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비싼 돈주고 뉴질랜드에서 녹용사오셨쎄요?
“지난 겨울에 뉴질랜드가서 녹용을 사온 게 있는데 이걸 넣고 보약을 달여줄 수 있나요?”라는 문의를 자주 받습니다.
북반구가 겨울철일 때, 남반구는 여름철이기 때문에 주로 겨울에 뉴질랜드로 여행을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뉴질랜드로 Package 여행을 가시면 사슴농장을 들르는 코스가 있다고 합니다. 가이드가 커미션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모시고 가는 곳인데, 실제로 그 판매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매우 짭짤한 수익을 얻고 있나 봅니다. 소문에는 뉴질랜드에서 녹용을 한국과 전 세계로 수출하는 한국인이 있는데 전용기를 사려다가 승인이 안 나서 못 샀다느니, 하와이에 땅이 얼마나 많다느니 하는 소문이 있을 정도입니다.
신나는 뉴질랜드 여행
뉴질랜드의 파란 하늘 아래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푸른 잔디가 펼쳐진 초원에서 뛰어노는 사슴들의 갓 싱싱하게 뻗어 나온 녹용을 바라보기만 해도 건강에 좋음직 합니다. 한편으로는 사슴들의 슬픈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측은한 생각도 들지만, 녹용이 몸에 좋다는 것은 세 살 때부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인데다가, 이번 기회에 남편 또는 부모님 몸보신을 시켜드리고 싶은 효심과 사랑 내지는,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수험생 자녀가 생각나거나, 또는 툭하면 감기에 걸리고 코피를 흘리는 막내아들이 생각이 나서, 이번 기회에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자식, 좋은 부모 역할을 해보겠다는 심산으로, 머릿속 계산기에는 백화점에서 옷 한번 안사면 마련되는 ‘25만원’이라는 숫자만 떠올리면서 손이 지갑으로 갑니다. 그 순간, 다시 ‘나는 왠만해서는 장삿꾼에 안속아 넘어가는 신중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으로 신중한 판단이었다는 자기합리화가 완성될 때까지 3분간 망설이고 냉큼 사서, 같이 여행간 사람 대부분이 구매한 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안심을 하면서 오십니다.
으~~ 짧게 쓰기로 해놓고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뉴질랜드 녹용은 실제로 한의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95%정도는 될 겁니다) 녹용입니다. 원용이라고 불리는 러시아산 녹용이 가장 좋다고는 하는데 가짜가 많아서 한의사들은 효과면에서나 가격면에서나 가장 효율적인 뉴질랜드 녹용을 주로 씁니다.
비싼 돈 들여서 신선한 피까지 있는 채로 사오시는 분들
뉴질랜드에서 개인적으로 사 오시는 경우의 문제점은 일단 녹용을 자른 그대로 가져오신다는 점입니다. 한의사들이 쓰는 녹용은 일단 사슴뿔을 자른 다음에 뿔의 겉에 붙은 털을 불로 태웁니다. 그 후 술에 담궈서 녹용안에 들어있는 사슴피를 빼낸 뒤에 잘라서 말린 뒤에 운반합니다. 따라서 사슴피는 섞여있지 않으며, 건조된 상태라서 부패의 위험도 적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사 오시는 녹용을 보면 건조된 것도 있지만, 일부 더 비싸게 사오시는 분들은 녹용을 자르자마자 사슴피가 있는 그대로 드라이아이스가 있는 통에 담아서 얼려서 가져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게 가져오시면 가져오시는 동안 충분히 냉각상태가 유지되지 않으면 사슴피가 부패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한국에 가져오셔서 곧바로 안 달여 드시고 아끼시다가 6개월 정도가 지나서 더운 여름이 되면 기운이 없음을 느끼고 꺼내서 사용하시게 되는데 이때에는 이미 냉동실에 넣어두셨라도 부패되어 있거나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사슴피가 얼어있는데 괜찮다고 하실지 몰라도 냉동실에서 6개월 동안 넣어두셨던 고기는 잘 안 드시듯이 사슴피도 똑같이 생각하시면 되십니다.
