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5년 1월 4일
☞ 산행거리: 도상거리 20.7km + 어프로치 1.9km / 8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용인농촌테마파크-마애불상-문수봉-사암리 갈림길-곱든고개-384봉-쉼터봉-어두니고개
칠봉산-갈미봉-용실고개-양지리조트 스키장-용실산-독조지맥 갈림길-247.2봉
배미실 고개-제일 삼거리-마수고개-마을 도로-영동고속도로 지하통로-NO53송전탑
삼각점봉-NO41송전탑-NO42송전탑-NO43송전탑-420.1봉-매봉재-정수리고개
금박산갈림길-425봉 군초소-군부대 철조망-방도리고개-승마 연습장-자작나무 조림지
임도 삼거리-굴바위산-공장지대-성황당고개
☞ 소 재 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양지면 / 이천시 마장면 / 광주시 도척면
새해 첫날 철원 지역의 산행을 갔다가 추워도 너무 추워 정초부터 개고생을 한다.
원래는 영월지맥 5구간인 치악산 구간을 가야하는데 나홀로 산행에다가 거리도 만만찮고
많은 눈으로 인하여 홀로 러셀을 하려니 체력소모가 너무 많아서 내년 봄으로 미루고
서울 근교에 있는 산행을 하려는데 한북 8지맥은 지난해 끝내는 바람에 마땅히 갈데가
없어서 이리저리 뒤지다가 앵자지맥이나 시작해볼까 검색을 하다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새로운 기분으로 깔끔하게 목욕재계하고 의관정제를 한 다음에 컴퓨터에서 지도 한장
출력하여 터미널 근처의 부실한 밥이 싫어서 집에서 밥한술 억지로 먹고 경부고속 터미널로 향한다
한남정맥 앵자지맥 개념도
앵자지맥이란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 있는 한남정맥 문수봉에서 가지를 내려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정개산, 천덕봉, 앵자봉, 해협산, 정암산을 거쳐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검천리 종여울의 남한강 팔당호에서 끝을 맺는 도상거리 61.5km의 산줄기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용인행 버스티켓(06:30)
용인가는 버스에 올라 약 40분만에 용인공용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용인버스 공용터미널(07:10)
이곳은 인구 100만이 넘는 용인시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터미널은 초라하고 상당히 지저분하다
거기다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마을버스까지 같이 사용하는데다가 용인시 일원을 다니는 경남여객이라는
버스 업체가 거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탓에 기사들이나 직원들이 물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그야말로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두번 다시 오고싶지 않는 곳이다
16번 버스(07:45)
용인터미널에서 백암으로 가는 16번 버스를 터미널에서 35분을 기다린 끝에 버스에 올라
25분정도 걸린 다음에 오늘의 들머리인 용인농촌테마파크 버스 정류장에 하차를 한다
용인농촌테마파크 버스 정류장(08:10)
오늘 산행의 들머리
경기도 용인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내동마을에 있는 이 고개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다
고개 우측에는 용인 농촌테마파크와 중소기업 인력개발원, 그 옆에는 삼성경제 연구소가 있다
고개 아래에 원삼면 사암리에 속해있는 내동(內洞) 마을은 마을이 산속 깊이 자리를 잡아
안골이라 불렀는데 지명 표기를 한문화하면서 내동이라 표기를 했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 (08:25)
2012년 1월에 한남정맥길을 혼자 걸으면서 이 고개를 지나 갔으니 꼭 3년만에 이 고개에 온다
앞으로도 한번은 더 와야 할 고개이다... 쌍령지맥도 이 고개에서 올라야 가장 가깝기에...
산행을 시작도 하기전에 뱃속에서 밀어내기 신호를 보낸다
도로옆 으슥한 곳 낙엽이 수북데서 느긋하게 버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법륜사(法輪寺)
능선에 올라서니 좌측으로 템프스테이로 유명한 법륜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절은 예산 수덕사의 말사인데 특이한 형태의 전각이 예전에 스리랑카, 미얀마
불교성지 순례 갔을 때 봤던 남방불교에서 볼 수 있는 전각 형태이다
비구니 상륜(相侖)스님이 회주로 계시던 절로 왜 이곳에 수덕사 말사가 있는 것일까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그것은 비구니(比丘尼) 상륜스님은 북한산 승가사를
중창하신 분으로 수덕사는 근세의 법맥 경허(鏡虛), 만공(滿空)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이 만공스님이 그 법(法)을 인가한 비구니스님 한 분이 계셨는데 비구니 법희(法喜)스님이다
만공선사께서 법희스님의 깨우침의 경지를 알아보신 것이다.
그러면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주의도 주셨다. 스승의 따스함으로 헤아려 볼 때,
비구니의 몸으로 공연히 깨우침을 말하면 주위의 시선을 모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법희(法喜)을 은사로 모시고 수행한 분이 상륜(相侖)이었는데 그 법맥(法脈) 때문에 수덕사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
능선에 오르니 잔설이 쌓여있고 얼어 있어서 아이젠을 착용한다
원삼면소재지 갈림길(08:40)
중소기업 인력개발원 갈림길(08:45)
765.500V 송전탑(08:47)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은 급경사의 오르막의 옛길이고 좌측은 나무
계단으로 된 편한 길인데 잠시 후 다시 만나기에서 좌측의 편한길을 택한다
데크목 계단을 따라 편하게 올라서니...
계단 우측으로 약수물이 쉼없이 흘러 내리고...
문수사지(文殊寺址:08:55)
문수사지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문수봉 아래에 있으며, 지금은
우물과 맷돌 자국이 있는 자연암반, 건물지만이 남아 있는 옛 절터이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길이 약 47m의 규모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의 마애석불(磨崖石佛)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까지 남아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옛 기록을 보면 이곳에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던 寺址였으면 지금은 데크목
전망대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산죽들이 많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원삼면 고당리(高塘里)의 모습
마을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 방향으로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고안골, 순무지, 장터, 양달 마을 등이 있다.
고안골 마을은 고안부곡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순무지 마을은 순채가 나는 못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고, 장터 마을은 장터가 열렸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양달 마을은 양지바른 마을이라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문수사지에서 산죽길을 따라 1분정도를 올라서니...
