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過去)의 그림자
개봉 관제묘는 천하의 명소였다.
떠돌이 약장수들이 호객하고 있고, 그 중에는 뱀을 부리며 놀이판을 벌이는 재인(才人) 광대들도 여럿이었다.
귀한 사람, 천한 사람이 다 모인 장소.
이 곳이 강호대파인 개방의 소굴이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지라, 도검을 찬 사람은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중인 중, 시끌벅적한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는 죽립인(竹立人)이 하나 있었다. 그는 사자석상 아래 서 있었다.
사자석상은 아주 거대했고, 깎인 형용이 매우 정교했다.
그것은 개봉의 명가 굴가(屈家)에서 산신에게 바친 예물이라 했다.
굴가는 멸문된 상태였다. 그 후예가 개방에 투신하며 후예가 단절된 것이라던가?
"범창이 끝나 가는데……!"
죽립 쓴 사람은 한 손으로 사자석상을 짚고 있었다. 몹시 여유있는 자세이고, 한가한 자세였다.
'흠, 점(點)에서 점으로 이어지는 마가조직의 단점은 이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죽으면 연락이 차단되고 만다. 제칠장로는 죽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팔, 구, 십… 삼 장로를 찾지 못하게 된다.'
그는 바로 마무정이었다.
바람은 차가웠다. 그리고 후각이 예민한 마무정은 찬바람 가운데 매향(梅香)이 떠돔을 느꼈다.
양지(陽地)쪽, 매화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여간 봄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가 나타난 때는 범창이 거의 끝나 갈 때였다. 그는 매화꽃 아래서 마무정을 향해 기이한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는 사자상 아래서 나를 기다린다. 마도의 대총수! 그가 악마일지라도 천황멸살비 아래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누구일까? 거지 옷차림으로 사자석상 일대를 살피는 사람은?
그의 눈빛은 신광으로 번득거렸다.
그가 석상 아래 서 있는 마무정을 향해 눈길을 보내기 잠깐, 그의 눈빛이 묘하게 이그러졌다.
'마풍은 아니다. 신기를 띠고 있는 사람이 마풍일 리 없다.'
그의 눈빛이 여지없이 흐트러질 때, 마무정의 눈매가 가볍게 일그러졌다.
지금, 그의 눈길은 거지 차림의 중년남자에게 향해 있었다.
'놀랍군. 내공이 이미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니…….'
마무정은 묘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것은 볼품없어 보이는 거지의 몸에서 강한 내공의 힘과 더불어 원초적인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마무정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띠며 중년인을 향해 다가섰다.
중년거지는 그가 다가서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그는 알지 못한다. 지금, 그를 향해 다가서는 한 사람의 몸에 화산이 폭발하는 힘보다 더한 내공지기가 깃들여 있음을.
마무정은 그를 향해 다가섰다.
스슷-!
미풍이 일렁인 듯하더니, 마무정의 오른손에 마디 아홉 개의 허리끈이 쥐어졌다.
"마디가 아홉! 그렇다면 거지왕초인데? 훗훗, 왜 삼류거지 행세를 하지?"
웃는 마무정, 그는 찰나적으로 신투술을 써서 중년인의 가슴 안에 있던 물건을 훔쳐낸 것이다.
"이, 이럴 수가? 그대는 투도제일(偸盜第一) 야유향(夜遊香) 노인의 문하생인가? 그분은 정법회에 계신데, 그대는 정법회 사람인가?"
놀라는 거지는 바로 소의뇌개(素衣腦蓋)였다.
"정법회? 훗훗, 최근 백도를 대일통시킨 정법회 말인가?"
마무정의 입가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는 지금 강한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어느 정도 사태를 파악한 상태였다.
"훗훗… 그대는 정법회의 주구(走狗)가 되었는가?"
"주, 주구라는 말을 쓰다니… 정법회 사람이 아니로군?"
소의뇌개는 자지러졌다.
"글쎄, 이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잠깐 속였을 수도 있었겠지."
마무정은 또다시 손을 쳐들었다.
그가 이번에는 쳐드는 손은 바로 왼손이고, 불끈 쥐어진 손아귀 안에는 빛이 시뻘건 비수(匕首)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천황멸살비(天皇滅殺匕).
그것은 마기(魔氣)를 강하게 흘리는 물건이다.
마무정은 비수를 곧추세운다. 그는 손바닥으로 비수의 날을 쓰다듬는데, 놀랍게도 그의 손바닥에는 흉터 하나 생기지 않았다.
비수는 징징거리는 울음소리를 냈다.
'마비강살(魔匕剛煞)! 마가의 정통적인 마공. 바로… 저 자는 내가 두려워하던… 마도대총수이다.'
