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피난민 시절, 소꿉친구였던 전옥의 딸 최신옥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놀던 윤복희는 이때부터 남다른 끼와 재능을 보였다. 윤복희는 1951년 12월 낙랑악극단의 중앙무대 쇼에서 6살의 나이로 데뷔했다. 마지막 장면에 산타할아버지가 멘 큰 자루 속에서 나와 팝송 <Love You 리루 리루>를 노래하며 뒤뚱뒤뚱 춤을 추다 퇴장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낙랑악극단은 ‘윤부길과 천재 소녀 윤복희’란 간판을 내세워 전국을 누볐다.
상당한 인기를 얻은 윤복희는 10살 때인 1956년에 손목인 곡 <보고 싶은 엄마>를 녹음하게 된다. 하지만 어린이 가수의 상업적 성공을 자신할 수 없었던 음반사는 결국 발매를 포기하고 인기가수 송민도에게 재녹음을 시켰다. 윤복희가 국내 최초의 공식 어린이 가수가 될 수 있던 기회는 이런 이유로 사라지고 말았다.
1958년 인천 부평에는 오누이와 사촌 남매로 구성된 어린이 패밀리 밴드 ‘차차차 오남매’가 등장했다. 지역에서 음악 잘 하는 아이들로 소문이 나면서 1958년 미8군부대의 파티에 초대받아 ‘Tiny Tots(작은아이들)’, ‘Tiny Dozen(작은 묶음)’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어린 꼬마들의 앙증맞은 연주와 노래, 춤을 보며 미군들은 휘파람을 불며 환호했다. 이런 활동이 점차 소문이 나면서 이들은 1960년대에 서울 을지로의 국도극장 무대에 올랐다. 당시 유행했던 리듬 ‘차차차’와 성을 조합해 밴드 이름을 정식으로 ‘차차차 오남매’로 지어 활동했다. 당시 신문 광고는 일본의 유명 패밀리 밴드를 차용하여 이들을 ‘한국의 렌서스 밴드’로 소개하고 있다. ‘차차차 육남매’로도 활동했던 이들은 공식 음반을 남기지 못하고 멤버들의 학업 때문에 1960년대 후반에 해체됐다.
국내 최초의 어린이 가수 하춘화는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으로 노래를 빨리 배우고 잘 불렀다. 그녀는 서너 살 때 이미 200곡이 넘는 레퍼토리를 소화했다고 한다. 동네에서도 소문난 꼬마 인기가수였던 그녀는 동네 미장원이나 양장점의 언니들 간청에 못 이겨 과자를 받고 노래를 불렀던 동네의 노래 신동이었다.
만6세에 제작된 하춘화의 데뷔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공식적으로 어린이 가수의 등장을 알린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어린이 가수의 존재는 큰 화제를 몰고 왔지만 1965년 2월 3일 MBC 라디오의 「가요 1번지」를 진행하던 아나운서가 “어린아이에게까지 노래를 시키다니 한심한 세상”이라는 멘트를 할 정도로 사회적 비판여론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춘화는 1,500회가 넘는 최다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면서 리사이틀의 여왕으로 불리며 지금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60년대에 7살의 나이에 <마도로스 아홉 살>을 부르며 데뷔한 오은주는 상당한 수준의 가창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어린이 가수이다. 데뷔 이후 60년대에 <월남 가신 우리 아빠>, <엄마엄마 돌아와요>, <멋쟁이 마도로스> 등 많은 히트곡을 남겼고, 70년대에도 천재 소녀 가수로 주목을 받았다. 쉼 없는 앨범 활동으로 1990년 <돌팔매>를 빅히트시킨 오은주는 지금도 현역 트로트 가수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부터 미8군 무대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나미(본명 김명옥)도 어린이 가수 출신이다. 1967년 영화 「엘리지의 여왕」에서 이미자의 어린 시절을, 영화 「미니아가씨」에서는 윤복희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였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춤과 노래 실력으로 동두천지역 미8군 병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한편 극장 쇼 무대의 스타로도 유명했다.
