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수는 백로처럼, 카니 프란시스
초기 팝의 회상, 그리운 슈퍼스타
우리나라에 팝이 도입되고 가장 먼저 알려진 가수는 냇 킹 콜(Nat King Cole, 1917~1965)입니다. 달콤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1950년대 피난살이에 지친 서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지요. 그가 부른 노래로는 '투영(Too Young)', '모나리자(Mona Lisa)', '넝쿨 장미(Rambling Rose)' 등이 있습니다. 그 후 닐 세다카(Neil Sedaka, 1939~)의 '오 캐롤(Oh, Carol‧캐롤 킹을 사모해 부른 노래)', '당신은 나의 모든 것(Yon Mean Everything To Me)', '원 웨이 티켓(One Way Ticket)'이 팝송의 대명사처럼 불렸습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며 최초로 폴 앵카(Paul Anka, 1941~)라는 대형 팝스타가 등장합니다. 특유의 스타카토 리듬으로 부른 '다이아나(Diana)', '마이 홈 타운(My Home Town)', '광란의 사랑(Crazy Love)' '너는 내 운명(You Are My Destiny)'등은 일세를 풍미했습니다. 록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스리(Elvis Presley)는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는 뒤늦게 알려졌고요. 그 무렵 막 론칭한 최동욱의 '탑튠 쇼(동아방송)', 이종환의 '탑튠 퍼레이드(문화방송)' 같은 방송 DJ 프로그램을 통해 원조 아이돌인 클리프 리처드(Cliff Richard)가 소개되는 한편 짐 리브스(Jim Reeves)로 대표되는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 계열 음악도 맹위를 떨칩니다. 포크의 제왕 밥 딜런(Bob Dylan)은 인지도가 위의 가수들에 미치지 못했고 알음알음으로만 전해졌지요. 1964년 마침내 음악의 성인 비틀즈(The Beatles)가 등장해 팝계를 평정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초기 팝계의 간추린 지형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인기 여자가수로는 패티 페이지(Patti Page, 1927~), 도리스 데이(Doris Day), 델라 리즈(Della Reese), 브렌다 리(Brenda Lee)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우리 팬들의 호응을 가장 많이 받은 가수는 단연 페티 페이지입니다. '테네시 왈츠(The Tennessee Waltz)', '체인징 파트너Changing Partner)', '아이 웬트 유어 웨딩(I Went To Your Wedding)' 등 왈츠 풍 비련의 노래로 1950년대와 60년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특히 테네시 왈츠는 인천상륙작전 중 군함에서 흘러나와 미군 병사들의 시린 가슴을 달래준 노래로도 유명합니다. 헌데 알고 보니 패티 페이지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하고 인기 있는 가수가 있었지 뭡니까. 그녀가 바로 카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 1937~)입니다.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한때 디바나 뮤즈라는 호칭이 유행했지만 카니 프란시스야말로 '원조 디바'라 할 수 있습니다. 디바의 칭호를 들으려면, 가창력이 뛰어나고 대중의 인기가 있어 상업적 성공을 거둔 외에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합니다. 그녀야말로 이런 조건들을 제대로 갖춘 최초의 여가수였던 셈이지요. 디바의 계보는 아레사 프랭클린, 다이애나 로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거쳐 20세기 후반의 3인방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셀린 디온(Celine Dion),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로 이어집니다. 비욘세 놀스(Beyonce Knowles)도 이 대열에 들어갑니다. 반면 마돈나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레이디 가가 는 훌륭한 가수들임에는 분명하지만 디바라 부르기엔 왠지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군요.