몸을 떠는 소의뇌개, 그는 바로 제칠마왕검대(第七魔王劍隊)의 장로로 안배된 사람이었던가?
지잉… 징……!
천황멸살비는 계속 사악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마무정은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도초(刀招)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역시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인데, 어떠한 자세로도 상대를 살해할 수 있는 가공스러운 도초였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백도의 수법이었다.
정반칠식(正反七式)!
마무정은 어렴풋이나마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을 능가할 검초는 오직 하나, 사천마공(四天魔功) 중의 하나인 사우마검(死雨魔劍)이었다.
사우마검의 위력은 가공하고, 위력이 미치는 범위는 방대하다.
반면, 마무정의 뇌리에 있는 이십팔 초(二十八招)의 도초는 위력이 광대하지 않은 반면 매우 정확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마무정은 무의식적으로 사우마검이 아니라, 이십팔(二十八) 필살도(必殺刀) 중 하나인 정반칠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걸려들었다.'
소외뇌개는 몸이 뻣뻣해짐을 느꼈다.
그가 대총수를 암살하기 위해 준비한 마병은 대총수의 손에 쥐어져 그의 심장을 노리는 것이다.
천황멸살비는 더 강한 마명(魔鳴)을 흘렸다.
마무정은 손가락으로 비수 끈을 툭툭 퉁기며 입술을 벌렸다.
"이것을 만든 사람은… 지금 내 휘하에 있다. 그는 마병야라고 하지!"
"그, 그가 살아 있소?"
"훗훗…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
"으음……."
"그들은 모두 너의 조상들의 벗이고, 윗사람이다!"
"……!"
"그들은… 나를 받들고 있고, 나는 그들을 위해 천하로 나섰다. 그들에게 명예라는 것을 안겨 주고, 전 마가의 한(恨)이랄 수 있는 지하무림의 수치를 씻기 위해 나는 검을 쥐었다!"
차디찬 목소리, 하나 놀랍게도 매력적이었다.
소의뇌개는 공포와 더불어 유혹을 느꼈다.
남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온화한 자세 가운데 어찌 이리도 강한 살기가 품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하늘(天)이다. 나는… 하늘 아래 있다.'
소의뇌개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마무정의 두 눈에선 번갯불보다 더한 정광이 뿜어져 나왔다.
"마가의 자랑은 역도가 없다는 것이었지. 한데, 제칠마왕대에서 반역자가 나타났다!"
"반, 반역이 아니오. 순리에 따르는 것이오!"
"훗훗… 무엇이든 좋다. 하여간… 너는 나를 거역하려 했다. 너는 방금 암살하려 했다!"
"으음……."
"나는 칠 년 전 대반역당했다! 그래서… 반역이라는 말만 들으면 치가 떨린다!"
"……!"
"제칠장로(第七長老), 하여간 그대는… 용감했다. 전 마가의 하늘인 나를… 반역하려 했으니까!"
"죽인다면… 죽음은 달게 받겠소. 그러나 개방만은 건드리지 마시오. 개방은 광대한 조직이나, 약하오. 부디… 개방만은 건드리지 마시오. 그것을 보장한다면… 자결이라도 서슴지 않겠소!"
소의뇌개는 땀을 흘렸다. 그는 자신의 죽음보다 개방을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그는 전음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마무정은 사자석상에 등을 기댄 채 그의 말을 들었다.
"개방주가 된 것은 내가 어떤 피의 숙명이라는 것을 알기 이전이었소."
"흠……."
"개방주가 되고 난 후 가부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 그분은 내가 마가의 피를 타고났다는 유서를 남기셨고… 백 년 상봉의 사연을 남기셨소. 나는 나의 피의 내력을 알고 나서 즉시 개방주 지위를 버리려 했으나, 개방 사람들이 나를 버리지 않았소. 그래서 나는 계속 개방주로 머물게 되었소!"
그의 목소리는 점점 진지해졌다.
"……!"
"생각해 보면… 돌아가신 아버님은 대총수가 나타나실 때가 나의 대(代)임을 짐작하시고, 의도적으로 나를 개방에 침투시켰던 것 같소! 개방을 대총수께 바치기 위해서!"
소의뇌개의 목소리는 점점 차분해졌다.
그는 차츰차츰 자신의 의지를 되찾아가는 것이다.
'괜찮은 자다. 죽이기에는 아깝다.'
마무정은 묘한 감정을 떠올렸다.
마가의 법에 따른다면 소의뇌개는 즉시 척살된다.
그는 죽고, 제칠마왕검대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
소의뇌개의 시체는 천분만열이 되어 개에게 먹여진다.
