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조망 좋은“雲吉山”
Ⅰ부 --- 등산
-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번지
- 높이 : 61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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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09. 12.31. 09:00 ~
2. 장소 : 雲吉山
3. 참석인원 : 27명(새내기 1명)
4. 등산코스 : 송촌리(연세중학교입구) ⇒ 수종사 ⇒ 정상 ⇒ 운길샘 ⇒ 일주문
⇒ 조안보건지소
★ 소요제원 ★
송촌리 → 3.0km ← 운길산 정상 → 2.8km ← 조안보건지소
(1시간30분) (1시간)
5. 다녀온길 : 태백가든 ↔ 46 경춘국도 ↔ 45번국도(양수리 방향)
↔ 송촌리 ↔ 연세중학교입구 ↔ 조안보건지소
6. 오늘활동 상황
○ 09:00 --- 태백가든 출발(북한강휴게소 경유)
○ 10:23 --- 연세중학교 입구 도착
○ 10:30 --- 단체기념사진 촬영 및 등산일정 안내
○ 10:35 --- 들머리 진입
○ 10:41 --- 운길산 2.1km, 수종사 1.1km 지점
○ 10:57 --- 운길산 1.7km, 수종사 0.6km 지점
○ 11:06 --- 운길산 1.4km, 수종사 0.4km 지점
○ 11:17 --- 수종사
○ 11:50 --- 솔봉삼거리(분기점)솔봉0.6km지점, 쉼터
○ 11:40 --- 절정상(해발 522m)
○ 11:48 --- 운길산 정상 0.35km, 수종사 0.45km 지점
○ 11:54 --- 헬기장
○ 12:03 --- 운길산 정상
○ 12:40 --- 점심식사(헬기장)
○ 13:13 --- 점심식사후 출발
○ 13:42 --- 수종사 샘터
○ 13:52 --- 일주문
○ 14:29 --- 운길산 정상 2.8km, 운길산역 0.9km 지점
○ 14:30 --- 조안보건지소
○ 14:50 --- 다산유적지(실학박물관) 도착
○ 15:30 --- 다산유적지 출발(농산물센터 경유)
○ 16:50 --- 새명동훼미리 뷔페 도착
7. 운길산 살펴보기
ꡐ 개관
- 운길산(610m)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40km,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에서 서북쪽 대성리 방향으로 4km 거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산 인근 까지 운길산역과 시내버스가 연결돼 교통이 편리하다.
산세가 부드럽고 등산로가 순탄하여 가족 산행이나 가벼운 주말산행에 적합한 곳이다.
-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 북서쪽에 위치한 운길산은
주변에 다산유적지· 팔당호· 남양주종합영화촬영소· 금남유원지. 두물머리 등의 관광지가 있고 산중턱에 수종사(水鐘寺)가 있어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특히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의 모습은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이다. 서쪽의 적갑산(561m)과 예봉산(683m)을 함께 종주할 때 기준점이 되는 산이기도 하다.
- 특히, 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에는 지방문화재 제22호인 팔각 5층석탑과 5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무엇보다도 남한강과 북한강을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뛰어나다. 서거정, 초의선사, 정약용, 송인, 이이 등이 머물던 곳으로 물맛이 좋아 차와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 정상에서 하산 길은 3곳인데 올라온 길을 되돌아 송촌리로 원점회귀 하거나 수종사를 지나 조안보건지소로 내려오면 된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타면서 463m고지 - 새재고개 - 고대농장방향으로 내려가거나 적갑산 - 예봉산을 거쳐 팔당유원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종주코스(6시간)를 밟을 수도 있다.
8. 등산기행
○ 산행안내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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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지도
- 운길산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높이 610.2m의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 북서쪽 지점에 솟아 있다. 1890년(고종 27년)에 지은 수종사중수기에는 운길로 나오고, 그 보다 오래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곡산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골짜기 이름을 조곡천이다라는 기록이 있었고 또 다른 기록에는 1890년(고종 27년)에 지은 수종사중수기에 비로소 운길산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지나가던 구름이 걸려 머물다 가는 산이라 하여 운길산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 운길산은 2009. 8. 17 산행일정에 잡혀있었던 산이다. 한여름 삼복중의 산행이기 때문에 장거리나 난이도가 높은 산을 피해 서울근교 가까운 산을 부담 없이 가볍게 다녀올 요량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당일 비가 많이 내린 관계로 산행 일정이 취소되어 아쉬움을 남겼던 산이다.