카니 프란시스의 장점은 아름다운 목소리, 뛰어난 가창력과,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목소리의 감칠맛이 돋보였지요. 비음이 섞인 하이 톤인데 청아함과 섹시함이 있는데다 한 줄기 애수까지 띠어시원스러우면서도 마음의 현(絃)을 건드리는 우수와 적막함이 있습니다. 테너 가수인 유시 비외를링의 목소리와 전해오는 느낌이 닮은꼴이지요. 유시 비외를링의 목소리는 귀를 찌르는 깅한 목소리지만 역시 애수가 스며 있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예컨대 토스티의 '이상', 비제의 '꽃노래')를 들으면 청마(靑馬) 유치환의 시에 묘사된 것처럼 '푸른 해원을 향한 깃발의 펄럭임'이 들려오고 '이념의 푯대위에 날아오르는 백로'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가수 중 비슷한 목소리의 예로는 '안개', '무인도', '꽃밭에서'를 부를 때 초기 정훈희에게서 비슷한 멋과 맛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카니 프란시스 목소리의 특징은 '목소리 속에 또 다른 층위(層位)의 목소리가 있는 겹 목소리지만 분리되지 않는 한 목소리'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혼융(Convergence)'의 목소리라고나 할까요. 목소리에 실린 불가사의함은 남자가수인 로이 오비슨(Roy Orbisn‧1936~1988)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이 오비슨은 영화 '귀여운 여인'의 주제가 '프리티 우먼(Oh, Pretty Woman)', '온리 더 론리(Only the Lonley)', '블루 베이유(Blue Bayou)'등을 불렀으며 데이비드 린치의 컬트영화 '트윈 픽스'에 '인 드림스(In Dreams'가 삽입돼 뒤늦게 유명세를 타기도 한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입니다. 풍부한 미성이면서도 기름지지 않은 특이한 목소리의 소유자로 비틀즈가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한 가수이기도 합니다. 그룹 U2도 그를 높이 평가했지요. 우리나라로 눈길을 돌려보면 대중가요사상 가장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는 중견가수 심수봉인데 그녀에 대해선 나중 따로 거론합니다.
한편 카니 프란시스는 큰 무대가 어울리는 대형 가수였는데 이는 가창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머라이어 캐리처럼 화려한 기교를 뽐내거나(콜로라투라), 비욘세 놀스처럼 진하고 박력이 있거나(드라마티꼬), 휘트니 휴스턴처럼 서정적(릴리꼬)이진 않았으며 오히려 셀린 디온 같은 탁 트인 음색(스핀토․강하고 날카롭게 빛남‧원래 테너 음색을 구분하는 데 쓰이는 용어)이면서도 여느 가수와는 다른 정감이 있는데다 무대 장악력을 갖춰 오케스트라 반주를 압도한 가수였지요. 또 여느 가수에 비해 클래식한 창법이 두드러지면서도 대중적인 인기가 많은 점은 나나 무스쿠리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이탈리아계 혈통인 그녀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스타일의 노래를 소화한 팝 역사상 최초의 여가수라 할 만 합니다. 스탠더드 계열의 팝(아름다운 갈색 눈동자‧Beautiful Brown Eyes). 애틋한 발라드(태미‧Tammy, 위싱 잇 워스 유‧Wishing It Was You), 라틴계 음악(그라나다‧Granada, 말라게냐‧Malaguena)외에도 댄스곡(토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 경쾌한 리듬의 소품(버케이션‧Vacation, 진주조개잡이‧Pearly Shell) 등 모든 분야를 섭렵하는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녀의 선배들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가수들인 도리스 데이, 패티 페이지, 델라 리즈, 브렌다 리, 로즈마리 클루니(Rosemary Clooney),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 다미타 조(Damita Joe),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의 노래가 비슷비슷한 정조를 보여주었음에 비추어 보면, 그녀가 얼마나 방대하고 다채로운 레퍼토리의 소유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독일어로 된 노래도 여러 곡 불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얼핏 '사랑은 이상한 글자(Die Liebe Ist Ein Seltsames Wort‧Love Is A Four-Letter Word)'가 생각나는군요.
카니 프란시스‧송창식‧윤형주
그밖에 카니 프란시스가 불러 친숙한 노래로는 '남자들은 어디에(Where The Boys Are)', '엑소더스 메들리(Exodus Medley)',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Quizas, Quizas, Quizas)', '알디라(‧Aldila)', '스튜피드 큐피드(Stupid Cupid), '립스틱 온 유어 칼라(Lipstick On Your Collar)' 등 열거하기 숨이 가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트윈 폴리오(송창식‧윤형주)가 번안하여 불러 친숙한 '웨딩케이크(The Wedding Cake)'는 특별히 거론할 만합니다. 그 노래로 카니 프란시스가 우리에게 한층 더 잘 알려진 계기가 됐으니까요.