그리도 엄한 것이 마가법이다. 한데, 마무정은 지금 마가의 법에 저항을 느끼고 있었다.
소의뇌개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이었다.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소. 나는… 백도의 사전이라 할 수 있소. 그렇지만 않다 해도 나는 굴복했을 것이오!"
"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토하면, 대총수는 백도의 허점을 모조리 알게 되는 것이오."
"……!"
"나는 그것이 두렵소. 내가 사랑하는 백도와 개방이, 나의 입으로 인해 무너진다는 것이!"
"정말이냐? 죽는 것은 두렵지 않고 비밀 누설이 두렵다는 말은?"
마무정은 묘한 표정 가운데, 사자상에서 등을 떼어 냈다.
"그렇소."
소의뇌개는 진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의 눈과 그의 숨소리 가운데, 마무정은 본능으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마무정의 눈빛이 보다 차가워졌다.
"묻겠다. 그러니, 답하라!"
"무… 무엇을?"
"너는 마가를 수치로 여기느냐? 너의 피를 역겹게 느끼느냐?"
매우 단호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소의뇌개의 대답도 지극히 단호했다.
"아… 아니오. 자랑으로 여기오!"
"왜?"
"바로… 대총수 때문이오. 대총수는 내가 본 모든 사람 이상의 초인(超人)이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나의 가문을 긍지로 여길 수 있소. 하지만 나의 비밀 누설로 인해 백도가 무너질 것을 생각하면……!"
소의뇌개는 말을 잇지 못했다.
"훗훗… 순찰당 출신답게 세 치 혀 하나는 쓸 만하게 놀리는군."
백무엽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한 후였다.
"좋아, 제칠장로(第七長老)! 너의 작은 반역은 묻어 주겠다. 대신, 너는 내 휘하에 있어야 한다!"
그는 비수를 내밀고 있었다.
"돌려주겠다! 그리고 너의 신표를 돌려받으라는 것은 대총수로서의 첫째 명령이다."
비수 끝을 쥐고 비수 자루를 소의뇌개 쪽으로 내미는 마무정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마음에 들었다. 네가 나를 개인적으로 존경한다면, 너를 휘하에 두겠다. 물론 네게 비밀 누설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 말고 마가에 들어와라. 마가는… 네가 생각하는 장소가 아님을 한 시진 안에 알게 해 주마!"
"용… 용서라니?"
소의뇌개가 까무러칠 듯 놀랄 때, 사방이 어두워졌다.
휘휙- 휙-!
갑자기 사방에서 그림자들이 다가섰다.
소리 없이 다가서는 그림자들, 그들의 수는 거의 오백(五百)에 달했다.
"운이 좋았소, 제칠장로!"
"검이 열다섯 번이나 뽑혀질 뻔했소."
"훗훗… 우리는 제일위검대(第一衛劍隊) 사람이오!"
다가서는 그림자들 앞에는 잔풍이 있었다.
그는 굴자강의 증조부와 꽤나 친했던 사람이었다. 그도 웃고 있었다.
"마화성에 대해 알려면 술을 사야 하오, 제칠장로! 개방 거지의 술을 얻어 마신다는 것은 꽤나 재미있을 것이외다!"
다가서는 제일위검대 고수들. 만에 하나, 소의뇌개가 단도를 흔들었다면 이들의 검은 소의뇌개의 몸을 천 조각으로 잘라 버렸을 것이다.
"이, 이게 어이 된 일이지? 마가조직이 내가 생각한 그런 조직이 아니라, 신비하고 막강하며 광명정대하다니……?"
소의뇌개는 어안이 벙벙한 듯 몸을 휘청거렸다.
그 때, 마무정은 또다시 하나의 물건을 꺼내고 있었다.
"또 한 가지 돌려줄 것이 있다, 제칠장로. 사실, 네 품에서 꺼낸 것은… 세 가지였다.!"
둘둘 말린 양피지(羊皮紙), 그것은 개방의 물건이 아니었다.
양피지는 붉은 수실로 동여매어져 있었다.
마무정은 소의뇌개를 통해 백도의 비밀을 밝혀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듯 양피지를 펴 보지 않았다.
양피지는 지난밤 소의뇌개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단리청청이라는 미소녀에 의해서, 그 안에는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이런 글과 함께.
<이분이 바로 십천무후(十天武候).
이분을 급히 찾아 정법회로 모실 것!
이 명은 정법회주 입장에서 하는 것임. 천하대세가 걸린 특급명령이니, 개방의 전력을 동원해서 처리할 것!>
"거, 거둬 주시오. 아아, 당장이라도 방주 지위를 버리고… 대총수를 따르겠소. 왜냐하면 그대는 내가 꿈 속에서도 바라던 그런 영웅(英雄)이시기에……!"
