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32429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학교길 19 ☎(041)337-3407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한응(朴 漢 應)H.P 010-5452-4865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 2023.10.15. 주일오후예배 설교문 본 문 : 사도행전 3 : 1 - 10 제 목 : 앉은뱅이 같은 믿음에서 일어나라 찬 송 : 287, 289, 305, 522.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요즘 날씨가 참으로 좋습니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입니다. 맑고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어 가을 추수하기에 참으로 좋은 날씨입니다. 이른 봄에 파종을 하여 여름내 땀 흘려 가꾼 곡식들을 거두어들이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추수의 계절을 맞이하여 우리들의 신앙도 믿음의 열매가 풍성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하는데 과연 우리들은 지금 믿음의 열매가 얼마나 있는지 자신을 한번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앉은뱅이 같은 믿음에서 일어나라」 오늘의 설교 제목입니다. 작년이나 올해나 10년 전이나 똑같이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였다면 그런 신자야말로 영적으로 앉은뱅이 신자입니다. 오늘 이와 같은 성도는 말씀을 통하여 고침 받고 일어나 뛰기도 하며 걷기도 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은 오순절날 120명 문도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에 사도들과 모든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구제하고 봉사하며 날마다 기쁨으로 믿음의 생활을 하고 또한 핍박을 받아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시므로 가는 곳마다 기사와 이적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는 중에 미문에 이르자 그 문 곁에 앉은뱅이가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문이란 화려하고 웅장하여 미문이라고 불려 졌는데 바로 그 문 곁에 매일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이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입니다. 그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하며 앉은뱅이와 같은 신앙에서 일어나 걷는 기적이 이 시간 일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1. 그러면 먼저 앉은뱅이의 실상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이 앉은뱅이는 자신의 다리로 걷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앉은뱅이는 선천적이든지 후천적이든지 다리에 장애를 입어서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동물들은 다리로 걸어 다니고 있고 하늘을 나는 새들도 땅에서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닙니다. 심지어는 미물의 버러지나 곤충들도 다리로 걸어 다닙니다. 그런데 유독 앉은뱅이만은 다리를 쓰지 못하고 앉아서 두 팔을 이용하여 기다시피 움직여 다닙니다. 우리들은 장날 장거리에서 작은 수레에 여러 가지 물건들을 싣고 팔고 있는 앉은뱅이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지금 믿음의 상태가 영적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앉은뱅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 이 앉은뱅이는 남에게 의존하여 살아갑니다. 지금은 휠체어라든가 하는 보조 장구가 많이 발달이 되어서 장애자들도 이동하기가 수월해 졌습니다. 게다가 휠체어도 전동 장치가 되어 있는 것도 있어서 편리하지만 당시에는 그와 같은 보조 장구가 없기 때문에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이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3) 이 앉은뱅이는 자력으로 소득을 얻기가 어려워서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의 동정을 받아야 하고 때로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혐오감을 줄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장애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향상이 되어서 정상인과 똑같이 대우를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나면서부터 소경이 되거나 앉은뱅이가 된 사람은 그 부모 중에 누군가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 죗값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고 후천적으로 장애가 된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정을 하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멸시와 천대를 하였습니다. (4) 이 앉은뱅이는 생활의 발전이 없습니다. 매일 누군가가 미문 곁에 업어다가 놓으면 하루 종일 하는 것이 구걸뿐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생활은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5) 이 앉은뱅이는 성전 문 앞에까지 와서는 구걸을 하였습니다. 성전까지 와서 은혜를 구한다든지 영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푼의 돈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성전 앞에까지 왔으면 당연히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영생을 구하든지 아니면 은혜를 구하든지 하여야 하는데 당시의 율법에는 장애자는 부정한 사람이라고 해서 성전 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2. 세상에는 육체적 앉은뱅이가 있는가하면 영적으로 앉은뱅이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 앉은뱅이 입니까? (막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막4: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귀가 있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영적 귀머거리입니다. 눈이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으면 영적 소경입니다. 입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면 영적 벙어리입니다. 다리가 있어도 제 발로 하나님의 교회에 오지 못하면 영적 앉은뱅이 입니다. (1) 자기의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사람은 영적 앉은뱅이입니다. 신앙생활을 10년 20년 하였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마지못해서 끌려 다니는 신자가 있다면 바로 이런 사람이 영적 앉은뱅이입니다. 이제는 누구에게 끌려 다니지 말고 자신의 믿음으로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지 못하고 남이 나에게 도움이나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영적 앉은뱅이입니다. (2) 영적으로 앉은뱅이와 같은 사람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이 다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남이 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사람은 그 믿음이 발전이 없습니다. 신앙은 성장하여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도와주어야 성장을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자신이 모든 것을 해 나가야 합니다. 