좌측 20m 지점에 마애보살상이 있다는 이정표가 있어서 그쪽으로 가본다
문수사지 마애보살상(磨崖菩薩像: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0호:09:00)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 문수봉 아래에 있는 마애보살상은 문수사지에서 북서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약 50m 정도 오르면 있다. 이곳에는 남쪽을 향해 ㄱ자형의 단애(斷崖)가 형성되어 있는데,
마애보살상은 단애의 서쪽과 북쪽 면에 각각 1구씩 배치되어 있고 고려시대 전기시대의 보살상으로 보인다
서쪽의 보살상은 전체의 길이가 265m이고, 형태는 희미하지만 높은 보관을 쓰고 있고
보관과 머리의 연결부에 둥근 구슬과 같은 띠 문양이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마름모꼴로 약간 각이 져 있으며, 눈은 밑으로 내리 깔았고, 코와 입도 정제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고 상체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다. 양손은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했는데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으며 좌우 팔목에는 팔찌가 있으며 잘록한 허리 부분에는 군의의 매듭이 보인다.
이 매듭은 중앙에서 지그재그로 마무리되어 있으며, 옷주름의 무늬 또한 같은 형상이다.
선각의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저부조이지만 발 부분은 약간 도드라져 있고, 연화좌를 딛고 서 있다.
다소 하체가 짧은 감이 있지만 허리를 비튼 자세 등은 보살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쪽면의 보살상은 좀더 고부조로 표현되었기 때문인지 인상이 서쪽면의 불상과는 좀 다르다.
머리는 소발 형태로 표현되었고, 상호는 원만하다.
특히 눈두덩이 튀어나오게 표현되어 볼에서도 양감이 느껴진다.
입술은 작고 도톰하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고 상체는 나신이며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다. 왼손은 밑으로 자연스럽게 내렸다.
허리 부분에서 군의를 묶은 띠가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서쪽면의 보살상과 거의 같은 모습이다.
마애보살상 안내판
좌측은 문수보살이고 우측은 보현보살이며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상징하고
보현보살은 행함(願行)을 대표하는 보살이다. 암벽에 새긴 불상이란 뜻의
마애불(磨崖佛)은 본래 원시시대의 암각화 같은데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다.
후에 불교가 융성하면서 고대인도, 중국, 일본, 한국 등에서 부처님의 일생이나
신화 전설 같은 내용을 바위벽면에 새김으로서 신앙심을 고취하였다고 한다.
이런 마애불은 조각이지만 회화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석굴암이 가장 아름답고 규모가 큰 마애석굴 이다.
앵자지맥의 무사종주를 위해 마애보살상을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문수봉으로 향한다
드디어 앵자지맥의 분기봉인 문수봉 정상에 오른다
한남정맥 종주 때 밟아보고 실로 3년만에 다시 문수봉에 올라서니 감회가 새롭다.
정상에는 팔각정과 여러개의 이정표, 운동기구, 재난구호 안내판, 거기다가 정상석도 2개,
용인라이온스 클럽에서 세운 詩 안내표 등 온갖 구조물로 인해 너무 지저분해 보인다
문수봉 정상 이정표
이것 말고도 이정표가 서너개나 더 있다
문수봉(文洙峰:403.2m:09:05)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과 원삼면 문촌리와 사암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전에
있었던 문수사(지금은 폐사됨)가 있었던 봉우리라 해서 문수봉이라 이름이 된듯하다
문수(文洙)란 대승불교에서 지혜(智慧)를 상징하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보살로서
산 아래에 있는 마애보살상이 있는 걸로 보아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북쪽은 곱등고개를 거쳐 어은산으로, 남쪽은 쌍령산으로, 동쪽은 낮은 능선이 매봉재로
이어지며 서쪽사면은 운학천, 남동쪽사면은 경안천, 동쪽사면은 청미천으로 흘러든다
이곳은 한남정맥에서 분기한 앵자지맥이 있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10분정도 가면
한남 5지맥의 하나인 쌍령지맥의 분기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수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앵자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우측 능선으로 내려서니 눈 아래에는 빙판이 되어있어 상당히 등로는 미끄럽다.
잔뜩 흐린 날씨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완만한 등로를 걷는데 우측에는 커다란 송전탑이 있고 바로 아래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는 용인8경중에 제3경인 용담저수지가 아련하게 보인다
사암리(沙岩里) 갈림길(09:24)
사암리는 처인구 원삼면에 있는 마을로 본래 죽산군 원일면에 속했던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용암리, 사전리, 천곡리 및 내동의 일부와 양지군 주서면
광곡리를 합쳐서 사암리라고 하였다
마을의 서쪽으로 문수봉이 있고 곱등고개를 지나 독조봉으로 이어지며 사암리는
위의 능선이 동남쪽으로 흘러내려 평야 지대와 만나는 기슭에 주로 위치한다.
즉 서북쪽은 호동과 해곡동, 그리고 양지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능선이고
동남쪽은 용담저수지와 경작지가 발달되어 있다.
대안학교인 헌산중학교가 있으며 새마을 운동의 효시가 된 복음학교와 농도원이 있던 곳이다.
특히 내동마을은 일제강점기 초기부터 금광이 개발되고 사금(砂金)이 산출되었던 곳이다.
주요 기관으로는 삼성국제경영연수원과 중소기업인력개발원, SK아카데미가 있다.
동쪽은 미평리, 서쪽은 호동과 해곡동, 남쪽은 고당리, 북쪽은 좌항리와 각각 접하고 있고
남쪽에 국지도 57호선이 동서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곱든고개 갈림길(09:25)
사암리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Y 등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의 넓은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 앵자지맥으로 접어든다... 우측 소나무에는‘산너울 2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우측으로 가면 곱든고개로 가는 편한 길이고, 좌측으로 앵자지맥 내려서도 곱든고개를 만난다.
y자 갈림길에서 이 표지판을 보고 좌측으로 꺽어져야 한다 (독도주위)
y 자 갈림길을 내려서니 음지라 그런지 눈이 참으로 많다
조금을 지나니 우측으로 조그만 골짜기가 있어 곱든고개로 내려서는 길이고
직진은 곱든고개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앵지지맥을 이어가는 길인데 위에서는
곱든고개를 제대로 촬영할 수 없어서 베낭을 벗어놓고 도로로 내려선다
곱든고개(285m:09:35)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에서 원삼면 사암리르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며
정상에는 동물이동통로가 있고 고개가 굽이굽이 휘어져 굽은고개, 곱등고개, 곱든고개라 불렸다 한다.