- 산행 일정이 취소된 후 그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우리 카페 산행후기방을 이용하여 “운길산 다음에 모시겠습니다.라는 제하에 운길산등산지도와 운길산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탑재한바 있다.
- 연말 산행일정에 잡혀있던 2009년도 송년회 및 2010년 신년 해맞이 산행(울산바위)이 부득이한 사정에 의하여 변경되면서 운길산이 또 다시 거론되었다. 한해를 갈무리하는 산행으로서 운길산을 가볍게 다녀온 다음 송년의 밤 행사로 무리 없이 이어질 수 있었고, 지난여름 산행 일정이 취소됐던 아쉬움도 있었기에 운길산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듯싶다.
- 운길산등산지도와 그동안 입수한 소요제원을 검토한바 다소 산행코스가 짧은 듯싶어 운길산 정상에서 새재고개(정상에서 3.3km)를 거쳐 갑산이나 적갑산 - 예봉산 방향으로 코스 연장을 검토해 보았으나 소요시간면에서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어 당초 계획했던 코스대로 여유 있게 운영하기로 하였다.
○ 산행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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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기념사진
- 오늘 아침기온이 금년 들어 가장 추웠다. 춘천이 영하 16℃로서 전국에서 가장 추운날씨를 기록하였다. 남양주시 일원의 날씨를 확인해 본 결과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4℃, 낮 최고기온이 영하 7℃로 예보되었다. 금년 1월8일 백덕산을 시작으로 오늘 운길산이 제48회 등정으로서 기축년 한 해를 갈무리하는 산행인 점에서 의미가 깊었고 마지막 하루를 두물머리 조망이 좋기로 소문난 운길산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이른 아침 우리 카페에 들려 산행지미리보기방과 목요산행신청방을 확인해 본 결과 산행지미리보기방에 151명이 다녀갔고, 목요산행신청방에 535명이 다녀가면서 45명이신청하거나 댓글을남긴 것이 확인되었다. 이정도의 반응이라면 버스가 차고 넘칠 것으로 판단하였는데 갑작스런 한파 때문에 빈자리가 많이 남아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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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 주차장 이정표 (가을날 고향 생각)
- 태백가든을 출발한 버스는 46번국도를 타고가다 대성리에서 양수리방향으로 45번국도를 갈아타며 1시간20여분을 넘기면서 조안면 송촌리 연세중학교입구에 도착하였다. 정문 앞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등산로 안내판이 설치되어있지 않았고 다만 운길산정상 3.0km를 알리는 이정표와함께 “가을날 고향 생각”이란 제하의 정약용님의 시가 쓰여진 목판이 걸려있어 눈길을 끌었다. 첫 걸음부터 정다산마을 다운 인상을 짙게 풍겼다. 산행안내 준비를 하면서 올라가는 길 3.4km, 내려오는 길 3.3km로 준비를 하고 안내하였었는데 현장에 와 보니 올라가는 길 3km, 내려오는 길 2.8k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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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500년된 은행나무
- 몇 일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탐방로를 덮고 있었다. 아이젠을 착용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춘천 근교보다는 더 많이 내린 듯싶었다. 수도권의 주말 가족 산행지로 소문난 코스답게 탐방로가 잘 정비되었고 요소요소마다 이정표가 잘 세워져 길 안내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어 일정운영에 어려움이 없었다.
들머리에 들어선지 약40여분을 넘기면서 수종사 경내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82. 10. 15 보호수(경기남양주 제17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 수령500여년에 수고 25m, 나무둘레 6.5m를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일행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금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모진칼바람을 맞고 있지만 가을철 노란 단풍 옷을 입혀놓는다면 한 인물 하리라 여겨졌다. 여기서 잠시 은행나무에 대하여 살펴보고 이해인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 은행나무 ★
은행나무(銀杏 - Ginkgo biloba)는 행자목이라고도 하며, 겉씨식물에
하는 낙엽교목으로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연관종이 없는 특별한 종으로 은행나무문에 속하는 유일한 종이다.
중생대에 번성한 식물군으로서 살아있는 화석의 예로 종종 언급된다.