밥을 먹는 것도 어려서는 먹여주지만 돌만 지나면 자신이 서툴지만 숟갈질을 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래서 남에게 의존이나 하려고 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꾸만 누가 도와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생활이 윤택하여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딤전4:15)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3) 영적 앉은뱅이는 세상 것만 구하면서 살아갑니다. 미문 곁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는 성전 문 앞에까지 와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의 어떤 욕심이나 채우려고 하고 또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버리고, 하던 일도 박차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를 10년 20년 다녔어도 아직도 신앙은 어린애 같은 상태에서 자라지 못하고 기형아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자기의 욕심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 벌러 가고 싶으면 주일날도 돈벌러가고, 잔칫집 가고 싶으면 잔칫집 가고, 장에 가고 싶으면 장에 갑니다. 이런 사람은 바로 자신의 정욕대로 사는 사람이요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찬송가 522장3절>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이 세상 물질 불탈 때 너도 타겠구나. 아 멘! 3. 그러면 구걸이나 하던 앉은뱅이가 어떻게 변화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이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만남의 역사입니다. 사람이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중에 내 인생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악한 사람을 만나면 같이 악해 집니다. 사기꾼을 만나면 사기꾼이 되든지 사기를 당하든지 합니다. 도둑놈을 만나면 도둑을 당하든지 함께 도둑놈이 되든지 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선생 밑에서 배운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고 학교를 중요시 하지만 독일이나 유럽에서는 누구에게서 배웠느냐를 더욱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현대 교회의 교인들은 좋은 목사를 만나야 신앙이 잘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목사는 좋은 교인을 만나야 목회 하는데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순탄한 목회를 할 수가 있습니다. (2)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기까지 한 일은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본 것뿐입니다. 이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라”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3)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킬 때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에게 명령을 합니다. (행3:6-8)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아 멘! 이 앉은뱅이는 일으킬 때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믿음이 약해졌을 때, 또는 은혜가 떨어졌을 때, 열심이 식었을 때, 권면하면 그때 바로 의심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주의종이 권면을 하거나 심방와서 권면하면 믿고 일어나야 합니다. 권면할 때 듣지 않으면 영원히 영적 앉은뱅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4. 앉은뱅이가 어떻게 변화가 되었습니까? (1) 이 앉은뱅이는 일어나 스스로 걸어갔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지금까지 나서부터 자기 스스로 한 걸음도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자기 힘으로 자기 발로 걸어갔습니다. 너무 기뻐서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누구의 힘도 아니고, 목사의 힘도 아닌, 자기 스스로 일어나,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할 수 있는 믿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이 앉은뱅이는 드디어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지금까지 자기 발로 들어갈 수 없어서 성전 문 앞에까지 와서 들어가지 못하던 이 앉은뱅이의 소원은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성전 안에 들어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들어가 보고 싶어도 부정한 사람이라고 해서, 병신이라고 해서, 들어가지 못하던 그 성전을 드디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내 발로 걸어서 하나님의 성전에 나올 수 있다는 것만 하여도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나면서부터 40세가(행4:22) 되기까지 그렇게 들어가 보고 싶은 성전을 이제야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지내던 사람이 뛰어 다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가고 싶은 데가 많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제일 먼저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성전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면서 지은 시편입니다. 그들은 참새와 제비가 마음대로 성전에 들어가 추녀 끝에 집을 짓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이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탄식하였습니다. (시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지금까지 성전 문 곁에서만 맴돌고, 변두리에서만 맴돌던, 소극적이며 매사에 부정적이던 신앙이, 이제는 변화되어 성전 안으로 들어가고, 믿음 안으로 들어가고, 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으로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3) 이 앉은뱅이는 드디어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앉은뱅이는 지금까지 40세가 되기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기는커녕 자신을 저주하고, 자기를 낳은 부모를 원망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겨우 한다는 소리가 구걸하는 소리밖에 하지 못하던 그의 입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입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와 같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찬송이 되어야 하고, 전날의 불평과 원망이 변하여 감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는 항상 찬미와 기도와 감사가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히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다 같이 찬송가 370장 2절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주님만 따라가리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앉은뱅이와 같은 상태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영적 앉은뱅이에서 이제는 고침 받아야 합니다. 일으켜 줄 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외람된 말씀이오나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또 모든 나의 설교는 실명제입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