소의뇌개는 양피지를 건네 받지 않고 절하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승복하고 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러했듯이…
그 주위에는 제일위검대가 벽을 만들고 있고, 또 그 주위에는 수많은 거지들이 모여 있어 대체 왜 오백여 인이 모여 한 장소를 완전 포위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해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무슨 사람들이 갑자기 저리 모였을까?"
"방주님 목소리를 들은 듯한데? 착각일까?"
개방주 지위와 제칠장로 지위!
그 자리를 선택하는 것은 소의뇌개의 자유였다.
"훗훗… 나를 너무 존경하는 것도 곤란하오, 제칠장로. 그리고 나는 그대가 나로 인해 청춘을 다 바쳐 쌓은 기반을 버리는 것도 바라지 않소!"
"예?"
"시일을 주겠소. 그러니 곰곰이 생각해 결정하시오."
"아아……!"
"지금 이 자리서 할 것은, 내게 제팔혈왕대(第八血王隊)를 찾는 길만 일러 주는 것이오. 그 외의 것은 훗날 해도 좋소!"
마무정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소의뇌개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어떤 것을 발견한 것이 그를 통쾌하게 하는 것이었다.
웅풍(雄風)이랄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북경(北京)입니다, 장소는!
-북경성의 문(門)에 주사(朱砂)로 하늘 천(天)자 세 개를 품자형으로 그리시면 그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팔마왕대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는 저도 모릅니다만, 짐작한다면 관부(官府)의 인물일 것입니다. 그는 북경성문의 주자 기호를 보고 즉시 대령한다고 안배되었습니다. 그가 나타날 장소는 바로 제왕릉(帝王陵)!
북경성(北京城)의 밤은 아름답다.
북방(北方)의 하늘은 깊이가 구만 리 되는 흑연(黑淵)마냥 검푸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뭇별은 그 안에서 꺼져 버릴 듯 반짝이고 있었다.
강은 풀린 여인의 허리띠마냥 풀어져 광야(曠野)를 달리고 있고, 그 가에는 말라 죽은 갈대가 무성히 자라나고 있다.
저 먼 곳에는 자금성(紫金城)의 성곽이 보이고 있다.
구소(九所)가 칠흑일 때, 돌연 검은 하늘이 새 울음소리로 시끄러워지며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강기슭으로 떨어져 내렸다.
꾸우… 우……!
한 마리 거응(巨鷹), 그것은 날개의 길이가 오 장(五丈)에 달하는 묵철섬응조(墨鐵閃鷹鳥)였다.
새는 성이 떨어져 내리듯 강가로 떨어져 내렸다.
새의 등, 화려한 황금 안장이 달려 있고 그 위 미끈하게 생긴 장부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위검대를 떼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자네 비천옹(飛天翁)을 타고 떠오르는 것임을 내가 왜 진작 몰랐단 말인가!"
맑은 웃음을 떨구며 새 등에서 일어선 청년, 바로 그는 개봉부를 떠난 마무정이었다.
비천옹(飛天翁), 거대한 묵철섬응조는 제사비천장로인 백수란이 그에게 기증한 거조였다.
하루에 만 리(萬里)를 난다는 거조.
마무정이 새를 타고 다니기로 작심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의 장도를 앞당기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늘 자신의 그림자가 되어 천리추종하는 제일위검대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새 등에서 사뿐히 뛰어내렸다.
강물은 큰소리를 내며 흘렀다.
"강물이 불어 났다는 것은 강물의 원류에서 눈(雪)이 녹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봄이 가까운 데 있다는 증거이다!"
마무정은 강물 쪽으로 다가갔다.
'이 곳이 왜 이리 낯익을까?'
마무정은 아주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분명 여기 처음 와 보는 것인데, 어이해 이 곳 기억이 소상히 날까?'
마무정은 강물에 유혹되고 말았다.
쏴아아… 쏴아아……!
격탕이 되어 흐르는 물, 그 물가에는 폐허(廢墟)가 된 장원이 한 채 서 있다.
한때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각으로 소문이 났던 곳.
화영밀원(華影密院).
그 곳은 이 년 간 들쥐굴이 되고 말았다.
마무정은 그 곳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는 마박사에게 들은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총수가 꼭 찾아야 하시는 분 중 한 분이 바로 옥화삼(玉花衫)이십니다. 그분을 찾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의 말도 떠오른다.
-네게 이 여인을 주노라! 이름은 화영! 영락제의 누이로 천하제일의 기녀(天下第一奇女)! 운명적으로 너와 맺어질 여인이며, 바로 옥화삼(玉花衫)이다. 꼭 그녀를 찾아라!
