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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작품세계 스크랩 식당의자 / 문인수
진영희 추천 0 조회 9 17.07.19 12: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식당의자 / 문인수


 

장맛비 속에, 수성못 유원지 도로가에, 삼초식당 천막 안에, 흰 플라스틱 의자 하나 몇 날 며칠 그대로 앉아있다. 뼈만 남아 덜거덕거리던 소리도 비에 씻겼는지 없다. 부산하게 끌려 다니지 않으니, 앙상한 다리 네 개가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털도 없고 짖지도 않는 저 의자, 꼬리치며 펄쩍 뛰어오르거나 슬슬 기지도 않는 저 의자, 오히려 잠잠 백합 핀 것 같다. 오랜 충복을 부를 때처럼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은 저 의자, 속을 다 파낸 걸까, 비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상당기간 실로 모처럼 편안한, 등받이며 팔걸이가 있는 저 의자, 여름의 엉덩일까, 꽉 찬 먹구름이 무지근하게 내 마음을 자꾸 뭉게뭉게 뭉갠다. 생활이 그렇다. 나도 요즘 휴가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 중이다. 이 몸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저 의자,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 의자가 쉬고 있다.

 

- 시집 배꼽(창비, 2008)

.................................................................

 

  의자를 소재로 쓴 시는 많다. 그만큼 의자가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아 관찰과 사유의 응시도 빈번했다는 이야기다. 문인수 시인이 보았던 식당 의자는 야외용 간이의자다. 보송보송한 햇빛이 내려앉은 해변이나 너른 평수의 잔디밭, 물빛 고운 수영장 같은 장소와 잘 어울리며, 실제로 그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벼운 플라스틱 의자다. 그러나 수성유원지 삼초식당 의자는 같은 재질이지만 돼지창자를 구워 파는 막창집이거나 정구지 부침개나 데친 오징어 숭숭 썰어 초고추창에 찍어먹는 안주를 파는 천막식당의 흰색 간이의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식당의자는 아무런 계급이 없다. 누구나 먼저 엉덩이를 들이대기만 하면 임자다. 한때 덜거덕거리며 부산하게 끌려 다녔던 이력은 이제 오간 데 없다. 장마 때문만은 아니다. 속을 다 파내고 뼈만 남아 앙상한 네 다리가 비로소 또렷하게 보인다. 장마기간 몇날 며칠 비를 맞아도 일절 구시렁거리지도 않는다. 오래된 충복 같기도 하고 인도의 요가승 같기도 한 그 의자에게 마땅한 이름 하나 별도로 붙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젖어도 젖을 일 없는 전문가'란 별칭이 조용히 씻긴 굿 한 판 홀로 치룬 전문가에 의해 주어진다.


  플라스틱 성형으로 단순하게 찍어낸 저 식당의자를 저토록 환한 여백의 결 무늬로 다시 찍어내다니 참 대단한 관찰과 사유의 깊이가 아닐 수 없다. 장맛비 속에서 한곳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머릿속에 스치는 변화무쌍한 생각들과 잘 놀아나지 못했다면 이런 시는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시적 사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시는 어림도 없었으리라. 시퍼렇게 날선 시선과 스스로 요가 수행승의 몸처럼 숭고한 동작을 복제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11년 전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인 이 시는 아마 태어나기 어려웠으리라.


  그런데 문인수 시인이 요즘 몸이 좀 불편하다. 지난해 목월문학상 수상식장에서 커밍아웃한 바 있지만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늙어, 언제부턴가 오른손이 떨린다. 예컨대, 술을 받기 위해 잔을 내밀 때부터 약간 떨기 시작한다. 어느 날, 내게 술을 따라주던 이 모 시인이 내가 팰까봐, 떠시오?” 했다. 점잖은 신사께서 남의 장애를 희롱하다니...... 아무튼, 술잔을 입에 갖다 대려는 순간엔 특히 걷잡을 수 없이 떨려 그만 술을 엎지를 지경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급히 왼손으로 잔을 옮겨 수습하곤 한다......”


  “살모사 꼬랑지처럼 바르르 떠는 젓가락 끄트머리, 이 진앙은 도대체 어디일까. 이 모든 진동이 전날 술 마셨거나 춥거나 긴장할 때나 격한 운동 직후엔 더 심하다. 인생, 그러니까, 요는 입이 문제다. 그렇다면 이놈의 입을 꽉 닫아? 꽉 닫힌, 봉쇄수도원은, 묵언정진의 토굴 속은, 주린 배 속은 또 얼마나 깜깜한 세계일까. 이러다 정말, 호되게 얻어터질 일 당할지도 모르겠다 싶어, 나섰다...... 담당의사가 담담히, ‘분태성 수전증이라고 했다. 근본적으로 파킨슨병이나 중풍, 치매 따위 전조는 아니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3년 전 쓴 시의 일부인데, 이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인식 못했던 것 같다. 의사가 큰 염려 말라고 했으니 병원을 나오자마자 한참 참았던 담배까지 한 개비 빼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웬걸,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다시 병원을 찾아 진단 받은 결과 60세 이상 인구 100명 당 1.5명에게 찾아온다는 파킨슨병이었다. 무하마드 알리도 걸렸던 것으로 알려진 이 병은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 중의 하나이다. 도파민 신경의 손상으로 도파민의 분비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몸이 원하는 대로 정교한 움직임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단추를 낀다거나 펜을 잡는 등의 동작에 불편함을 겪고 걷는데도 어려움이 따른다. 짧은 보폭으로 점점 빨라지는 걸음이 마치 짧은 거리를 뛰어가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해서 앞뒤로 넘어질 위험도 있다. 병이 진전되면 얼굴의 표정도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눈을 깜박거리는 횟수가 줄어들고 입이 벌어지면서 치매로 진전되기도 한단다. 가까이서 지켜본 바로는 문인수 시인에게 지금 가장 불편한 것은 의자에 앉고 일어서는 동작이다. 매번 요가처럼 비틀어 날개를 펼쳐낸. 덩달아 정신의 동작도 버거워 전문가의 시도 쉬고 있다. 이런 저런 궁리가 활성화되어 그 휴가도 당분간이길 기대하건만...

    

 

권순진


 

Setgeliin Egshig - Dee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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