남성 듀오 중 최고 화음을 자랑한 트윈 폴리오는 에벌리 브라더스(The Everly Brothers), 사이먼과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에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활동 기간이 2년이 채 되지 않아 번안 가요만을 부른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렇더라도 음의 배합과 역할 분담(멜로디는 주로 송창식, 백화음 윤형주)에 의한 하모니, 노래의 완성도가 오리지널 곡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불러 히트한 번안 곡들은 '축제의 노래', '슬픈 운명', '사랑의 기쁨', '하얀 손수건', '웨딩케이크' 등이 있습니다. 노랫말(지명걸, 조용호, 홍현걸이 씀)도 아름다웠습니다. 지금은 아이돌 가수의 랩과 댄스음악이 가요계를 접수하고 있지만 멜로디, 리듬과 함께 노랫말도 노래를 노래답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윤형주와 송창식은 트윈 폴리오 해체 후 각자 솔로의 길을 걷습니다. 윤형주는 솔로 독립 후 '비개인 뒤 열리는 하늘같은' 맑은 목소리로 캠프 송 '라라라(조개껍질 묶어)'와 키리 테 카나와(Kiri Te Kanawa)의 노래로 잘 알려진 '연가(Pokarekare Ana‧뉴질랜드 민요)', '우리들의 이야기(Isa lei‧피지 민요)', '두 개의 작은 별(Zwei Kleine Sterne‧Heintje 노래)' 등 외국 곡을 번안하여 들려주었습니다. 또 '바보', '미운 사람' 같은 직접 작사‧작곡한 오리지널곡도 있지요. '어제 내린 비'도 있군요. 윤형주의 음색은 하이 톤이면서도 여리고 맑아 당시 젊은이들의 지친 영혼을 달래 주었습니다. 그는 '원조 팝페라 가수'로 불릴만합니다.
송창식은 또 어떠합니까. 포크 음악 명예의 전당이 설립된다면 가장 먼저 헌액돼야 할 가수입니다. 맛깔스러운 목소리와 가창력도 정상급이지만 포크 음악의 양립되는 가치라 할 수 있는 서정성과 시대정신을 동시에 갖춘 희귀한 경우인 때문입니다. 그가 1970년대에 발표하여 많은 인기를 얻은 서정적인 노래를 일람하면, '한번쯤', '맨 처음 고백', '마음엔 비오고요', '딩동댕 지난여름', '상아의 노래', '비의 나그네', '피리 부는 사나이 등입니다. 저항 정신을 담은 노래로는 '고래 사냥'과 '왜 불러'가 있습니다. 이 두 노래는 본디 젊음의 꿈과 좌절, 고뇌와 방황으로 점철되는 허접스런 청춘에 대한 찬가였습니다만 당시 엄혹한 상황과 맞물려 시대와의 불화를 담은 걸작 가요로 남게 되었습니다. 한편 송창식은 거의 예술가곡 수준의 노래도 불렀죠. '촛불' '우리는', '선운사', '푸르른 날' …….
불후의 명곡, Wishing It Was You
Tomorrow when I'm walking down the isle
I'll try to hide my heartache with a smile
'Cause when I look at him and say "I do"
In my heart I'll be wishing lt was you
So tomorrow when the chapel bells begin
I'll have to think of you as just a friend
But when I'll say those precious words "I do"
In my heart I'll be wishing it was you
내일 복도를 걸어 식장에 입장할 때
난 아픈 마음을 미소로 감추려할 거예요
그를 쳐다보며 "예'라고 서약할 때에도
마음속으로 당신이었으면 할 거예요
내일 교회 종이 울리기 시작하면
당신을 한 사람의 친구로 생각 해야겠죠
그러나 내가 "예'라고 엄숙하게 서약할 때도
마음속으로 그가 당신이었으면 할 거예요
카니 프란시스의 수많은 노래 중 팬들이 꼽는 3대 명곡은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웨딩 케이크' 그리고 '위싱 잇 워스 유(Wishing It Was You)'입니다. 이 곡들이 담긴 음반을 LP 매니아들은 꿈에도 갖고 싶어 합니다. 그 중에서도 '위싱 잇 워스 유'는 그녀의 특징이 잘 나타난 최고의 명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사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여인의 안타까운 소망을 담은 노래이니 비가(悲歌)이고 배신과 불륜의 막장 노래라 할 수 있지만 맑은 종소리와 바이얼린 현의 화음이 깔리는 가운데 카니 프란시스 특유의 투명하고 호소력 짙은 보컬과 중간에 나오는 독백이 애틋함을 더합니다.
