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민요전집> 음반 발간 과정 및 그 내용에 관하여
한반도의 민요를 종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민요 뿐아니라 북한의 민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남한에서는 북한의 민요 자료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북한 민요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고, 따라서 남북한의 민요를 통괄하는 연구도 매우 부족했다. 자료 중에서도 특히 북한 현지에서 녹음된 토속민요 음성자료가 전무하여 연구에 많은 애로가 있었다. '한국민요대전' 사업으로 남한지역의 민요 녹음자료를 집대성한 바 있는 문화방송은 북한에서 현지 녹음된 민요자료를 정식 입수하여 최근 '북한민요전집 - 북녘 땅 우리소리'(1집~4집. 2004. 5~2004. 8. 서울음반)라는 제목의 음반을 출간한 바 있다.
필자는 북한 민요 녹음자료의 입수 및 음반 출간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음반 출간의 과정와 음반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북한민요 녹음자료 입수 과정
문화방송의 '한국민요대전' 사업은 그 영역이 남한으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의 민요를 아우르지 못했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지역을 직접 취재하는 것이었으나, 남북관계의 여건상 지금까지 토속민요의 직접취재는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다.
필자는 그 대안으로 1992년부터 간헐적으로 중국 요녕성, 길림성 지역의 북한지역 출신 동포(조선족)들을 대상으로 북한민요 취재를 시도하였으나, 그 성과는 미미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나이 많은 노인들일지라도 대부분 중국 이주 2-3세대였기 때문이다.
특히 연변자치주 이외의 지역에 살던 동포들은 거의 집단을 이루고 살지 못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토속민요를 전승하기 어려웠다.
북한민요를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으로 남한에 있는 실향민들을 대상으로 시도한 북한민요 취재 역시 625 전쟁 당시 집단이주한 몇몇 실향민 마을을 제외하고는 성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집단이주가 아닌 개별적인 실향민들로부터 민요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실향민 중에서 우리 토속민요의 근간을 이루는 농업노동요와 어업노동요를 부를 수 있는 농어민의 비율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와 같은 시도를 하는 한편으로 틈틈이 북한에서 출판된 '조선민요곡집' 등의 민요악보집을 구해 보면서 북한민요 녹음자료의 존재를 예측하기에 이르렀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녹음자료 없이 악보집의 발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후반부터 여러 경로를 통하여 녹음자료의 존재와 입수 가능성을 타진한 나머지, 결국 2002년 3월, 북한의 문예자료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중국 소재의 한 출판사를 통하여 녹음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다.
북한민요 음원은 마그네틱 릴테이프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필자도 녹음테이프 현물을 본 적이 없다. 필자는 북측의 실무자들로 하여금 이를 최대한 성능좋은 릴녹음기를 사용하여 재생하여 DAT로 복사하도록 한 뒤 그 사본을 인수하였다.
녹음테이프와 함께 수작업으로 작성된 민요 목록이 따라 왔는데, 여기에는 일련번호, 종류, 작품명(곡명), 녹음지역, 연주가(가창자), 출처(DAT타임코드) 등이 기재되어 있다. 녹음지역과 녹음일자는 뒤에 한 차례 보완되었으며, 자료정리 과정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민요 몇 가지는 북한 학자에게 문의하여 내용을 파악하기도 했다.
2. 북한민요 녹음자료의 내용
북한 민요 녹음자료는 토속민요와 전문가소리(통속민요)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속민요는 북한이 1970년부터 1983년까지 주로 음악 분야의 학자들을 동원하여 현지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것으로, 녹음된 자료는 민요가 대부분이지만, 판소리, 단가, 무가(巫歌), 유행가 등도 간혹 포함돼 있다.(북한 토속민요의 수집 과정 및 악보집 출판 현황에 대해서는 『북한의 전통음악』(2002. 서울대학교출판부) 참조)
전문가 소리는 김진명, 장재천, 한경심, 김관보 등 당대의 알려진 소리꾼들과 그 후계자들을 상대로 하여 간단한 장구 반주를 곁들여 녹음한 것으로, 녹음시기와 장소는 기록돼 있지 않다.
이 자료 중에는 서도소리 뿐아니라 당대에 유행하던 남도민요, 신민요, 시조, 단가 등도 들어있으며, 서양식 창법과 비슷한 현대적 창법을 구사하는 젊은 소리꾼들의 노래도 많이 수록돼 있다.
