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쌍/둥이] Triplets. 세 쌍둥이 - # 116
순수 배양된 화초.
필요한 것 이외에는 주어지지 않아, 어쩜 현실에는 적응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꽃.
정상적으로 자란 열여덟 살의 남자아이라면 당연히 알아야할 것을 모르는 꽃.
순수 배양된 화초.
# 116
“ 야. 빨간 체크 치마에 핑크색 블라우스는 어느 학교냐? ”
“ 왜? 유린 여고 애랑 바람이라도 피게???
하긴... 거기 물이 좋긴 하지... ”
“ 죽을래? ”
도통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던 나인지라 어느 학교의 것인지 모를 교복을 떠올리고는
여자애들이 있는 학교에 대한 거라면 정혁이 녀석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판단해서
정혁이에게 물었다. 하지만 어설픈 농담을 해대는 모습에 눈을 흘겨주고 말았다.
남은 심각하게 묻는데...
“ 그럼 왜? ”
“ 그건 상관하지 말고. ”
“ 유린 여고.
청운 중학교 근처에 있는 학교야.
나름대로 명문이지. 이 근처의 유일한 여고니까...
거기 물이 좋거든. 크크.... ”
“ 걔네는 몇 시에 끝나냐? ”
“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우리랑 비슷하게 끝날 껄? 왜??? ”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이제는 아예 이어있는 혜성이의 의자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얼굴을 들이밀고는 끈질기게 묻는다.
“ ...................... ”
“ 야! 물어 봤으면 대답을 해야지!!!
야! 이민우!!!!! ”
어제 엉엉 울다 잠이 든 녀석을 보듬어 안고는 밤새 고민해본 결과 다시 그 계집애를
만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나 혼자 만난다면 녀석이 나중에
알고는 걱정하고 신경 쓸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녀석과 함께 해결하는 것 뿐...
“ 유린 여고래. ”
“ 응??? ”
어디에 갔다 온 건지 슬그머니 사라져서는 날 걱정시키더니 혼자 빙긋-웃으며 돌아온
녀석은 어제 운 것 때문에 여전히 눈이 퉁퉁 부어서는 놀란 듯 날 올려다보았다.
“ 그 계집....... 아니. 그 여자애. ”
“ 어제... 그 애?... ”
녀석의 예쁜 눈이 순간 다시 흔들렸다.
“ 응. ”
“ 아!... ”
녀석은 잠시 고민하는 듯한 눈치였다.
싫은 건 싫다고 말 못하는 녀석.
그 계집애에 대한 기억이 싫으면서도 싫다고 말도 못하고 혼자 고민만 하는 녀석.
“ 오늘 토요일이라 일찍 끝난다니까, 가 볼래? ”
“ 응... ”
녀석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사이 바짝 마른 듯한 녀석의 볼을 살며시 쓸어내리자, 녀석은 깊은 두 눈을 내
리 깔아 길고 예쁜 속눈썹을 보이며 내 허리에 머리를 가볍게 기댔다. 그 작은 머리
를 감싸 안았다.
“ 아!... 저기... ”
녀석은 교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리 중 한 곳을 가리켰다.
시끄럽게 떠들며 귀여운 녀석을 힐끔거리는 계집애들 틈에서 머리가 지끈거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도중, 녀석은 용케도 어제의 그 계집애를 찾아냈나보다.
그리고 그 계집애도 교문 앞의 모든 여자애들이 힐끔거리는 우리를 발견했는지
긴장한 표정으로 우리 쪽을 향해 걸어왔다.
“ 어제는 쫓아내더니 대체 왜 찾아온 거지??? ”
내 표정도 그 계집애와 다른 표정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꽤나 짜증스런 표정이었으니까...
“ 저기... 난 현성이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어... ”
“ 하~ 그러시겠지... 귀하신 몸이 현성이한테 관심이나 있으셨겠어??? ”
“ 너!!!!!!! ”
“ 민우야!!!! ”
녀석은 그 발칙한 발언에 화가 나 소리치는 날 말리며 내 팔을 끌어안았다.