10대들로 구성된 7인조 혼성밴드 리틀 캐츠의 7살 어린이 멤버 정현수는 리드보컬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기타, 드럼, 봉고, 오르간 등의 악기 연주에다 코미디 연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재능을 펼쳤던 밴드의 꼬마 인기스타였다. 경기도 의정부 미 헌병대 NCO 파파상 클럽에서의 첫 무대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시간 동안의 쇼 무대는 미군들이 뿌린 달러로 가득 찰 정도였다. 1965년 교동 초등학교에 진학한 정현수는 1967년 유현목 감독의 영화 「한」에서 윤일봉의 아들 역을 맡아 문희와 함께 데뷔했다. 영화 개봉 이후 정현수는 천재 아역배우로 유명세를 타며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연기보다 노래가 좋았던 그는 꼬마신랑 역을 거부했고, 그를 대신했던 김정훈이 아역배우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안기승은 1964년 7살 때 인천 부평 애스컴 미군클럽 무대에 올랐다. 그는 밴드의 드러머였던 아버지가 연주할 때, 무릎에 앉아 스틱을 잡고 심벌 스내어로 홍키통키 셔플리듬을 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단번에 미군들 사이에서 천재 어린이 드러머로 화제가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걸밴드 탑 스텝스 멤버가 된 안기승은 1967년 10살 때 세계적인 재즈뮤지션 아트 블랙키의 내한 공연에서의 놀라운 연주로 천재 어린이 드러머로 화제를 모았다. 현재 안기승은 국내 드럼 세션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다.
박활란은 1966년 작곡가 이인성의 기획으로 팝과 로큰롤을 번안한 2장의 독집을 발표했던 어린이 가수이다. 미8군 출신 어린이 가수 박활란은 경쾌한 리듬의 노래는 물론이고 페이소스 짙은 슬픈 노래들까지 자유자재로 소화해내는 놀라운 가창력을 선보였다.
강렬한 섬광과도 같이 70년대에 들어 2년 정도 어린이 가수 열풍이 불었다. 1970년 이탈리아 동요 <검은 고양이 네로>를 발표해 히트시킨 박혜령을 필두로 김희진, 최은형, 윤선미, 강미경 등을 비롯해 10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국내 어린이 가수 열풍을 일본과 동남아시아까지 파급시킨 주역들이다.
6살 어린이 가수 박혜령은 1970년 <검은 고양이 네로>를 히트시키며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되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원곡은 1969년 빈체차 바스토렐리가 이탈리아의 동요 경연대회인 제11회 제키노 도로에서 3위에 입상했던 <Voleno un catto nero>를 번안한 노래였다. 박혜령의 노래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같은 해에 여러 명의 어린이 가수가 같은 노래를 제목만 조금 다르게 동시다발로 발표했을 정도로 이 노래는 크게 인기를 얻었다. 실제로 1970년 한 해에만 김희진, 최은형, 윤선미, 강미경을 비롯해 10여 명의 어린이 가수들이 등장해 어린이 가수 열풍을 일으켰다. 1980년대에 성인 가수로 컴백했던 박혜령은 <KOREA>를 히트시키는 등 여러 장 음반을 발표했다.
1960년대 유명 작곡가 서영은의 장녀로 태어난 지숙은 이미 4살 때부터 뛰어난 고전무용 실력으로 KBS TV에 출연했다. 매동 초등학교 시절인 10살 때는 서울시립 어린이합창단원의 일원으로 노래에도 재능을 보였다. 1971년 12살 때 밴드 조커스와 <경부고속도로>를 부르며 공식 데뷔했다. 코미디언 서영춘의 조카인 그녀는 197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상미음악대학에서 재즈 이론과 키보드 연주를 전공했다.
연기에도 재능이 많았던 그녀는 1979년 개봉한 재일교포 출신의 일본 프로야구 선수 장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터질 듯한 이 가슴에」에서 주인공의 학창시절 애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81년 혼성 4인조 라틴그룹 ‘실비아& 로스마쵸스’에서 퍼큐션과 보컬로 활동하던 중 1983년 본명 서지숙이란 이름으로 국내에 퓨전재즈 앨범을 발표했다. 당시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앨범 <Sailing fly>가 100만 장이나 판매되며 일본 킹레코드사로부터 히트상을 수상하자 당시 나카소네 일본 수상이 축전을 보냈을 정도로 일본 내에서 그녀의 인기는 높았다.
1971년 국내 최연소 3살 어린이가수 강남주가 데뷔앨범을 발표하며 등장했다. 한때 SBS TV 예능프로그램 「있다 없다」에서는 그녀의 존재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강남주 자신은 활동 당시 너무 어려 그때를 기억하지 못했다. 현재는 가정주부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재은은 1954년 서울에서 가수 이미자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정진흡의 장녀로 태어났다. 1966년 부모의 이혼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던 그녀는 1971년 만 7살 때 악극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1973년 번안곡 <나의 엄마>, <즐거운 일요일>과 <꼬마 운전사>등을 발표하며 어린이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1978년 중학교 2학년 때 정재은은 최연소 가수로 MBC 국제가요제에서 <무지개 피는 곳에>를 불러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데 1981년 정란여상 2학년 때 일본에서 <물망초>를 취입했고 국내에서는 <항구>를 히트시키며 KBS 가요대상에서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패밀리그룹 작은별가족의 막내 강인봉은 3살 때 영화 「세월이 가면」으로 데뷔한 이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등 100여 편의 영화와 「민비」등 10여 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한 아역 배우 출신이다. 깜찍한 용모와 맑고 청아한 음색뿐 아니라 많은 악기들을 연주했던 그는 초등학교 과정부터 독학으로 공부해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4살 때는 최연소로 사법고시에 응시해 ‘신동’소리를 들었던 천재였다. 지금은 방송 DJ와 포크 트리오 그룹 ‘자전거를 탄 풍경’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유행했다. 1981년 앤서니 퀸과 찰리가 불렀던 팝송 <Life itself will let you know>을 배우 최불암과 당시 10살이었던 정여진이 아빠와 딸이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번안해 불러서 화제를 모았다. 정여진은 1976년 5살부터 <개구리 왕눈이>, <요술 공주 밍키>, <태권 동자 마루치>, <똘이장군> 등 많은 만화영화 주제가들을 낭랑한 목소리로 부른 어린이 가수로도 유명했다.