1/50000 지도에는 곱돌고개로 표시되어 있다. 어찌되었든 구불구불한 고개를 표현한 이름인 듯
하면 용인시에서 지명을 통일하면서 공식적인 명칭이 ‘곱든고개’로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용인현과 죽산현을 잇는 큰 고개였는데 나라일 하던 관리들도 지금 용인시내에 있던
금령역(金嶺驛)에서 원삼에 있던 좌찬역(佐贊驛)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용인시 명승을 선정하는 위원회가 곱든고개에서 바라본 용담저수지가 용인팔경 중 3경에 선정했다.
예전에 고개는 호랑이 출몰도 잦았다 하며, 안성 죽산 칠장사에 계신 스승(갖바치 병해대사)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임꺽정이 이 고개를 지났는데 가짜 임꺽정과 맞닥뜨렸다는 것이다.
명종실록에 보면 그 당시 가짜들이 각지에서 임꺽정을 사칭해 도적질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나라에서도 가짜를 잡고 임금께 보고한 일도 있으니 실상을 짐작할 만하다.
명종 16년(1561년) 1월 조에는 “황해도 순경사 이사회와 강원도 순경사 김세한이 복명하기를
도둑 두목 임꺽정을 체포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임꺽정이 아니고 도적 가도치였다)고 쓰여 있다.
黃海道巡警使李思會 江源道巡警使金世澣復命, 以捕捉賊魁林巨叱正入啓(其實非林巨叱正, 乃賊人加都致也)
소설 임꺽정은 벽초 홍명희(洪命熹) 선생이 1928년부터 11년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이다.
안성 칠장사에는 고려 현종 때 혜소국사(慧炤國師) 비가 있다. 그 내용 중에 주변의 가난한 자나
불량한 자들을 보살피고 가르친 내용이 전해진다.
칠장사 명부전에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인 ‘병해대사와 7인의 도적’ 벽화를 그려 놓았다
(임꺽정, 이봉학, 박유복, 배돌석, 곽주오, 황천왕동, 길막봉).
다시 곱든고개에서 동물이동통로를 올라와 앵자지맥을 이어가는데 동물이 지나가기
보다는 인간들이 다니기가 훨씬 편해 보이는데 양쪽으로 소나무가 도열해 있다
동물 이동통로를 벗어나니 처인구청장 명의의 경고판이 서있고
다시 조금 지나니 편안한 등로가 산꾼 범여를 반긴다
지나온 문수봉의 모습
384봉(09:45)
등로의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칠봉산과 우측으로 독조봉이 살짝 보인다
등로 좌측 아래로는 세계 최대의 와불(臥佛)로 유명한 와우정사가 살짝 보이고
지금 이 시간에 일요법회를 시작했는지 목탁과 염불소리가 등로에 까지 들린다
와우정사(臥牛精舍)
대한 불교 열반종의 총 본산으로 1970년 실향민인 해월 삼장법사가 민족 화합의 염원을 담아 세운 사찰이며 대한불교열반종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실때 마지막으로 설법을 하신 대반열반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종단이다
세계 최대의 와불
와우정사의 와불은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통째로 깍아 만든 것이며
길이가 12m, 높이가 3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와불이다
와우정사 불두
높이가 8m에 이르고 이 불두(佛頭)를 만들기 위해 황동 5만근이 들었으며 장장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조그만한 무명봉을 서너개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로프를 따라 올라서니 전망 쉼터가 나온다
전망쉼터(10:05)
전망 쉼터에 올라서니 벤치 2개가 있고 ‘산너울 2길’ 용인8경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그러면서 곱든고개에서 바라본 용담저수지라는 용인 제3경의 안내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용담저수지가 잘 보이긴 해도 곱든고개와는 거리가 멀어 장소 설정이 잘못됐다
용인 팔경의 안내판
용인8경이란
제1경: 성산일출
성산(해발 471.5m)은 용인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매년 용인시민들의 새해 첫날 일출맞이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처인구 삼가동,역북동과 기흥구 구성동에 걸쳐있으며 석성산, 구성산으로도 불린다.
육중한 산세와 자태로 신령스러움과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산으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발 아래 주변 봉우리들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제2경: 어비낙조
처인구 이동면 어비리 저수지에 여울진 석양의 낙조로 황홀한 감동을 자아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본래 어비리를 지나던 큰 내가 있었고 예전에 이를 장호천이라 했는데 저수지가 되어 마을 명칭대로
어비리가 되었다.
어비리 저수지는 붕어,잉어,가물치, 메기, 뱀장어 등이 풍성한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제3경: 곱든고개와 용담조망
칠봉산과 문수봉 사이의 곱든 고개(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황금들판
사이로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 같은 용담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전형적인 한국의 고향마을 풍경이다.
용인 백옥쌀이 생산되는 곡창지대이기도 하며 용담저수지는 저수지에 용이 승천하여 예전부터 이곳을
용못 또는 용담이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제4경: 광교산 설경
수지구 광교산(해발 582m)은 처인구 성산과 더불어 용인의 2대 명산이며, 광교산은 용인시와 수원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용인시 관내에는 수지 신봉동, 고기동, 동천동에 걸쳐있다.
광교산의 주봉인 시루봉이 용인시에 속해 있으며 시루봉 정상에서 보면 수지 일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광교산에 눈이 내려 나무에 수북이 쌓여있는 설경을 일컫는 ‘광교적설’은 이 산의 겨울 절경을 이르는 말로 내려온다.
죽전고개마루를 지나 대지고개에서 바라보는 광교산 설경은 설산(雪山)의 최고 진수라는 평판이다.
제5경:선유대사계
처인구 양지면 제일2리에 위치해 있으며 신선이 놀던 곳이라고 전하는 선유대는 조선 후기 풍류를 좋아하는 마을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정자와 연못 주변에서 아름다운 사계절의 자태를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곳에 정자를 세우고 시조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제6경: 조비산
용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조비산(해발 260m)을 꼽는다.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석천리, 장평리에
접해 있는 해발 295m의 높지 않은 돌산으로 새가 나는 형상이라 해서 조비(鳥飛)로 명명됐다고 한다.