야생 상태의 은행나무는 멸종된 것으로 몇 백년간 알려져 왔으나 중국 저장성에서 일부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인간의 활동이 있던 곳이라 자연 상태의 나무인지는 분명치 않다.
은행나무는 오래 살며 수형이 크고 깨끗하다. 그리고 가을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거의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서 정자목 또는 풍치수, 가로수로도 많이 심고 있다. 또,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 화재에 강하므로 방화수로도 이용된다. 목재는 황백색이며 조각재·가구재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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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잎 - 이해인 ♡
자꾸 엄마를 부르고 싶은
하늘같은 가을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샘물 같은 가을
창가에 떨어진
노오란 은행잎 하나
책갈피에 끼우면
배시시 웃는 얼굴
함께 홍시 먹던
어릴 적 친구들도
잎 속에 살아 오네
모두를 사랑하는
모두를 용서하는
은행잎 가을
책갈피에 숨어서
내 마음도 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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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사(水鍾寺) 대웅보전
- 수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한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광주산맥이 남서로 내려오면서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운길산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윽함이 감도는 명산으로 북한강의 물길이 장관이다.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세조가 이 절에 친히 행차하여 땅을 파서 샘을 찾고, 종을 발견했다고 해서 수종사라 하였다는 아래와 같은 전절이 전해진다. 1939년 석조 부도를 중수하면서 1439년(세종 21)에 조성된 부도로 확인되어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종사에는 삼정헌이 두물머리를 바라보는 절의 절개지쪽에 우뚝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시(詩)·선(禪)·다(茶)가 있는 수종사의 삼정헌, 전망 좋은 이 방에서 누구나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다고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 수종사에 전해 내려오는 정약용의 시 한편을 소개한다.
그의 나이 70에 정조의 외동사위 홍현주가 찾아 와 운길산 수종사에 오르고자 하였으나 함께 가지 못하는 늙은이의 서러움을 노래한 시라고 한다.
“수종산의 저녁 빛은 찡그린 얼굴 모습 눈꽃 핀 나무와 얼은 샘이 초조하게 사람 기다리네.
고갯마루에 까마귀 날자 그때야 말채찍 가다듬고 역사에 닭 울자 벌써 수레바퀴 기름 치네.
북쪽 산굽이 일천 자락을 붙잡고 올라 동쪽 봉우리 만 가마 티끝 깨끗이 씻고 싶어라.
이러한 풍류놀이에 뒤따르기 어려워 백발의 노인 시 읊으며 바라보니 마음만 아프네.”
- 조선의 대문호 서거정이 수종사가 동방사찰 중 최고의 전망을 지닌 사찰이라며 격찬해 마지않으며 지은 수종사와 연관되어 전해지는 시 한편을 소개한다.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는 연기와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상방(上方, 절)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흰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꺼나
누런 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내 동원(東院)에 가서 참선이야기 하려 하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 울게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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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탑과 5층석탑
- 대웅보전 바로 옆에 부도탑과 5층석탑이 있다. 팔각오층석탑과 태종의 다섯 번째 딸 정의옹주 부도가 가정집 장독처럼 정겹게 서있다. 정의옹주는 세조에게 있어서는 고모가 된다. 왕실이 지원하는 사찰이었음이 짐작이 가며 또한 팔각오층석석탑은 일명 수종사다보탑이라 하고 세조가 중창불사하면서 조성했다고 하는데 수종사의 격을 한층 높여준다. 마치 원각사지 석탑을 축소하여 간결하게 세운 것처럼 보인다.8각 5층 석탑이다. 탑은 여러 단을 쌓아 기단(基壇)을 삼고 그 위에 5층 탑신(塔身)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으로,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탑신의 몸돌은 위로 올라가면서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 기록은 절의 중창시기인 조선 전기의 석탑으로 추측된다고 하며, 1957년 지금의 자리로 옮길 때 탑신에서 불상, 보살상 등 18점의 유물이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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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조망
- 수종사에서 내려다보이는 양수리 일원의 시원한 조망이 장관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해맑은 날씨에 얼음과 눈(雪)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의 모습은 일찍이 서거정이 동방의 사찰 중 전망이 제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라는 얘기가 실감이 난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 위치한 ‘두물머리’는 남한강(양강)의 물과 북한강의 물, 두 물줄기가 합수(合水)돼 한강의 머리가 된다는 데서 유래했다. 양수리(兩水里)의 순 우리말 이름이다. 양수리는 일제시대 1914년 지방행정지역 통폐합에 따라 용진리와 석장리, 대리 일부를 합쳐 양수리라 했다. 양서면은 ‘양동면’ 함께 방위상 표기로 양평군의 서쪽에 위치해 생긴 명칭이다. 현재도 두물머리, 또는 두머리라는 명칭은 행정리상 양서면 양수리의 일부를 대신하는 마을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1973년 12월 팔당댐이 준공 전에는 합수머리, 말죽거리, 두무리, 두머리, 두거리, 양수두, 양수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지금의 양수리 전체를 통칭한다.