녹음된 곡수는 약 5,000여 곡이며 총 녹음시간은 약 150시간 정도이다. 이 중에서 85% 정도가 토속민요이다. 지역별로 자료의 양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곡수를 개략적으로 말하는 이유는 잡다한 자료가 많이 섞여 있어서 곡수를 정확하에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안북도 305곡, 평안남도 305곡, 평양시 120곡, 남포시 50곡, 자강도 90곡, 황해북도 480곡, 황해남도 500곡, 해주시 25곡, 함경북도 135곡, 함경남도 140곡, 양강도 70곡, 강원도 190곡, 경기도 개성시 35곡 등이다. 황해도 지역의 민요가 가장 많고, 다음이 평안도, 강원도, 함경도 순이다. 강원도는 휴전선 이북의 얼마 되지 않는 지역인데도 곡수가 많은 편이다.
녹음자료의 음질은 토속민요의 경우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기본적으로 모노(mono)로 녹음돼 있으며, 각종 전기적 잡음과 물리적 잡음이 들어있어 자료 가운데는 거의 알아듣기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민요 채록에 숙달된 사람이라면 대체로 80% 이상은 알아들을 만한 수준이다. 녹음 당시 릴녹음기를 사용하였다고 하므로 원본의 음질은 매우 좋았을 것이나, 원본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고 테이프를 재활용하기 위하여 다른 테이프에 누차 복사하는 과정에서 음질의 열화가 심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소리는 토속민요에 비해 대체로 음질이 좋다.
녹음된 민요의 길이를 평균해 보면 곡당 약 1분 40초 정도이다. 단순 반복되는 장절형식의 민요는 대체로 짧게 녹음된 반면, 하나의 곡으로 이어지는 통절형식의 민요는 상대적으로 길게 녹음되었다.
장절형식의 민요의 길이가 짧은 것은 녹음에 참여한 학자들이 대부분 음악 전공자들이었기 때문에 민요의 음악적 측면에 주안점을 두어 반복되는 노래를 길게 녹음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테이프의 수급 등 녹음당시의 여건상 장시간의 녹음이 불가능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소리꾼들의 노래 길이도 대체로 짧은 편이다.
녹음된 민요는 대부분 혼자 부른 것인데, 이는 원래 독창 형식이어서가 아니라 후렴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거나 진행자가 그렇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 또한 민요의 녹음이 녹음자료 그 자체보다는 악보의 채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혼자 부른 노래도 채보에는 지장이 없기 때문에 조사자가 굳이 여럿이 부르도록 유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말이다. 하지만, 녹음자료 중에는 단순반복되는 민요라 할지라도 메기고 받는 선후창 방식을 잘 살려 제대로 부른 곡도 더러 있다. 한편, 전문가소리(서도민요)는 대부분 혼자 부른 곡들이지만, 드물게 '논매는소리', '터다지는소리'와 같은 노동요를 여럿이 함께 부르기도 했다
북한민요 녹음자료의 성격과 관련하여 덧붙이고 싶은 것은, 민요를 부를 때 흥겨움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녹음자료에는 녹음 상황이 거의 기록돼 있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당시의 제반 조사여건이 썩 좋지 못했거나 조사자들이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한 채 조사작업에 투입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조사자에 따라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능숙하게 가창자들의 노래를 유도한 경우도 있다.
3. 출판 작업
북한민요전집의 출판 작업에는 2년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었다. 자료량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녹음자료의 음질이 좋지 않아 가사 채록과 음질개선 작업에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민요 가사와 해설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데도 시일이 많이 걸렸다. 출판작업의 세부 내용을 작업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자료 정리
자료의 기초적인 정리는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인 '엑셀'의 간이 DB기능을 사용하였다. 곡마다 곡번호를 부여하고, 민요의 종류(대분류, 중분류, 소분류), 곡명(표준분류명, 기록된 곡명), 가창자 신상(이름, 성별, 나이), 녹음지역(도, 군, 마을), 녹음일시, 곡길이, 등급(자료가치, 녹음상태) 등을 기록하여 자료 선별에 활용하였다.
전문가 소리는 세 곡의 노동요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흥요로서 대략 평안도민요, 황해도 민요, 중부민요, 잡가, 기타로 분류하였다.
