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유친(姑婦有親)
서양은 독립적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동양은 사람의 관계를 앞세우는 인륜주의가 그 대세를 차지하고 있다. 동서양의 가족을 살펴보면, 서양은 부부 중심의 핵가족이라면 동양은 부자 중심의 대가족이다. 서양에서는 개인[男]과 개인[女]이 만나서 결혼을 한다. 두 사람이 마음이 맞으면 공공장소[법원, 시청 등]의 홀을 빌려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리며 경우에 따라서 식장에 부모를 초청하기도 한다.
동양에서는 가문과 가문이 만나는 혼인을 한다. 결혼식장에 가보면 신랑 신부는 그들의 부모의 로봇처럼 서 있고 하객도 신랑 신부의 친구보다 그들의 부모 친척 친지들이 더 많이 예식장을 메운다. 지금은 우리도 핵가족으로 바뀌어 3대가 한 집에 함께 살지는 않지만, 전통적 대가족의 실루엣[인륜관계]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집안의 큰 행사 및 명절 때가 되면 명절 증후군이 생긴다. 오래간만에 반가운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도, 화목해야 할 가정이 형제간이나 부모 자녀 사이에 얼굴을 붉히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말을 하지 않아도 늘 긴장 상태가 유지되는 관계이다. 그것은 모두 남성 중심의 혈연만[부자유친] 생각한 데서 온 폐단이다.
유가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오륜의 첫 번째가 바로 부자유친이다. 부모 자녀 사이에는 근본적인 배려와 보살핌[親]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친(親)이란 글자야말로 가장 가깝다는 의미이다. 부자유친은 동물적인 자연스러운 혈연관계[天倫]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족제도에서 쌍방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인륜관계이다. 이것을 쌍무적인 대등한 관계라고 한다. 사실 친(親)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자애[慈]와 자녀가 부모에게는 드리는 효도[孝]가 들어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그 보살핌(親)의 관계는 끊어진다. 어려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보살핌[慈]이 없으면 아동학대로 이어지며, 늙어서 자녀의 부모에 대한 배려[孝]가 없으면 역시 부모구박으로 변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을 소(疎)라고 하는데, 이는 서먹서먹하다는 뜻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원래 가정은 동질적인 부계와 이질적인 모계가 합하여 이루어진 곳이므로 같음[同]과 다름[異]의 다툼[異見]이 늘 일어날 수 있는 현장이다. 또 아들이 혼인하면 집안에 이성(異姓)인 며느리가 들어온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며느리는 아들 집안[親家]에서는 이질적인 존재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여성이라는 동질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존재로 한 집안에 동시에 살고 있다. 같음의 이질성, 즉 동(同)과 이(異)의 대립은 여기서 생긴다. 이미 친가에 동화된[同] 시어머니와 그렇지 않은[異] 며느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을 풀어주는 것이 바로 화목[和]이란 말이다. 이것은 같음[同]은 아껴주고[愛] 다름[異]은 존경[敬]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나와 다르다고 하여 잘못된 것[誤]은 아니다. 다름을 존중해주어야 화합되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가까워[親]진다. 따라서 부자유친이라 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혈연관계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시어머니[姑]와 며느리[婦]가 서로 배려하고 보살피는 인륜관계인 고부유친도 내재되어 있다. 친함은 모든 대립과 갈등[학대, 구박]을 풀어주는 원초적 사랑이다. 이제 부자유친은 원래 고부유친(姑婦有親)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숙한 사화는 온 집안이 화목한 가화만사성을 기반으로 삼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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