그런 녀석의 마음 때문에 아무 말 없이 그 계집애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기껏 일을 좀 잘 해결해보겠다고 온 사람들한테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왔어. ”
“ 뭔데? ”
짜증이 잔뜩 섞인 그 목소리에 당장이라도 녀석을 끌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녀석의 진지한 표정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 어디... 들어갈까?... ”
혜성이의 조심스런 물음에 그 여자애는 건망진 눈초리로
혜성이와 날 한번 쓰윽- 돌아보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 뭐 마실래?... ”
“ 난 됐어. 생각 없어. ”
“ 커피랑 오렌지 주스요. ”
혜성이의 조심스런 질문에 싸가지 없이 말하는 그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적대적인 모습에 많이 당황한 모습의 녀석을 보기 싫어서 대신 주문했다.
“ 뭘 물으려고 직접 행차하신 거지? ”
말투에 가시가 있었다.
“ 넌 현성이가... 아팠던 일을 알고 있었니?... ”
“ 너 알고 있었단 말야???!!! ”
혜성이와 마주 않아서도 줄곧 분노라는 감정 말고는 표현되지 않던
그 계집애의 얼굴에 다시 강한 분노가 떠올랐다.
“ 어제... 알게 됐어... ”
“ ........... 현성이는 유성이한테도 말 못했어. ”
“ ........ 알아.... ”
녀석은 물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돌아본 혜성이의 눈가는 이미 붉어져 있었다.
아직 어제의 붓기도 빠지지 않은 눈가가 다시 붉어진 것을 보자 가슴이 아팠지만,
어제 정신없이 울던 녀석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런 일을 빨리 해결할 수록
녀석이 덜 아플 거라고 생각했다.
“ ........ 현성이.... 정말 많이 힘들어했어.......
유성이한테 자기 엄마가 자기 존재를 잊곤 한다는 말을 하기가...
그것도... 형 때문에 그런다는 말을 하기기 쉽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많이 방황하고 힘들어했어.
게다가 쌍둥이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비교 아닌 비교를 당했어.
성적, 성격, 운동 실력, 교우관계, 선생님들과의 관계...
모두 비교 당했어.
현성이가 아무리 잘해도 유성이만큼은 되지 않았어.
그리고 그게 현성이를 더 힘들게 했어.
현성이에게 유성이란 존재는 날기 위한 날개가 아니라 추락을 위한 추였어.
유성이의 존재는 현성이에게는 독이었어.
하루 하루 중독되어 죽이는 독. ”
“ ................... 그렇게......... 많이........ 힘들었니?............ ”
“ 네게 유성이란 존재는 날개였더군.
유성이가 만들어 놓은 후광이 네게는 최고의 재산이었어.
공부, 학교생활, 선생님들의 관심, 친구들... 모두 유성이가 만들어 준 것 아니야? ”
“ 듣자 듣자하니까 한도 끝도 없군.
네 말은 혜성이의 현재 생활이 모두 유성이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거야? ”
참을 수 없어 끼어들었다.
점점 자라가는 혜성이를 위해 난 그저 곁에 있는 관찰자만 되려 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억지 때문에 녀석이 쓸데없는 오해를 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 그런 아니야? ”
“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걸 다 아는 척 하지 마.
아무리 혜성이가 유성이의 동생이라 할지라도
이 녀석이 유성이만 못한 녀석이었다면 상종하지 않았어.
단순히 유성이의 동생이기에 이 녀석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 녀석을 아끼고, 이 녀석을 사랑하는 게... 아니야.
이 녀석이... 그만큼 소중한 녀석이기 때문이지... ”
“ 민우야..... ”
넌.... 보석이야.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석...
“ .............................. ”
나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무언가 할말이 있다는 듯 씰룩거리는 입가를 보며
왠지 모르게 선호가 떠올랐다.
재원이와 혜성이의 관계에 대해 말할 때의 선호.
이 여자애는 그때 선호와... 같은 기분인 걸까?...
“ ............ 한순간도..... 한 순간도 현성이를 버릴 수 없었어....
떠난 지 3년째인데... 잊을 수 없었어......
현성이란 존재는 기억조차 못하는 듯 멀쩡하게 구는 유성이도.....
그리고 십년이 넘게 여기엔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았으면서도
유성이가 떠난 뒤에서야 나타나 유성이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관심을 끄는 너도...
모두 싫었어.
그 누구도 현성이의 아픔은 알지 못하면서
유성이와 너만을 기억하는 것... 참을 수 없었어.
난... 아직도 현성이를 기억하는데... 아무도 현성이는 기억하지 않아.