마무정은 주화영에 대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 년 전 북경에서 실종되었다는 것, 실종의 배후에는 북검왕(北劍王)과 남도제(南刀帝)의 배후 조종이 있기 쉽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것 등등…….
한데, 지금 마무정이 느끼고 있는 정서는 달랐다.
그는 마화성이나 절대마가에서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마음 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를 본 듯… 느껴진다!"
마무정은 마른침을 가볍게 삼켰다.
그는 손을 들어 뒷머리를 만졌다.
뇌호혈(腦戶穴)의 부위에는 작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 상처에는 너무나도 많은 비밀이 있다.
그리고 강 너머의 화영밀원(華影密院)과, 갈대로 덮인 강가에는 그를 빨아들이는 어떤 힘이 있었다.
'아아, 영락제라는 이름이 맴돈다. 그는 당세 천자인데, 왜 그의 생각이 자꾸만 나는 것일까? 그리고… 그를 본 듯하다는 생각도 나고…….'
마무정은 이상한 고독감을 느낀다.
거조는 이미 날아가 버렸다. 새는 그가 휘파람이나 장소성을 외쳐야만 떨어져 내릴 것이다.
그는 이미 수만 명의 휘하제자를 거뒀다. 한데,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한 것일까?
'마도대총수인 내가 과거로 인해 공허감을 느끼다니…….'
그는 참지 못할 격분을 느꼈다.
'과거… 그 놈을 이 순간, 때려 죽이고 싶다.'
그는 입술을 질겅 물며 화영밀원을 유심히 바라봤다.
세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영락제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 그 중 한 사람은 그의 정변을 배후에서 도운 천하제일부(天下第一富) 천금왕야(天金王爺)이고, 또 한 사람은 영락제가 각별한 정을 주었던 화영군주이다!
천금왕야는 영락제가 제위에 오른 후, 세상에서 은거했다. 그는 천자에게 수천만금을 바쳤다고 했다. 그는 북경성 근처에 장원을 짓고 은거해 살며, 간혹 황제를 찾아가 만나곤 한다고 했다.
그리고 화영군주는 황제를 버리고 도망간 군주로 알려졌다.
강호인들이 그녀에게 마성을 불어넣었다던가?
그녀는 다시는 자금성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쏴아아… 쏴아아……!
물 흐르는 소리가 꽤나 커졌다.
"당분간은… 잊자! 모든 것을!"
마무정은 손을 활짝 폈다.
부우… 웅… 웅……!
순간, 다섯 손가락이 부르르 떨리며 기이한 향(香)이 일어났다.
혈옥(血玉)과 같이 붉게 투명(透明)해진 다섯 손가락.
마무정은 지금 뇌정마라궁(雷霆魔羅弓)이라는 총수비전(總帥秘傳)의 마공을 끌어올린 것이다.
"내 스스로 내 혈을 제압해, 당분간이나마 심마에서 벗어나자!"
마무정은 뇌정마라궁의 진기가 모인 손가락으로 양쪽 태양혈(太陽穴)을 강하게 짚었다.
세 척 두께의 철을 녹일 진기가 태양혈로 흘러들며 마음이 차츰차츰 맑아지기 시작했다.
강(江)은 쉬지 않고 흐르고, 흑무(黑霧)에 휘감긴 자금성에서는 간혹 가다가 북소리가 들려 왔다.
"기적입니다! 저 놈을 여기서 보게 되었다는 것은……!"
"조심해서 다가섭시다! 놈은 강하고, 빠른 놈이오!"
십영(十影), 열 개의 그림자가 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거의 소리도 없이, 그림자들은 갈대숲을 지나쳐 가며 방사형으로 퍼지고 있었다.
십천마황진(十天魔皇陣)이라 일컬어지는 가공할 진세가 암중에 형성되기 시작했고, 살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천금왕야(天金王爺)를 찾아가서 군주(君主)가 맡겨 두었던 기진이보와 황금 천만 냥(兩)을 찾는 일보다 저 놈을 잡는 일이 더 급하오!"
"저 놈은 바로 그 가짜 놈의 휘하요. 꼭 잡아야 하오!"
스으으… 스으…….
열 사람은 진세를 구 성 정도 구축했다. 그들은 그를 두려워하는 듯, 원거리에서부터 진세를 구축해 나갔다.
죽은 잎을 밟지 않는 이유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함이고, 바람이 불어 닥쳐 오는 방향으로 회전하며 가는 이유는 바람 소리 가운데 맥박 소리를 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무엽, 저 더러운 자객(刺客) 놈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하여간 뛰어난 놈이오. 그렇게 다치고도 멀쩡하다니……!"