사슴피는 드시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피째로 사 오시는 분들은 사슴피까지 있으면 더욱 효과가 좋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원래 사슴피는 약으로 쓰지도 않을뿐더러, 먹는게 아닙니다. 다행히 한약을 달일 때 끓이면 사슴피 속에 있는 기생충은 다 죽기는 합니다만, 사슴피 자체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되므로 그걸 굳이 보존해서 가져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슴피 안에 있는 기생충은 사람한테는 원래 없는 기생충이기 때문에 드문 질환인 만큼 약도 없을뿐더러, 그 기생충은 사람몸속에 들어오면 담낭 안에 알을 낳습니다. 나중에는 그 기생충이 담낭 안에 바글바글하게 되는데, 그것을 치료하는 방법은 따로 약이 없고, 담관을 따라 집게가 달린 튜브를 넣어서 한 마리씩 집어서 꺼내야 한다고 합니다. 한의대 다닐 때 배운 사실입니다. 그걸 배운지 7~8년이 지난 지금에는 다른 치료방법이 생겼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가르친 교수는 드문 질환인 만큼 따로 치료약이 개발되지는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2FFB1F4C3AE1911F)
하지면 여전히 연세드신 분들 중에는 위에 포스터와 같은 상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재작년 설날 큰집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따라서 모르는 집에 인사드리러 갔는데 거기 모여계신 할아버지들이 단체로 사슴농장에 가셔서 사슴피를 드시고 오셨다면서 몸에 어떻게 좋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시면 안 좋을 수 있으니 드시지 않는게 좋다고 했더니,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면서 녹용보다 더 좋은게 사슴피라고 하십니다. 제가 잘 모르는 어르신들인데다가 설득이 안 되는 분들이라서 잠자코 있었지만, 여기 연구원에 계신 분들 중에는 국내 사슴농장에서 녹용을 사서 오시고 사슴피를 서비스로 드시는 분들이 없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너무 비싸게 사오십니다
녹용의 피를 제거하고 나서 잘라서 말린 채로 사 오시는 분들 또한 비싸게 사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걸 사 오셔서 원래 녹용이 잘 맞는 분들은 그대로 달여서 드시거나 다른 약재와 함께 달여서 드시기도 하십니다만, 어떤 농도로 하는 것이 적당한지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고, 몇 번 재탕해서 드시기 때문에 농도가 처음에는 가장 진하게 드셨다가, 점점 연하게 드시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게다가 끓인 다음에 냉장고에 두고 아껴 드시느라 나중에는 쉰 상태로 드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계산해보면 더 비쌉니다
결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녹용을 한의원에 갖다 주고 보약을 짓게 되시는데, 한의원에서는 녹용을 넣어서 달일 때는 좀 더 오래 드실 수 있도록, 팩수를 더 뽑아주기 위해서 다른 한약재들도 원래 양보다 더 많이 넣어서 팩수를 더 많이 늘려 줍니다. 그래서 다른 한약재 값이 추가되는 부분이 많아서 나중에 계산해보면 오히려 한의원에 있는 뉴질랜드산 녹용을 쓰는 것이 더 쌉니다. (물론 베짱있게 비싸게 받는 한의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의원에서는 녹용을 몇 십킬로씩 대량으로 구매해서 별도의 가이드 커미션으로 나가는 돈이 안 드는 데다가, 팔리는 대로 새로 구입하기 때문에 자주 순환이 되어 계속 새로운 녹용들이 들어오고, 품질이 나쁜 것들이 섞여있으면 반품을 시키기 때문에 좋은 것들만 쓰게 됩니다. 게다가 보관도 건조하고 찬 곳에서 하므로 더 잘 보존된 녹용을 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도 결국 길어져버렸는데, 결론은 녹용을 사오실 때 굳이 피가 있어서 신선해보이는 것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사슴피는 드시지 않으시는게 안전하다는 것과, 괜히 비싼 돈 들여서 녹용을 사서 한의원에 가시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국내에서 값싸게 녹용을 구하실 수 있으시다면 사셔도 좋습니다만, 국내 사슴농장에서는 약재로 쓰지 않는 효과없는 사슴뿔을 파는 곳도 있으니 속아서 사시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녹용에 대해서 잘 아신다는 분들도 분골, 상대, 중대, 하대 이런 것에 따른 가격순서만 아시거나 러시아산 녹용이 비싸다는 것 정도만 아시지, 사슴의 품종과 뿔을 자른 시기와 뿔의 부위에 따라 세밀하게 변하는 가격의 차이나 효능의 차이까지는 모르십니다. 따라서 녹용을 단순히 고가 약재로만 보지 마시고, 전문가들이 제일 필요한 종류의 녹용을 골라서 쓸 수 있도록 한의사에게 맡기시는 것이 좋습니다.
김진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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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맥만 가지고 병을 맞추는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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