황금들판 가운데 봉우리가 돌연히 우뚝 솟아 돌을 이고 있는 듯 특이한 형상을 지녔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그 모습의 아름다움과 멋이 다양한 곳이며. 조비산은 산에 얽힌 전설과 이야기도 많다. 다른 산들은 서울로 향하고 있는데 조비산은 머리를 남쪽으로 두고 있어 역적산이라고 했다는 속설도 있다.
제7경:비파담 만풍
처인구 모현면 갈천1리 파담마을 일대 가을 풍광을 꼽는다. 비파담 만풍은 조선 현종, 숙종 때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 선생이 파담마을에 낙향해 이 일대 빼어난 풍광에 반해
정자를 짓고 비파를 연주하며 풍류를 즐겼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울창한 숲과 백로들이 나는 모습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제8경:제8경 가실벚꽃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위치한 호암미술관 가는 길로 미술관 향하는 왕벚꽃나무 터널은 용인시민들이
사랑하는 산책로이며 세속을 떠나 천상의 세계로 비상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봄철 벚꽃 풍광 뿐 아니라
사철 각양각색 비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호수에 잠시 멈추어 형형색색 금붕어와 물오리들과도 벗할 수
있는 볼거리 많은 곳이며 국내 최대규모의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은 한국미술품 1천 2백여 점을 소장
(국보·보물 지정 문화재 100여점 포함)한 곳으로 전통한옥 형태 본관, 전통정원 희원, 부르델 정원들로
구성됐다
전망 쉼터에서 바라본 용담저수지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자리한 용담저수지는 야산 계곡을 막은 약 12만평의 큰 저수지다.
예전에 용담이라는 늪이 수몰되어 용담저수지, 용담지라고 불리며 저수지가 위치한 마을 이름을 따서
사암저수지, 사암지라고도 부른다. 대형잉어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며 유로 낚시터로 운영되고 있다
전망쉼터에서 다시 무명봉 두어개를 넘어 내려섰다 올라서니 칠봉산과 은이성지 갈림길이 나온다
저수지 너머로는 태봉산과 건지산(巾之山)이 보인다
건지산에는 조선(朝鮮)조에 봉화대(烽火臺)가 있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죽산현(竹山縣) 조에 보면
‘동으로는 충청도 충주 망이산에 응하고 서로는 용인현 보개산에 응한다(東應忠淸道忠州望夷山 西應龍仁縣寶蓋山)’라고 했다.
보개산은 지금은 아파트촌이 된 동백지구 동쪽에 있는 석성산이다.
조선조에는 나라의 비상연락망으로 5개의 봉수(烽燧: 봉화불) 라인이 있었다.
그 중 한 라인이 부산 동래 다대포(多大浦)에서 출발하여 남산(목멱산)에 이르는 제2라인이다.
용인을 거친 제2라인은 서울 청계산 아래 금토동 천림산(天臨山)을 통해 남산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어두니 고개(10:15)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와 해곡동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고개 300m 위에는 칠봉산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이곳 좌측 갈림길로 천주교
은이 성지가 있는 은이산 가는 길이며 이곳은 천주교 성지가 많이 보이는데
이것은 내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어두니의 유래는 은이산 아래 양지면 남곡리 어은(御隱)마을에서 전해졌는데
임금이 은둔(隱
어두니 고개 이정표
어두니 고개를 올라서자 넓은 공터에 휴게용 벤치가 있고 곧이어 칠봉산을 만난다
칠봉산(七峰山:446.8m:10:20)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과 양지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유래에 대한 기록은 없다
정상에는 용인시가 세운 친절한 이정표에는 정상 높이가 400m 라고 씌여 있는데
지도상에는 446.8m라 표기되어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나기에 상당히 혼란스럽다
또다른 이정표에는 천주교 성지 이정표(←은이성지↑배마실성지→미리내성지)가 있고
곱든고개에서 이곳까지 오는데는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코스 시그널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가까운 은이성지는 은이산 아래 골배마실에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옛날 이곳은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 뱀마을, 즉 뱀마실이라 부르는 동네에서
부르는 산골짜기 안쪽에 있다고 해서 골배마실이라 부르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어릴적 자랐던 곳이며 천주교 은이공소에서 프랑스 신부에게 세레를 받고
사목활동을 시작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앵자지맥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등로 아래로 내려서니 잔설이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등로 좌측의 은이산 정상에는 둥근공처럼 생긴 하얀 조형물 2개가 보인다
잠시후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 사면으로 내려선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좌측 사면길이 나오고 코팅지에 ‘CHECK POINT 53’라고
쓰여 있고 나무가지 사이로 하얀 설원이 보이는데 아마도 양지리조트 스키장인 모양이다
다시 로프를 잡고 능선으로 오르니 갈미봉 정상이 나온다
갈미봉(441m:10:45)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와 원삼면 좌향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용인시에서 설치한 이정표와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좌향리로 내려서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좌측 아래에는 양지리조트 스키장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어은산은 현 남쪽 7리에 있다."라 하여 그 관련 기록이 처음 보인다.
『여지도서』에는 "현 남쪽 7리에 있는데 주맥은 죽산의 구봉산(九峯山)이다."라고 하였다.