"놈이 다시 북경에 올 줄이야? 하필이면 군주를 보필하는 우리 열 사람이 해남도(海南島)를 떠나 북경에 당도한 이 때에!"
"과거에는 놈을 두려워했으나, 이제는 다르다. 훗훗, 우리는 이 년 간 지옥훈련을 거쳤다!"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강기슭, 마무정은 두 손가락으로 태양혈을 누르며 심마를 제압해 나가다가 입가를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마음의 마(魔)를 씻는데, 강물보다는 뜨거운 핏물이 좋다는 것을 아는 무리가 있단 말인가?"
그의 입가에는 조금 사악해 보이는 웃음이 떠올랐다.
스… 스스… 스…….
그는 아주 경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람 소리에 파공성을 숨기고 있다.'
그는 수를 헤아리고 있었다.
'하나는 동쪽에서, 하나는 서쪽에서…….'
그의 미소는 점점 아름다워졌다.
'둘은 물 속으로, 둘은 지행술(地行術)을 써서 다가선다. 놀랍게도 마가비전의 진식이다.'
마무정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다가서라! 훗훗……!'
그의 웃음은 더욱 미묘해졌고, 일순 파공성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모두 섰다. 이미 진세를 완전히 구축했기 때문이다.'
마무정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뜬다.
일순, 그의 두 눈에서는 섬뜩한 전광(電光)이 뻗어 나갔다.
주위에는 메마른 갈대가 부서져 생기는 먼지 바람뿐이었다.
더 있다면 유심하게 흐르는 강물과, 하늘 위의 이지러진 달덩이, 달빛으로 인해 길게 드리워진 마무정의 그림자.
'나는 유명인이 아닌데, 나를 찾다니? 설마, 내가 기다리던 십마가(十魔家) 양반들인가? 훗훗, 나는 귀신같이 숨은 그대들을 찾을 요량으로 나의 군사인 마박사의 조언에도 아랑곳 않고 죽립도 쓰지 않았네!'
마무정은 아주 느긋하게 팔짱을 꼈다.
우연일까? 그의 시선이 갈대 우거진 곳으로 향해지는 것은?
비웃는 듯한 시선이 흐르고, 주위에는 매우 강한 살기가 격렬히 흐르기 시작했다.
"알다니……?"
"과거보다 더 강해졌군."
"으음, 예전에는 공기같이 허무하더니… 이제는 쇳덩어리 마냥 단단한 기도(氣度)로군?"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꾸역꾸역 나타나는 그림자들의 수는 아홉이었다.
"네놈을 죽여 눕혀 놓고 검으로 뱃가죽을 그어 오장육부를 다 드러낸다 하더라도, 네놈의 뱃속은 정말 모를 것이다!"
"대체 네놈은 누구냐? 자객이냐, 귀신이냐?"
스슷- 슷-!
아홉 사람은 완전히 나타났고, 마무정은 여전히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켰다.
"열 마리 쥐 중 한 마리가 남았다. 왜 나를 찾는지 모르나, 기왕이면 열 마리 다 나타나라!"
그는 잔혹히 말하며 힐끔 시선에 힘을 준다.
번- 쩍-!
그의 두 눈에서는 푸른 섬광이 폭사된다.
순간.
"제기랄, 눈치 빠른 놈! 노부마저 알아보는군? 네놈이 죽는 꼴을 ꠑ보고 싶지 않아 누워 있으려 했더니만… 클클……!"
쩌어어… 억… 쩍……!
흙이 갈라지며 흑의인 하나가 나타났다. 그는 왼손목이 잘린 사람이었는데, 매우 기괴한 병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병기는 새조롱(鳥籠)이었다.
"크크… 오랜만이다. 노부 천하유자(天下遊子)는 이 년 동안 네놈이 죽었다 여기고, 네놈이 죽은 날이 되면 그래도 눈물 한 방울은 아까워하지 않고 흘려 주었는데… 네놈은 죽지 않고 살아있었구나?"
땅 속에 매복했다가 나타난 사람은 천하유자라는 천하제일복(天下第一卜)이었다.
나타난 십 인, 이들은 화영군주의 십대천장(十大天將)이었다.
적지염후(赤地焰侯),
폭풍무객(暴風武客),
천하유자(天下遊子),
청룡검후(靑龍劍侯),
무적도후(無敵刀侯),
철판후(鐵板侯),
통천비후(通天飛侯),
고루천후(古陋天侯),
음살진인(陰煞眞人),
구유대제(九幽大帝)!