노래에 재능이 많았던 탤런트 하희라, 이연경은 1981년 KBS 딩동댕 어린이노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멤버들과 함께 어린이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을 발표했다. 두 사람 모두 연기자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중 이연경은 10년 후인 1991년과 1992년에 두 장의 독집을 발표하며 <사랑 안 할래> 등을 히트시키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똑순이’로 잘 알려진 김민희는 1978년 만 5살 때 MBC TV 주말연속극 「봄비」로 데뷔해 장래가 촉망되는 아역배우로 주목받았다. 또한 노래에도 재능이 많아 1982년 만 9살의 나이에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한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을 히트시키며 어린이 가수로도 화제를 모았다. 뛰어난 연기와 노래 실력으로 김민희는 11살 때인 1984년에 KBS 제1라디오 「 똑순이의 노래꽃동산」 진행자로 발탁되기도 했다.
인디밴드 아마도이자람 밴드를 결성해 페미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예솔이 이자람도 어린이가수 출신이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부르는 노래가 유행했던 1984년, 4살 어린이 이자람은 혼성듀엣 바블껌 출신인 아빠 이규대와 함께 〈내 이름(예솔아!)〉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이 노래의 가사는 소년동아일보에 실렸던 동시였다. ‘예솔이’는 처음엔 노래 취입을 반대했던 작시자 김원식의 외아들 이름이다. 막내 이자람은 서울대 국악과에서 판소리 전공한 석사 출신의 재원으로 1999년 최연소 8시간 동초제 판소리 춘향전 완창기록으로도 유명하다.
1987년 MBC 드라마 「한지붕 세 가족」에서 ‘순돌이’로 출연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이건주도 어린이 가수 출신이다. 드라마를 통해 스타로 떠오른 이건주는 엄마와 누나들과 함께 1987년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과 1988년 이건주와 어린이들이란 그룹으로 <어른들은 몰라요> 등을 취입하며 어린이 가수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노래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30살이 된 2001년 뒤늦게 그룹 '튠업'의 멤버로 앨범을 내며 잠시 음악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90년대는 상대적으로 다른 시대보다 어린이 가수들의 등장과 활약이 많지 않았다. 1993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인 8살 이동민이 취입한 정규앨범은 대중적으로 히트하진 못했지만 어린이 가수의 명맥을 90년대까지 이어준 희귀 음반이다.
2000년대 들면서 어린이 가수들은 양적으로 급증하여 트로트 신동으로 각광받는 어린이 가수들은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였다. 7세 소녀 가수 베베퀸은 2003년부터 디지털 싱글을 무려 120집까지 낸 ‘베테랑’ 어린이 가수이다. 2004년 활발한 활동을 선보인 ‘7공주’는 한동안 인기를 독점한 어린이 보컬그룹이었다. 이들의 귀여운 노래는 휴대전화 벨소리, 통화 연결음 분야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컬러링 베이비’란 별명까지 얻었다.
2005년 ‘소방차’ 멤버 정원관이 기획한 13인조 소녀그룹 ‘i-13(아이 써틴)’에도 초등학생 멤버가 3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해에 3명의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걸 그룹 ‘오렌지’도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08년 깜찍한 평균 연령 11세의 9인조 어린이그룹 ‘스위티’는 ‘리틀 소녀시대’를 떠올리게 했고 ‘비틀즈 신동’이라 불렸던 4살짜리 하영웅도 화제가 되었다. 2014년 결성한 3인조 어린이 걸그룹 리틀 뮤즈는 앨범 발표와 더불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사절단으로 활약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네이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대중가요사에 기록된 어린이 가수들 (가요앨범사, 한국대중가요연구소)
===================================================================================================
충청부동산사랑방 |
http://cafe.daum.net/mk0026 |
|
첫댓글 대단한 가수 들입니다
찬사를 보냅니다
귀한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