『양지군읍지』에는 군의 읍치 국면을 설명하면서 "정수산이 주맥이고 어초산이 안대가 되며
금박산은 동북쪽에 우뚝 솟아 있고 어은산은 서남쪽을 받쳐 주고 있다."라고 하여 풍수 사신사
(四神砂)의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산세가 어은산임을 명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해동지도』, 『여지도』에서부터 『대동여지도』에 이르기까지 어은산이란 명칭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러나 『양지현읍지』, 『1872년지방지도』에서는 그 명칭이 등장하지 않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갈미봉 · 어둔산 · 어둔봉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어 그 이름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임금이 은둔한 곳이란 의미의 어은이란 명칭과도 관련되듯 양지면 남곡리에는 천주교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최초로 공소를 열었다는 은이골(隱里)이 있고, 서남쪽에는 1995년 전남 신안에서
이장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족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운학동의 내어둔 · 외어둔 마을 등도 어은의 발음상 표기가 아닌가 한다.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2008.12, 국토지리정보원)
갈미봉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원삼면 좌향리로 향하는 등로가 보이는데
오늘 처음으로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5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좌향리는 황골[항곡]·좌찬[좌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14년 좌찬의 ‘좌(佐)’자와
항곡리의 ‘항(恒)’자를 따서 좌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황골은 이곳 형상이 “마을을 품은 학 같다”고 해서 학곡(鶴谷)으로 불리다 황골이 됐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황골에는 고려 때 대곡부곡(大谷部曲)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대곡의 우리말 표현인 한골,
즉 큰 고을의 변음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좌항2리에 속하는 좌찬[좌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일제식인 ‘좌전’이라 고쳤던 것을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일제식 지명 정비 때 좌찬으로 되돌렸으나 아직도 좌전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 역참제도에 따라 20~30리마다 역을 설치했는데, 이 마을 앞 대로가 바로
좌찬역(左贊驛)이 있던 곳이다. 따라서 옛 이름은 역촌(驛村)이었다.
갈미봉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데 낙엽밑에 등로가 얼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용실고개(10:50)
등로 아래로는 양지리조트 스키장이 보이고...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오늘 처음으로 산에서 등산객을 만난다
다시 조그만한 봉우리로 올라서는데 폐컨테이너 박스를 만난다
양지리조트 스키장 리프트(11:05)
양지스키장중에 이곳이 난이도가 가장 어려운 첼린지플러스 코스란다
젊은 친구들이 멋진 모습으로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데 참으로 부럽다
스키장에서 뿌린 인공 눈으로 인해 등로에는 엄청난 눈이 쌓여있다.
스키장 철조망을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스키장 옆에는 양지C.C가 눈에 쌓인채 휴장을 한 모양이다
1990년 중반 골프를 입문한 지 얼마 안되어 지인 한명이 이곳에 회원권을 가지고 있어서
참으로 많이도 다닌 골프장이다... 코스가 무난하여 대체적으로 스코어가 잘나온 골프장이었다
용실산(422m:11:10)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과 원삼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바로 아래 양지파인리조트가 있다
용실봉 능선 바로 아래에는 독조지맥 분기점이기도 하다.
독조지맥 분기점(11:12)
독조지맥(獨朝枝脈)개념도(박종률 선생 자료인용)
독조지맥(獨朝枝脈)은 ?
칠장산에서 김포 보구곳리로 이어지던 한남정맥은 용인시 문수봉에서 남으로 이어가고 ,
북쪽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 앵자지맥이 분기한다.
앵자지맥을 이어가면 용실봉에서 앵자지맥은 앵자봉으로 향하고,
또 하나의 산줄기가 분기하여 독조봉(423m), 건진산(410m), 소학산(309m), 봉의산(331m), 대덕산(315m), 마국산(445m),노성산(269m),돌박지산(166m), 철갑산(225m), 신통산(279m), 소무산(247m), 달걀봉( ), 중군이봉(223m) 을 거쳐 남한강과 청미천 두물머리 여주시 장안리에서 맥을 다하는 63.1km되는 산줄기를 독조지맥(獨朝枝脈) 이라 한다.
독조지맥 분기점 이정표
독조지맥은 청소년수련원 방향이고 앵자지맥은 무수단 방향이다
엄청 다니십니다...안 다닌데가 어디요?
방심하다가 큰 코 다친 능선
독조지맥 분기점에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서는데 눈도 거의 보이질 않고 낙엽만
무성한데 로프가 있긴해도 길이 좋아서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다가 낙엽 아래
빙판이 있는 걸 모르고 미끄러져 그냥 앞으로 꼬꾸라지는데 금새 무릎이 까지면서
피가 나오고 한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한참이나 있다가 정신을 차린다... 아이구 아퍼
얼음판에 한번 넘어지고 나니 엄청 아프다... 조심해서 걷는데 좌측으로 양지골프장이 보인다
등로 안부에 내려섰다가 다시 로프가 있는 오르막을 오르는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진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고하니 괜스레 맘이 급해진다
328.8봉(11:35)
못생긴 나무들이 산을 지킨다... 등로 좌측으론 못난이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다시 급경사로 내려선다
급경사를 내려오니 좌측 사면으로 뚜렸한 등로가 나있고 우측의 조그만 봉우리엔 길이 아예없다.
낙엽만 수북한 길이라 앵자지맥 산꾼들도 대체적으로 옆 사면길로 내려가는 모양이라 잊혀진 봉우리다
247.22봉(11:45)
정상에는 삼각점과 용인시에서 설치한 표지판이 있고 나뭇가지에 돌구님과 백두사랑산악회
이 대장의 시그널이 걸려있다... 이 대장! 산에 대한 열정은 참으로 대단하이
247.22봉 삼각점을 확인하고 등로를 내려와 편한 임도길에 합류한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또다시 로프가 있는 급경사를 만나고...
낙엽이 수북한 임도를 내려오니 좌측으로 양지리조트 스키장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이고
대다수 맥산꾼들이 좌측 편한길로 내려섰건만 고집을 피우며 우측 능선으로 원칙대로 간다
우측 능선으로 내려서자마자 넘어진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강한 태클을 건다
다올 선생의 시그널... 역쉬 고수님들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 존경합니다
좌측의 운동장을 지나도 잡목의 저항은 그칠줄 모르고... 얼굴이 할키고 베낭이 뜯기면서
내려오니 2차선 도로가 나오고 건너편엔 스키 렌탈점이 많이 보이는데 이곳이 배미실 고개이다
배미실고개(11:52)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와 제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양지파인리조트 정문이 있는 곳이다
주민들에 의하면 양지면 양지리 옛 국도와 남곡리 신 국도가 만나서 송문리로 빠지는 42번 국도 양편으로
산이 막혀 거대한 호수가 형성됐다. 이 마을은 배를 매던 곳에 해당했다는 설명이다.
즉 배를 매던 장소가 배매실이 됐다는 것인데, 좀 억지스러워 보인다.
또 큰물과 배 매는 곳이 있었다는 설명에서 변형된 행주국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개 ‘배’는 옛 지명에서 산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매실(마실)은 ‘마을’의 고어임을 생각해 본다면
‘산골마을’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골배마실은 깊은 산골마을에 해당한다.