열 사람은 매우 복잡한 눈길을 가졌다.
혼탁하다 할까? 이들은 가없는 격정(激情)에 휘말렸다.
'천하에서 가장 신비한 녀석이다. 저 놈은…….'
'백무엽, 놈은 군주를 암살할 수 있었는데도 손을 멈췄고… 그 때문에 군주는 살았다. 그 때 왜 검을 멈췄을까?'
'천하인은 모르나, 저 놈이야말로 천하제일의 독종(毒種)이다.'
열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반면, 마무정은 그들이 시전한 진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 자들은 마가비전의 진세를 펼쳤다. 그렇다면… 이 자들은 바로 내가 꿈에서도 찾아다니는 마유정, 그 반역자의 제자들이리라.'
그는 강호에 나온 이후, 처음으로 살기를 느꼈다.
피(血), 뜨거운 피가 끓어오른다.
'나를 안다는 것은 바로… 과거 나를 반역한 무리에 속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마무정은 야릇한 미소를 짓다가 입술을 떼었다.
"너희들 상전은 잘 있느냐?"
그는 마유정을 뜻하며 물었다.
"훗훗… 그래도 한 가닥 예절은 있군. 그분은… 잘 계신다!"
천하유자는 십대천장의 대표로 대답했다.
그가 뜻하는 상전은 화영군주였다.
묘한 오해! 그리고 달은 돌연 검은 구름에 휘감겼다.
"잘 있다니… 반갑군! 내가 죽이기 전, 죽었을까 봐 은근히 걱정을 했다!"
마무정은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훗훗… 네놈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때 죽지 않아 다행이다!"
천하유자의 눈에서도 불길이 토해졌다.
"훗훗… 너희들은 위대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마화삼을 위해!"
마무정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클클… 역시 그 놈 휘하로군?"
"고얀 놈, 그래도 네놈에 대해 일말의 희망은 갖고 있었는데… 역시… 역시……!"
"으음, 전과는 다르구나. 네놈은?"
십대천장은 천천히 진세를 발동시키려 했다.
한순간, 진세의 핵(核)을 이루고 있는 천하유자가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는 아직도 상대에게 미련을 남기고 있었다.
그는 인간을 믿기보다는 관상과 신복학을 믿는다.
그는 손끝을 가늘게 떨며 마무정의 눈을 응시했다.
마무정의 눈은 차고 깊었다. 그의 눈을 보면 꽤나 두꺼운 얼음벽을 느끼게 된다.
'역시 무서운 눈이다. 전보다 더 신비해졌다.'
천하유자는 등골이 쭈뼛해짐을 느꼈다.
'저 눈을 보면… 영혼이 빨려드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백무엽(白武葉), 도(道)는 늘었으되 예(禮)는 사라졌군?"
천하유자가 빈정댈 때, 이제껏 차디차기만 하던 마무정의 눈빛이 흔들렸다.
"백… 백무엽이라니?"
그가 상체를 약간 휘청였다.
"훗훗… 갑자기 왜 그러느냐? 설마, 네 이름마저 잊어 버렸단 말이냐?"
천하유자는 도리어 실소를 터뜨렸다.
'백무엽이 나란 말인가?'
마무정은 찰나적으로 피가 역류함을 느꼈다.
갑자기 머릿속이 빙빙 돈다 할까?
-제십좌(第十座), 너의 화명(花名)은 무화과(無花果). 네게 과거는 없다!
갑자기 머릿속이 그런 목소리가 천둥치듯 뒤흔들렸고, 천년공력(千年功力)이 돌연 뒤흔들렸다.
"으으, 내가 누구라고?"
그는 격한 두통을 느끼고 소리쳤고, 바로 그 순간 십대천장 중 성격이 가장 거친 청룡검후(靑龍劍侯)의 팔이 쳐들렸다.
차아아- 앙-!
날카로운 검명이 일며 허공에 한 마리 푸른 용이 날아올랐다.
"청룡마무(靑龍魔舞)!"
오 장(五丈) 안이 찰나적으로 푸른 검막에 휘감겼다.
파- 파-파- 파-!
수천 개의 검화가 푸르게 피어나며 마무정의 팔방이 검기에 의해 완전무결하게 차단되었다.
고수들 사이의 싸움에서는 일순의 허점도 생사를 나누는 분수령이 된다.
"죽이는 데에는… 긴 말이 필요 없지!"
청룡검후는 소리치며 검세를 더욱 강하게 했고… 마무정은 검기가 골수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는 찰나, 저도 모르게 한 가지 구결을 외우고 있었다.
화허무영(化虛無影) 비잠(飛潛)!
전광처럼 뇌리를 스쳐 가는 구결.