- 두물머리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 하나를 소개한다.
★ 도당 할배와 도당 할매 설화 ★
- 두물머리에는 수령이 500년이 넘는 높이 30m, 둘레 8m 규모의 ‘도당 할배’라는 느티나무가 1982년 보호수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그 옆에는 ‘도당 할매’ 느티나무도 있었는데 1925년 을축 대홍수 및 1968년 5월 팔당댐이 착공되면서 1970년대초 이곳이 수몰되면서 고사되었다. 양수리 도당제는 ‘한강유역의 마을신앙’으로써 도당굿ㆍ도당제, 고창굿 등으로 불려왔으나 60~70년대쯤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마을 안녕과 뱃길의 평안을 비는 일종의 용왕제다. 양평지역에는 현재 확인된 남ㆍ북한강 유역 마을신앙만 총 18곳에 이르고 있는데, 모두 산치성, 산제사 형태이다. 도당굿의 경우 양수리 상류 남ㆍ북한강에서는 전혀 유형을 찾아볼 수가 없는 두물머리가 유일하게 돌 제단과 돌무더기가 보존돼 있다. 도당제는 한강 본류 2곳과 시흥, 인천, 화성 등 경기도 서해일대에서 총 11곳이 확인된바 있다.
- 두물머리 도당굿은 두물머리 느티나무에 돌제단을 만들어 놓고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용왕신을 섬긴 형태로 보이며 ‘터주가리 신당’엔 위패 또는 탱화(神書)를 모셨던 것이 대부분이다. 도당굿은 세습 또는 강신무 형태로 전승돼 오히려 짝수해 음력 2월 초하루 마을 주민들이 모여 대동회를 통해 ‘도가’라고 하는 제사진행요원 3인을 선출한다. 이들은 제물 등을 준비하는 마을 대표로써 ‘마을 원로인 당주(堂主)’와 ‘숙주’를 도와 음력 3월 초사흘 이전에 제사를 모신다.
출처: 백운신문 & 양평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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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상봉에서 ...
- 오늘 배부한 등산지도상에 표기된 515고지가 현장에 와보니 절상봉 표석에 해발522m로 표기되어 있었다.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을 줄은 미처 몰랐던 상황이라 이 지점이 혹시 운길산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착각할 정도였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선두그룹권에 있는 일행들의 기념촬영 기회가 있었다. 이 지점부터 능선구간이 시작되면서 좌우 조망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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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 정상에서 ...