마을 남동쪽으론 독조봉, 남서쪽엔 형제봉이 만나 깊은 협곡을 만들고 문수봉과 쌍령산 등줄로 이어지는
그 시작 지점에 골배마실이 있다. 계곡 길이만 근 십여 리. 가장 깊숙한 곳으로부터 배나무골, 긴골, 작은적골, 큰적골, 원수골, 오동나무골, 서낭골, 호다리골, 서화나무골, 홍두깨골 등 나뭇가지 뻗듯
계곡이 많고 빠짐없이 지명을 달고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흔적이
남아있고 그 순교정신이 서려있는 곳이 배매실이다.
점심시간이 다 되었고 배도 고파온다... 오늘은 식당이 많은 곳을 지나가기에 점심도 안 싸왔다
배미실 고개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니 양지리조트 정문이 나오고 바로 옆에는 순대국집이 있다
순대국집에서의 점심시간(11:55 ~ 12:25)
점심으로 순대국 한그릇을 시키고 베낭에 가져 다니던 휴대용 소주 하나와 순대국으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배미실 고개로 향한다
다시 배미실 고개(12:27)
배미실 고개로 되돌아와서 대부분의 대부분의 산꾼들은 편한 도로를 따라 갔지만
난 가급적 원칙대로 가고 싶어서 편한 도로를 버리고 힘든 길을 걷기로 한다
넓은 임도를 들어서니 생각보다 길은 좋고 쇠사슬로 길을 막고있는데 그런다고 안 가나...
콘크리트 블럭도 주소를 받았네...
배미실고개에서 3분정도 넓은 임도를 따라오다 절개지를 만나고 이곳에서 넓은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진다
넓은 공터에서 저멀리 능선으로 가야할 NO 53 송전탑을 포스트로 잡고 걸어간다
우측 능선으로 접어드니 공장들이 즐비하고 등로에는 전봇대에 쓰이는 부품들이 버려져 있다
길은 아예 보이질 않고 잡목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내려서니 컨테이너가 있는 도로가 나온다
이곳에서는 절개지라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어서 우측으로 꺽어져 비포장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도로를 따라가니 우측에 (주) 삼우 F&G라는 물류창고가 보인다
물류창고를 벗어나니 제일사거리가 나오는데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능선으로 올라야 한다
제일사거리(12:50)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서 제일리 지나는 사거리로 양지에서 진천으로 이어지는
17번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예전에 자치기하러 많이 다닐 때 태영C.C와 백암비스타C.C에서
연부킹을 해서 월례회 다닐때 참으로 많이 다녔던 사거리였다
양지면 중부에 위치한 제일리는 예전에 여주 영릉 참배길에 나선 어가가 지날 때 비가 오다가 이곳에 이르자 날이 활짝 개었다고 하여 개일 ‘제(霽)’자와 날 ‘일(日)’자를 붙여 제일리(霽日里)라 하였다고 전한다.
기록에 의하면 150여 년 전까지 이곳에 개천장(介川場)이 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는 음을 따고,
‘천’은 내(나리)에서 온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산매동은 산마골·산맷골·산막동 등으로 불리는데 풍수지리상 마을 뒷산의 형국이 산막형이라 산막동이라 한 것을 후일 산매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공세동은 세금을 거두어 나라에 바치던 창고가 있었으므로 공세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제일사거리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고 잡풀만 무성하다
등로에 올라서니 낙엽만 무성하고 조금 직진으로 진행하니 최근에 지나갔는지 백두사랑
이대장의 시그널이 보인다.
조금을 더 직진으로 진행하니 좌측으론 묘지가 보이고 조림지가 나타난다
낙엽만 수북히 쌓여있는 등로는 산꾼들의 발길이라곤 찿아보기조차 힘이든다
우측의 희미한 길을 버리고 직진으로 진행하니 이 대장의 시그널이 보인다
잠시후에 절개지를 만나고 절개지를 건너 약간 우측으로 꺽어서 걸으니...
커다란 물류센터 건물이 길을 가로막아 놓고 철조망을 쳐놨다
철조망을 따라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양지바른 곳에 묘지 2기를 만난 다음 도로로 내려서니...좌측으로는 한국가스공사 가압장이 있다
마수고개(13:15)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서 제일리 사이로 있는 고개로 용인과 이천을 연결하는
42번 4차선의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양지천이 발원하는 분수계이기도 하다
용인시의 자료를 찾아봐도 지명유래는 알 수가 없는데 선답자이신 파란문님의 산행기를
읽어보니 ‘말도 고개를 넘기 힘들어서 사람이 말을타지 않고 내려서 손으로 끌고가는 고개’라
해서 “馬手峴”이라 했을 것이라 했는데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42번 국도가 지나는 마수고개에서 차량의 흐름을 확인하고 무단횡단하니 총신대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또한번 앵자지맥길이 끊긴다... 원래 지맥길은 좌측 공장지대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를
건너 NO53 송전탑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데 공장들과 고속도로에 막혀 우측 도로로 향한다
담안빌라 버스 정류장(13:25)
도로를 따라서 계속 걸어가니 담안빌라 버스 정류장과 삼성전원마을 지나 영동고속도로가 보인다
영동고속도로 굴다리(13:30)
마수고개에서 15분간을 도로를 따라서 걸어오니 영동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면서 능선으로 오른다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좌측 임도로 꺽어져야 하는데 우측에 왕릉처럼 꾸며진 나주 정씨 재실이 있어 가본다
羅州丁氏 재실
다시 등로로 복귀하여 앵자지맥 포스트로 잡은 NO53 송전탑을 향해간다
임도로 들어서서 우측으로 오르니 묘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오고...
잘 가꿔진 묘지에는 가묘(假墓)인지 상석엔 아무런 기록이 없다
묘지에서 바라본 영동고속도로
등로를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에서 바라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모습
NO 53 송전탑(13:45)
등로에 오르면서 NO 53 송전탑을 만나는데 이곳은 앵자지맥의 중요한 포인트다
마수고개에서 공장지대와 영동고속도로 때문에 끊어졌던 앵자지맥을 이곳에서 원대복귀한다
삼각점봉(13:52)
등로 가운데 삼각점(△안성 405 / 1983재설)이 있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NO 41송전탑(13:53)
NO41 송전탑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져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예전에 가끔 정맥길을 같이 다녔던 자연과 송정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잘 계시죠?