나. 선곡 및 배열
음반에 넣을 곡의 선곡은 민요를 우선 도(道)별로 모은 뒤 종류에 따라 나누고 다시 곡의 등급 순위에 따라 골랐다. 자료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곡들은 대부분 포함하였으나, 음질이 너무 열악하여 가사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몇몇 곡은 어쩔 수 없이 빼버린 것도 있다. 일반인들이 부른 민요 가운데서는 통속민요보다 토속민요를 위주로 골랐다.
선곡된 곡의 배열은 '한국민요대전'에서 사용하는 민요분류법에 따라 노동요, 의례요, 유흥요, 기타 민요의 순으로 하고, 노동요는 다시 농업노동요, 어업노동요, 기타노동요로 나누어 실었다.
전문가 소리는 신우선, 계춘이, 선우일선, 홍탄실, 왕수복 등 현대적인 창법이 가미된 소리꾼들의 노래는 제외하고 전통성이 인정되는 김진명, 장재천, 한경심, 김관보, 위상심, 김병국의 노래만 선곡하였다. 배열은 각 장르의 분량을 가늠하여 먼저 노동요, 평안도민요, 잡가를 한데 묶고 나머지 황해도민요, 중부소리, 산타령, 독경을 한데 묶어 배열했다.
다. 가사 채록
가사는 대부분 필자가 녹음을 듣고 직접 채록했으나, 분명하지 않거나 알아듣기 어려운 부분은 '조선민족음악전집' 등의 악보를 참고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녹음자료 중에는 악보집에 없는 곡들도 많았고, 악보집에 수록돼 있더라도 1절만 채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전체 가사를 채록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이 과정에서 기존 악보집에 실린 민요 가사가 실제 녹음과 다른 부분이 많이 발견되었다.
악보가 실제 녹음과 다른 원인은, 당시의 채록자가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여 잘못 표기했거나 적당히 적어넣은 부분도 있고, 제대로 알아들었더라도 가사가 어법에 맞지 않거나 그대로 적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고쳐 넣은 부분도 발견된다.
라. 해설원고 집필
토속민요의 지역별 민요개관과 개별 민요의 해설은 필자가, 토속민요의 지역별 음악 분석은 김정희(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석사)과정)가 맡아 집필했다. 김정희의 글은 남한과 북한의 대표적인 민요 분석 방법론을 절충하여 새로운 분석의 틀을 제시한 것으로, 이 분야의 연구방법론의 발전에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전문가소리(통속민요)의 가창자 약력과 곡해설은 조유미(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박사, 이화여대 강사)의 원고를 기반으로 하여 필자가 필요한 부분을 가필했다. 토속민요의 해설은 민요의 기능에 주안점을 두고 기술하였으며, 그밖에 가사와 곡조에 특징이 있거나 남한 민요를 포함하여 다른 곡과의 연관성이 파악될 경우 이를 덧붙여 기술하였다.
북한민요 녹음자료 중에는 민요의 기능에 대한 기록이 분명치 않아서 실체 파악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평안도지방의 '호미소리'는 대부분 '김매는소리'로 표기되어 있는데, 김매기가 논김매기인지 밭김매기인지 분명치 않다.
이 경우 가사의 내용을 정밀하게 검토하여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었으나, 가사만으로 구별되지 않는 곡도 있었다. 북한에서 김매기에 논/밭의 구별이 없는 것은 그들의 민요 분류체계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호미소리'가 논/밭김매기에 두루 사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 음질개선 및 편집
음질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은 Sound Forge 라는 컴퓨터 사운드편집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였다. 음원에 섞여 있는 잡음은 대부분 '부웅-' 또는 '치익-'하는 소리인데, 이는 두 대의 녹음기를 전선으로 연결하지 않고 한 녹음기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다른 녹음기의 마이크로 재녹음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잡음은 가창자의 목소리가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제거했다.
또, 복사 과정에서 녹음기 회전수의 차이로 소리가 지나치게 느려지거나 빨라진 곡들은 적당한 속도로 보정하였다.
노래의 길이가 대체로 짧았기 때문에, 길이를 조절하기 위한 편집은 거의 하지 않았고, 곡의 앞뒤에 있는 잡음을 잘라내는 정도에 그쳤다.
바. 패키지 구성
북한민요전집은 총 10장의 음반을 4개의 패키지로 묶어 출간하였다. 1집은 평안남북도/평양시/남포시편 CD 3장이며, 2집은 황해남북도편 CD 3장, 3집은 함경도/자강도/양강도/경기도/강원도편 CD 2장, 4집은 전문소리꾼편 CD 2장이다. 3집에서 자강도 지역은 대부분 평안도에 속했던 곳으로 민요의 내용도 평안도와 비슷하나, 1집의 수록곡수가 넘쳐 편의상 3집으로 넣었다.