- 들머리에 들어선지 1시간30여분이 가까워지면서 운길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서는 전. 후, 좌. 우 조망이 시원하게 잡혔다. 날씨도 화창하고 시계가 탁 트여 흰눈으로 뒤덮인 적갑산, 예봉산, 갑산일원과 이름모를 남양주 일원의 산하가 눈이 모자라게 꽉 차 들어왔다. 겨울산행의 진수를 마음껏 누리는 순간순간이 마냥 행복하게 느껴졌다. 운길산은 적갑산(561m)과 예봉산(683m)을 함께 종주할 때 기준점이 되는 산이다. 정상에서 새재 - 적갑산 - 예봉산까지 6km / 2시간40분 걸린다고 안내되고 있는 점으로 봐서 오늘 일정을 연장하지 않고 운영한 것이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중학교입구에서 진입하여 운길산정상 - 새재고개 - 적갑산 - 예봉산 - 상팔달마을(팔당유원지)로 나오거나, 상팔달마을(팔당유원지)에서 진입하여 예봉산 - 적갑산 - 도곡리버스종점으로 하산하거나 갑산 방향으로 빠져나가 먹치고개까지 가는 코스도 하루일정으로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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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장면
- 12:40이 가까워지면서 점심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정상을 올라가는 길에 점심식사 장소로 점 찍어두고 간 헬기장이 정상 전망대 보다는 밥터로 제격이었다. 정상에서 체온관리를 소홀히 한 탓으로 땀이 식으면서 저체온증 증상이 나타나 손이 시려워 점심식사 시간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식사를 하시는 일행 분들도 계셨지만 염치불구하고 두툼한 장갑을 낀 채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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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샘터
- 점심 식사 후 하산길 경사구간은 계단과 함께 로프로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비교적 수월하였다. 운길산 탐방로 주변이나 그 일대는 소나무와 참나무등 관엽수가 울창하게 들어섰지만 재목감이 될만한 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헬기장에서 약 30여분 내려오니 수종사 불이문 갈림길에 당도하였다. 주변에 운길샘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가 않았다. 올라가는 길에 수종사 경내를 둘러보면서 운길샘을 찾을 수 없었던 관계로 눈방울 돌아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샘터를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수종사에 와서 샘물을 마시지 못하고 가면 오래도록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기에 일주문 방향으로 하산을 잠시 뒤로하고 일행들과 함께 수종사 경내로 다시 들어섰다. 경내로 진입하면서 돌담장 밑에 졸졸 흐르는 샘터가 있었지만 이 샘이 운길샘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고 이절 샘물이 맛 좋기로 이미 소문나 있었기에 한 바가지 가득 담아 갈증을 풀었다. 이 절 삼정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차가 바로 이 물로 만들어졌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마셔서인지 몰라도 감칠맛이 났다.
- 수종사 불이문에서부터는 차량 이용이 가능하다.
운길산수종사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과 팔각정을 지나 여유 있게 내려오다 보니 운길산 정상 2.8km, 운길산역 0.9km를 알리는 마지막 이정표가 나왔다. 오늘 하산예정시간인 14:30에 후미일행이 정확히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 다산유적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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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기념관
-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85-2번지에 소재한 다산유적지 방문은 당초 일정에 계획한바 없었으나 일정운영상 여유 있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 회장님의 깜짝 이벤트 행사로 추진되었다.
다산유적지에는 다산문학관, 다산기념관, 문 도사, 다산의 동상, 여유당(다산의 생가), 다산의 묘, 사당, 문화의 거리 등이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었으며 매년 10월 문화의 달에 유서 깊은 다산유적지 일원에서 모두가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축제 한마당이 열린다고 한다.
- 다산문학관 영상실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일대기를 엮은 영상기록물을 시청한 다음 다산유적지 경내를 두루 돌며 40여분 남짓 자유시간을 갖으며 휴식을 취했다.
- 다산은 5백 권이 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대표작으로 1표( 경세유표), 2서(목민심서, 흠흠심서)와 의학서인 마과회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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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묘역
- 다산 묘역의 “자찬묘지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산은 1818년 유배에서 풀렸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마하며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61세 때에는 회갑을 맞아 다산 자신이 직접 자찬묘지명 (自撰墓誌銘)을 지어 자서전적 기록으로 정리하였다.
자찬묘지명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문집에 넣기 위한 <집중본>이고, 다른 하나는 무덤 속에 넣기 위한 <광중본>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자찬묘지명(집중본)의 원문과 국역은 내용이 길어 소개를 생략하고 한 구절을 살펴본다.
★ 후회하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
“네가 너의 잘한 일을 적는다면 몇 편 되겠지만, 너의 숨겨진 허물을 기록하면 책은 끝이 없으리. 너는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 행실을 살핀다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 다산 정약용의 삶
- 다산은 1762년(임오년 영조38년) 음력 6월 16일,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서 아버지 나주정씨(羅州丁氏) 재원(載遠) 과 해남윤씨(海南尹氏)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다산의 아명은 귀농(歸農), 자는 미용(美庸), 용보(頌甫)이고 호는 사암(俟菴), 열수 (冽水), 자하도인(紫霞道人), 문암일인 (門巖逸人) 등이며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10세부터 과예(課藝)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고 아버지가 잠시 벼슬을 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 경전(經典)과 사서(史書) · 고문(古文)을 부지런히 읽었으며 시율(詩律)을 잘 짓는다고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다산은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제법 문자를 알았다”고 회고 하였으며 그가 7세 때 지은 “산” 이라는 시가 이를 입증하여 준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또 다산이 10세 이전에 지은 시문을 모은 「삼미자집(三眉子集)」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1777년 다산은 자신의 학문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을 만 나게 되었으니 그가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이다. 다산이 두 살 되던 해에 성호가 세상을 떠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산은 성호의 글을 접하고 학문을 굳히게 되었다.