연전 올드팝을 들려주는 찻집에서 오랜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화제가 카니 프란시스로 옮겨갔습니다. 알고 보니 물리학도인 그가 뜻밖에도 그녀의 열혈 팬이더군요. 장난기가 발동하여 메모지에 그녀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써서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메모지에 쓰인 글을 펼쳐보니 다름 아닌 '위싱 잇 워스 유'였습니다.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지요. 그와 한 층 더 가까워진 유대감을 느꼈고 말없음 속에 소통하는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옛 선인들이 말한 것처럼 걸작 예술품이나 좋은 친구를 만났을 때 희귀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지음(知音)의 경지라고나 할까. 음악은 강력한 자기장(磁氣場)을 갖고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 꽉 차오르는 충일함 속에 서로에게 이끌림을 느끼며 우리는 40년도 더 지난 '기쁜 우리 젊은 날'을 회상했답니다. Yes, those were the days!
날개 꺾인 불운의 디바
오래된 미학이론서인 동양 고전 '문심조룡(文心彫龍)'의 '용재(熔裁)편'을 보면 정채(情彩)와 형질(形質)의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원형적인 정감의 토로(정채)와 이를 추동하는 개성적인 표현기교(형질)를 일컫는 말이니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정채와 형질은 문예이론이긴 하지만 음악을 말할 때도 빌려 쓸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카니 프란시스와 장르‧창법(형질)은 다르지만 특이할 정도로 오묘한 음색에 실린 느낌(정채)을 감동적으로 전해주는 가수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 '사랑밖엔 난 몰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백만 송이 장미'로 유명한 심수봉이지요. 그녀는 어느덧 중견가수가 되었고 지금도 활동을 펼치며 대중과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뜻밖의 횡액이 없었더라면 보다 많은 곡으로 우리 가까이에서 신산한 삶을 위로해주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아니, 우리가 그녀로부터 떠나있었던 것이 아닌지 반성도 되는군요.
카니 프란시스와 심수봉, 목소리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외에도 두 사람 모두 불행의 극한을 경험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녀들에겐 '고통도 삶의 일부'라는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쉽지 않습니다. 사건의 여파로 가수생활에 지장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착잡하기만 합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가요계를 석권하며 가왕(歌王) 엘비스 프레슬리에 비견될 정도로 인기를 누리던 카니 프란시스는 1974년 투숙 호텔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아 여자로서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을 겪은 데다 유산, 배우자의 이혼요구, 동생의 피살, 성대수술로 인한 목소리 상실 등이 겹쳐 은퇴합니다. 그녀는 1980년대 초 바로 그 호텔에서 재기 공연을 갖지만 종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고 쓸쓸히 무대 뒷 켠으로 사라졌지요.
인기는 뜬 구름(浮雲)같고 거품(泡沫) 같은 것인지? 열광해 마지않던 슈퍼스타가 어느 날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지내다 우연히 그 시절을 떠올리고 문득 그런 사람이 있었음에 생각이 미칠 때 느끼게 되는 안타까움과 헛헛함이라니. 어쩌면 우리 삶과 깨달음의 이치도 그러한지 모릅니다. 진행되는 국면에 관여하지 못하고 상황이 종료된 후 한참 지나서야 돌이켜보며 그 언저리를 맴돌다 허방다리를 짚고 마는 깨달음의 연속이 아닐는지. 독일의 관념 철학자 헤겔(Friedrich Hegel‧1770~1831)은 '법철학개요' 서문에서 멋들어진 레토릭을 남겼지요. "미네르바(Minerva)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아오른다."
*<<시와 문화>> 겨울호 게재.
첫댓글 가수, 노래 가 글 속에 호명될 때마다, 눈앞에 어른대는 아련한 잊혀진 풍경, 냄새, 애수......마구 스칩니다. 중독성이 있습니다.
무궁화 강태규 시인님, 반갑습니다. 공감해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잊혀졌던 그 시절 노래가 생각납니다, 고맙습니다.
최재경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중 직접 뵙고 다시 인사올리겠습니다.
산문으로 음악을 보고, 듣고, 읽는 기쁨을 선사해줘 감사합니다. 음악과 함께 하는 삶, 산문도 마치 음악과 같이 흐릅니다.
양 주간님의 음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남다름을 저는 절 알고 있답니다. ^^
카니 프란시스....그런 가수가 있었네요. 음악엔 아주 문외한이라서....대신에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다른 층위의 목소리로 겹목소리이지만 분리되지 않는 한 목소리......내 시도 그러했으면 합니다. 다양하되 본질을 잃지않는....
최재영 시인님께 인사올립니다. 최 시인님의 시가 그런 입체성을 가진 시일 것이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