마무정은 그것을 기억하는 찰나, 그에 따라 몸을 돌리고 있었다.
스으으- 슷-!
돌연 그의 몸은 검은 안개로 부서져 버렸고, 흑풍(黑風)이 모질게 부는 가운데 사방이 어두워졌다.
바로 그 순간, 청룡검후의 검은 허공을 난도질하는 가운데 공허한 검화만 수만 개 현란히 피어냈다.
파파- 팟-!
"흐으으, 귀… 귀신 같은 놈!"
"으으, 바로 인술(忍術)이다!"
"어… 어디로 숨었는지 모를 정도로 신법이 뛰어나다니!"
십대천장은 백무엽으로 여기던 자의 모습이 돌연, 검은 안개로 부서져 버리자 자지러지고 말았다.
휘이이- 잉- 휘잉-!
검은 바람이 사방에서 뿌려졌고, 십대천장은 사슬에 조여지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가운데, 십 인의 혈맥 속으로 차디찬 한기가 파고들고 있었다.
"어쩐지… 너희들하고 할 말이 많아질 듯하다. 천백 일(日)의 꿈에 대해, 너희들은 무엇인가 내게 알려 줄 듯하다!"
아아, 마무정의 목소리가 아닌가?
그는 진의 주축 부위에 이르러 손을 가볍게 휘젓고 있었다.
스슷- 슷-!
"눕게들! 아주 편히!"
사우마검(死雨魔劍)을 장초로 변화시킨 사우마변환십팔장(死雨魔變幻十八掌)!
동서남북 사방에 장영이 휘날리고, 찰나적으로 백팔 방위(方位)에 장인(掌印)이 찍혀지는 가공할 초식이다.
파- 파- 팟-!
"헛!"
"으으, 당했다!"
"너… 너무 빠르다!"
"제기랄, 또 당하다니!"
십대천장은 단 일 초도 저항하지 못하고 허리를 꺾으며 하나 둘 쓰러졌다.
마무정은 그제서야 검은 안개를 거두며 서서히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또 내가 알지 못하는 초식을 썼다.'
그는 승리감에 취했다기보다는 심마에 강하게 잡혀 괴로워진 듯 보였다.
그가 가랑잎이 떨어지듯 표표히 떨어져 내릴 때였다.
"오만하고 방자한 자객 놈!"
돌연, 여인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둠 가운데 또 누군가 나타나고 있었다.
검을 쥐고 강물 위로 떠오르는 흰 그림자 하나!
"여기도 사람이 있다!"
보라! 한 줄기 검기(劍氣)가 어둠을 찢고 다가서는 것을.
흰 그림자는 달빛 속으로 숨는 가운데, 검이 그의 손을 떠나 허공을 갈랐다.
"옥화어검(玉花馭劍)!"
콰아아- 앙- 쾅-!
천 마리 백룡(白龍)이 동시에 날아드는 듯, 일대가 찬란하게 밝아지며 마무정의 입가가 갑자기 일그러졌다.
ꠑ그는 기겁하며 상체를 꺾고 있었다.
"이… 이것은……."
그는 자지러지며 손을 쳐들었고, 검은 그의 손에 들어왔다.
바로 그 순간, 사방에서 폭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시작되엇다.
콰르르- 릉- 쾅-!
흰빛 우레(雨雷)가 손에 쥐어지는 듯, 손이 돌연 화끈거리는 가운데 사방에서 흙보라가 피어 올랐다.
수십 길로 치솟는 불기둥!
그리고 마무정의 몸은 기류를 타고 십오 장 높이 떠올랐다.
콰앙- 쾅- 쾅-!
일대벽력 가운데, 저 먼 곳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호호… 그 때 내 이마를 자를 검을 늦추어 준 보답으로… 호호! 불고기가 되는 꼴은 면하게 해 주마. 호호! 사연은 검에 적었다!"
차갑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백여 장 밖에서 들렸다.
"이것은 바로 나의 내자(內子)감으로 안배된 옥화삼에게만 전해진다는 옥화어검술(玉花馭劍術)이었다!"
마무정의 손에는 보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은수술이 탐스러운 보검, 그것은 바로 옥화삼의 신표였다.
그는 검을 불끈 쥔 채 주위를 한 바퀴 둘러봤다.
"고얀 계집, 낭군을 불고기로 만들려 하다니… 훗훗……!"
흙이 뒤집어졌고, 갈대밭이 초토로 화했다. 사람의 존재는 없고, 차가운 밤공기 가운데 매캐한 초연만이 흐르고 있었다.
쓰러졌던 열 사람은 독단이 터지는 찰나, 사라져버린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