- 다산은 23세 때 (1783년)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여러 차례의 시험을 통해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았다.
-28세 때 (1789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였으며, 첫 벼슬인 희릉직장 을 비롯하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쳤다. 이즈음 “성설”과 “기중도설”을 지어 수원성을 쌓는데 유형거와 거중기를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건의하여 많은 경비를 절약하였다.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서는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였으며, 연천 현감 김향직과 상양 군수 강명길의 폭정을 고발하여 처벌하였 다. 이를 통해 관리의 책임과 의무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23세 때 甲辰年(1784년) 4월 큰 형수의 제사를 마치고 서울로 오던 두미협(斗尾峽) 의 배 위에서 다산과 사돈 관계에 있던 광암(曠菴) 이벽(李檗, 1754~1786)으로 부터 처음 천주교를 접하였다. 이후 한때 천주교 서적을 읽고 심취하기도 하였으나 성균관에서 학업에 정진하느라 곧 손을 떼었다. 다산은 천주교 신앙과 서양과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기도 하였으나 갖은 시련과 좌절을 맞보기도 하였다.
- 정조가 서거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다산은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소론과 남인사이의 당쟁이 1801년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게 된다. 다산은 포항 장기로 셋째형 약종은 옥사하고 둘째형 약전은 신지도로 유배되었다. 9개월이 지난 후 황사영 백서사건이 발생하자 다산은 서울로 불려와 조사를 받고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강진에서의 유배기간은 다산에게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알찬 결실을 얻은 수확기였다.
이 시기에 다산학의 두 축을 이루는 경세학과 경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 졌으며 500여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이루어졌다.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모아 교육하였으며, 제자들 또한 저술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유배지의 제자들로는 이청 · 황상 · 이강회 · 이기로 · 정수칠 · 윤종문 등을 들 수 있다
- 57세 되던 해 가을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온 다산은 이미 이루어진 저술을 수정하고 보완하는데 힘쓰며 자신의 학문과 생애를 정리하였다. 미완으로 남아있던 목민심서를 완성하였으며 「흠흠신서」, 「아언각비」등의 저작을 내놓았다. 회갑을 맞이해서는 자찬묘지명을 지어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기도 하였으며, 북한강을 유람 하며 여유 있는 생활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신작 · 김매순 · 홍석주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유배지에서 쇠약해진 심신을 추스르며 자신의 생애와 학문을 정리한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남양주시
○ 산행안내를 마치고
-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시고 한 해를 갈무리하는 운길산 산행에 동참해 주신 모두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절정상에서 운길산 정상 능선구간을 지나시면서 쌓인 눈 때문에 착지가 불편하셨음에도 안전산행을 해주신 점과, 원만한 일정운영에 협조해주신 점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 오늘 당초 일정에 잡혀있지 않았던 다산유적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회장님과 방문일정 조정에 협조해 주신 모두님들 덕분에 문화유적지 탐방 보너스를 얻게 되어 매우 뜻 깊은 하루로 기억되리라 봅니다. 지금까지 산행에서의 하루일상을 정리해 오면서 산행지 주변볼거리나 그 산에 얽혀있는 숨은 얘기들을 찾아 함께 기술해 보았습니다. 카페에 읽을거리를 제공해 보자는 뜻도 있었습니다만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질적 향상을 도모해 보고자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금년도 산행후기를 마무리 하면서 내년도의 일상 정리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의 틀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틀을 짤 것인가? 아직까지 결론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관심 있으신 모두님들의 고견을 기다리겠습니다.
- 그동안 정기산행을 준비하고 안내하면서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격려해 주시고 아낌없는 성원과 지도 편달해 주신 모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산행안내 준비과정에서나 산행안내 현장에서 있었던 웃지 못 할 에피소드에 대해서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을 다짐해 보면서 운길산에서의 하루일상 정리를 마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Ⅱ 2부 --- 송년의 밤 행사
![](https://t1.daumcdn.net/cfile/cafe/1846EB274B3F29C815)
색종이 털어 내기 ...