편안 등로를 따라 걷는다 좌측 능선 아래로는 아시아나 C.C로 가는 도로가 보인다.
등로 옆에는 이동식 화장실이 쓰러져 있다... 이런데 웬 화장실이 필요해...
산 전체가 거대한 화장실인데 (범여의 생각中에서)
NO42 송전탑(14:05)
또다시 누워있는 이동식 화장실을 지나고...
로프가 있는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능선 아래로 아시아나 골프장이 보인다
예전에 두어번 가봤던 곳인데 거리가 짧은 대신에 그린은 상당히 까다로운 곳으로 기억되며
비거리가 많이나는 골퍼들에겐 재미없는 곳이기도 하며 홀인원이 많이 나오는 골프장이기도 하다
NO 43송전탑(14:18)
420.1봉(14:20)
420.1봉 삼각점(이천 465 / 1989재설)
우측 능선 아래로 내려서니 음지라 그런지 발목이 찰 정도로 눈이 쌓여있다
매봉재(14:30)
매봉재는 금박산 정상에서 서쪽에 위치한 고개로 넓은 공터에에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쌓인 눈으로 인하여 삼각점은 찾을 길이 없어 포기하고 그냥 지맥길을 이어간다
매봉재를 지나 잠깐 오르막을 올랐다가 내려선 다음 오르막을 오른다
무명봉에서 또다시 내려서니 휴게용 벤치 2개가 보이고 잠시후 내려서니 정수리 고개가 나온다
정수리 고개(14:35)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정수리에서 광주시 도척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우측으로는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으로 내려가는 길은 데크목 계단으로 잘 정돈된 등로가 보이나
광주시 도척면 방향으로는 등로가 거의 없는 편이다
지도에는 정수리 고개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정수리고개라 많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정수리고개는 이곳이 아닌 대대리 한터마을에서 광주시 도척면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그 고개의 원래 이름이 기남이 고개였는데 용인에 있는 고개가운데 사람이름이 붙은 고개로 유일한 경우이다. 1960년에 기남이고개에 기념비를 세웠으니 이때부터 따진다면 50년으로 땅이름 가운데는 가장 젊은 이름이 될 것이다.
기남이 고개는 정수리에 살았던 박기남이라는 분의 선행을 기려 마을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가난속에서 고개를 넘어 양지초등학교를 다녔던 박기남이 후에 자수성가하여 마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고리채가 악명을 떨치던 시절, 마을기금을 쌀로 기부하여 저리(低利)로 늘린 결과 많은 돈이 되자
중장비를 동원하여 양지로 이어지는 길을 닦았다. 이때 이후에야 비로소 양지로 다닐 수 있는 큰 길이
열리게 되었으니 정수리마을 사람들이 고마움을 고개이름에 붙여 나타냈던 것이다.
정수리 고개 안부에서 다시 고도를 높이 급경사로 올라선다
금박산 갈림길(14:43)
금박산(金箔山:418m)은 용인시 청인군 양지면 추계리와 식금리에 접해 있는 산으로
오봉산,긴박산으로 불리는 산으로 양지면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일본이 한국을 합방한 후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인 진산의 혈을 끊기 위해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이 나왔던 곳이라고도 한다
우측 등로의 나뭇가지 사이로 금박산이 보이건만 똑닥이 카메라로는 잘 잡히지 않는다
425봉(14:45)
425봉으로 오르니 누군가가 이곳에다 금박산이라고 붙혀 놨으나 이곳은 금박산이 아니다
누군가가 금박산을 가지 못한 아쉬움에 붙혀놨는지는 모르겠으나 惑
425봉에서 조금 더 진행하니 엄청나게 큰 군부대가 앵자지맥 능선을 점령하고 있고
군초소 전망대가 나오고 그 아래 군인들이 상주하는 초소가 보이는데 이곳부터는
바짝 긴장을 한다... 동료산꾼 수헌 아우님도 이 능선에서 쫒겨놨고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대체적으로 이 능선을 걷지 못하고 다른쪽으로 쫓겨 놨다기에...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바로앞 초소에서 군인 두어명이 보이긴 하나 특별한 제지는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가급적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쓰며 허리를 낮추고 낮은 자세로
급경사의 철조망을 따라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데 아직까지는 제대로 가고 있다
부대 규모는 엄청나게 크다... 가급적이면 카메라는 부대쪽 사진을 전혀 찍지 않는다
철조망을 따라서 계속 걸어가는데 한참을 걸어가니 내무반이 바짝 붙은 철조망을 지난다
또다른 선답자들이 내무반에 있는 군인들에게 걸려서 계곡으로 쫓겨놨다는 산행기도
있었기에 이곳에서도 바짝 긴장을 하고 걷는데 날씨가 추운 탓인지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곳곳에 높은 망루가 설치되어 있고, 감시카메라가 엄청 많이 보이는데 상당히 신경이 쓰인다
마지막 철조망(15:35)
행여나 군인들에게 등로밖으로 쫓겨날까봐 바짝 긴장을 하면서 숨도 한번 안쉬고
엄청난 속도로 왔는데도 불구하고 50분이란 시간이 걸렸으니 얼마나 큰 부대인가...
지맥 갈림길의 마지막 철조망에 도착하니 좌측으로 블럭으로 싼 군부대 시설물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면서 드디어 긴장이
풀리면서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베낭을 벗어놓고 물한모금을 마신다
좌측으로 나오자 곧바로 넓은 임도가 나오지만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내려서는데 산꾼들이 잘 다니지 않는지 길은 거의 보이질 않고 잡목만 무성하다
조금을 더 진행하니 좌측으로 태화산과 미역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후 간벌지역이 나오고 방도리고개가 보이고 도척면 소재지가 보인다
도척면의 面名은 현 도척면 방도리(芳都里)를 예로부터 내도척(內都尺)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내(內)자를 제외한 도척(都尺)만을 따서 도척면(都尺面)이라고 190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이름 지어진 것이라 한다.