사. 영문 번역
북한민요전집의 가사와 해설은 해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영문으로 번역하여 실었다. 번역자 이종찬은 미국에서 작곡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으로, 특히 음악 이론과 용어에 정통하여 해설부분은 충실한 번역이 되었다. 다만, 민요 가사는 사투리와 와전된 부분이 많아 의미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완벽한 번역을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가사 전문을 번역하지 못하고 가사의 일부 또는 대강의 의미를 요약 번역하였다.
4. 북한 토속민요의 종류와 지역적 분포
북한의 민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북한 민요의 배경 및 기능에 관한 인류학적 자료를 집중적으로 섭렵해야 하는 한편, 남한의 민요와 음악적, 문학적으로 정밀하게 비교 연구해야 한다. 필자로서도 아직까지 본격적인 연구단계에 와 있지 못하므로, 여기서는 북한민요전집 음반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파악된 북한 토속민요의 종류와 지역적 분포 상황에 대해서만 개략적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전문가소리(서도소리)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도 전문가가 여럿 있을 뿐아니라, 서적이나 음반으로 여러차례 출판된 적이 있으므로 굳이 필자가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가. 북한 토속민요의 종류
북한민요전집에는 그 동안 남한에 알려지지 않았던 토속민요가 상당수 수록돼 있다. 여기서는 북한민요전집(1~3집)에 수록된 토속민요를 중심으로 남한 민요와 대비되는 북한 토속민요의 종류와 특징을 개략적으로 기술한다. 북한 민요의 분류와 배열은 역시 '한국민요대전'에서 사용하는 민요분류표에 따르며, 남한지역에 없거나 드문 종류의 민요는 밑줄로 표시하고, 남한식 명칭과 다를 경우 이를 괄호 안에 표기한다.
1) 노동요
-농업노동요: 농부가, 감내기(=거름내는소리-감내기), 밭가는소리, 쇠스랑소리(=논/밭일구는소리), 가래질소리(=논둑가래질소리), 밟아소리(=씨뿌리는소리), 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물푸는소리, 메나리(=논/밭매는소리-메나리), 기나리(=논/밭매는소리-기나리), 타령(=논/밭매는소리-타령), 논김매는소리(=논매는소리), 밭매는소리, 호미소리(=논/밭매는소리-호미소리), 풀베는소리, 낫소리(=나무/풀베는소리), 벼베는소리, 볏단묶는소리, 도리깨소리, 키질소리(=벼드리는소리)
-수공노동요: 풀무소리, 방아소리, 메질소리, 작두소리(=풀써는소리), 절구질소리, 망질소리(=맷돌질소리), 물레질소리, 삼삼이소리(=삼삼는소리), 베틀소리(=베틀노래=>기타민요)
'쇠스랑질소리'의 경우, 남한에도 모내기 때 쇠스랑으로 논을 고르면서 하는 노래로 강원도의 아라리 등이 채록된 바 있으나, 북한의 쇠스랑질소리는 독특한 곡조와 가사를 가지고 있어 독립된 유형으로 분류될 만하다.
'밟아소리'와 대비되는 남한의 민요라면 제주도에서 좁씨를 뿌린 후 조랑말떼를 몰아 씨앗과 흙을 밟아주면서 하는 '밭밟는소리'가 있으나, 세부적인 기능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판단된다. 풀을 베면서 하던 '낫소리'와 평안도지방의 '나무베는소리'는 남한 경기도 연천의 나무베는소리인 '우러리'와 같은 기능의 민요로, 그 동안 비슷한 자료의 부족으로 그 실체 규명에 어려움을 겪었던 남한의 민요가 북한 민요를 통해서 비로소 완전히 파악되는 사례라 할 것이다.
