,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가 친(親)힐러리, 반(反)트럼프 매체라는 것도 유념할 대목이다. NYT는 공식적으로 힐러리를 지지했고, WP는 별도 팀까지 구성해 트럼프의 언행 불일치와 자질 부족 문제를 부각시키며 트럼프와 전쟁 중이다. 62 대 27로 힐러리 압승을 보도한 CNN 조사에 대해 영국 가디언은 28일 “조사 대상이 521명으로 너무 적은 데다 41%가 민주당 지지, 26%가 공화당 지지라고 밝혀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기사 밑에는 CNN을 ‘클린턴 뉴스 네트워크(Clinton News Network)’라고 비꼬는 댓글이 달렸다.
50 대 33으로 트럼프 승리를 전한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온라인 조사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토론 후 트럼프 지지자들이 더 열광적으로 지지를 굳혔다는 걸 보여주었다”며 “힐러리가 준비를 철저히 했고 팩트 정리 훈련이 잘돼 말을 잘한 것은 사실이지만 트럼프의 준비되지 않은 거친 말과 행동이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 오히려 좋았다고 한 사람도 많았다”고 전했다.
미 언론에 나타난 친트럼프 여론을 종합해보면 미국 중산층은 남의 돈(세금과 기부)으로 화려한 삶을 살아오면서 비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힐러리보다 직접 번 돈으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오면서 낙관주의적인 트럼프가 무너진 미국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TV토론을 통해 그가 미친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어서 대통령 직을 수행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바꿨다는 지지자들도 있었다.
주로 고학력인 기존 전통 매체 기자들이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밑바닥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지적은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와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때부터 있었다. 주류 언론들은 처음엔 그를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는 히피 사회주의자’라고 무시했다가 나중에서야 ‘양극화를 해결하라는 샌더스 현상을 감지하지 못했다’며 공개적인 반성 기사들을 쏟아놓기도 했다.
선입관을 강하게 믿어 통계 수치조차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것을 ‘확신 편견’이라고 한다. 미 대선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도 이게 있는 건 아닐까. 1996년 빌 클린턴 2기 집권의 일등공신이었지만 지금은 트럼프를 돕고 있는 선거 전략가 딕 모리스는 최근 한국 월간지(월간중앙)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신문, 방송 기사를 보다 보면 힐러리가 이미 대선에서 압승한 것처럼 느껴진다. 트럼프 관련 보도는 ‘인종차별주의자’ ‘정신이상자’ 같은 가십성 보도만 넘치지 ‘트럼프 현상’에 대한 분석 기사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미국 정치를 자신들의 정치적 시각으로 보는 착시가 있다”고 했다.
미국 선거 결과는 한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희망이나 기대, 선입관을 걷어내고 종합적이고 냉정한 이성의 눈이 필요하다. 미 대선은 이제 시작이다.
[펌] / 출처; 동아닷컴 / 허문명(동아일보 논설위원) / 2016-09-30 03:00:00
맨드라미
사드를 넘어서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북한은 제4차 핵실험 이후 중국⋅미국⋅한국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렸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제5차 핵실험은 3국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세 나라의 공동 이익은 한반도의 비핵화다. 이들 사이에서 커져만 가는 의견 차이를 극복하려면 능란한 외교가 필요하다. 3국이 그렇게 하는 데 실패한다면 유일한 승자는 평양이 된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과 물리적인 충돌이 만약 발생한다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재래식 군사 능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미국이 그토록 큰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을 때 당시 대부분의 미국 분석가들은 한반도가 기본적으로는 안정적이라고 인정했다. 질문을 회피하려는 그들에게 대답을 강요했다면 그들은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양측 사이에 효과적인 억지가 작용하고 있었다. 적어도 대규모 전쟁의 발발 가능성은 낮았다.
미국의 시각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바뀌었다. 현재 우려의 대상은 ‘북한이 갑자기 한국이나 미국을 핵으로 공격할지 모른다’가 아니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2차 보복능력(second-strike capability)을 확보했을 때 오판할 가능성이다. 2010년 연평도를 공격한 것처럼 자신이 ‘저강도 비대칭 도발(low-level asymmetric provocations)’을 감행할 수 있다고 북한이 잘못 판단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전략적 취약성이 있음을 인정해왔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배치에 대한 항의가 나오고 있지만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전략 핵무기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해서는 다르다. 미국과 한국이 그러한 취약성의 용인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사드를 넘어 현재의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모든 당사국에 각기 의무가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손 놓고 그저 희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북한이 중국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북핵 회담을 다시 개최하려면 보다 강력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은 대북(對北) 제재에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현상유지(status quo)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러한 외교 프로세스를 주도하는 데는 중국이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 2003년 중국은 6자회담을 구축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6자회담은 주요한 외교적 성과였다. 하지만 중국이 회담의 호스트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국은 북한이 회담에 응하도록 설득하는 한편 회담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그 테두리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도 의무가 있다. 첫째, 미국과 한국은 자신의 전략적 우선순위에 대해 보다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북한의 정권교체와 남북통일은 장기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정권교체와 통일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을 하는 것은 협상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북한의 미사일⋅핵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단기적인 핵심 전략 문제와도 부합되지 않는다.
둘째, 당사국들은 사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한국은 중국과 함께 사드 전개의 기술적인 특징, 혹은 사드 전개 그 자체에 대해 논의할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 논의에는 사드가 역내(域內)의 다른 탄도미사일방어(BMD) 시스템들과 어떻게 연계돼 있는지도 포함될 수 있다. 제재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사드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미국의 관심은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셋째,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어떤 협상도 비핵화가 협상의 핵심에 놓이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또한 협상 전에 그 어떤 보상도 미리 줄 수 없다. 하지만 동결 같은 중간단계(interim steps)를 배제하지는 말아야 한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협상 타결이 보여주는 것처럼 미국은 그 어떤 나라도 일방적⋅무조건적으로 무장을 해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새로운 합의는 2005년 공동성명에 나오는 다른 이슈들도 다뤄야 할 것이다.
현재 중국⋅미국⋅한국은 서로 위험한 머리싸움을 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를 배치하려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숨겨진 동기가 있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서울과 워싱턴은 중국이 과연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북핵 문제는 어려운 문제다.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분석가는 북한의 현 정권이 비핵화를 단행할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은 북한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미국⋅한국⋅중국 사이의 3국 관계를 올바르게 복원해야 한다. 3국은 김정은이 현 상태를 악용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 3국 간 불협화음 덕분에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김정은이다.
[펌] / 출처: 중앙일보 / 스테판 해거드{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 2016.09.30 00:55
피카소 / 포옹하는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