단지 유성이만을 기억할 뿐이지... ”
“ 네가... 기억하잖아. ”
“ ...........!!!!!!!!!!!!.......... ”
혜성이의 말에 무척이나 놀란 듯 눈이 커진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내가... 이 여자앨 본 적이 있었나?...
“ 넌 아무도 현성이를 기억하려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넌... 기억하잖아.
다른 100명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강하게... 네가 기억하잖아.
왜 너의 존재는 무시하는 거야?
현성이에게 넌... 누구보다도 소중한 존재였는데... ”
“ ................................ ”
“ 그리고 우리도...... 형과 나도 현성이를 기억하지 않는 게 아니야... ”
“ ............................ ”
“ 많이 어려서... 많이 힘들어서... 잊은 척 했던 것뿐이지... ”
“ ............................ ”
“ 현성이가 떠나던 날. 형은 너무 울어서 현성이의 장례식에조차 참석할 수 없었어.
우리에게 현성이가 떠난 일의 아픔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이었어...
............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하나니까.......
존재하던 순간부터 하나였고, 여덟 달을 한 공간에서 지냈고,
그에 스무 배 이상이 되는 시간을 떨어져 지냈지만,
단 한순간도 우리가 하나라는 것 잊은 적이 없어.
.............. 때로는 이유 없이 가슴이 아프기도, 행복하기도 했어.
그 이유는 모르지만,
난 그 순간이 형이나 현성이의 마음을 느끼는 순간이라 생각해.
그리고 현성이가 나와 형에게 보여준 웃음이 나와 형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이기만 했다고는 생각지 않아.
분명 현성이는 아픈 순간이 있었겠지만, 또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 행복한 일 중에... 널 만난 일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
“ ............................. ”
그 애는 혜성이의 말에 아무 말도 없었지만, 울고 있었다.
꽤나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우는 그 여자애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하는 혜성이가 더 크게 보였다.
너도... 자라고 있구나.
처음 왔을 때는 네 생각조차 말하지 못하는 어리기만 한 녀석이었는데...
넌 많이 자랐구나...
그런 네 모습이 뿌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해.
네가 날아갈까 봐...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새 같던 네가 자라나 날 떠나버릴까 두려워.
난... 두려워...
녀석은 그 여자애가 나간 문을 꽤 오랜 시간 바라보고 있었다.
“ ...........................................
................ 혜성아................
......... 혜성아?..................... ”
“ .......................................... ”
“ .......... 혜성아. 혜성아???? ”
나의 부름에도 대답이 없는 녀석의 얼굴을 잡아 돌렸다.
녀석은.... 울고 있었다....
“ 혜성.... 아....... ”
“ ....... 흑...... 민우야...... 흐흑....... ”
녀석이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많이 강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여린 아이....
“ 괜찮아. 괜찮아.... ”
“ 흐흑..... 모두 내 변명이야..... 흑.... 다.... 내 변명이야.....
흑..... 내..... 내 잘못인데.... 흐흑.... 내.... 잘못인데.......
흐흐흑..... 흑..... 내 잘못인데..... 괜히........ 흑.......
....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고 말았어..... 흐흐흑.....
.... 흑..... 다른 사람에게..... 흐흑..... 다른.... 사람에게...... ”
“ 아냐. 틀린 말 아니야.
다 맞는 말이었어.
네가 그랬잖아.
내가 하는 말만 듣겠다고.
내가 하는 말만 믿겠다고...
그렇지? 그렇지 혜성아?... ”
“ 흑..... 응..... 난 민우가 하는 말만 들어.... 흐흑....
훌쩍.... 그리고... 민우가 하는 말만 믿어. ”
“ 그래. 내 말만 듣고, 내 말만 믿어.
날 믿어. 날 믿어. 혜성아.
네가 한 말이 맞아.
현성이의 상처는 네 잘못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너와 현성이, 그리고 유성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자격은 없어.
그럴 자격... 아무도 없어.
날 믿어. 날 믿어. 혜성아..... ”
“ 민우야.... 민우야..... 민우야...... ”
너의 안타까운 현실과 너의 뜨거운 눈물이 가슴 아프지만,
아직까지 날 필요로 하는 너의 모습에 난 안심하고 있어.
이런 이기적인 날 용서해.
너의 아픔에 안도하는 날 용서해.
혜성아.
이런 날 용서해.
--------------------------------------------------------------------------------------
러브홀릭에 감상 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Triplets.의 소설 이미지와 저의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곳.
러브홀릭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