어업노동요 중에서는 명태를 덕장에 걸면서 하던 '명태거는소리', 그물에 걸린 고기를 벗기면서 하던 '고기벗기는소리' 등이 귀한 자료다. 남한에서는 속초 청호동의 함경도 출신 실향민 마을에서나 어렵사리 들을 수 있었던 노래다. 함경남도에서는 명태의 주산지답게 명태잡이에서 부르던 민요가 많이 녹음되었는데, 이로써 동해안이나 서해안에 비해 빈약하던 동해안의 어업노동요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기타 노동요로는 광산에서 망치질을 하면서 하던 '메질소리', 방아를 찧으면서 하던 '절구질소리' 등이 남한에서 듣기 어렵거나 형태가 다른 민요다. 북한에는 남한보다 광산이 많았기 때문에 '메질소리'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이며, '절구질소리'는 남한의 절구질소리와 달리 숫자를 세어나가는 방식으로 주목된다.
유흥요로는 한증막이나 온천탕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부르던 '탕세기', 여럿이 춤추고 놀면서 부르던 '닐리리타령' 등이 남한에서 전혀 들을 수 없거나 듣기 힘든 노래들이다. '탕세기'는 황해도와 가까운 강화도나 김포 지역에서 드물게 '관음세기' 또는 '관음타령' 등의 제목으로 불리던 귀한 노래다. '닐리리타령'은 남한에서 들을 수 있는 '닐리리야' 등과는 전혀 다른 토속민요로, 잔치판에서 북장단에 맞춰 흥겹게 춤추면서 부르는 구음(口音) 위주의 노래다.
그밖에, 일제시대에 생성된 것으로 보이는 '흘라리'나 '미나리요' 같은 신민요가 함경도 지방에서 많이 보이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북한에서는 이런 종류의 신민요를 토속민요와 크게 구분하지 않고 함께 다루는데, 이 점도 남한의 민요연구 방식에 비추어 참고할 만하다.
남북한의 민요를 비교하면서, 남한에 있는 민요가 북한에는 없는 경우도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 민요 가운데에서 지신밟기 또는 마당밟이소리와 같은 세시의례요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먼저 눈에 띈다. 이는 북한에 세시명절에 풍물을 치고 돌아다니는 풍습이 없었거나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조사자들이 어떤 이유로 해서 그런 종류의 민요를 찾지 않았거나 소홀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밖에도 남한에는 흔한 민요가 북한에는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북한의 민요 조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남북한 간의 민요 종류의 비교는 함부로 시도할 일이 아니다. 사실, 북한민요전집에 수록된 300여 곡의 토속민요는 조사지역의 넓이를 감안할 때 남한의 '한국민요대전' 자료음반 전집(CD 103장, 2,255곡)에 비해 매우 적은 양이다.
이 정도의 자료로도 북한민요를 개략적으로 연구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지만, 남한의 민요와 동등한 수준에서 세밀하게 비교연구를 하기에는 부족하다. 따라서, 지금까지 출판된 북한민요 자료 속에서 어떤 종류의 민요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원래부터 북한지역에 그런 민요가 없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사정과는 별도로, 북한지역에 분명히 있었는데도 녹음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동요가 경우가 그러하다. 북한에서 출판된 '민요연구자료집'이나 '조선민족음악전집' 등의 악보집을 보면 수백 곡에 이르는 동요가 수록되어 있어서, 남한보다도 풍부한 동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입수한 북한민요 녹음자료에는 동요가 한두 곡 밖에는 들어있지 않다.
동요는 간단하기 때문에 악보로 채보한 후에 녹음테이프를 지워버렸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북한측의 설명이다. 아무리 단순한 동요라 해도 악보만으로 완전한 노래를 재현해내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껏 녹음한 자료를 테이프를 아끼기 위해 지워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북한 토속민요의 지역적 분포
북한의 토속민요 역시 남한 민요와 마찬가지로 지역에 따라 분포 양상이 다르다. 각 지역별로 토속민요의 분포 양상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평안북도:
농업노동요 가운데 '쇠스랑소리'가 독특하며, '논매는소리'와 '밭매는소리'가 많다. 어업노동요로는 조기잡이 때 부르던 '노젓는소리'가 많으며, 기타 노동요로는 '나무하는소리', '낫소리' 등이 독특하다.
2)평안남도:
농업노동요로 '논매는소리'가 조금 있고, '물푸는소리'와 '밭매는소리'가 꽤 있으며, '풀베는소리'가 있다. 어업노동요로는 '노젓는소리', '만선소리'가 있고, 기타 노동요로는 '가래질소리', '말박는소리', '집터다지는소리', '메질소리', '절구질소리', '아이어르는소리'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의례요로는 '무덤달구소리', 유흥요로는 '어랑타령', '아르래기', '각설이타령'이 있고 잡가에 속하는 노래로는 '배따라기'와 '제전'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노래가 풍부한 곳이다.