1. 일시 : 2009. 12. 31. 17:00 ~
2. 장소 : 춘천시 조운동 새명동훼미리뷔페
3. 참석인원 : 50명
4. 행사개요
○ 개회 --- 이정선 사장님
○ 회장인사 --- 회장님
○ 유공자 시상 --- 회장님
○ 만찬
○ 오락 --- 이인옥부회장님
○ 폐회 --- 이정선 사장님
5. 특이사항
- 오락시간에는 이인옥부회장님께서 직접 기획하시어 흥미있게 진행해 주셨는데 맥주 이어 빨리 마시기, 색종이 온 몸에 붙이고 몸을 흔들어 빨리 털어내기, 넌센스 퀴즈 맞히
기 등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팀별로 단체 시상.
- 입장하시는 회원님들 자리 배치를 함에있어 색종이로 티켓을 만들어 안배함으로 인하여 혼잡을 예방하고 팀 구성의 균형을 유지.
ꡒ 오늘 수상 하신분 --- 축하합니다.
★ 최다 참가상 : 김용득님, 양재순님
★ 아차상 : 김희섭님, 김길숙님
★ 30회 이상 참가상 : 홍원석님, 정을철님, 최영란님, 백승이님
★ 봉사상 : 김정환님, 오경희님, 이동진님, 김영미님
ꡒ 오늘 행사에 도움 주신분 --- 감사 합니다.
이정선사장님 버스1대 및 150,000원 상당 상품(장갑60컬레), 회장님 120,000원 상담 상품, 고문님ㆍ이인옥부회장님ㆍ원남산산악대장 각 100,000원, 홍양식사장님 200,000원 상당 상품권, 블랙야크 정한사장님 400,000원 상당 츄리닝 2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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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축년 제48회 등정, 운길산에서의 하루 일상 정리가 개인적이 사정에 의해 좀 늦어 죄송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지도편달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경인년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큰 소망을 이루는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잘못 표현된 부분이나 정보에 대해서 고견을 주시는 대로 바로잡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거듭되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울~산악대장님 정말 지난 한해 마무리 등산까지 너무나 노고가 많으셨어요, 올해도 지난해 못지않은 즐산과 안산을 기대합니다. 산행 후기에서도 언급되였습니다만 정말로 모두를 사랑하시고 아껴주시는 모두님 모든분들에게 행운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기축년 한해 맘고생도 많으시고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경인년 새해에도 모두가 하나되는 모두산악회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해 마지않습니다.
ㅎㅎㅎㅎㅎㅎ맘 고생 다 날려 버렸습니다, 항상 고마움을 마음에 품고 지냅니다.
회장님 산악대장님 기축년 한해 수고많이하셨습니다 경인년 새해엔 좋은 일들만 있길바래요^^
네! 감사합니다. 대문 활짝 열고 좋은일들 맞이할 준비 끝났습니다.
산악대장님! 산행안내하시랴... '산행후기' 쓰시랴.... 지난 한해 참 고생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회원들은 보람있고, 안전한 산행을 할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인년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우리 '모두산악회' 를 위해, 봉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난해 베풀어 주신 후의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성원과 지도편달을 당부드립니다. 새해 항상 건강하시고 소망을 이루는 한 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 산행과 송년회 참석을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아있는데 올려주신 사진과 후기 잘보았습니다.... 대장님 지난해 고생 많으셨습니다....새해에도 가족모두 건강하시고 모두산악회의 버팀목이 되어주세요...
모두님들의 아낌없은 성원과 지도편달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경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정에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방문해 주시고, 읽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방가워유 ~~~
기축년한해 안산과 즐산을 위하여 항상 애쓰신 대장님 고생많이 하셨읍니다, 경인년에도 대장님의 활동에 큰기대를합니다,항시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고문님 지난해 베풀어 주신 후의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되시기 바랍니다.
산악대장님 산행 후기 글에 새삼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서야 카페에 들려 다시 운길산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기축년 산행이 주마등 처럼 스치고 가는 아련한 모습이~~~ 노고에 두손모아 감사드립니다.
경인년 새해에도 지난해와 같은 성원과 지도편달을 기대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화가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