百濟 始祖 온조왕(溫祚王)이 漢江유역에 도읍(都邑)을 정하려고 할 때, 수없이 이곳저곳을
탐사하면서, 방도리 일대를 방문하여 대화산과 그 넘어 오포면, 용인시 모현면에 걸쳐있는
산들을 중심으로 성(城)을 쌓기 위해 수차례 답사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읍(都邑)을 정할까 말까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느라고 재고 또 재고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방도리를 “되재”라는 자연부락명으로 부르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즉 都邑을 정하기 위해서 재고 또 재고 하였다하여, 도읍 도(都)자와 자 척(尺)자를 써서 도척(都尺)
이라는 지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확실한 문헌(文獻)상의 기록이 없으므로
분명한 것은 못되나,
重訂南漢誌(朝鮮憲宗14년간행)에도 이러한 說話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傳說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으며, 지역 내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거의 定說로 볼 수 있겠다.
간벌한 지역을 따라서 반원을 그리며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잡목의 저항이 상당히 심하다잡목의 저항을 받으며 배수로를 타고 내려오니 눈덮인 방도리고개가 나타난다
방도리(芳都里)고개(15:45)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방도리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가며 우측으론
부대 정문이 있고 이천시 마장면의 지역이다.좌측으로는 태화산과 미역산이 보이며
도로를 따라 가면 오늘의 날머리인 성황당 고개가 나오는 길이다
방도리는 조선조 말기까지 방등리(芳燈里)와 내도척리(內都尺里)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행정구역을 축소 개편하면서 방등의 '방'(芳)과 내도척의 '도'(都)를 따서
'방도리'라고 이름 지었다
방도리 고개에서 우측 군부대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 임도로 올라서니 묘지가 나오고...
넓은 임도를 따라 걸어간다
외롭게 현오님의 시그널만 덩그러니 산꾼을 반기고...
낮으막한 능선에서 좌측으로 꺽어지니...
고약한 山主가 쇠파이프로 영역 표시를 해놨다
아마 이곳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조만간 지맥길이 없어질 듯 싶다
계속되는 쇠파이프를 따라간다
승마체험장 갈림길(15:55)
y 자형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승마장에는 젊은 여인들이 승마연습을 하고 있다... 자고로 요즘은 여자들만 살맛나는 세상이여!
파이프를 막아놓은 능선으로 오르니...
이제 오늘 산행의 끝지점인 날머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저 멀리 하얀건물이 K.SWISS 화승물류센터인데 저 아래가 성황당 고개이다
좌측 능선 아래로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좌측으로 성황당고개가 보이고 자작나무 군락지 위로 올라서니...
세갈래길 갈림길(16:00)
능선에 올라서니 세갈래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길이 참으로 난해하다
우선 선답자들이 이곳으로 오는 산꾼들이 많지 않다... 대체적으로 망가진
마루금이라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방도리고개에서 도로를 타고 성황당으로
가는 산꾼들이 대부분이다... 하기에 산행기에 잘 기록도 아니되고 있다
우선 맨 우측은 까치산 가는 길이라 일단 아니고... 가운데는 아예 길이없다.
맨 좌측 나무에 자연과 송정님의 시그널이 있어 그리로 내려서는데 확신이 서질 않는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넓은 임도가 있어서 그리로 내려서니 택지개발
하는 곳이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서니 실개천이 나온다... 이곳이 아닌거 아녀
도로를 따라 가다가 좌측 임도를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넓은 임도를 따라 올라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우측에
‘慶州李公과 孺人 慶州金氏’ 묘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또다시 좌측으로 꺽어지니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으로 올라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우측으로 꺽어져 조금가니 굴바위산이 나온다
굴바위산(236m:16:20)
무명봉을 지나니 ‘서래야 박건석님’께서 굴바위산이라는 코팅지를 붙혀놨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서너개가 보이니까 앵자지맥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심하게 꺽어져서 내려서 음지에다 낙엽위에 눈이쌓여 상당히 미끄럽다
능선 우측으로는 맥길 능선을 깍아서 지은 공장들이 즐비하다
잠실 가설재 울타리 뒤로 돌아나와 내려서니 ‘방도1리 되재마을’이라는
표시석이 서있는 성황당고개에 도착한다
성황당고개(16:40)
경기도 광주 도척면과 이천시 마장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의 삼거리로 방도1리 버스 정류장과
마을 표시석이 서 있는 삼거리이고 버스 정류장 뒤에는 K.SWISS 화승 물류센터가 있고
주위는 공장지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히 지저분하다
곤지암에서 도척면을 거쳐서 이천시 마장면을 잇는 329번 지방도가 지나가며 예전에
성황당이 있어서 성황당고개라 부르는듯 하며 이 지역 사람들은 서낭고개 또는 붉은고개라 부른다
성황당 고개에 있는 버스 정류장
이곳에는 씻을때가 없어서 버스 정류장 뒷쪽에 가서 수통에 남은 물에다가 타올에 적셔 몸통을
대충 닦고 웃옷만 갈아 입었는데도 땀냄새는 거의 나질 않는다... 엄청나게 배가 고픈데 베낭에
남은거라곤 밀감 2개와 캔맥주 하나만 달랑... 버스를 기다리면서 캔맥주를 마신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 표시판에는 버스 노선이 8개가 되건만 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는다
20분을 기다린 끝에 39-6번 버스를 타고 20분만에 곤지암 터미널에 도착한다
오늘의 산행기록
곤지암 터미널(17:20)
곤지암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강변역으로 가는 1113-3버스가 도착하여 버스에 올라 잠에 빠진다
강변역에서 다시 지하철로 환승하여 도곡역에 내려 집으로 오는데 도척에서 집에까지 교통비가
1.600원... 참으로 착한 가격이다...M.B 대통령 다른건 몰라도 교통 환승제도는 참 잘했소
첫댓글 독립산행가 고생 하였습니다
대단하시고요 ..늘감사 합니다 좋은자료도 감사 하고요
올핸 텐트지고 도망갈 땐 좀 낑가주셔요
산행후기 읽을때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올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화이팅입니다^^
할말을 잊게하는포스~~^♡^
정말 대단하다는말밖에 저도 글쓴거 좋아라하지만 깨갱입니다
읽어내려가는것조차도 힘든데 산행을하시면서 ~꼼꼼이~기록도하시고~멋찌십니다~~존경스럽네요^♡^
좋게 봐주시니 고맙구료...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