3)황해북도:
전반적으로 많은 민요가 분포하는 가운데, 특히 농업노동요 '논매는소리', 기타노동요 '목도소리', '나무베는소리', '달구지모는소리', '맷돌질소리', 장례요 '상여소리' 등이 풍부하다. 유흥요 가운데서는 '닐리리타령'이 황해북도에 집중 분포한다.
4)황해남도:
농업노동요로 '모찌는소리'와 '모심는소리'가 많고 '논매는소리'와 '벼베는소리'가 있다. 어업노동요로는 '만선소리'와 '조개잡는소리'가 있다. 기타노동요로는 '가래질소리'와 '말박는소리'가 있고, '달구지모는소리'가 많다. 유흥요로는 '탕세기', '나니가타령'이 특징적이며, '상여소리'도 발견된다.
5)함경북도:
농토가 적은데도 농업노동요로 '모심는소리'가 발견되는 것이 이채롭다. 밭이 많은 만큼 '밭가는소리'와 '밭매는소리'가 있다. 어업노동요로는 명태잡이를 하면서 부르는 '그물당기는소리', '고기푸는소리', '명태거는소리' 등으로 다양하다. 기타 노동요로는 '목도소리'가 많다.
6)함경남도:
농업노동요는 뚜렷한 것이 없다. 대신 어업노동요로는 명태잡이의 주산지답게 '닻감는소리', '그물당기는소리', '고기벗기는소리', '고기푸는소리' 등으로 다양하다. 유흥요로는 '애원성'이 독특하고, 신민요에 속하는 '흘리리', '미나리요' 등이 특징적이다.
7)자강도:
예전에 평안북도에 속했던 만큼 평안북도의 민요 분포와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보이나, 자료량이 적어 별다른 특징은 발견할 수 없다.
8)양강도:
역시 자료량이 적어 특징을 알 수 없으나, 유흥요 가운데 함남/강원 민요에 속하는 '어랑타령'과 '아라리'가 발견되는 점이 주목된다.
9)강원도:
휴전선 북쪽의 강원도에는 '논매는소리', '밭가는소리', '밭매는소리', '노젓는소리', '아라리', '군밤타령' 등이 있어 남쪽의 강원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10)경기도:
개풍군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민요가 수집되었는데, 농업노동요로 '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논매는소리', '벼베는소리', '물푸는소리' 등이 있고, 기타 노동요로 '가래질소리', '망질소리' 등이 있어 대체로 황해남도 지역과 분포가 비슷함을 알 수 있다.
5. 북한민요전집 발간의 의미
토속민요의 경우, 지금까지 남한에서는 북한에 어떤 민요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려지 않았다. 국문학이나 음악학을 통틀어 북한의 토속민요를 다룬 논문이나 저술은 매우 적으며, 그나마 대부분 구체적인 자료 없이 북한의 출판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연구한 것이거나 소수의 북한출신 실향민들이 부른 민요를 가지고 쓴 것이어서, 북한 토속민요의 실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에 충분치 않다.
최근에 북한에서 출판된 『조선민족음악전집』, 『조선민요 1000곡집』 등의 민요 악보집이 남한에 유입되면서 북한 민요의 모습이 개략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나, 토속민요의 특성상 원음 없이 악보만으로 세밀한 음악적 연구를 해나가는 데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토속민요 녹음자료가 대량으로 남한에 입수되어 음반으로 발간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녹음자료에는 민요의 지역성을 비교하는데 필수적인 노동요가 많이 포함돼 있고 유흥요와 장례요도 적지 않아서, 극히 부족한 동요를 제외하고는 북한의 토속민요를 연구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이다.
전문가 민요 또한 현지에서 활동하던 토박이 명인들의 오래된 소리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그 동안 남한에서 나온 서도민요와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
토속민요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녹음자료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어떠한 기보법으로도 토속민요의 미묘한 장단과 선율을 완벽하게 표시할 수 없으며, 악보 표기상의 오류도 어느 정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 필자가 북한에서 발행된 민요 악보집과 녹음자료를 대조하여 본 결과, 악보 표기가 실제 녹음과 다른 부분을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북한의 토속민요가 음반으로 출판됨으로써 남한에서 극히 부진했던 북한 토속민요의 본격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모쪼록 남북한 민요를 아우르는 한반도 토속민요의 종합적인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최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