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
넓은 길 옆으로
한 사람이 내려갑니다
옷은 단촐하고 맨발입니다
보인 듯 안 보인 듯 걷지만 햇살 들고
사랑은 주렁주렁 걸려 있습니다
ㅡ박순찬
《쪽수필/오정순 》
관념의 노예인 내게는 좁은 길이 좁은 문으로 읽힌다. 한 편의 디카시가 무수한 생각으로 확장 되며 나를 디카시에 머물게 한다. 내가 지금 저 초록 사람처럼 단촐하게 입고 사는가,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는가, 실루엣으로 뒤만 보여주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좁은 길로 들어서면 사랑이 주렁주렁 걸렸을 텐데, 좁은 길에 햇살이 비치는데, 그늘진 대로로 외롭게 걷고 있지는 않는가 질문하게 한다.
빛과 어두움 중 빛을 취하고, 변방을 걸으며 햇살을 받고, 사랑이 주렁주렁이라니 영락없는 영적 이미지다. 오래도록 내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나더러 그렇게 살라고 말을 걸 것 같다. 게다가 내려간다니 참으로 숙연해진다.
올 때도 맨발로 왔으니 갈 때도 맨발로 가는 저 사람, 참으로 잘 가고 있는 사람, 당신은 필경 주어진 탤런트를 아주 잘 사용하고 좁은 문 앞에서는 가볍디 가벼워서 날개를 달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팡파레가 울리고 천사가 나팔을 불며 환영할 겁니다. 부러운 삶의 끝을 보여 주시기 위해 지금 그렇게 가시는지.
감상자의 가슴에 각인되는 저 이미지를 품고 내 남은 세월을 그대의 아름다운 자세로 살아가야만 하리.
첫댓글 저도 아주 당연하게 좁은 문으로 생각하고 읽었네요~
초록 사람의 뒷모습이 각안될듯 강합니다^^
그래서 요즈음에는 찬찬히 짚어가며 살려고 노력해요
전혀 엉뚱한 쪽으로 읽고 지나가는 경향도 보여요^^
사람들은 세월에 익어 올라가기만 하려고 하는데, 문득 내려가는 한 사람의 이미지가 포착되었습니다. 좁은 문의 이미지가 맞습니다. 생명이 차오르는 길은 어느 길일까. 좁은 문을 향할 때, 함께할 사람들을 위해 내려갈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정순 시인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뿌연 이미지가 더 명확해진 느낌입니다
갓길, 내려가다, 소박한 차림, 맨발,
존재감 줄이고 빛과 사랑을 곁들이다
성인전 읽는 기분입니다
@오정순 염두해 주었던 것이 아닌데..
이미지가 눈에 딱 들어오고..
디카시가 참 묘합니다.
근원성을 건드리기도 하고요.
고맙습니다.
@박순찬 자주 창작하면서 자신을 다듬어가는 도구로 삼아도 좋습니다.
쓸 줄 안다
잘 쓴다 못 쓴다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영적 활동의 성숙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요
@오정순 자신을 다듬어가는 도구..
마음에 담아두겠습니다.
선생님의 느낌도 저와 비슷했나 봅니다.
작품을 품고 싶어 제 페북에도 소개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순찬 연등길 지나
절에 가시는
스님 같기도 해요
@오정순 네 연등으로도 보일만 합니다..
햇살들고 사랑은 주렁주렁
걸렸습니다~
새로운 표현 배움합니다
오선생님 감상도 심쿵합니다